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10화 (110/324)

110화

<신위>

로마이어를 매장했던 그 날은 드래곤 트라이가 이뤄지지 않았다. 로마이어는 트라이 사실이 최대한 천후의 귀에 늦게 들어가도록, 그리고 현장에 도착해도 개입하기 어렵게 야간을 지정했지만, 드래곤 트라이의 중심이 영천후가 된 이상 그럴 이유가 없게 되었다.

용오름을 부르고, 기상을 조절하는 적을 상대로 야간에 트라이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 놈의 몸길이가 200m고 더 길고 간에,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가 있다.

그것을 보조할 적외선 장비 등을 대여하면 되겠지만, 그것들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그리고 추가거래도 해야 하니까.'

사실은 이쪽이 더 주된 이유였다. 로마이어를 잡은 천후는 자연스레 국내 일리미네이터의 대변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을 긁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천후의 자택에는 오늘도 해명진 대통령이 찾아와있었다. 그와 비서실장은 영천후가 아닌 희주를 앞에 두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영천후가 직접 나서면 이야기가 너무 러프해진다는 것을. 그때부턴 거래가 아니라 강요의 영역이 된다. 괜히 자리에 나서지 않은 그를 끌어내느니, 그의 의사를 최대한 정리해서 말해주는 그녀를 상대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다.

"드래곤 트라이는 내일 오전에 시행될 예정입니다."

"오오! 드디어!"

해명진 대통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루에 한 번씩 날아오는 드래곤 브레스는 일반 국민뿐 아니라 그 역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나라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에서 통수권자와 그 수하들, 그리고 여당 위원들이 나라를 빠져나갔다간…. 다음 정권은 없으리라. 그 옛날 이승만조차도 거짓방송을 던지고 남하를 했지, 외국으로 도망가진 않았다.

물론 작정하고 국내 활동을 포기한 자들이야 떠나갔지만, 그들은 극히 소수였다.

현 정부에서는 이번 드래곤 사태를 극복 가능한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직 많은 정치인은 안전한 곳에 도망쳐있다 한들, 외국으로 떠나지는 않았다.

그의 감탄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희주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한 가지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이번 드래곤의 퇴치 보수를 어느 정도로 잡고 계시는지요?"

"음? 그건 저번에 합의를 보지 않았소? 46억 8천만 달러로…."

그의 말에 희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희 트란제비야에 지불되는 금액입니다."

"읏?! 그럼?"

"네. 다른 일리미네이터 분들에게 주실 금액은 따로 산정하셔야겠죠."

놀란 해명진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황급히 자료를 뒤졌다.

"아. 자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태가 국가적인 위기임을 고려하여, 우리 정부는 디제스터 퇴치 1년 총 지출액인 5000억 원을 지불할 생각이었습니다. 현재 한화가치를 생각하여 외화로 지불하게 되겠지요."

"그렇다는군."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며 내놓은 말에 희주의 입이 다물렸다. 둘의 표정이 굳었다.

"왜, 왜 그러나?"

"그분들이 납득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음? 5천억 원이면 충분히 큰 금액이 아닌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담담히 말한 희주는 셀레나가 정리한 자료를 태블릿에 띄워 보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부 기준의 판단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일리미네이터들, C랭크들은 세전 기준으로 서브 1500~3000, 파급 1억 5천~2억, 경급 6억~8억가량의 현상금을 받아왔습니다. 여기에 드래곤의 레이드 난이도를 생각한다면, 경급의 10배 이상, 즉 두당 80억 이상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

"그리고 이것은 C랭크 기준이고, B랭크의 경우 상례적으로 C랭크의 10배 이상을 챙겨왔습니다. 아마도 이것에 맞춰 주셔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럼 대체 얼마야? 잠시 단순계산을 돌려본 해명진 대통령은 1조 6천억이란 금액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너무 거액이네만."

트란제비야와 합쳐 6조 가까운 지출을 예고 받자 그는 심장이 죄일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희주는 조용히 말했다.

"지불 능력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능은 하네. 가능은 하지만, 음. 어떻게 5천억 원 이내로 해결 볼 수 없을지?"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희주는 담담히 말했다.

"단순히 지급, 분배의 문제라면 가능하겠지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이니…. 다만 그럴 경우 드래곤 사태 이후 국내 일리미네이터들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은 각오하셔야 합니다."

"!"

이건 이것대로 끔찍한 이야기였다. 일리미네이터가 없으면 이렇게 적은 비용으로 디제스터에 대응할 수는 없다. 당장 전차 한 대에 얼만데.

그가 크게 곤란해 하는 기색을 보이자, 희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속삭였다.

"감히 제가 조언을 하나 드려도 괜찮을지요?"

귓가를 간질거리게 하는 목소리에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이 여자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듣고 있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것은 저희의 이득이 아니라, 일리미네이터들과 정부의 관계가 원활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희주의 입에서 조곤조곤.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듣는 둘의 고개는 어느새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엄마야아아아아!'

좌편에서 그 내용을 얌전한 척 듣고 있던 셀레나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

다음날. 유그드라실. 드래곤 트라이를 앞두고 모든 인원이 긴장하고 있었다. 천후에게 드래곤 트라이를 하긴 할 거라고 말을 들은 그 시점부터 포지션과 인원 분배를 생각하고 있었던 레이나드는 그가 유그드라실에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 명단을 뿌렸다.

드래곤 트라이를 직접 수행하는 1 공격대는 공격대장을 레이나드로 두고 영천후, 이강호, 그리고 B랭크 5명. C랭크 45인의 52인 파티. 로마이어 공격대와 마찬가지로 공격, 보조팀이 나뉘었다.

내륙 방어를 맡는 2 공격대는 공격대장 정태원, B랭크 4명, C랭크 46명, 50명을 2개 팀으로 나눠 키메라에 대응하기로 했다.

나머지 10여 명과 로마이어의 돈으로 중국에서 고용해온 C랭크 20명으로 파급을 맡게 되었다.

"1 공격대 인원이 줄고, 2 공격대에 인원배치가 좀 더 됐네요."

"전체 수가 줄었으니까. 그리고 자네가 1 공격대에 있는 이상 2 공격대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어."

사실 레이나드는 저걸로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더는 사람 수가 없으니 별수가 없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천후는 그들을 한차례 쓱 둘러보다가, 천천히 맨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오가던 대화들이 전부 멎으며,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딱히 강단이나, 위에 올라가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올려보게 된다. 그것은 비단 그의 키가 커서만은 아니리라.

'후우….'

결국 여기까지 왔다. 앞에서 바라본 이들의 얼굴엔 걱정과 불안. 초조가 섞여 있었다. 어쩔 수 없으리라. 문자 그대로 괴물과 맞서야 할 처지니까.

이들의 앞에 서게 된 사람으로서, 천후는 그것들을 날려보내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줄 만한 것 하나를, 어제 하나 건져왔다.

'희주 씨, 고마워요.'

지금쯤 친란을 통해 국내를 떠나있을 그녀에게 잠시 감사를 보낸 천후는 당당히 그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R.D.C를 비롯하여 국내 일리미네이터 여러분의 임시 대표자가 된 영천후입니다. 일단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드래곤 퇴치시 보수에 대한 부분입니다."

웅성웅성. 이 긴장되는 자리에서도 다들 한마디씩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반강제적으로 동원된 상황이라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사실 다들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천후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어제. 저는 대한민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드래곤 퇴치 보상금을 확정받았습니다. 1, 2공격대를 가리지 않고 전원에게 B랭크 1000억원. C랭크 100억원!!"

일순. 110여명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다 몇 초 후.

"우와아아아아아!"

"와…. 대박! 개 대박 진짜!"

"우리나라 정부도 돈 좀 쓸 줄 아네, 시파. 당연히 이래야지!"

내심. 국가적 위기가 어쩌니 하면서 후려칠 걸 마음속으로 각오하고 있던 이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순간 그들 마음속에 짙게 깔렸던 불안감이 날아가고, 전의가 돌았다.

그래. 돈이 절대가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 할 거 아냐!

씨익 하고 웃은 천후는 다시금 외쳤다.

"그리고! 오늘 오후를 기해서 R.D.C는 해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척! 그의 오른 검지가 영종도에 몸을 말고 있는 드래곤을 비추는 화면을 가리켰다.

"오늘이 저놈의 제삿날이 될 테니까!"

환성이 터졌다. 모두 하나같이 몸을 돌려, 그가 가리킨 화면을 보며 양 주먹을 꾹 쥐었다. 그래. 저 자식만 패 죽이면 100억이라 이거지? 일리미네이터 평균 4, 5년 수익이 한방!

그때. 그 전의를 느끼기라도 한 듯이, 웅크리고 있던 드래곤의 몸이 서서히 풀렸다. 미미르의 보고가 들려왔다.

<드래곤 기상. 비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상 경로. 내륙. 인천 방향.>

"놈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는군요. 그럼 가죠! 드래곤 트라이! 스타트!"

*

드래곤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1 공격대는 드래곤의 예상 경로인 인천에 내려앉고, 2 공격대는 드래곤의 기상과 동시에 출몰하기 시작한 키메라를 상대하기 위해 날아갔다.

일리미네이터 전원의 가슴에 전의가 가득 차 있었다. 도저히 질 수가 없잖아? 저놈을 잡고 부자 되려면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다고.

하지만.

하늘에 보이는 검은 점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직접 본 이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후우…. 후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은 로마이어의 트라이 당시 1 공격대에 참가했던 인원들이었다. 놈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 놈이 아직 손톱만 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숨이 거칠어졌다..

한 명이 물었다.

"공격대장. 이번에도 배틀 시그널로 유인할 겁니까?"

그렇다면 이전에 보았던 패턴, '인사'에 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공격대장. 레이나드는 말했다.

"아니요.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유인할 겁니다."

"?"

다른 방법? 전원의 풀 캐스팅이라도 쏴 재낄 생각인가? 하지만 레이나드는 그저 웃으며 어느 한쪽으로 턱짓을 했다.

그곳에는….

검은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리퀘스트가 있었거든요."

솔직히 이건 이거대로 로마이어 이상의 미친 요청이다. 천후야. 그렇지만….

나에게.

우리들에게.

"봐두죠."

보여줄 수 있겠지?

"우리들의 새 하늘의 힘을."

너의. 힘을.

*

도로 한가운데에 팔짱을 끼고 선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흑색 영기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을 느낀 것일까? 빠른 속도로 날아오던 드래곤이 도로 저편에 내려섰다.

쿠우우우우웅…….

단지 그것만으로도…. 땅이 갈라지고 울린다. 크게 불어온 바람이 모래먼지와 쓰레기를 쓸어올려서 밀쳐내 사방으로 흩어 보냈다.

하지만 불꽃의 근처에는 범접조차 하지 못하고 좌우로 갈린다. 그리고 그 불꽃은.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나. 정명한 별의 적자가 고한다…." 에바가 다쳤던 그 날 이후로…. A랭크 주문을 써도 그 사이한 목소리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들려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정도는 되었다.

그렇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지직. 지지지지직.

노이즈. 노이즈. 뇌를 맨손으로 잡아서 양쪽으로 찢어버리는 듯한 통증이 엄습한다. 당장에라도 머릿속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감각.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에바. 네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내가 꼭 지켜낼 테니까.

콰앗…!

몸 안에 농축되어있던 흑암의 기운들이 전부 해방되며, 그것이 홍염으로 변했다. 태양처럼 밝게 타오르는 그것은 기둥이 되어, 하늘 구름 저 너머까지 솟아올랐다.

용은 마치 그 도전을 받아주겠다는 듯이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힘이 정점에 다다르자 아가리를 벌렸다. 그 순간, 놈의 입에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길이 240m짜리 진공청소기를 두면 이럴까? 아니 그것보다 훨씬 심하게, 모여든 빛무리는 구체가 되어 빨려 들어오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나갔다.

그에 맞춰, 홍염 한가운데 있는 남자가 몸을 뒤튼다.

발끝에서부터 무릎으로, 허리로, 어깨로.

한줄기 잡은 의식 저편. 저 너머 대기 하는 인간들의 염이 느껴진다.

끌어올려 두었던 전의는 사라지고 공포와 긴장. 두려움이 다시금 피어나 일렁이며 거미줄처럼 서로를 엮어두고 있다.

어리석은 것들.

왜 자신들의 힘을 믿지 않지?

왜 가능성을 시험하지 않지?

이딴 미물이 두려운가? 정녕 그런가?

그렇다면. 보여주겠다!

"쿠화아아아아아!"

번쩍! 섬광이 터졌다. 그것은 형태 그대로 빛의 속도로 날아와 불꽃을 덮치려 했다. 그 순간.

"신위!"

쿠홧! 하늘까지 뻗던 적색 불꽃이 작은 몸. 인간의 몸 하나에 모여들어이윽고

"하아아아아아아아!!!!!"

쏘아졌다.

큐우우우우우우웅! 허공에서 맞부딪힌 두 섬광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주변 공간을 이지러뜨리고, 모든 것을 무로 만들었다. 거기서 튀어나온 바람만으로도 인근 수백 미터의 모든 건물이 철골만을 남기고 바스러져 갔다.

허나.

이걸로 끝날쏘냐?

격돌로 끝날쏘냐?

사람 몸에서 뛰쳐나온 홍적紅赤이-가라.

가라.

가라!

용의 입에서 튀어나온 섬백閃白을 밀어냈다.

"쿠롸아아앗!"

파샷! 수십 미터가 넘는 용의 목이 사라졌다. 적홍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지구의 중력을 무시하고 대각선 위로. 더 위로.

튀어 나갔다. 억누르려는 모든 힘을 무시하고서, 지구권 밖으로-부르르르….

단 일격에 목이 날아간 드래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얼굴에는 놀람조차 없었다. 그저 굳어있을 뿐.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염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그 석상들을 향해.

용의 목을 딴 남자가 웃었다.

자. 어때. 이제 괜찮겠지?

싸울 수 있겠지?

그럼 간다!

"공겨어어어어어억!!!!!"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자. 그럼 가보죠.

인원수 오류가 좀 있어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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