109화
<남매>
로마이어와 박찬휘는 부두에 버려졌다. 이곳은 드래곤이 퇴치되기 전에는 사람 하나 나타날 일이 없는 곳. 도움의 손길은 전혀 받을 길이 없었다.
아직 목숨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길게 가지 않는다. 사지가 로드 롤러에 깔린 듯이 죄다 박살났고, 머리나 몸통도 원형을 유지하고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갈비뼈를 생으로 뽑혀 관통당해 있는 시점에서 답이 없다.
아무리 길게 봐줘도 3시간을 못 버티리라.
"크르륵…."
죽어가는 와중에 로마이어는 생각했다. 과연 이 상태에서 드래곤이 퇴치되어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시체를 발견하고 신고를 하면 영천후가 살인죄를 받을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아까 전엔 불이 들어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명용 임시 전력이었고, CCTV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누가 죽였는지 알게 뭔가? 그리고, 알면 어쩔 건가?
드래곤을 막 퇴치한 구국의 영웅이 살인을 한 것이 세간에 알려지기나 할까? 110명의 일리미네이터들의 살인교사도 마찬가지. 아니 애초에 신고고 뭐고 이렇게 달아놨다가 자신이 죽었을 내일쯤 치워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빌어먹을!'
억울하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같잖은 이유로. 자기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핑계 삼아 놈에게 전부 붙다니. 왜 그런 예쁜 말로 자신들을 치장하지? 그냥 돈이 벌고 싶었다고 해! 삼천만 달러가, 드래곤 트라이 이후의 부를 가지고 싶었다고 하라고!
차라리 그래. 드래곤이 무서웠단 말은 이해라도 할 수 있다. 그게 위험천만했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걸로 실각을 시켰다면 억울하단 생각은 않겠어.
하지만 이놈들은 마지막에 되도 않는 소리로, 자신을 마치 죽을죄 지은 죄인으로 만들어서 몰아붙였다. 목도 상하고, 혀도 뭉개져 반론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인 자신에게 자기들 할 말만 씨불이곤 이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개 같은. 더러운 살인자 새끼들! 어디 그렇게 철면피 깔고 살아봐라! 저주해주마! 영원히 저주해주겠어!
"으어어…! 으워…!"
투두둑. 투둑.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범상치 않다. 점점 눈앞이 흐려지는 게, 죽음이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아니 애당초 이 정도로 처맞았으면 진작에 죽었어야 옳다. 영천후가 건 일시적인 강화주문의 효과로 목숨이 연장되었던 것뿐.
아무리 외쳐봐야 이곳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점점 의지가 꺾여나간 로마이어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쳐져 갔다.
하지만 바로 그때.
또각. 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 구두 소리. 여자 구두 소리.
로마이어는 이 발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어디, 어느 곳을 가더라도 똑같은 발걸음을 유지했던 여자의 발소리니까.
과연.
그의 앞에 그 주인이 와있었다.
"결국은 이 꼴이 되고 말았나."
나지막한. 조용한 말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짠 바닷바람 사이로. 피 냄새 가득한 몸을 지나, 모란 향이 뭉개진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잘나신 동생이 보였다.
친란.
아니 로자미아 엔체스터.
"어…. 억…."
입에서 목소리를 내보려 하는 동시에, 몸이 조금 따듯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놀라서 보니, 그의 몸 양옆에 사람 둘이 붙어서 손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이 치유마법의 빛임을 안 로마이어의 얼굴이 밝아졌다.
"로…. 로자미아."
잠시간의 처치로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그것에 희망을 품었지만, 곧 마법사들은 물러나서 친란의 양옆에 섰다.
"왜, 왜…."
더 치유해주지 않는 거지라는 물음을 하기도 전에, 친란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네 몸은 더 회복되지 않아. 유그드라실의 처치를 받아도 마찬가지겠지. 박찬휘 때의 일은 기억하겠지?"
"큭…."
"그리고…. 설령 조금 더 완화할 수 있다 한들. 더 진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싸늘하게 내뱉는 말에 로마이어가 침음성을 삼켰다. 평소 감정이 완전히 드러내는 것을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부채조차 접어둔 채 노려보는 눈빛은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로마이어의 목소리가 사정 조로 바뀌었다.
"로자미아…. 부탁한다. 이 오빠를 살려다오. 움직일 수 있을 정도면 돼. 다시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으마. 몸이 회복되기만 한다면, 시골에 박혀서 평생을 조용히 지내마. 응?"
"……."
"부탁이다…. 란."
조용히 구슬리듯, 아명을 입에 올리자 로마이어의 아미가 찡그려졌다.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너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
버럭하고 내지르는 소리와 함께, 친란의 눈동자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태 오라버니를 죽인 네놈이 나를 그렇게 부르다니!"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노기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로마이어는 혀 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건 오해야, 란.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나도 녀석에겐 손을 대고 싶지 않았어. 그가 내 말만 들어주었다면…."
"로마이어!"
"그래서 오빠를 바라는 셀레나를 챙겨주려고 했던 게 아니니?"
"웃기지 마라! 여기까지 와서 나를 속일 수 있단 생각은 하지도 말란 말이다! 네놈에게 있어 셀레나는 그저 루셀 가와 엮일 구실에 지나지 않았어!"
"……."
로마이어의 표정이 굳었다가 풀렸다. 정말로 모든 걸 알고 있을 줄이야. 하지만 정에 호소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광대가 변검한다.
그는 웃음 짓다가, 초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알았다. 그럼 너는 나를…. 이 오라비를 여기에서 그냥 죽게 놔둘 거냐?"
"……."
"내가 너에게 박하게 굴었다 한들, 나는 너의 유일하게 남은 단 한 명의 혈족. 남매다. 그런 나를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둘 셈이냐?"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말에 친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본 재주를 유감없이 다시 뽐내고 있다니.
"네가 혈족만 아니었다면, 이미 진즉에 내 손으로 죽였을 것이다."
"…거친 말을 쓰는구나, 란. 어머니가 슬퍼하실 거다."
"……!"
번쩍! 자기도 모르게 손을 치켜든 친란은 그것으로 로마이어를 후려치려 들었다. 하지만 그때. 덥석 하고 그녀의 손을 누군가가 잡았다.
"그쯤 하거라, 로자미아. 손이 더러워진다."
중저음의 목소리. 그것을 들은 친란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천천히 손을 내린 그녀는 친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 아버님."
"!"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로마이어는 목이 반쯤 부서진 상태임에도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로마이어와 꼭닮은. 그가 나이를 먹어 60대가 되면 저렇지 않을까 싶은, 금발에 키 큰 서양인 남성이 그녀의 옆에 다가와 있었다.
"아버지!!"
"……."
로마이어의 눈이, 눈꺼풀이 없음에도 떨렸다. 안구째 떨리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남자의 입에선 차가운 말이 나왔다.
"아버지? 나는 아들을 둔 기억이 없다."
"무, 무슨. 아버지. 저입니다. 로마이어 입니다!"
"로마이어? 흠…."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이 길게 생각하던 남자는 잠시 후 기억났다는 듯이 흐음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친 가의 세이룽에게 내릴 이름이 그것이긴 했었지."
"네!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 제가 친세이룽, 로마이어 엔체스터 입니다!"
로마이어는 급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오히려 굳었다.
"그렇군. 그런데…. 내 기억엔 이름을 내리진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너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엔체스터를 자칭하는 거지?"
로마이어의 말문이 막혔다. 동공이 커지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사이, 로마이어를 치료했던 사람들이 그의 목에 무언가를 채웠다. 로마이어는 그것이 리미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아버지?"
"친세이룽. 한때 가문에 들어오려고 했었다가 실패했었던 사생아. 그게 네 이름이다. 그리고 엔체스터의 이름을 받지 못한 이상, 너는 내 자식이 아니지."
"!"
찰칵. 어느새 남자의 손에 들린 리볼버의 공이가 당겨지는 소리에 로마이어의 입이 다물어졌다. 남자는 말했다.
"세이룽. 너에게는 두 번의 기회를 줬다. 한번은 20살 때.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하지만 너는 둘 다 실패했고, 두 번째는 가문의 이름을 함부로 끌어다 썼지. 네놈 덕에 가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더는 좌시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졌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 때문이다."
차가운 총구가 그의 이마에 닿았다. 남자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로마이어는 소리를 질러댔다.
"잠깐! 아버지! 살려주십시오! 아버지! 빌어먹을! 이럴 거면 뭐하러 저를 치료한 겁니까?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잠시. 그저 잠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네가 하는 말은 마지막까지 아무 가치가 없었구나, 세이룽."
"! 친란, 아니 로자미아! 살려다오! 정말로 앞으론 아무것도 하지 않으마! 너의 어떤 것에도, 아니 세상 어느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죽은 듯이 살겠다! 그러니, 제발 살려다오! 란!!!"
절규하는 목소리에 친란은 가만히 로마이어를 바라보았다. 엉망으로 뭉개져 원형을 유지할 수 없는 그 얼굴을 보며. 로마이어는 찰나 동안 과거를 되짚었다.
*
친란의 어머니, 친메이링은 화교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거부의 딸이었다. 세계 최고의 거부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낼 정도였던 그의 부친은 엔체스터 가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정략결혼을 맺었다. 친메이링과 알바티니 엔체스터 간의 결혼이었다.
하지만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친 가는 화교집단 간 있었던 항쟁을 뒤에서 지배하다가 역공을 맞아서 몰락했다.
엔체스터는 친 가와 연을 끊었고, 장자로 태어난 친세이룽은 사생아가 되었다.
하지만 알바티니 엔체스터는 이혼한 친메이링과 은밀히 관계를 유지했고, 그 사이에 친란을 낳았다.
하지만 그 관계조차 친란의 출생 후로 끊겼다.
부친이 몰락하고도 어느 정도 재산을 챙겨 삶을 유지했던 친메이링은 현명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가문 자체의 몰락과 남편에게 버려진 충격은 커서, 그녀는 정신적으로 병약해져 얼마 못 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버지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친란은 그 떠나는 길을 마지막까지 배웅했다.
그날 이후. 친란이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엄청난 상재商才로 메이링의 남아있던 재산을 활용해 어린 나이에 제 오빠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메이링의 부친이 가졌던 부와 비슷한 수준까지, 불과 3년이 지나지 않아 복구해냈다.
그 재능을 탐내어 엔체스터가 다시 접근해왔다. 그들은 제안해왔다. 엔체스터의 이름을 받지 않겠느냐고.
어머니의 평생 숙원과도 같았던 그것을 친란은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제시한 시험을 거쳐 그녀는 로자미아 엔체스터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오라버니 로마이어는…. 상재가 없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친란을 때어낸 상태의 그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인 짓거리에 돈을 탕진했고, 원금의 수백 배가 넘는 돈을 잃었다. 결국 그는 가문의 이름을 받지 못했다.
친란이 어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였다면. 서구인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던 세이룽은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컸다. 검은 머리를 금발로 물들여 아버지의 흉내를 내고 다닐 정도로…. 그는 엔체스터가 되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너무 큰,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피해를 본 그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이름을 받은 로자미아 옆에서 머물며, 붙여지기로 예정되어있던 이름을 스스로 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동생인 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B랭크 일리미네이터로 활동하기 편한 한국으로 엔체스터의 동아시아 지부를 옮겨달라 부탁한 것도 그였다. 엔체스터의 이름을 받았지만, 친오빠인 그의 청을 란은 쉽게 거부할 수 없었다.
엔체스터 콜로니가 만들어지고, 그곳은 고스란히 그의 활동 거점이 되었다. 친란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스스로 매진할 곳이 생겼다는 것이니까.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엔체스터 본가에서 있었던 파티.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와 부딪혔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미국에서 있었던 파티에 참석할 정도면서, 영어라곤 초등학생 수준이었던 그 남자는 그녀의 신분이나, 가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친란은 한참 어린 시절이라 자기 자신의 재능과 가문의 이름에 취해있었던 시기. 이 때문에 자신을 그저 정말로 어린 소녀로만 받아들이는 그는 신기한 존재였다.
그 때문인지.
어느샌가 사랑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럴만한 동기도 일단은 있었다. 황정태. B랭크 일리미네이터였던 그는 대한민국 모든 일리미네이터들의 수장, 조율자였으니까.
7년 전이다. 아직 아주 적은 돈만이 디제스터 퇴치에 풀리던 그때. 그는 최대한 모든 사람을 신경 써주며, 이권 다툼을 중간에서 중재해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였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그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을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 일리미네이터들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다.
그걸 곁에서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린 마음에 히어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두근거리곤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그녀의 곁에 있었고.
15세가 되던 해의 어느 날. 그는 죽었다.
처음에는.
처음에는 사고사라고 생각했다. 위기에 빠졌던 C랭크를 구하다가, 자신이 희생한 것이라고. 친란 역시 슬퍼했지만 숭고한 희생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련을 가지고 사고기록을 확인해보고, 당시 레이드 인원들을 만나보자…. 그녀는 사고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정태가 감싼 그 여자는 로마이어의 당시 애인이었고. 그러면서 황정태에게 일부러 접근하고 있었으며. 정태의 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녀는 전투 때 절대 그녀가 있을 수 없을 위치에 일부러 진입해있었고. 그것은 황정태의 인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 이후로 은퇴했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업계에도.
세상에 어디에도.
15년간 함께해왔던 오빠의 진면목을 보는 순간이었다.
*
"오라비…. 나는…. 그럼에도 너에게 기회를 줬었다. 네가 내 비호 아래서 가문의 이름을 대고, 정점의 힘을 휘두르는 것도 묵인했다. 그 모든 게 혈족이었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정태 오라버니의 사인을 셀레나에게 말하지 않았지."
"라…란!"
"네가 무슨 말을 주워섬긴들…. 지금 일어난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너의 것이다. 그러니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가문에 들어오지 못하는 건 생김새나, 머리카락 색 때문이 아니라고. 자신의 주제를 알고, 너 자신의 재능을 살리라고. 그랬다면…."
로마이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소리가 들리자 다급하게 외쳤다.
"란!"
"…네가."
타앙!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마라…."
타앙!
두 발의 발포음과 함께, 반 시체 두 개가 시체로 화했다.
권총을 쏜 남자, 알바티니 엔체스터는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몸을 돌렸다.
"로자미아. 우는 게냐?"
"네. 혈육이 죽었습니다. 울어야지요."
"아직 어리구나."
"이제 스물이니까요."
조용히 답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알바티니는 그녀의 옆에 멈춰 섰다.
"그자를 지원할 생각이라고?"
"네."
"네 뜻대로 하거라. 그에겐 가문의 이름으로 빚을 졌으니."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알바티니는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친란은 멀어지는 발소리를 그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아버님. 아버님에게 로마이어는 무엇이었는지요?"
발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곧 다시 들려왔다.
철혈의 목소리와 함께.
"엔체스터에 로마이어란 이름은 없었다."
과연. 그렇겠지요. 아버님에겐 그렇겠지요. 친란은 차를 타고 떠나는 그를 배웅하는 대신, 두개골이 관통된 제 오빠의 머리를 가만히 안았다.
"오라비…. 이게 나에게 남은 너에 대한 유일한 정이었다."
속삭임. 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이마에 입을 맞춘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눈을 감았다.
"…계속해서 빚만 늘어가는구나."
그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줬다는 것을 알면…. 어떤 얼굴을 할까. 분명 분노하리라. 친란은 그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미안하다…."
아버님에겐 그랬을 테지요.
하지만….
"정이란…. 쉽게 버릴 수가 없구나…."
악인. 로마이어 엔체스터. 하지만 그를 유일한 육친으로 가졌던 여자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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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른 갈 놈을 해결해봐야지.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