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집 안에 들이다>
천후에게 잡혀 온 강호는 그 이후로는 얌전해졌다. 보조석에서 힘들어서 기절하듯 쓰러진 천후를 말끄러미 바라보는 것 말고는. 백미러를 통해 그 모습을 잠깐 확인한 희주 역시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시 자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강호는 아이들에게 무진 혼이 났다.
“나빴어! 나빴어!”
“미워! 나빠! 싫어!”
“미, 미안하다.”
“미안하면 다야?”
“맨날 말로만 미안하대!”
“으으….”
바닥을 발로 콩콩 찧으며 화를 내는 두 아이의 말에 강호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아이들에겐 나름 뻔뻔한 편인 그녀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우린…. 강호 서방 없으면 안 된단 말야.”
“진짜로 갈 거면 데리구 가야 할 거 아냐!”
그렇게 화를 내던 아이들은 곧 와앙 하고 울면서 그녀를 주먹으로 때리다가 이내 안겨왔다. 그 모습에 강호는 정말이지 답할 말이 없어 그저 둘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에효. 저럴 거면서 어쩌려고 그런 거람.”
괜스레 보고 있던 셀레나가 슬쩍 나온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보며 천후는 낮게 숨을 내쉬며 웃었다.
“이제야 좀 돌아왔네.”
멤버가 한자리에 다시 다 모이는 데 왜 이리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 뭐 사무실은 날아가 버렸지만, 어차피 새 사무실이 지어지면 그쪽으로 출퇴근하면 될 일이고 그전까지는 집이나 구 엔체스터 콜로니의 사무실을 사용하면 된다.
이름도 DS로 바뀌었지만 그런 거야 큰 변화도 아니고. 이제야…. 다시 본 궤도로 돌아왔다. 이제 몸만 회복하면 된다.
‘어서 나아야지.’
상처란 게 마음먹는 대로 낫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천후는 그렇게 각오를 다졌다.
*
그 뒤로 다시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천후의 몸은 놀랍게도 거의 완치되었다. 몸이 검에 완전히 꿰뚫렸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수준의 회복속도였다.
유그드라실에서 정밀 검진을 받아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 덕분에 그는 희주에게서도 더는 간호가 필요 없다는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으아아아! 길었다!”
워낙 중한 상처인지라 희주는 그동안 천후가 함부로 움직이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온종일 그렇게 감시 상태인지라 제대로 몸을 푼다거나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천후는 그동안 굉장히 괴로워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철저하게 그녀의 방침에 맞춰주었다. 그러다 이젠 움직여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천후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다.
“으…. 요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못한 걸 생각하면…. 희주 씨한테도 미안하잖아요. 냄새나지 않아요?”
희주가 하루에 한 번씩 그의 옷을 벗겨서 몸의 땀을 타올로 닦아주긴 했지만, 샤워는 절대 금지여서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희주는 그의 곁에서 한사코 떠나질 않은 데다가, 잘 때도 조금 거리를 두고서 동침을 했으니 천후로선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리를 뒀던 것도 천후 쪽에서 몇 번이나 말해서 떨어진 것이었다.
“…….”
질문을 받은 희주의 눈꺼풀이 몇 번인가 열었다 닫혔다. 그러다 곧 미안해하는 그에게 다가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완치되셔서 다행입니다.”
“아. 음….”
천후의 머릿속에 있던 잡념들이 깨끗하게 날아갔다.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생각했던 그 몸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 것이다.
‘안고 싶다.’
지금 당장에라도. 사랑스러워 미치겠다. 당장에 아랫도리에서 사내의 반응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고 보면 요 며칠 정신을 잃고 싸우고 다치는 사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까지 자각하자 머릿속이 뜨겁게 달궈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기색을 느낀 것인지 희주는 조금 더 몸을 가까이 가져와 붙었다. 어딜 만지더라도 부드러운 그녀의 몸이 접근해오자, 딱딱하게 솟은 기둥이 더더욱 흥분하며 날뛰었다.
“아…. 잠깐. 잠깐만요. 역시 냄새나. 지금은 안 돼.”
“…….”
그녀의 눈매가 아주 살짝 누그러졌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확실히 전해졌다. 그런 건 상관없다고. 미칠 거 같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턱을 올려 입을 맞추고 뗀 천후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서로가 즐거웠으면 싶어. 그러니까…. 밤에….”
“네….”
피하려는 것이 아니란 것에 안심한 걸까? 그녀는 홍조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자 약간 후회가 된다. 저녁은 무슨 저녁이야. 당장 쓰러뜨려 버려 하고 머릿속에서 짐승이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정말로. 이런 냄새나는 내가 아니라, 말끔한 내가 되어 상대하고 싶다.
간신히 야성을 가라앉히자 그제야 천후는 주변을 돌아볼 심적 여유를 느꼈다.
드래곤 레이드 성공 이후부터 지금까지 워낙 많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 사이에는 자기 앞가림 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이제 다시 바로 옆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천후가 물었다.
“희주 씨. 그런데 선배는 아직도 엔체스터 호텔에 있어요?”
“네. 아무래도 아직은….”
“으음….”
드래곤 레이드 이후 한 달 동안은 천후 자신이 거기까지 신경 써줄 여력은 없었다. 당장 하루가 멀다고 대통령이나 정치인. 친란을 만나보느라 바빴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집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 이후로 이미 한 달 하고 보름이 넘게 지났다. 어지간한 집은 포켓머니 수준으로 살 수 있는 양반이 여태 호텔에서 전전하고 있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선배는 그렇다 치고 아이들 쪽이 좀.”
“네.”
뭐 강호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제 성인이다. 천후 자신보다도 연상이니 삶의 방침에 개입하고 어쩌고 하는 건 조금 실례였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고 있는 이브와 에바는 조금 입장이 달랐다.
호텔은 호텔이고 집은 집이다. 그 둘이 과연 호텔을 집처럼 안정된 생활공간으로 느끼고 있을까에 대해서 천후는 회의감을 느꼈다.
둘은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그의 집에 와서 밤이 되어서야 들어갔다. 가정교사도 천후의 집으로 부르고 있을 정도였다. 이미 이것만 봐도 아이들이 호텔을 그냥 잠자는 곳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명백했다.
종종 아이들이 자고 가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것도 몇 번이고 봐왔던 그는 이 부분만큼은 조금 불만이었다.
“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선배는 보호자로선 한참 부족한 것 같아요.”
“…….”
실례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희주는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듣는 것만으로도 동의하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야 강호가 없으면 죽고 못 살 듯이 굴고 있었지만 글쎄. 당장 떼어놓으면 막상 어느 쪽이 더 힘들까? 강호가 과연 혼자 놔두면 컵라면이나 제대로 끓여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 천후는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떤 부분에서 보자면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이강호 쪽이었다. 그녀는 정말 사회생활을 힘들어했으니까. 천후도 남 말할 처진 아니지만, 그녀는 정말 그냥 놔두면 언제 사기를 당할지 불안했다. 이래서야 함께 하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됐다.
뭣보다 당장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낄 곳이 필요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기에 더더욱.
“그래서 말인데요. 희주 씨.”
“네.”
“조금 허락받고 싶은 게 있는데….”
천후는 잠시 희주의 눈치를 봤다. 희주는 무감정한 눈동자를 깜빡였다.
“주인님께서 생각하신 일은 무엇이든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저의 허락 같은 건.”
“아뇨. 이건…. 집안의 안주인인 희주 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거라서요.”
“…….”
이것 역시 희주의 방침이야 마찬가지일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천후는 그녀에게 정식으로 허락을 받고 싶었다. 그 의향을 읽은 것일까? 희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지요.”
“아이들…. 이브랑 에바 말이에요.”
“네.”
“우리 집에 살게 하면 안 될까? 2층에 방도 남으니까….”
“…….”
그 말에 희주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천후를 올려보았다. 그의 심장박동이 조금 커졌다. 역시 안 되는 걸까? 아니. 분명 희주는 허락을 해주겠지만 천후는 그녀가 내켜 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그의 의견엔 대부분 Yes로 일관한다. 아주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완전히 의존하여 어리광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천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인다면 천후는 그것을 거부표시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희주의 눈매가 아주 약간 가늘게 떠졌다. 이것은 그녀가 아주 드물게 보이는, 천후를 힐난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그런 얼굴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늦게 말씀해주십니다.”
“네?”
이게 무슨 말이지? 이해를 못 한 천후가 살짝 입을 벌리자, 희주는 말없이 그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이미 인테리어를 마치고 사람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방 2개가 있었다.
몇 달 전 처음 왔을 땐 장판과 벽지만 깔려있던 곳이 이렇게 바뀌었다니? 천후가 놀란 얼굴을 하자 희주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이 집이니 어서 들이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미리 손을 써뒀습니다. 주인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실 것 같아 기다리고 있―”
“희주 씨!”
“아…! 으음….”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와락 끌어안은 천후는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희주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곧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아아. 미치겠다! 이 사람은 정말.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이 자리에서 덮쳐 쓰러뜨리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질 못하겠다. 냄새고 뭐고 이제는 모르겠다. 사랑스러움에 완전히 넋을 놓아버린 천후가 그렇게 거칠게 안아오자 희주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의 양 얼굴에 손을 올렸다.
“주인님. 잠시….”
“네?”
흥분해서 숨을 몰아쉬는 천후를 보며 예쁘게 웃은 희주는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속삭였다.
“실은…. 주제넘습니다만 저도 주인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 뭐든지 말해요. 다 들어줄 테니까.”
지금이라면 정말 심장이라도 뽑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희주는 그렇게 심각한 것을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사실은….”
속삭이는 목소리에 천후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이 끝났을 때, 그의 목젖은 꿀꺽하고 크게 침을 한번 삼켰다.
흑진주와 같은 눈을 한 여자가 물어왔다.
“안 될까요?”
그녀에게 안된다고 말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애초에 어려운 요구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순수한. 여인으로서의 욕구였으니까.
*
밤.
자기 전 씻을 때가 되어 욕실에 들어온 천후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가슴의 관통된 자리에 주변과는 다른 색의 새살이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들어 만져보면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당분간은 그래도 운동은 자제하는 게 나을 듯했다.
“정말이지.”
고약한 일이다. 자신에게나. 강호에게나. 쓰게 웃은 천후는 몸을 씻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 냄새나는 몸을 꼼꼼히 닦아나갔다. 오늘은 그럴 필요가 있었다.
그럴 필요가.
“음….”
생각했던 게 그대로 몸에 표출되어버린다. 하지만 이제 이런 걸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늘만은 그래선 안 됐다. 왜냐면….
적당히 몸을 전부 씻어낸 천후는 욕조에 걸터앉았다. 여럿이 들어와서 씻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꽤 넓은 욕실을 덤덤히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씻겨 드리겠습니다.”
희주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욕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욕조에 걸터앉은 그를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입고 있던 옷을 벗고 가까이 다가왔다. 욕조 안으로 들어와 뒤편에서 어깨 위에 손을 짚는 그 동작만으로도 그는 약간 숨이 빨라졌다. 그러는 동안 희주가 입을 열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아. 으….”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또 다른 여성 하나가 욕실로 들어왔다. 이미 온몸이 붉어져있는 나체의 여성.
“아…!”
그녀는 당당하게 아랫도리를 내놓고 기다리고 있는 천후를 보고서 얼굴로 손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보고 희주가 조금 엄한 목소리를 냈다.
“들어오시지 않을 건가요?”
“…….”
파르르. 대답하지 못한 그녀, 강호는 말없이 욕실 문을 닫고서 그의 앞에 다가와 섰다. 그녀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눈에 보였다.
…아랫도리가 조금 더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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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박았으니 이쪽도 칼을 꽂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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