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모집>
드래곤이 잡힌 지도 석 달이 지났다.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디제스터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먼저 서브 퀘스트급부터 지역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 빈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리미네이터 사이에선 일종의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으아! 돈은 아무리 많아도 더 많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이라더니! 내가 그 꼴이구나!"
"졸라.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습니다."
"아. 좀 펑펑 나와라, 디제스터니뮤."
"B랭크들은 좀 당분간 쉬라고! 3천만 원짜리 그렇게 기쓰고 더 잡고 싶나? 1000억 원 받았잖아!"
"나 은퇴한다.txt"
덕분에 일리미네이터 커뮤니티에선 이렇게 별소리들이 다 오가고 있었다.
드래곤 레이드에 대한민국 일리미네이터 전원이 투입되고, 그들 전원이 100억 원의 (로마이어 예치금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 퇴치금을 받았다 보니 그 행동 양태도 천차만별이었다.
경력이 길었던 일리미네이터들의 일부는 진지하게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C랭크에게 100억, 세후로 50억 이상이면 거의 평생에 걸쳐서 번 돈에 가까웠다. 그걸 한방에 받은 시점에서 완전히 늘어져 버린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이제 막 돈맛을 본 이들은 눈에 원화 마크를 띄우고 서브 퀘스트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건당 3천만 원 밖에 안된다는 그 갭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 중에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드래곤 한 번 더 안 오나? 드래곤 자첸 그렇다 치고 그 아랫놈들이 짭짤한데."
전조 단계에서 했던 고생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 인생의 황금기로 기억되었다. 하루가 멀다고 몇억씩 벌어들였던 황금기. 한화가치가 잠시 떨어지긴 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강국이었고, 석 달 사이에 어느 정도 쇼크에서 벗어나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멸급을 '아주 무난히' 잡았다는 평가와 함께 대한민국에 투자를 강화하는 국제 기업들도 많았다.
돈을 좀 다룰 줄 아는 이들은 분산투자도 해두었기 때문에 그들이 본 손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쓸 돈을 벌었다고?
"내 자식새끼가 죽을 때까지 쓸 돈을 벌겠다!!"
이렇게 의욕을 고취하고 있는 이들은 아예 해외 원정까지 가면서 디제스터를 잡았다. 그래 봐야 이제 그들 기준에선 푼돈이었지만.
덕분에 멸급이 다시 나타나는 건 바라지 않아도, 국내에서 다시 뭔가 일이 터졌으면 바라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을 터트릴 인간이 움직였다.
*
"와…. 새삼 감격이다, 진짜."
"그러게."
영천후는 그동안 올리고 있던 트란제비야, 아니 이젠 DS 빌딩이란 이름이 붙은 건물을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아직 드래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천후는 사무실을 새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정집 같은 사무실도 나쁘진 않았지만, 일을 혼자 할 것도 아닌 이상 제대로 된 건물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금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부터 건물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 중간에서 친란이 딜을 걸어왔었다.
원하는 형태로 건물을 올려 줄테니 대금은 나중에 내라는 식으로.
당시엔 고마운 일이라 건설사를 체인지. 거의 처음부터 다시 올렸는데 그 중간에 드래곤 사태가 터졌고. 그는 이제 공사비를 일시금으로 지급할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전부 내고 기존 사무실이 있던 상가 건물을 새로 다시 지어줘도 아무렇지도 않은 몸이 되었다.
그렇게 네 달가량이 지난 지금. 비로소 완공된 것이다.
외관은 널찍한 8층 건물이었다. 일반 기업 빌딩들보다 훨씬 넓이를 중시해서 만든 것이다. 또한 건물 전체가 쉘터화 되어서 경급 디제스터의 주력 공격기에도 1회는 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대비가 되어있었다.
“지하는 훈련시설이고, 1층은 사내 식당이랑 카페. 2층은 일반 직원들 휴식 공간. 3층은 훈련 프로그램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이랑 엔지니어들 있는 곳이고. 나머진 아직 다 예비야. 아. 최상층은 영 사장님 사무실이고. 옥상은 헬리포트랑 큐브 엘리베이터가 착륙할 수 있게 되어있어. 만약을 대비해서 헬기도 하나 사놨는데 아마 쓸 일은 별로 없을걸?”
“그러려나?”
“텔레포트 사용 승인받았다며. 쓸 일이 있겠어?”
“음. 뭐.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잖아. 그때까진 타고 다녀야지. 큐브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할 때도 생길 수도 있고. 텔레포트도 못할 때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만약에 대비해야지.”
북한 문제 때문에 일반 기업에는 헬기 사용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 정부도 DS에는 허가를 내주었다. 디제스터 퇴치란 기본적으로 안보의 영역이었고, 놈이 날뛰는 시간에 따라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도로사정이 막힐 때를 대비해 헬기 좀 쓰게 해달라는데 거부할 정돈 아니었다. 뭣보다 돈 주고 사는 거였고.
건물 내부를 돌아보던 천후는 이미 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서 놀랐다. 프로그래밍 팀이 이미 출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수인원이 발생해서 식당에도 사람이 있었다.
“와. 사람 많네.”
“많아야지. 일리미네이터만 띡 고용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니까. 거기다 사람들도 휴가 대비인원까지 생각해서 많이 받았잖아.”
“그야…. 양아치처럼 굴 생각 없으니까.”
2명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 중 하나가 정기적으로 쉴 걸 대비해 세 명을 고용하는 식으로 사람을 고용했다. 덕분에 일반 기업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형태가 되었다.
하청, 재하청 같은 건 전부 집어치우고 식당은 엄선된 급식업체를 통째로 인수해왔고,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들도 웃돈을 약속하고 끌어와 앉혔다. 대한민국 땅엔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야근 없는 프로그래머를 약속하며.
그러다 보니 나가는 돈이 산더미다. 그 예상안이 처음 나왔을 때 조언자 위치를 어느 정도 고수하고 있는 친란은 오랜만에 배를 잡고 깔깔 웃었고, 셀레나는 부루퉁하면서도 전부 받아들였다.
일반 기업에서 할 짓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미지로 먹고살아야 할 천후는 이러는 게 맞다. 이러는 게 맞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럼 여기가 우리 사무실인가?”
최상층에 도착한 천후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사무실을 보고서 피식 웃었다.
“야. 이거…. 사무실 맞아?”
저 앞쪽에는 천후를 위한 탁자와 의자가 하나. 거기까지는 사무실이란 느낌이 분명히 났다. 하지만 그 앞쪽에 놓여 있는 큰 소파들과 티 테이블. 오른편에는 벽면에 커다랗게 설치된 LCD TV에, 안쪽에 있는 문들을 열어보니 당구대가 있질 않나 한쪽엔 아예 식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부엌, 심지어 다른 방엔 대형 침대에 월풀 욕조가 설치된 욕실까지 있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단 어디 큰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을 보는 기분이랄까? 천장 조명 등도 딱 그런 분위기였다. 거기에 약간 묻어나오는 이 미묘한 가정적인 느낌이라니.
천후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자, 셀레나는 다급히 변명했다.
“잠깐. 봐봐. 일단 있을 건 다 있어. 그런데 솔직히 너나 우리가 여기서 자주 내려오는 게 다른 사람들한테 좋을 것 같아? 우린 최대한 사무실에서 박혀 있다가 퇴근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시간 때울 거리를 이것저것 넣다 보니까…. 에헤헷.”
“…….”
아이고야….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가리고만 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셀레나 말도 틀린 말이 아닌 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천후는 사실 이곳에 출근할 필요조차 없는 몸이다.
직접 움직여야 할만한 사건이 터졌을 때나 와서 움직여도 되는데 굳이 출퇴근하겠다고 여길 만든 이상, 이곳은 그와 식구들이 쉬어가기에 가장 편한 구성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진 일반적인 접객을 하기도 좋아 보이는 구성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천후는 입술을 씰룩이면서 그녀의 귀를 입술로 살짝 물었다.
“네 취향으로 한 거 아니고?”
“아앙! 아니라니까~! 란도 동의했단 말야! 어차피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라고.”
“진짜지?”
“…….”
다시 한 번 묻는 물음에 셀레나는 살짝 눈치를 보다가 엄지와 검지를 붙인 다음 살짝 틈을 벌려 보였다.
“요, 요만큼은 내 취향?”
천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셀레나가 에헤헤 하고 웃어서 얼버무리려 했다. 그때 엘리베이터 차임 소리가 들려오며 희주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정겹군요.”
안을 한 번 쓱 둘러보고서 담백하게 평한 희주는 천후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빌딩 완공 축하드립니다.”
“하하. 희주 씨가 이러지 마세요.”
가볍게 격식을 차리려고 하는 희주를 보면서 천후는 멋쩍게 웃었다. 그러다 아 하고 탄성을 지른 천후는 그녀에게 다가와 셀레나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여기 인테리어 디자인 아이디어는 셀레나가 냈대요.”
“조금…. 혼나야겠군요.”
“그렇죠?”
“?!”
속삭였다지만 다 들리는 거리에서 하는 말에 셀레나가 흠칫 놀라서 어깨를 튕겼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둘은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그녀의 양팔을 포박해, 사무실 안쪽 방으로 끌고 갔다.
“꺄! 잠깐! 첫날부터―”
“뭐 어때. 이러려고 만든 침실 아니었어? 응?”
“아냐! 침실 제안은 내가 한 게 아닌데!”
“란 씨도 오면 똑같이 벌을 줄 겁니다.”
“뭐?! 아니 이건 너―읍!”
말 중간에 희주가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으며 허벅지 사이로 차가운 손을 움직여 뱀처럼 타고 들어갔다. 그 사이 천후는 그녀의 정장 단추를 풀고서 그 안쪽을 만져오기 시작했다.
“으으으음!?!!!!”
커피색 스타킹의 색이 치마 안쪽에서 조금 더 짙어졌다.
*
“변태…. 완전 변태야….”
시트를 적신 채 완전히 흐트러진 모양새로 누워있는 셀레나를 중앙에 두고서 희주와 천후는 다음 단계에 관하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건물 준비는 끝났으니까 사람을 모아보려고 해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희주의 대답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들어올 사람들의 규모를 생각하고서 빌딩을 만들었다. 이걸 채우는 것은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공격대를 만들 생각이에요. 목표는 경급 이상의 상위 레이드. 다만 멸급 디제스터는 1년에 1체 나올까 말까 하니까 사실상 경급이 가장 주력이 되겠죠.”
“국외로 나가실 생각이신가요?”
희주의 물음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에서 경급 디제스터는 1년에 가장 많을 땐 4체 정도가 나타났었다. 그때마다 급하게 공격대를 구성하여 대치해왔던 게 기존 방식이었다.
빈도수가 이렇게 낮으니 굳이 공격대나 클랜 같은 것을 유지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다. 보통 일리미네이터들에게 상위 디제스터란 피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구 5,000만의 대한민국이란 한 나라를 보고 한 생각이고….
전 세계 인구가 70억에 육박하는 이 지구 전체를 보고 생각하자면, 경급 디제스터는 하루가 멀다고 나타나는 존재였다.
인구수가 많은 중국, 인도 등의 나라에서는 특히 그래서 타국의 도움을 받는 것을 병적으로 거부하던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외국에 많은 헬프 요청을 날리고 있었다.
“A랭크 마법 통제가 거의 완전해진 이상, 저는 단독으로 자주 다닐 거예요. 굳이 사람을 더 붙여도 거의 강호 선배나 몇몇 서포트 요원만 데리고 돌아다닐 거고.”
천후는 그러면서 옷깃 사이로 드러난 셀레나의 한쪽 가슴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 차이를 두고 반대쪽 가슴에도 손을 가져갔다.
“아!”
“그러니까 공격대는 자체적으로 경급 디제스터에 대응할 수 있을만한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멸급 디제스터에도 대비할 수 있게끔.”
낮게 터져 나온 신음에 천후는 가볍게 웃으며 그 끄트머리를 애무해나갔다. 그것을 보며 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두 번째로 쥔 왼 가슴을 입에 물었다 빼면서 말했다.
“세계 최상위 공격대가 되는 거로군요. 뜻에 부합하는 분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네. 하지만 그 전에….”
그렇게 말한 천후가 천천히 지친 셀레나의 양다리를 활짝 펼쳤다. 그 순간 그녀는 즐거운(?) 벌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 잠깐만! 또? 나 이제!”
“부럽습니다. 이렇게 상을 듬뿍 받으시니….”
“아니야, 이젠 그만 희주한테! 응, 으으으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덮쳐오는 감각에 그녀의 허리가 꺾였다.
다음 날.
취업 사이트와 일리미네이터 커뮤니티에는 'DS 경력/신입 일리미네이터 채용‘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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