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47화 (147/324)

147화

DS가 일리미네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일리미네이터 커뮤니티를 뒤흔들었다.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나 진짜 그동안 쉬는 날엔 언제 이야기 나오나 종일 눈 빠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고. 급식업체랑 막 여러 업체 거둬들일 때부터."

일반 구인 사이트는 그렇다 치고, 일리미네이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즉시 공지로 격상. 모든 이들이 그것에 주목했다.

그 내용은 평범한 구인 글이었지만, 핵심적인 내용에는 일반 일리미네이터 구인 글과는 상당한 차별점이 있었다.

'디제스터 퇴치업체 DS는 상위 디제스터 레이드를 목표로 할 최정예 일리미네이터를 모집합니다. 주 대상은 경급 디제스터가 될 것입니다.'

가장 상단에 박혀있는 이 하나의 문구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와…. 진짜 작정하고 상위 공격대를 만들려고 하는구나."

이 문구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지금까지 일리미네이터 대부분이 서브 퀘스트에 매달려왔던 건 안정성 문제도 있었지만, 빈도의 문제도 컸다.

수십 명 단위로 달라붙어야 하는 강력한 디제스터는 그렇게 자주 출현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업계의 기본 방침은 솔플, 혹은 듀오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고, 파급도 개개인으로 보면 일 년에 4건 처리하면 굉장히 많이 해치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개 국가 단위로 볼 때 그런 것뿐이다. 전 세계로 보자면, 정말 이 세계는 하루가 멀다고 경급 디제스터가 출현하고 있는 지옥이었다.

DS의 이 문구는 아주 간략하게 '우리 회사 들어오면 세계적으로 놀 거예요. 그리고 일도 졸라게 위험함'하고 시작부터 박고 들어간 것이다. 구인 글을 읽는 사람들의 첫 감상은 아주 간단하게 하나였다.

'쫄린다.'

싫다. 드래곤 레이드 건으로 위험한 다리는 건널 만큼 건넜다. 애초부터 널널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했다. B랭크. C랭크를 가리지 않고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나약한 생각들은 조금 더 스크롤을 내렸을 때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수 지급 규정이란 칸을 보자마자.

기본 연봉 : 5억(일괄)

등급 당 분배금

경급 : B랭크 100억, C랭크 10억멸급 : B랭크 1000억, C랭크 100억나약해 보이던 그들은 순식간에 한 달 전 용을 잡은 경력을 어필하는 취업 전사로 탈바꿈했다.

*

요동친 것은 기존 일리미네이터 커뮤니티뿐만이 아니었다. DS가 구하는 것은 현직 일리미네이터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3/4분기 신입 일리미네이터 면접, 그러니까 천후도 참가했었던 마법사 경매 역시 같은 날 열렸다. 면접장은 아예 DS 본사에 설치되었다.

굉장한 폭거로 보였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유그드라실에 정체를 밝히며 연락해온 일리미네이터 지망생 전부가 DS를 원했던 것이다.

드래곤 레이드를 라이브로, 혹은 잔혹성이 편집된 영상으로 지켜보며 동경을 키워온 마법사들이 숨겨오던 정체를 밝혀온 것이다. 그들의 수는 40명이 넘었다. B랭크도 셋이나 섞여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B,C랭크 2, 30대 마법사 전원이 튀어나온 수준이었다.

이례적인 상황에 당황한 유그드라실은 무조건 취업보장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신신당부하고, DS에 취직하지 못할 시 다른 회사에 재면접을 볼 수 있다는 조건으로 DS에게 면접 우선권을 주었다.

이뿐일까? DS에서는 전투 요원이 아닌 일반 마법사. 그중에서 텔레포트 주특기 마법사 역시 함께 모집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준비 없이 마법을 쓰면 레이지가 일어날 수 있으니, 원하는 이들은 유그드라실에서 측정을 받으라는 언급과 함께.

"야! 이 자식아! 일을 뭐 이렇게 늘려?! 하루에 지금 몇 명이 검사를 받으러 오는지 알기나 해?"

"뭐가요, 아저씨. 여태 탱자탱자 놀고만 있었으니 잘됐네."

대한민국에 있는 마법사의 총수가 대략 5,000명 안팎. 그중에서 유그드라실이 파악하고 있는 마법사는 그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랭크나 주특기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아. 신고하니 마법사인갑다'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오오라를 확인하는 정도?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평생을 봉인해왔던 마법을 써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저 구인 글이 뜨자마자 1,000여 명 정도가 더 신원을 밝히고, 하루아침에 2,500명 정도가 자기 주특기 파악하는 것 좀 도와달라고 청원이 들어왔다.

성층권에 있는 유그드라실이야 8,000명이 거주하는 거대 요새였지만, 한국 지부 자체는 대한민국 땅에 몇몇 건물을 구매해서 비밀리에 위치를 수시로 바꿔가며 운영하고 있었다. 직원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일이 몰려들자 최완이 기겁하며 전화해온 것이다.

"잘됐네요, 뭐. 예상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정도는?"

"아니 그렇긴 한데!"

"아들 바쁩니다~. 전화 끊을게요. 아. 텔레포테이션 마법사 중 DS입사 지원자는 그쪽에서 정리해서 보내주시고요. 그럼 아저씨. 수고!"

"야, 임마!"

이전에 자신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던 천후는 꼬시다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순간 바로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지부장님! 전화 폭주하고 있어요!"

"아예 지부로 직접 찾아오고 싶단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어쩌죠?"

여직원들이 겁먹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 최완은 이마를 짚었다. 지부뿐 아니라 갑자기 전화연결이 폭주하자 유그드라실 본사에서도 통화기록 삭제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고 징징대고 있었다.

평소엔 전 세계에서 하루에 몇 통 오지 않는 전화의 통화 기록을 지우고, 그 자리에 지부의 마법사들이 직접 찾아가서 안심시켜주고서 주의사항을 전해주는 식으로 진행했었는데 갑자기 이러니 당황한 것이다.

그래도 평소 같으면 천천히 진행하겠는데, 이번에 DS가 밝힌 봉급 조건이 너무 좋다 보니 사람들의 눈이 반쯤 돌아있었다.

"주특기 확인 처리가 늦어서 구인 기간에 못 맞추면 자네들이 내 인생 책임 질 건가?!"

60대로 추정되는 노인의 버럭 소리에 젊은 여직원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같은 인바운드라도 지금까진 '무서워요, 금방 와주실 거죠? 지금 벌써 절 납치하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거 같아요' 같은 소리를 들어오다가 이런 태도는 처음 겪은 것이다.

"아…."

그렇다고 명색이 유그드라실이 마법사 인권을 챙기는 단첸데, 마법사 본연의 힘을 발휘하면서 돈까지 벌 기회를 잡고 싶다는 욕망에 어울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건 추한 욕망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리고 마법사라면 당연한 욕구였으니까.

이번 일에 제대로 대응 못 하면 안 그래도 하늘 위에서 인간들 감시나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듣는 유그드라실의 명예는 끝도 없이 실추될 것이다.

"하. 아들 새끼 길러봐야."

조금 박하게 굴었다고 이렇게 나오다니. 싸가지 없는 새끼, 하여간. 혀를 찬 최완은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미 이건 지부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만. 한번에 300명씩 올릴 테니까 본사에서 마력 랭크랑 주특기 판정 합시다."

진지한 얼굴로 한 소리였지만, 그 말을 들은 본사 직원들은 기겁했다.

"네!?"

"한국 지부 일을 왜 우리한테 넘깁니까?"

"아, 갑자기 어떻게 300명이나 받아요? 응접은 누가 하라고?!"

일리미네이터들이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유그드라실 예비 공간에 모여서 줄 서고 어쩌고를 알아서 다하니 몇 명만 나서서 통제하면 되지만, 이렇게 대규모 판정은 유그드라실 역사에서도 전대미문이었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린 최완은 마지막으로 징징댄 남자직원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외쳤다.

"하라면 해, 임마! 나도 일 할 거야! 큐브 함부로 내리면 그 사람들이 노출되니까, 직접 내려가서 한 명씩 텔레포트로 옮길 거라고! 됐냐?! 됐어?"

"……."

2,500명을 다 찾아가서 한 명씩 성층권 본사에 옮기겠단 소리에 남자직원은 곧장 입을 닥쳤다. 뭐. 까짓 마력 판정 줄 세우고 측정기 좀 통과시키면 되지만 저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생 노가다였다.

그들은 새삼 지부장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며 사람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그날은 유그드라실이 창립한 후로 가장 바쁜 날로 기억됐다.

*

그렇게 며칠 후. 온라인 이력서를 정리해 온 셀레나는 천후 앞에서 혀를 내두르면서 말했다.

"와. 진짜…. 이렇게 많이 지원할 줄은 몰랐네."

"얼마나 되는데?"

"텔레포테이션 관련만도 200명이 넘었어."

"생각보다 많네."

"응.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경력직 일리미네이터 쪽인데…."

"응? 얼마나 접수했길래?"

"…110명."

"……."

그 말엔 천후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110명. 간단하게 말해서 기존에 활동하던 국내 모든 일리미네이터가 죄다 찔러 넣었다는 소리다.

"쩌네. 은퇴 생각하는 사람 빼고 거의 다 지원한 건가?"

"그렇지, 아무래도?"

"뭐 이렇게 많지?"

던전화가 가능한 멸급 디제스터를 대비해 40명. 거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추가로 10명을 더해서 50명을 채용할 생각이었다. 경급 레이드를 2개 팀으로 돌릴 생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원자는 일단 한국인으로 한정시켰다. 내수 발전, 자국인 투자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것보단 B랭크 이하 일리미네이터 중에선 이번 드래곤 사태를 겪은 한국인 일리미네이터 이상 가는 전력이 없다고 판단한 게 가장 컸다.

몇몇 타국에서도 멸급 디제스터에 의한 쫄 웨이브를 겪은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미 햇수가 몇 년 지나서 기량이 쇠했다.

또한 멸급 자체는 자국이 처리하더라도, 전조 단계나 웨이브 단계의 경급 처리는 타국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흔했는데, 대한민국은 오로지 자국 내 일리미네이터들을 갈아서 처리했는데도 대부분 대처해냈단 점이 크게 작용했다.

마지막엔 군의 화력도 동원됐지만, 그건 타국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아주 무난하게 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기량은 현세대에선 세계에서도 손으로 꼽혔다.

덕분에 이들은 한국이 잠잠할 때도 다른 나라에서 일을 따낼 수 있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었다. 굳이 DS에 취업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데,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릴 거라곤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천후의 생각이고. 셀레나는 달랐다.

"그야…. 돈뽕맛을 한 번 봐버렸으니까."

"음?"

"개인이나 기존 기업이 하는 일은 다시 서브나 파급이잖아. C랭크는 해봐야 건당 2억? 그것도 포인트 맨이나 그렇잖니."

"응. 그렇지?"

"그런데 봐봐. 이 사람들 지금 전부 한 달 전까지 키메라 기계처럼 잡으면서 건당 5, 6억씩 뽑았던 사람들이거든? 그것도 한 달 동안 내내?"

"아…."

기계처럼이란 말이 너무 어울린다. 거의 최후반 가선 키메라를 도살하듯 잡았더랬지. 연속으로 세 마리를 잡지 않나. 탱커도 없이. 그걸 계산하면 하루에 15억이었단 소리다.

"자. 이제 현 상황으로 돌아와 볼까? 저렇게 벌다가 다시 서브 퀘스트 잡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

"저 사람들 개인 역량 자첸 서브 퀘스트가 어울리는 게 맞지만, 공격대로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해. 크게 크게 놀고 싶다고, 지금. 그런데 건당 10억씩 주는 길이 열렸다는데? 다른 기업에선 생각도 못 하는 짓거리를 하겠다고 나선 놈이 있다고. 키메라를 안정적으로 잡던 게 바로 어제 같은 사람들이 주저할까?"

주저할 리가 없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애초에 이 생각하고 돈 저렇게 부른 거 아니었어?"

"으, 응! 그러엄. 하하. 생각했지!"

"……."

셀레나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 보지 못한 천후는 살짝 눈동자를 돌렸다. 한번 옆구리를 세게 꼬집은 그녀는 정리한 파일을 넘기며 말했다.

"자. 그럼. 골라잡아봐."

사람의 진수성찬이 천후의 탁자 위에 차려졌다. 천후는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검색했다.

정태원.

"…으헤헤."

있군.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좀 오래 쉰 관계로 조연 소개를 좀 다시 해볼까 합니다.

레이나드 : 본명 송칠삼. 디제스터 등장시기부터 활동한 원년멤버. 터줏대감. 국내에 손꼽히는 공격대장 중 하나. C랭크.

정태원 : 로마이어와 1차 드래곤 트라이를 같이 뛰었던 공격대장. 이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국내 최고의 공격대장으로 여겨지고 있음. C랭크.

차성준 : 잠시 로마이어와 함께하다가 배신한 B랭크.

주광현 : 박찬휘 커버쳐주려다가 이강호한테 목따일 뻔한 B랭크. 경박함.

하연 : 챕터 1에서 등장한 경급 디제스터 '텐타클 뱀파이어'를 함께 퇴치했던 여성 B랭크.

최성아 : 독신인 레이나드에게 들이대고 있는 어라운드 포티. B랭크.

정소라 : 챕터 1에서 '쿼드라 콩가'에게 죽을 뻔 했다가 천후의 티셔츠를 받아 입었던 여자. C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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