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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124화 (124/324)

124화

영종도 국제공항. 드래곤이 영종도에 내려앉아 있었음에도 기적적으로 아무런 손상도 받지 않은 이곳은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교통의 허브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네. 부디 조심하시길."

와락.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희주를 마중 온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아 준 천후는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주며 비행기로 향했다.

"아이들도 마중 왔었으면 좋았을 텐데…."

"별 수 없지. 공항에서 나는 소리가 워낙 크니까."

천후의 조금 뒤에서 통로를 함께 걷고 있던 강호가 그렇게 답했다. 돌아봐서 확인한 그녀의 얼굴엔 걱정과 염려가 가득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천후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선배. 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아, 아니다. 이제 아이들도 많이 호전되었으니까!"

강호는 손을 붕붕 내저으며 말했다.

그 날 이후로 한 달. 에바의 증세는 많이 호전되었다. 이제 물건 떨어지는 소리 정도에 경기를 일으키는 경우까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것은 사실인지라 천후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필이면 왜 선배인지. 하아…. 둘 다 자리를 비우면 힘들어 할 텐데."

"자자. 그만해라! 괜찮다, 사흘 정도는! 희주도 있고!"

"……."

"둘 다 강한 아이들이다. 오히려 네가 그렇게 싸고도는 게 더 안 좋다. 아이들 걱정은 그만해라. 여기까지 와서!"

"…그러네요."

쓰게 웃은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인데 이런 생각을 질질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을 확인한 천후는 착석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아저씨는.'

*

"꼭 가야겠냐?"

"네. 이번에 가지 않으면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뭄바이에 가고 싶다는 말에 최완은 처음엔 말렸다. 하지만 천후의 의사가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최완은 마지막까지 잡을 순 없었다.

"솔직히 네가 이미 유그드라실에서 떠나버린 이상, 네 개인적인 행동을 제한할 권리는 유그드라실에겐 없다. 가려면 얼마든지 가도 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말리고 싶다."

"왜죠?"

"……."

그 질문에 다시 최완은 묵묵부답이 되었다. 천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것 역시 자신에게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란 말인가? 자신이 제3 인류라서?

"하아. 진짜. 너무하시네요."

"미안하다."

"그 소린 이제 질렸어요."

더는 말을 나눌 이유도, 화제도 없다. 벌떡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천후는 인사도 없이 등을 돌려 방을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문이 열린 그 순간.

"…면."

최완의 입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꼭 가고 싶다면…. 이강호와 함께 가라."

"아저씨가 강호 선배를 어떻게 알죠?"

"강호는…. 어떤 면에선 너보다도 유명해. 마법사들 사이에선."

"……."

천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완이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소리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는 그에게선 아무리 뚫어져라 바라봐도 더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어느 정도 권한을 넘어선 정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속이 끓는 느낌이었지만 천후는 그것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방을 나섰다.

"고려해보죠. 고마워요, 아저씨."

그렇게 유그드라실에서 내려온 천후는 자택으로 돌아와 그 의사를 모두에게 밝혔다.

대참사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해당 장소에 조문하기 위해 찾아가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강호 역시 흔쾌히 함께 가주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것이 지금 현재.

푸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천후는 만감이 교차했다.

유그드라실에 있었던 시절. 어느 정도 인지력을 갖춘 이후부터 천후는 몇 번이나 뭄바이에 가보고 싶다고 요청을 했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을 맛보아야만 했다.

하긴. 방 벽지무늬도 잘 안 바꿔주던 곳이었다. 디제스터를 퇴치할 때 외에는 지상에 내려와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아예 여행을 보내달라니. 먹힐 리가 없는 요구지.

천후는 새삼 잘도 20살 되었다고 보호를 풀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3 인류라는 설명에 그를 버렸다. 유그드라실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를 아예 죽을 때까지 가둬두었더라도 찾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양친은 죽었고, 친인척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대체 누가 찾겠는가?

"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기분이 울적해진다. 천후는 현재를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유그드라실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려오길 잘했어. 정말로."

"응?"

옆자리에서 앉아 잠을 청하고 있던 강호가 묻는 소리에 천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무시려고요?"

"응. 아무래도 머니까. 그리고 지금 미리 쉬어둬야 나중에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네요."

확인해본 결과, 뭄바이까지는 꽤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천후는 그러다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허당 끼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참 좋은 사람이다. 이 고생길에 두말없이 따라와 주다니. 그의 손이 무심코 올라와 그녀의 볼에 닿았다.

"아…!"

그것만으로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어쩔 줄 몰라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뭘 했는지 깨달은 천후는 흠칫 놀라 손을 뗐다.

"죄송해요. 좀 딴생각을 해서."

"아, 아니다! 그, 그럴 수도 있지. 응!"

버벅대며 대답한 강호는 고개를 돌리는 천후를 바라보며 입을 어물댔다. 그러다, 아주 은근히. 떠보듯이 물었다.

"희, 희주 생각이라도 한 거냐?"

왜 여기서 이런 말이 나와버리는 걸까? 강호는 자신에게 당황했다.

여기서 그렇다는 말이 나오면 어떨까? 예상해보면 답은 하나였다.

이해는 하더라도 분명, 슬플 거다.

괜히 물어봤다는 자책감에 휩쓸려 어질어질 해졌다. 하지만 그때. 천후의 입에선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아냐, 그냥…. 선배를 보니까 고맙고, 예쁘단 생각 했어."

"……."

강호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눈이 커지고, 달아올랐던 얼굴은 더더욱 심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녀의 입가가 몇 번인가 달싹이다 다물어졌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개를 돌리고 있던 천후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잠을 자는 사람. 그리고 깨어있는 사람이 뒤바뀌었다.

*

10년 전.

인류 역사에 있어 일종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참사. 혹은 뭄바이 대참사로 불리는 사건이었다.

뭄바이 시내의 모든 사람들이 단 간에 모두 자연사해버린 사건. 1,200만. 관광객까지 합치면 더욱 많은 사람의 생명이 증발해버린 이 사건은 세계 전체에 쇼크를 안겨줬다.

하지만 그 충격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 곳곳에서는 디제스터가 나타났고, 인류는 그에 대항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오늘날.

뭄바이는 아직도 텅 빈 도시로 남아있었다.

그곳에 살던 모든 사람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명의 흔적이 흩어졌기 때문에? 뭐 그것도 맞는 소리다. 완전히 황무지로 변한 땅에 가장 최초로 넘어가고 싶은 인간이 그리 많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라비아 해와 테인 강을 낀 요지인 뭄바이는 지형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다. 인도 정부에서는 과거 뭄바이의 인프라를 복구하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정착촌까진 만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인도 정부는 뭄바이 반도의 활용을 포기했다.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대참사가 있었던 날. 뭄바이에 있던 모든 사람은 사망했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명 역시 사라졌다. 건물, 자동차, 자전거 심지어는 손수레까지 전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대참사가 일어났던 그 땅은 그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의 문명이 그곳에 들어서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건물을 지을 수는 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지 않아 무너져버렸다. 근처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떨어져 버렸다. 철로를 깔면 사흘 만에 부식되어버리고, 차를 끌고 들어오면 하루 만에 주저앉아 무슨 짓을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순수하게 사람이 자기 몸으로 옮긴 몇몇 장비, 입고 있는 옷, 소형 텐트 등만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그것들 역시 보름도 가지 않아 바스러져 버렸다.

식량 역시 마찬가지. 통조림 등의 보존식보다 직접 조리한 음식들이나 조금 버틸 뿐이었다. 마그네슘을 사용한 파이어 스타터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그 환경에서 인간이 오랜 시간 머문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공물과는 달리 사람 자체는 해하지 않는다는 정도일까? 하지만 발명의 산물들을 모두 벗겨내 맨몸이 된 인간의 생존력이란 하잘 것 없는 것이다. 아무도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구 뭄바이는 이제 대참사 때 죽어간 유족들이 찾아와 아주 짧은 시간 머물며 조문하기 위해 찾아오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혹은 이 황무지로 변해버린 땅 위. 유일하게 볼만한 것을 찾아온 관광객들이나 찾아오는 곳으로….

그리고 그런. 이제는 모래먼지가 흩날릴 뿐인 땅으로.

그날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소년은 자라 청년이 되어서 찾아가고 있었다.

*

푸네 시내에서 하루를 머문 후.

둘은 미리 엔체스터를 통해 준비해놨던 뭄바이로 향할 차량에 탑승했다. 가이드의 안내로는 뭄바이-푸네 고속도로를 타고 나비 뭄바이까지 향한 후, 거기서부턴 따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차에 탑승한 둘은 입을 다물었다. 총 길이 93km의 고속도로를 지나치는데도 한 마디 오가는 말이 없었다. 인도로 도착한 이후부터 그는 급격하게 말이 줄어들었다. 강호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판벨을 너머 나비 뭄바이에 도착한 둘은 뭄바이로 들어가는 관문. 시온-판벨 고속도로, 바시 브릿지 앞에 멈춰 차량에서 내렸다.

이제부터는…. 이런 일반적인 자동차를 사용할 수 없으니까.

“…굉장하군.”

“…….”

강폭만 해도 2km가 넘는 테인 강 너머를 바라본 강호는 자기도 모르게 아연실색해서 입을 벌렸다. 함께 차에서 내렸던 천후 역시 눈을 크게 뜨고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게 뻗은 다리를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그저 넓게 펼쳐진 황무지만이 기다릴 뿐.

“아….”

천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광경이 너무나 익숙했다. 언제나 보고 있는 광경. 그의 몸이 한차례 휘청였다.

그 와중…. 꿈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가슴이 짓눌리는 감각을 이겨내며 천후가 말했다.

“…가죠.”

“천후.”

“괜찮아요. 가요.”

뭄바이로 들어가는 입구, 이곳 바시에는 다리를 건널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차량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후한 장갑차를 개조한 궤도차량이 그것들이었다.

삯을 지불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둘을 태운 이들은 금세 바시 브릿지를 건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구 조터링 나가르까지 도착했다는 소리를 한 가이드는 이제부턴 걸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천후는 두말하지 않고 차량에서 내렸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겠다네요. 저도 그때 같이 오겠습니다. 저 안은 영 꺼림칙해서요.”

그 말만 남기고 차량과 가이드는 빠르게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들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천후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인강 너머에서 눈에 들어오던 것이 이제는 완전히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넓게. 한없이 넓게 펼쳐진 황무지 한가운데에…. 일반적인 자연환경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수 km 너비의 나무 한 그루.

그 줄기의 끝이 성층권까지 솟아올라 있다고 하는 나무.

피를 먹은 세계수.

악시스 문디Axis Mundi가.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바로 다음 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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