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53화 (153/324)

153화

<노블레스 클럽>

“오오….”

어두운 방 안. 하지만 TV는 켜져 있었다. 그 화면에서 비치는 영상을 본 걸까? 상당히 고가로 보이는 매트리스와 이불 사이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야밤에 자라고 했는데도 아이가 몰래 TV를 틀어보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엄마가 들어오면 바로 전원을 끄고서 자는 척하기 위한 모습처럼 보인 달까?

“어쩜 저러지? 끝내준다….”

그 이불 틈새에서 눈동자만 내민 이는 화면에 빠져든 것처럼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도 보고 있는 것 같은 감탄사였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보고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니었다.

화면에 비치고 있는 것은 거대한 괴물과 검은 불꽃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 출몰한 경급 디제스터 레이드 영상.

일반인이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유그드라실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는 배틀 데이터. 이것을 자기 집 안에서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단 건, 목소리의 주인이 일리미네이터라는 것을 의미했다.

순간. 화면이 움직였다.

소를 닮은 디제스터가 전격을 향해 돌진해왔다. 놈이 나타난 곳은 해안가. 다행히 사람들의 대피는 완료되어있었다. 전격은 그 돌진을 피해냈다. 그러자 놈이 돌진한 자리에 매캐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녹아내렸다.

녹색 빛을 띠고 있는 게 대놓고 위험해 보였다. 흑색 암전은 그것에 잠시 시선을 주다가 다시 놈의 앞에서 알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놈의 입에서 녹색 연기가 튀어나왔다.

푸확! 강력한 독성 가스가 암전을 향해 뿜어졌지만, 도저히 맞추지 못한다. 그 뒤로도 아예 머리에 달린 뿔을 쏴대는 등의 특수 공격 패턴을 쏟아낸 괴물은 그 뒤에 가서는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것을 하나하나 피해낸 암전은 그러다 놈의 공격이 슬슬 똑같은 것만 나오자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나왔다!”

그 광경을 본 목소리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벌떡 일어났다. 그 안쪽에선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떨어져라! 슈바르츠 블리츠 앙그리프!!!!”

파직! 그 얇은 외침과 함께 화면에선 검은 전격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놈의 몸을 관통했다. 그 순간 괴물은 비명을 내지르더니, 디제스터 특유의 재생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검은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사라졌다.

“후…. 나의 메기도의 먹이가 되어, 사라져라…!”

착! 이불을 가지고 망토인 양 자세를 취하며 요상한 대사를 읊은 목소리는 침대 위를 굴러다니며 통통 뛰었다.

“크으으! 쩔어! 끝내준다아아아! 몇 번 봐도 쩔어어!”

목소리는 비싼 매트리스는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는 양 공중으로 30cm는 뜨면서 신나했다.

바로 그때.

콰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방문이 부서질 듯한 기세로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진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야! 잠 좀 자자! 시끄러워 죽겠다고!”

그가 문턱에 팔을 짚고서 으르렁대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목소리의 주인은 흠칫하고선 그대로 죽은 척 침대에 늘어졌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TV는 말짱하게 틀어져 있는 모양새.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쯧쯧 하고 찬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이불 더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어차피 내일 볼 거잖아. 일찍 좀 자자고. 앙?”

“에에이~. 옆방인데 뭐 그리 시끄럽다고 그래.”

살짝 꽁한 목소리를 낸 이불 더미가 흘러내렸다. 그 아래에서 튀어나온 사람을 본 남자는 그러나 더더욱 인상을 험하게 바꿨다.

“나 신경 예민한 거 알잖아, 이것아. TV 부숴버린다, 응? 라즈베리.”

“흥!”

침대 위에는 앳된 여자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

“노블레스 클럽? 이게 뭐죠?”

경급 디제스터를 잡고 온 다음 날. 천후는 희주를 통해서 이상한 초대장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수려한 필기체로 부디 지정된 일시에 지정된 장소까지 와달라는 간략한 문구가 쓰여 있는 초대장이었다.

말이 초대장이지, 따지고 보면 신문 글자 잘라서 만든 경고장도 이런 식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이라, 처음 받았을 땐 누가 납치당했나 생각했다. 다행히도 이 초대장의 정체는 희주가 알고 있었다.

“노블레스 클럽이란…. 일종의 사교클럽입니다.”

“사교클럽이요?”

“네. 전 세계에 몇 없는 A랭크 일리미네이터들이 모이는 친목회입니다.”

“그런 게 있었구나.”

천후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A랭크쯤 되면 마법사 전체를 뒤져도 700명이 될까 말까 하다. 거기에서 일리미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건 정말 한 줌도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이들끼리 친목질은 있을만하다.

“희주 씨는 용케 아셨네요?”

“유명한 집단이니까요.”

“그, 그래요?”

몰랐던 내가 이상한 거야? 약간 부끄러워진 천후는 볼을 긁적였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좀 사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곤 했다. 자기 일 아니면 관심을 가지질 않으니.

“흠흠. 그럼 이건 파티 같은 거예요?”

“그때마다 모이는 목적은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엔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주인님께서 A랭크 일리미네이터인 게 확실히 밝혀져서 접촉해온 것 같습니다.”

“가게 되면 가입을 권유당할까요?”

“네. 주인님은 정규 공격대의 주인이기도 하니까요.”

“음….”

희주의 확답에 천후는 잠시 고민했다. 이들을 만나도 좋을지에 대한 판단이 쉽게 서지 않았다. 그때 희주가 말했다.

“일단…. 만나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음? 그게 좋을 것 같나요?”

“많은 분과 접할 기회가 되니…. 그들에게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아. 하긴.”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기까지 오면 차등이야 있지만, 하나하나가 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질만한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나 언행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며, 같은 마법사로서 통하는 부분도 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정점으로서 홀로 고독한 지금 상황을 조금 풀어줄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좋아요. 그럼 가보죠. 그런데 이거 저 혼자서 가야 하는 건가요?”

“기본은 그렇습니다만…. 파티인 만큼 파트너 하나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가요, 희주 씨.”

“…….”

희주의 눈꺼풀이 말없이 몇 번 깜빡였다. 이것이 놀란 기색이라는 것을 아는 천후는 그녀를 가볍게 품어 안으며 다시 한 번 말했다.

“같이 가요. 응? 희주 씨.”

“하지만 제가 어찌 감히….”

저어하는 목소리에 천후는 살짝 눈가를 부드럽게 바꾸며 그녀의 머리칼에 고개를 묻으며 속삭였다.

“희주 씨가 어때서?”

“저는….”

“앞으로는…. 공식적인 자리나 이런 곳에는 같이 다닐 거예요. 저번처럼.”

“…….”

지금까진 보통 집에서만 활동하던 그녀를 천후는 DS 창단식 때 끌어내서 함께 오게 했다. 앞으로는 꾸준히 그럴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보여주고…. 뭣보다 그녀 자신이 스스로 천후의 옆에 설 여자라는 자각을 주고 싶었다.

희주가 대답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천후는 차가운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아주 희미한 열기를 통해 그것이 싫다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굳이. 다시 한 번. 이번엔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같이 가는 거야. 응?”

“네….”

달콤한 대답에 잠시 참기 힘들어진 천후는 그대로 그녀와 입을 겹쳤다.

아아.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는 여자다.

*

초대장에 쓰여 있던 위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이었지만, 여기까지 가기 위해 천후가 따로 비행기 표를 사고 할 필요는 없었다.

해당 날짜가 임박했을 때 알아서 연락이 따로 와서 참가 여부를 물었고, 그에 응하자 먼저 차가 그의 자택 앞까지 찾아왔다.

희주와 함께 차량에 탑승하니, 그 뒤엔 공항까지 직행. 공항에선 이미 대기하고 있던 노블레스 클럽 전용 에어버스 1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원래 있어야 할 좌석들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VIP들이 비행시간 동안 편히 지낼 수 있도록 꾸며놓은 그 안을 보고서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호오하고 감탄사를 냈다.

역시 돈 많은 놈들의 친목질 답게, 친목질 할 놈들 모이게 할 비행기를 따로 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비행기가 몇 대죠?”

“동일 기종으로 3기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튜어디스라기보단 접대를 위한 접대원의 차림을 한 여성의 대답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이놈들하고 놀려면 확실히 연회비가 꽤나 깨지겠단 생각도 들었다.

“저 하나 데려오려고 비행기를 보낸 거예요?”

“원래는 일본분도 탑승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참가자분께서 사정이 있어 못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것까지 친다 한들 달랑 2명이라,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도착해서도 호텔에서 하루 정도 시간을 보낸 둘은 다시금 수행원의 인도를 따라서 파티장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엔체스터 호텔의 3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홀을 통째로 빌린 파티. 그 드넓은 공간에 보이는 사람은 드문드문. 20명도 되지 않았다.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쭉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이들이…. A랭크 일리미네이터.”

이들이야말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디제스터 안보의 정점에 서 있는 자들. 그 하나하나가 국가의 명운을 쥐고 흔드는 힘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들의 안위에 따라 해당 국가의 펀더멘탈이 좌우된다.

“…….”

꼬옥.

긴장하고 있던 천후는 그러다 자신의 왼손에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희주가 정면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오늘 차려입은 검은색 드레스에 미모가 더욱 살아나, 매일같이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주 약간 세게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그 힘을 느낀 천후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래. 내가 긴장하면 안 되지.’

이렇게 차가운 인상을 하고 있지만 그녀도 사람이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긴장했으면 긴장했지, 덜하지 않으리라. 그런 자리에서 자신까지 떨고 있을 순 없다.

“아….”

쉬이 보여주지 않는 그녀의 약한 모습이 오히려 천후의 의지를 북돋아 줬다. 마음속 긴장을 털어낸 그는 희주와 함께 회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의 머릿속이 조금 트이면서 정보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미국, 유럽 쪽이군. 동양인은 아예 안 보이네. 동구권 쪽도 좀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잘 안 보이고….’

사회주의 국가이거나,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곳은 아직 마법사들의 커밍아웃이 빈도가 드물었다. 독재 국가에선 말할 것도 없고, 현재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중동이나 아랍권은 더욱 드물었다.

그 때문인지 회장에는 백인 비율이 굉장히 높았다. 거기에 드문드문 흑인이 있고, 동양인은 천후 외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영향인지, 천후가 조금 익숙해져서 이것저것을 집어먹으며 돌아다니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어차피 기존 친분도 없는데 먼저 말을 걸기도 어렵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저쪽에서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혹시…. 드래곤 슬레이어. 미스터 영 맞나요?”

슬라브계로 보이는 갈색 머리의 소녀였다. 키는 150대 후반 정도 될까? 서양인의 나이는 구별하기 힘들었지만, 성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DS냐.’

이미 반쯤 체념하고 있긴 했지만, 먼 미국 땅까지 와서 이런 명칭을 들으니 좀 부끄러운 맘이 없진 않았다. 떨떠름하게 웃은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영천후 입니다.”

그렇게 답한 순간.

“와오! 저 완전 팬이에요!”

얼굴에 화색을 띤 그 여자아이는 그의 비어있는 오른손을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천후를 올려봐 왔다.

그 눈동자는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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