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20화 (120/324)

120화

대한민국 전체를 위협하던 멸급 디제스터. 드래곤이 잡혔다.

이것만큼 기쁜 일은 없었다. 국가 전체가 기쁨에 휩싸여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드래곤 출현 이후 거의 일주일간 놈의 위협에 떠느라 대한민국이 사실상 정지했었고, 그에 의해 발생한 피해는 집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기뻐했다. 거리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다시 서울과 인천으로 올라오는 차들이 박자에 맞춰 자동차 경적을 울려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정도로 전 국민들이 흥분에 휩싸여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들이 있었다.

희생자들. 그리고 피해자들.

서해안 연안. 특히 인천 서부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던 주거지 근처로 돌아왔을 때,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살던 아파트와 상가. 도로. 모든 것들이 파손되어있었으니까. 일리미네이터만으론 다 대응할 수 없었던 디제스터를 잡기 위해 국군의 총력이 발휘된 결과. 그곳은 폐허로 변해있었다.

제2차 드래곤 레이드의 공략 시간은 17분. 여기서 드래곤이 이미 소환해놓았던 모든 경, 파급 디제스터를 전부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까지 합치자면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국군이 투입한 화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전쟁 영화 등에서 어렴풋이, 매체가 축소한 피해밖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은 현실에선 훨씬 잔혹한 광경이 되어서 펼쳐져 있었다.

정부에선 시급히 그들에게 임시로 컨테이너나 임대 아파트 등의 주거지를 제공했지만, 그건 정말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방편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경우…. 일리미네이터들은 모두 일반 사망처리, 그리고 군인들은 전사가 아닌 순직처리가 되었다.

디제스터와 치른 교전은 '전투'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견해였다. 당연하게도 유가족들은 이런 견해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것은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축제 분위기의 한가운데에서, 그리 많지 않은 사망자의 유족들이 울부짖더라도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았다. 모두 승리를 축하하기에 바쁘고, 그 뒤에 가려진 암흑에는 눈길을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시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정부의 방침도 언론에 그다지 크게 노출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그런 식으로.

열흘이 지나 있었다.

*

영천후의 집 앞에는 수많은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다. 커튼으로 모든 창문을 가리고,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두문불출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드래곤을 잡은 대한민국의 영웅. 드래곤 슬레이어 영천후의 사진은 지금 당장이라면 머리카락 한 올만 찍어도 기사화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다들 그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고 있었다. 용과 일격을 나눠 이기는 장면은 이미 세계 전체에 퍼져있었고, 그것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메시아를 보았다.

마법사라면 다들 거리끼는 기색부터 보이는 이들도 그에 한정해선 현인신의 감상을 느꼈다. 그는 정말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신적인 존재일 것이다. 하늘에서 강림한, 인간이 아닌 그를 찍고, 찍고, 또 찍어라.

마치 나라 전체가 최면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자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일시적인 시기에 뽕을 뽑지 못하는 건 기자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집 앞에 텐트까지 치고서 오늘도 농성하고 있었다.

그때. 대문 근처에 최대한 근접해있던 기자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일리미네이터라는 정보를 입수한 이들은 실망했다.

원래부터 일리미네이터 중 일부는 영천후가 입원했던 병원이나 자택 출입을 허가받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출입하는 것과 영천후가 밖에 나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거 오늘도 허탕이겠는데."

"다치긴 엄청 다쳤나 보네. 아직도 집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는 거 보니까."

"대통령이 일정을 잡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소문이 있던데…."

기자들 사이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골목을 오갔다. 병원에서 자택에 이르기까지. 이미 며칠이나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도 있었으니 골이 날만도 했다.

바로 그때였다.

삡. 대문에서 작은 비프음이 울리더니, 갑작스레 덜컹하고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덕분에 문에 기대어 누워있던 기자들 몇몇이 어엇 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어라. 괜찮아요? 와. 죄송합니다. 대문 앞에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네요."

"아, 아니요. 괜찮습…. 헉! 영천후 씨!"

꼴사납게 발라당 자빠진 상태에서도 기자들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치켜뜨고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들이댔다.

"쾌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오셨는데 지금 소감이 어떠세요?"

"드래곤을 잡으실 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어, 두유 노우 김치?"

"야! 마지막 물어본 거 누구야! 외국인용 질문을 하고 앉아있어! 끌어내, 저거!"

웅성웅성.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맨이 대문을 비집고 들이닥쳐 금세 그의 주변을 빙 둘러쌌다. 하지만 천후는 귀기까지 서린 그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어디 가볼 데가 있어서요. 길을 좀 터주시겠습니까? 질문에는 그쪽으로 향하면서 천천히 답해드리죠. 네? 비켜주실 수 있겠죠?"

"!"

그 말이 나온 순간, 순식간에 대로로 나가는 길까지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속에 숨겨진 진의를 단숨에 이해한 것이다. 안 비켜주는 방송사는 낙이에요. 라고 하는 그 진의를 말이다.

그들의 순수한 호의를 빌어 대로까지 나온 천후는 잠시 기자들을 둘러보다가 반대로 물었다.

"제가 좀 먼 길을 갈 거라서요. 죄송하지만 여러분들 수가 너무 많으니까, 사람을 좀 추릴까 합니다."

이젠 대놓고 저런 말이 나와 버렸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정식적으로 기자들이 따라붙는 걸 용인해주겠다는 뜻이라 이 자리에서 언론의 자유가 어쩌네 하는 뻘소리를 내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먼 길 가는 동안 저를 완벽하게 가드 해줄 자신이 있다. 손."

이게 뭔 소리야? 기자들 사이에 잠시 벙찐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 와중 베테랑 기자 몇몇은 무슨 뜻인지 빠르게 짐작해냈다. 그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면서도 깊숙이 각인된 직업본능에 따라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네. 손드신 분 세 분 이쪽으로 오시고요. 여러분들은 외곽방어인 거예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고생하시는 대신에 따로 좀 더 챙겨드릴게요. 세분 다 다른 방송사예요?"

"네."

"음. 그럼 같이 온 기자분들 한 분씩 데려오시고요. 여섯 명. 여기서 카메라맨 합치면. 네. 이 정도면 되겠네요."

그 말에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천후가 선출한 기자들은 과거 탐문 취재를 자주 하던, 현장의 몸싸움과 말다툼에 익숙한 이들이었는데 기준이 이렇다 보니 공영방송사 출신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받아들이지 못한 기자들이 외쳤다.

"잠시만요, 영천후 씨! 방송사별로 사람을 뽑아주셔야지,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자택 앞에서 기다린 사람들을 생각해주세요!"

그 소리에 천후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엔 진심으로 의아함이 담겨있었다.

"흠. 이게 생각한 건데요."

"네? 이게 어떻게…,"

"보세요 이분, 이분, 이분은 제 허락도 없이 대문을 넘어서 들어오셨죠? 이분들 인터뷰엔 응하기엔 지금은 좀. 겁나서요. 대문 안까지 함부로 들어오는데 말로는 뭘 물어보실지는…. 그 방송사도 그렇고요. 공교롭게도 그게 공영방송사들이었네요."

그 말에 기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스운 일이지만, 기자들의 위치는 방송사 파워별로 정해져 있었다. 즉, 가장 먼저 취재 온 사람보다 방송사 파워가 센 순으로 대문에 가깝게 붙어있었단 소리다.

덕분에 당연하지만 처음 문이 열렸을 때 뛰어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공영방송사 기자들이었다.

그들로선 유일한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천후의 입장에선 불쾌할 따름이었다. 문에 붙어 있다가 넘어진 사람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나머지는 왜 허락도 안 받고 들어와서 둘러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동행을 허락받은 기자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기… 그래도 공영방송사 기자분을 한 분만이라도 받으면 안 될까요?"

키가 작고 소심해 보이는 여자 기자였다. 왜 이러나 눈치를 보니, 다른 케이블 기자들도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아무리 이렇게까지 특종이면 오히려 공영방송사의 눈에 치이기 싫었던 것이다.

"음. 좋아요. 그럼 딱 한 분만. 인터뷰어만 받죠. 그리고 여러분들은…. 자. 여기 서약서입니다."

"……."

"오프 더 레코드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간단한 서약서예요. 그리고 오늘 있을 취재를 마지막까지 찍어서 방송에 내보내 주겠다는 서약서고요. 편집은 하셔도 되는데, 서약서 내에 언급되어있는 식으로 왜곡되었을 경우 바로 고소조치 하겠습니다. 서명하기 싫으신 분은 물러나 주세요."

자유를 표방하는 언론을 상대로는 폭거에 가까웠지만, 아무도 물러나지 않았다. 다만 선택되지 못한 기자 중 한 명이 외쳤다.

"이런 식으로 대하시면 나중에 좋지 못할 겁니다. 지금 이 발언들도 전부 촬영되고 있다고요!"

주변에서 그 발언을 한 기자에게 온갖 욕지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천후는 오히려 웃으며 말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아. 충고 감사해요. 지금 말씀하신 분 누구시죠?"

기자들이 갈라지며 그 남자가 드러났다. 천후는 그를 바라보며 옷에 달린 작은 장식을 한번 건드렸다.

"당신도 조심하시고요. 촬영은…. 방송국 여러분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요. 증거능력은 저도 있어요."

"…!"

"마지막까지 가서 제 요구가 합당했는지, 당신이 말한 '자유'가 더 합당했는지 공방을 한번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긴 하네요. 부디 꼭. 시험해주세요. TV 신라 기자님."

싸늘하게 말한 천후는 몸을 홱 돌려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기자와 카메라맨이 급하게 쫓았다. 그의 발걸음이 워낙 빠르다 보니, 인터뷰어로 선택된 여성 기자들은 그저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하지만 천후는 그들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서 목적지로 향할 뿐이었다. 거의 뛰다시피 그의 옆에 따라온 여기자가 힘겹게 물었다.

"영천후 씨! 지금 대체 어디 가시는 거죠? 먼 길을 가신다면 왜 차를 안 타시고…."

그 물음에 천후는 슬쩍 쓴웃음을 지으며 외곽의 남자 기자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들 셋은 모두 송충이라도 씹어 먹은 듯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선배분들 고생시키시네요. 그럼 안돼요, 기자님."

"네, 네?"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의 목적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선배들이 처음 보였던 모습만큼이나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집에서 10분 거리.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그에게 따라붙은 기자가 다급히 물었다.

"호, 혹시 지금 지하철 타시려는 건가요?"

"네."

"아…!"

그제야 다른 여자들도 똑같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대통령 이상으로 이목이 쏠린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대중교통, 그것도 지하철을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여기자들은 여기까지 와서야 그가 인터뷰어로 그들을 고른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몸빵'시키기 위해서 고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졸지에 그의 행보를 비춰주기 위한 어용언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선배들은 천후가 가드 운운할 때부터 이것을 각오하고 지원한 것이고.

지하철 타는 곳에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웅성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벌떼처럼 몰려들 테고, 그때 가면 그에게 뭘 물어보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반응을 찍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

히익하고 신음을 흘린 여자는 마지막이 될 질문을 다시 한 번 물었다.

"영천후 씨! 대체 지하철을 타고 어디까지 가시는 거죠?"

다행히 이번 질문에는 그가 대답해주었다.

굳은 목소리로.

"서울광장. '전사자' 유가족분들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 작품 후기 ============================

9월에도 꾸준히 써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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