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챕터 3. 스타트>
21세기. 2000년을 찍고 나서 일어난 사건들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불리는 대사건은 바로 대참사였다.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 디제스터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 사건. 이로 말미암아 최초로 나타났던 멸급 디제스터에 의해서 국가 하나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위협적인 괴물들.
그러나 인류는 굴하지 않았다. 괴물들의 등장과 함께 세상에 본격적으로 세상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마법사. 디제스터를 잡는 사냥꾼. 일리미네이터의 존재로 인하여.
초자연적인 힘, '마법'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은 적은 비용만으로도 디제스터를 퇴치해주었고, 이들의 존재로 인해 현대 사회의 틀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인류를 지탱해주고 있는 요추. 수호신들이라 불러도 마땅하리라.
먼 과거부터 존재했던 마법사들. 손에서 불이 나가고, 사람의 생각을 읽고, 지배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들에서 우리-인류-를 지켜주는 친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 이제 10년.
마법기관이라는 유그드라실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걸을 수 없었던 최초의 한 걸음을 걸어나간 이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얼마든지….
*
드륵. 드르르르르륵. 먼 곳에서 들려오는 총성에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괴물들이 나타났음에도, 인간 사이의 다툼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21세기 초엽에 들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거. 그 지옥 같은 전쟁을 겪지 않은 이들. 혹은 그 지옥을 이유로 긴 세월 터져 나오려는 불만을 억눌러왔던 이들.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사람들을 사로잡아. 지구 상에선 오늘도 총소리가 멎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참거라."
긴 피난민 행렬의 중간.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남자가 울먹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심시키려 애썼다. 물론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총소리와 비명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일리미네이터의 대두로…. 전 인류의 총력이 디제스터에게 쏠릴 필요는 없게 되었다.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강력한 디제스터, 멸급 디제스터가 나타나는 빈도는 한 해에 한 번이나 될까 말까 할 정도였고, 그 아래 급은 어떻게든 잡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사람 간의 싸움은 태연히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여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신에 미친 자들이 국가의 땅 한가운데를 자신들의 영토로 선포하고서 점점 그 규모를 늘리고 있었다.
'신의 국가'라 스스로 칭한 이들이 뿌리는 논리에 혹한 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이 전장으로 찾아들었고, 완전한 광신도로 세뇌당해서 나라 안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미친놈들…!"
남자는 그 지옥에서 사람들의 피난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근 몇 년간 이 나라뿐 아니라 주변 국가 전부가 혼돈의 도가니였다. 긴 전쟁에서 이득을 보지 못한 미국과 서방국가의 개입은 미미했고, 상황수습에 급급했던 주변국들은 광신의 확산을 막지 못했거나, 그럴 의지가 없어 방치했다.
결국, 그 결과는 학살과 대혼란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국경까지만 가면 안전하단다!"
서방 선교사 출신인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려 했다. 실제로 여기서 국경까진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그 국경을 넘으려면 출입국 관리소를 넘어야 하고, 그전까지는 아직 이 나라의 국경 안이기 때문에…. 이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쪽에선 관여하지 않는다는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차례까지만 오면 자신이 맡은 이 아이들만은 유럽으로, 자신의 조국으로 함께 데리고 갈 자신이 있었다. 그를 위한 준비는 반대쪽에서 전부 해두었다.
하지만….
콰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악!"
난민 행렬의 뒤쪽에서 들려온 폭음에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남자의 표정이 새하얗게 변했다.
"신의 국가 놈들!"
나라 중앙의 사막에서나 활동하던 광신도 테러집단은 이제 와선 그 세를 크게 불려서 나라 전체를 휩쓸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도 자신들의 통치에서 도망치려 하는 발칙한 이교도를 잡겠다는 미친 망상을 이루기 위해서 민간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화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트럭을 개조한 차량들이 달려오면서 불꽃을 내뿜는 게 보였다. 그때마다 행렬에서 사람들이 피를 뿜으며 죽어갔다.
"으아아아악!"
"신이시여. 신이시여!"
이 나라. 아니 이 주변국 전체가 믿는 신앙임에도 그 갈래가 다른 이들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교리를 절대적이라 칭하는 그들은 사람들을 학살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안 돼!"
이들이 원하는 것이 선교사의 눈에 훤히 보였다. 여자. 그리고 여자아이들. 그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성전'을 치르는 전사들의 노리개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들의 교리는 제멋대로였고, 유부녀와 미성년자 따위 가리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지프에서 내린 '신의 전사'들 몇 명이 피난민 행렬에서 여자들을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중 몇몇은 그가 보호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크으윽. 하늘에 계신 성부, 성자시여. 제발 저에게 힘을."
그가 섬기는 저들과 다른 신 역시 살인을 허가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신에게 빈 선교사는 자신과 함께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던 다른 이들과 눈을 맞췄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이 땅에선 필수인 총이 들려있었다.
선교사의 심장이 뛰었다. 이 땅에 들어온 것도 이번이 세 번째. 총을 쏴본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 일행보다 적은 수의 놈들과 싸울 때나 써봤던 것이었다. 이렇게 사실상 포위되어 이미 일부가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꼬마야. 일어나라."
"큭!"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미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신의 전사를 본 그는 숨어있던 짐 더미에서 튀어나와 총에서 불을 뿜었다.
"크아아아악!"
"뛰어라, 애들아! 어서! 암세크! 네가 가장 형이지? 이것들을 가지고 달려가거라!"
"으아아아앙!"
“아저씨!!!!!”
이미 피난민 행렬은 도처로 흩어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입국 조건이 엄격해진 국경관리소는 총포가 튀더라도 사람을 빠르게 들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판다면 수천 달러는 나올 백금 펜던트, 국경만 통과한다면 바로 일행과 접선하는 방법들을 적어놓은 서류 등이 있다면 이 한 줌 조금 넘는 아이들은 괜찮으리라.
그렇게 판단하고 아이들을 보낸 선교사는 총을 꼬나 쥐고는 신의 전사들과 맞섰다.
최초의 반격은 효과적이었다. 단숨에 여섯이 넘는 이들을 제압했다. 하지만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던 놈들은 동료들이 제압당하자 태세를 일변하여 반격하는 이들을 단숨에 압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지역에서 전쟁과 테러를 벌이느라 싸움에는 도가 튼 놈들이었다. 소총 한 자루 쥔 선교사들이 전부 정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아이들을 떠나보낸 남자 역시 가슴에 흉탄을 맞고 쓰러졌다.
"아저씨!!!! 으아아아아아아아!!!!!!"
아이들의 발걸음으로 얼마나 먼 거리를 도망칠 수 있을까? 도망치면서도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던 아이는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비명을 터트렸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오오라가 폭사 되기 시작하며, 몸 주변에 모래가 흩어져 회오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에스하르! 엘마네쉬! "
놀란 신의 전사들의 외침 속에 암세크의 비명이 뒤섞였다.
"다 죽어버려어어어!"
쿠아아아아아! 단숨에 신의 전사들의 트럭 중 하나가 불기둥에 휩싸였다. 그것을 바라본 다른 아이들이 놀라 외쳤다.
"암세크!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평생 안보이겠다고 했잖아?!"
태어날 때부터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마법사, 암세크는 자신의 힘을 어른들에게 숨기고 또래들에게만 밝혔다. 머릿속에서 경고하는 '밝혀지면 위험하다'는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다.
암세크도 신의 국가 놈들이 마법사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건너 들어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그 힘을 억눌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의지하던 어른이 죽었다. 죽어버렸다. 그는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아니야! 좀 더 빨리 썼어야 했는데!"
쾅! 콰쾅! 그가 손을 내뻗는 지역마다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때마다 트럭들이 전복되거나 간신히 피하거나를 반복했다.
봐라. 저 꼴을. 진작에! 진작에 썼다면 저놈들이 이렇게 활개 칠 수 없었을 텐데! 부모님도! 선교사님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두 곳에서도 비슷한 초자연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피난 행렬에 있었던 마법사들이 마지막 저항을 위해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트럭들은 끈질기게 회피기동을 했고, 제대로 된 마법을 생전 처음 써보는 암세크는 마력을 통제하는 것에 미숙했다. 그의 힘은 금세 바닥났다. 그것은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였다.
투투투투투투투투…. 하늘에서 헬기 소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한대가 아니었다. 6기가 넘는 헬기가 나타나더니, 주변을 맴도는 트럭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방의 국경선이 열리며 IFV들이 들어오더니 신의 전사들의 잔당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내린 보병들은 흩어진 피난민 행렬을 양 떼 모는 양치기견처럼 능숙하게 한데로 끌어모아 보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반격을 받은 신의 전사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민간인 소탕을 위해 모였던 소규모 병력이었다. 여기서 반격을 가하려면 아무리 이곳이 그들의 본거지에서 가깝다 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했다.
"아…."
하늘에서, 철갑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키는 그들의 모습은 어린 암세크의 눈엔 진정한 신의 전사로 보였다.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용감한 신의 사자들.
그 한가운데서 선은 얇지만 다부진 근육을 가진 남자가 걸어왔다.
남의 시선 따위는 생각도 않는 건지 흉하게 이리저리 뻗은 갈색 곱슬머리가 귀를 덮을 정도로 기른 남자였다. 그의 눈 아래는 긴 전장 생활에 지친 건지 다크 서클이 짙게 깔렸지만, 그래도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오. 애들아. 무서웠지? 걱정 마라. 이제 아저씨들이 지켜줄 테니까."
그 말에 피난민 일행이 환호를 내질렀다. 남자는 그저 씩 웃으며 암세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암세크는 완전히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아저씨가 저쪽에서 기다린다는 사람이었나요?"
그 말에 남자는 암세크의 손에 소중하게 들린 펜던트와 각종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약간 묘하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남자는 웃으며 답했다.
"음? 아. 국경에 아는 사람이 있었나? 아니. 우린 다른 사람들이지. 하지만 어차피 보호시설행일 테지? 그들이 너희가 살아갈 곳이나, 앞으로 받을 교육이라거나, 돈을 벌 일자리에 대해서 말해준 게 있니?"
암세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까지 도망치느라 바빠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가느다랗게 웃으며 말했다.
"음. 그럼 그냥 우리에게 오는 게 어떠니? 의식주는 물론이고, 우린 너희가 지금 당장에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줄 수도 있지. 아마 너희도 만족할 거야. 그리고…. 꼬마야. 이름이 뭐지?"
"암세크. 암세크라고 해요."
"그래. 암세크…. '복수'하고 싶지 않니?"
쿵…. 소년의 눈이 흔들렸다. 그의 뇌리 속에서 죽어간 부모님, 선교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를 악문 암세크와 주변 소년, 소녀들의 고개가 작게 끄덕였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너희는 나를 따라오면 되겠구나. 아. 맞아. 그리고 말인데."
거기서 말을 한번 멈춘 남자는 그러다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아저씨가 아까 몇 명 봐두긴 했는데. 혹시 너희 중에 마법사가 더 있니?"
그건 정말 지나가는 목소리.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가벼운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들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 그렇기에 그것을 믿고 암세크 일행의 다른 아이 하나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놀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본 갈색 털의 짐승이 웃었다.
*
마법. 초자연적인 힘. 그들의 존재가 공표된 지도 50년이 넘었지만, 그들을 판별할 방법은 인류에게는 없다. 오로지 하늘에 떠 있는, 자신들의 존재를 공표한 그 순간부터 인간 위에 떠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저 하늘의 유그드라실만이 그 방법을 가지고 있다.
마법. 마법사. 그들의 힘은 절대적이다. 분명히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초상현상이고, 관측조차 가능함에도 과학적인 기기로는 그것을 판단할 수 없다. 일리미네이터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출마법조차 질량 보존의 법칙을 어기면서 진행된다. 있을 수 없는 돌덩이가, 얼음 덩어리가 어디서 갑자기 생겨버린다.
변신 마법을 쓰면 기본적으로 DNA 단계에서 완전히 변화하여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정도다.
그뿐인가? 정신에 관여하는 마법은 어떤가? 그들은 마음을 먹는다면 단숨에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을 수 있고, 어떤 범죄를 일으켜도 세상에서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다.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는 차라리 귀엽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아무리 입으로 본능이 차단한다는 말을 하더라도, 년에 몇 번씩은 마법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사건들이 꼭 일어난다. 하지만 심증만이 있을 뿐이다.
인류에겐…. 그것을 확인할 힘이 없다.
오로지 마법사들의 자발적인 자제력. 판단력. 인내력에 기대어 현재 세계의 형상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알량한 것인가? 손에 만능 스패너를 이미 쥐고 태어난 인간이 있다. 그걸 사용하면 얼마든지 모든 일을 쉽게 끝낼 수 있는데… 그걸 알아서 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가당찮은 짓인가?
그럼에도 인간은 그런 알량한 것들에 기대어 그들이 사고를 치지 않기를. 그들이 마법을 남발하지 않기를 그저 바라고만 있어야 한다.
실제론 그들이 종종 자제력을 잃고서 그것을 남발하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건 정말이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어두운 방 안. 커다란 1인용 소파에 몸을 묻은 한 남자가 말했다. 수많은 수조가 있는 방.
"그런 좋은 게 있다면 모두가 나눠 쓸 수 있게 해야지. 안 그러니?"
"응. 파파."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이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돌아왔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