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드넓은 황무지로 변해버린 땅. 뭄바이 반도. 인간의 흔적이 지워진 그곳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수많은 인류가 사라진 이후를 그린 그림이나, 예상에서도 인간이 없는 지역은 시간이 지나면 신록이 우거지고, 동물들이 살아가기 마련이건만….
이곳은 그런 것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메마른 모래사막처럼 드넓은 황무지가 넓게 펼쳐져, 때때로 흙먼지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황무지의 땅 한가운데. 단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드넓은 테인 강의 폭보다도 더 넓은 엄청난 두께의 기둥이 보였다.
잘 보면 그것은 나무줄기였다. 그 아래로 뻗어 나온 뿌리들은 넓게 펼쳐져 황무지 지면에 파고들어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두께가 하수도 통로 이상이다. 땅에 파고든 그것이 어디까지 뻗어 들어가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저 이것들이 이 땅의 모든 양분을 모두 빨아먹어 자라났다는 것. 그 때문에 이 땅에 인공물뿐이 아니라 정상적인 식물조차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 두께만큼이나 기다란 놈은 하늘 높이, 그 줄기 끝이 사람의 눈엔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치솟아있었다. 저 하늘 가리고 있는 구름 너머, 성층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웅장하다는 단어는 오직 이것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그 앞에 선 사람의 존재가 저것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세계의 축. 악시스 문디 였다.
하지만…. 어떨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의 이야기일 뿐.
오늘날 이 자리에 찾아온 이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달랐다.
지구 상의 그 어떤 식물도 단 10년 만에 이 정도의 성장은 이룰 수 없다. 수령 수천 년의 자이언트 세콰이어나 레드우드도 결코 이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이런 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식물이 아니다. 그것을 닮은 무언가일 뿐.
유족들에게 있어 이것은 자신의 가족을 양분 삼아 자라난 괴물에 지나지 않았다. 1,200만의 시신을 영양분으로 삼아 그것을 빨아먹은 주범. 이 땅을 황폐화하는 존재. 부조리의 상징과도 같은 무언가다.
하지만 인도 정부도, 세계 어디에서도 그것을 함부로 훼손하고자 하는 곳은 없었다. 포화를 집중한다면 부러뜨리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저 거대한 생명을 꺾어버리는 순간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으니까. 인류의 공동체적 영역에서 형성된 의식이 그것을 거부했다.
대참사. 뭄바이 대참사의 또 다른 이름.
어머니의 진노Gaia‘s fury
그 상징과도 같은 이 세계수를 꺾는 것은 인간의 업을 지고 태어난 이들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오늘날. 이때까지….
수많은 희생자의 피를 먹고 자란 세계수, 악시스 문디는 과거 뭄바이 반도의 중앙에 우뚝 서서 지구 전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
"하아…. 하아…!"
끝도 없이 펼쳐진 벌판. 눈에 제대로 보이는 거라곤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세계수의 줄기밖에 없는 이곳.
강호는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걷고 있었다. 뭄바이 반도 내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문명의 이기들은 대부분 무용지물이 된다.
오직 몸에 착용하거나, 자력으로 짊어지고 있는 것들 정도만 조금 더 오래 기능하기 때문에, 천후나 그녀 모두 단 하루를 머무르러 온 것임에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세계수까지 가려니, 그 거리가 10km가 넘는다. 모든 영양분을 잃은 대지는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먼지를 흩날리며 시야를 방해했다. 아무리 단련된 그녀라고 해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앞서 걸어가고 있는 천후는 장갑차에서 내린 후부턴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모래언덕을 넘고 있었다. 발걸음 속도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호는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다리를 넘어선 이후부터 그의 안색은 완전히 굳어있었고, 눈은 오로지 세계수를 향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 시선을 줄 여념이 없는 것이다.
일종의 고양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그녀는 그 뒤론 그에게 함부로 말조차 걸지 않고 꿋꿋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심 이곳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아무도 그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으리라. 그녀만 해도 시야에 간신히 그를 담아두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황야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원래부터 거대하기 짝이 없는 저 나무는 과연 거리가 가까워지기나 한 건지 육안으로는 판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강호는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마지막 모래언덕 위. 지금까지 무작정 걷고 있던 남자가 덩그러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후우…. 후우…."
그는 그렇게 서서 움직일 줄 몰랐다. 강호는 한참이 지나 그의 옆까지 다가오고서야 그가 멈춰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족들인가."
집채보다도 두꺼운 악시스 문디의 뿌리가 시작되는 지점 근처에 몇몇 개의 텐트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서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피부색도 입고 있는 복장도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곳으로 오는 고생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악시스 문디의 장관에도 불구하고 순수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보통 그런 목적으로 온 이들은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테인강 너머 나비 뭄바이에서 사진을 찍는 정도로 그치곤 했다.
굳이 파손을 염려해 엄청난 가격을 부르는 장갑자 탑승료를 지불하고 이 안까지 들어와, 체류하기 위해서 텐트까지 맨몸으로 짊어지고 들어오는 이들은 대부분 유족이었다.
"천후야."
강호는 천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굳어버린 그의 옆얼굴은 몇 번이나 변화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얼굴을 해야 할 지 모르고 있다는 걸 강호는 알았다. 강호는 잠시 말을 골랐다. 하지만 자신이 말재주가 없음만을 다시 한 번 절절하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시도는 그만둔 그녀는 그의 어깨를 짚었다.
"천후야."
"선배."
"내려가자. 내려가 봐야지."
"…응."
그 말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옳다. 내려가 봐야지.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서 있는다고 뭐가 된단 말인가?
둘은 마땅한 길조차 없는 모래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유가족 캠프 사람들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들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찾아왔기 때문일까? 이곳에 감돌고 있는 공기가 무거웠다.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호는 캠프를 죽 돌아보았다. 전부 40동. 대부분 2인, 혹은 3인 텐트였다. 그렇게 세자면 많아 봐야 120명.
'적구나.'
강호는 조금 슬퍼졌다.
천후가 굳이 오늘 뭄바이에 오려고 했던 것은, 바로 오늘이 대참사가 있었던 10주년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큰 사건의 10주년이라면 보통은 국가 전체가 나선 대대적인 애도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의장대가 동원되고, 대통령이나 국왕이 이날의 참사를 잊지 말자고 연설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120명이 전부였다. 뭄바이 반도의 가혹한 환경은 제대로 된 애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너무나 커다란 규모의 사망사건이었음에도.
그 자괴감이 인도와 세계 사람들. 그리고 매년 이곳을 찾던 유족들에게 쌓이고 쌓여, 저주처럼 그들에게 엉겨붙었다.
10주년이 된 오늘에 와서는 그들의 모든 기력, 애도, 각오가 이 말라버린 황무지처럼 저 드높은 세계수가 모두 빨아들여 버린 것처럼 사그라져있었다.
그것을 딱히 누군가가 설명해주진 않았지만, 아무리 둔한 강호라도 이 자리에 감도는 분위기로 쉽게 알 수 있었다.
슬픔에 지쳐, 애통으로 메말라, 비탄이 흩어져버린 사람들의 눈이 보였다.
이 세상 끝까지 자라난 세계수는 이것이 신이 일으킨 행위임을 보이는 증거와도 같이 남아, 그들의 모든 원망조차 거대함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인지를 초월한 재앙과 인지를 초월한 기적이 맞닿아, 그 사이에 끼어버린 사람의 나약한 인성과 감정 따위는 비스킷처럼 부스러뜨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대참사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대참사는 끝난 일이다.'
'대참사는 신의, 지구의 분노였다.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를 휩쓴 체념이 오늘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들까지 휘감아 모든 힘을 앗아갔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 이 한 줌. 부스러기밖에 되지 않은 120명만이 그날의 아픔을 아직까지 가슴에 안고서 이곳에 찾아와 애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꺾여버릴 것 같은 마음을 안고서.
"천후야."
강호는 문득 천후가 걱정되었다. 그녀의 생각에 이곳은 그가 오래 있어선 안 될 곳이었다.
그의 악몽에 대해선 들어서 알고 있었다. 본가에서 잠자리를 함께 했던 사흘간 그가 힘겹게 잠에서 깨어나는 걸 몇 번이나 직접 보기도 했다.
이미 그 악몽에 사로잡혀 있는 그가 이곳에 오래 있다간 미쳐버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불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망부석같이 서 있던 아까와는 달리 한 지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것은 세계수의 바로 앞.
사람의 허리춤까지밖에 오지 않는, 이 모래사막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모를 바위를 깎아 만든 비석이었다.
사람의 손이, 정이, 망치가 닿아 만들어진 비석.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그것만은 풍화되지 않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그 표면에 새겨진 글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에 살며 이곳에 머물렀던 천만의 생명. 그 아름답고 번화했던 땅을 기억에 담고서 이곳에 잠들다.
-어머니의 진노에 스러져간 가련한 이들을 기리며 그 앞에 선 남자가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왔어요."
그의 눈에 눈물은 없었다.
*
"천후야."
"응? 왜요, 선배."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뭐예요. 참나."
웃으며 말하는 천후를 보며 강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후.
비석 앞에서 두 번의 큰절을 올린 천후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섰다. 캠프 한편에 텐트를 치고, 침낭을 설치한 그는 그 뒤로는 캠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유그드라실에서 사용하던 표준어가 영어였기 때문에,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과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도 밝혔다.
동아시아 작은 나라의 마법사 어린아이가 살아남았었다는 사실은 많은 유족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금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당시의 감상,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천후는 그것을 최대한 소상히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가자, 그들은 눈물을 떨구면서 그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들 중 몇몇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다시 떠올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런 이들에게 천후는 당치도 않다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다.
밤이 되자 달빛, 별빛 말곤 아무런 조명도 없어야 할 황무지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세계수, 악시스 문디가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된 조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빛은 은은했고, 직접 바라봐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야간의 세계수에 손을 대보면 약간의 고동과 따스함이 느껴졌다.
악시스 문디 주변에는 마치 도깨비불처럼 흐릿한 불빛들이 돌아다녔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면 보지 못할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유족이 보기에 그것은 나무에 묶인 유령처럼 보여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본 이후.
종일 말없이 무뚝뚝했던 천후는 사라지고, 다시 평소의 가벼운 분위기의 그가 돌아왔다.
하지만…. 강호는 그것이 걱정되었다.
"저기…."
"왜요. 내참. 아까부터 왜 그래요?"
둘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텐트 안. 바로 옆 침낭에 몸을 집어넣고 있는 천후가 돌아보며 물어오자 강호는 입을 어물거렸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말을 잘 고를 수 없었다.
강호가 듣기로, 그는 대참사로 양친을 잃었다고 했다. 천만이 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 10살 때부터의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대신 꿈으로 그 날의 광경을 보고 있다고.
과연. 그렇다면 현실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죽은 친부모는 타인이나 다름없으리라.
죽어버린 다른 사람들도 게임 화면과 무슨 차이일까.
그. 영천후란 인간의 삶과는 괴리된, 불쾌한 꿈속의 무언가들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강호는 물었다.
"너…. 괜찮은 거냐?"
"……."
슬픔 머금은 목소리에 천후의 눈썹이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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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