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59화 (159/324)

159화

집안에 입성한 라즈베리는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천후에게 더더욱 존경의 빛을 보냈다.

"진짜 히-로임다. 끝내줌다, 싸부."

"……."

한국어를 배운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어휘는 꽤나 다양했다. 강사에게 들어보니 일단 자기가 배우고 싶은 단어나 어휘 등만 빠르게 배운 모양이었다. 그 대부분은 타인을 칭찬하거나 치켜세워주는 용어들이었다.

'으음. 적응력이 좋다고 해야 할지.'

비단 천후 뿐 아니라 강호나 셀레나에게도 마찬가지인지라, 라즈베리는 금세 여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브, 에바. 학교 가야 돼! 웨이크업!"

"으아…."

"라즈베리 언니 시끄러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난 이후 두 아이는 강호와 기상전쟁을 치르곤 했다. 하지만 라즈베리가 들어오면서 그 담당이 그녀로 바뀌었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굉장히 능숙하게 둘을 다뤘다. 둘이 칭얼거리는 걸 받아주느라 쩔쩔매는 강호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신기해서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 형제…어… 이빠이! 익숙."

"……."

가끔 어휘 중간에 영어나 일본어가 섞여 나오는 경우가 좀 있긴 했지만, 알아들을 순 있었다. 그녀는 혼자 살아온 게 아니라 형제가 아주 많았는데, 언니 노릇도 꽤 많이 했다는 것 같았다.

"얼른 밥! 빨리 밥!"

"먹을 꺼야아!"

"시끄러어!"

귀를 틀어막으며 꺄꺄대는 소리가 집 안에서 울리는 걸 들은 천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브, 에바는 저번 달부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병설학교는 따로 건설중이었고, 초등학교는 인근의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처음엔 다문화 가정 학교를 알아보거나, 혹은 아예 마법사, 서포터, 오퍼레이터 전용 초등학교를 소규모로 만들어볼까 했지만 그건 친란이 하는 말을 듣고서 그만두기로 했다.

"자네 본인이야 강하고, 대한민국에서 정점을 찍었으니 괜찮겠지만, 그런 아이들이 한곳에 모두 집중되는 건 좋지 않네. 테러를 당할 수도 있어."

"그런!"

"그런이 아닐세. 대한민국은 상당히 온건한 국가야.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증오 범죄가 전혀 없을 정도로. 하지만 모든 국가가 이렇진 않아. 당장 미국 역시 반 마법사 단체의 테러를 몇 번이나 받았을 정도네. 정말 활동하고자 하면 대한민국이라고 못할 것은 없네."

"……."

"경험이 없어서 대한민국은 사제 폭발물 대비에 많이 취약하지. DS 본사야 괜찮겠지만, 마법사와 관련된 이들이 너무 집중된 시설은 위험하네. 아이들은 일반 학교에 섞는 게 좋아."

충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천후는 걱정을 안고서도 일반 학교에 다녔는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큰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고, 잘 다니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네요."

"네."

희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등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학교 이사장과 어머니회 등에 은근한 로비가 있었기 때문임을 천후는 전혀 몰랐다.

*

라즈베리 미키스트리는 생각했다.

'이게 아닙니다.'

천후를 따라 대한민국으로 함께 온 지 열흘. 그의 집에도 입성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혀 충족되지 못했다.

아니.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를 본 성과는 있었지만,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언니가 정해준 일은 너무 쉬웠고, 그 뒤론 무엇을 하든 자유였다. 그건 기뻤지만, 순간 라즈베리는 자신이 너무 나태하다는 것을 알았다. 동경하는 사람의 집에까지 침투해서 하는 게 너무 없다!

그것을 자각한 라즈베리는 강력하게 천후에게 부탁했다.

"싸부! 저도 훈련! 시켜주시지 말임다!"

"으으으음…."

양 주먹을 꽉 쥐고 진심을 담아 하는 말에 천후는 저음을 흘렸다. 한국어가 점점 능숙해지는 건 좋은데, 어째 말투가 요상해져 간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까지 반짝반짝 쳐다보면 성격상 밀쳐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A랭크 마법사에게 대체 무슨 훈련메뉴를 가르쳐야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천후가 곤란한 눈을 하자, 희주가 나지막이 말해왔다.

"라즈에겐 아마…. 주인님께서 평소 하시는 훈련을 같이 하게 하면 될 겁니다."

"네? …도움이 되나 그게?"

천후가 하는 훈련은 보통 마법사가 하는 훈련이 아니었다. 유산소, 근력 운동, 그리고 DS 본사의 디제스터 무브 트레이싱 시스템 활용한 회피훈련이 대부분. 물론 이것에 적응하면 몸이 날래지고, 임시로 건 강화마법 효율이 늘어나기야 할 테지만….

"분명 그걸 바라는 걸 겁니다. 그렇지요?"

"예스! 언니 맞습니다!"

영어를 봉인 당해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이 극단적으로 적어진 라즈베리는 어떻게든 희주의 말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다기보단, 어쩐지 희주라면 알아서 자기 마음을 대변해줬을 거라는 생각으로 한 것에 가까웠지만.

"싸부가 하는 거. 나도 하고 싶슴다! DS 슈발츠 폼! 슈발츠 앙그리프! 배우고 싶슴다!"

뭐야, 그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기가 하는 훈련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걸로 알아들은 천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야…."

그리하여 다음 날.

"오. 오늘은 셋이서 달리는 건가?"

스포츠 웨어를 걸친 강호는 앞에서 으쌰으쌰 몸을 풀고 있는 라즈베리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천후와 단둘이 다니는 것도 단란해서 좋지만, 새로운 맴버가 새로 추가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음. 그렇다네요."

"하하. 잘 부탁한다."

"웃스! 힘내겠슴다!"

기합소리를 내며 고개를 꾸벅인 라즈베리는 심호흡을 하며 허공에 아뵤아뵤 발차기를 해댔다. 다리가 머리 높이까지 잘 안 올라가는 게, 몸이 굳어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조금 불안해진 천후가 물었다.

"라즈베리. 평소에 운동 좀 해요?"

"인술 훈련. 배웠지 말입니다!"

"……."

뭔데, 그게. 인술이라니.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린 천후는 그녀의 양어깨를 잡고서 진지하게 말했다.

"일단 미리 말해두는데 힘들면 바로 말하세요. 괜히 참지 말고."

"넵! 알겠슴다."

착. 경례포즈를 취한 라즈베리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으쓱거리다가 말했다.

"싸부. 존대하지 마. 반말하시지 말임다."

"네?"

"제자한테 존대 이상함. 또 싸부가 더 오빠임다."

"……."

천후는 강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런가."

사부라고 부르는 거야 라즈베리 마음이었지만, 실제 나이만도 차이가 난다. 집에까지 들여놓고 존댓말을 하는 건 이상하긴 했다.

나름 노사관계라는 형태는 남겨둘 셈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녀에겐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이상 천후도 혼자 고집하는 것도 뭐한지라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라즈베리. 그럼 잘 따라와. 일단 천천히 달릴 테니까."

"예스!"

동경하는 사람과 같이 달릴 수 있단 것에 흥분했는지, 그녀는 당장에라도 달리고 싶어서 제자리에서 뛰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작게 웃은 천후는 신호 없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달려나간다고 해도 그리 빠르지 않은, 말 그대로 누구라도 따라올 수 있는 가벼운 달리기였다. 덕분에 라즈베리는 가볍게 그의 옆에서 달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20분.

"헥…. 헥…."

30분.

"히익…히이이익…!"

32분.

"싸, 싸부! 기브. 기브어업…."

온몸이 땀에 절어버린 라즈베리는 쌕쌕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적당한 속도긴 했지만, 정확히 그 최초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자, 일정 시간이 지나니 점점 힘이 빠져나간 그녀는 마지막에 와서는 울먹이면서 간신히 따라오고 있었다.

"아이고야."

천후나 강호 입장에선 오랜만에 동네 산책하는 기분으로 달렸던 거라 이마에 땀 한 방울 제대로 안 보였지만,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는 라즈베리에겐 이것만도 끔찍하게 어려운 운동이었다.

라즈베리는 절망적인 눈으로 물었다.

"이거, 매일?"

"한 4배속으로?"

"으아… 말도 안 됨다…"

완전히 질려버린 라즈베리는 그러면서도 둘을 반짝이는 눈으로 올려보았다. 대체 이런 짓을 어떻게 매일 할 수 있는 걸까?

‘하루하루 블루레이 챙겨보는 것도 힘든데!’

결국 라즈베리는 천후의 부축을 받아서 집에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천후의 일과는 이제 시작이었다.

"이, 이걸 듭니까?"

라즈베리는 양 끝에 자기 몸통만 한 쇳덩이들이 꽂힌 바벨을 보고서 인상이 새파래졌다. 그걸 보고 피식 웃은 천후는 실제로 그걸 몇 번이나 들어 보였다. 그때마다 팔뚝과 가슴팍에 근육과 힘줄이 서는 것을 보고서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와…."

"해볼래?"

"네!"

크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그 자리에 누워서 그것을 들어보려 시도했다.

"으, 으, 으으으으으으으응! 끄아아아아아앙!"

처음엔 힘을 주는 소리만 내다가, 마지막엔 다리까지 구르며 힘을 줘본 그녀는 바벨이 아예 미동조차 안 하자 풀썩하고 팔을 아래로 떨궜다.

"으…. 말도 안 됨다."

"처음부터 이 무게는 원래 못 들어."

"으…."

침울해진 그녀는 그것보다 아주 약간 가벼워 보이는 강호용으로 세팅된 바벨을 들어보려 시도했다. 그래도 이 사람은 같은 여자니까!

물론 미동조차 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서 둘이 설정해둔 어떤 중량의 운동기구도 그녀는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천후는 말할 것도 없고, 강호와 라즈베리의 키 차이도 10cm 이상. 체격 자체도 작고, 운동 자체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결국 많은 시도를 모두 포기한 라즈베리는 더더욱 얼굴을 붉히며 천후를 올려보았다.

"대단합니다, 싸부! 매일같이 이런 걸 해서 그렇게 강한 거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역시 미스터 영은 제가 생각했던 대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영어를 구사하며 하는 말에 웃어버린 천후는 땀을 닦아내며 답했다.

"한국어만 쓰라니까."

"싸부! 멋있어요!"

"아아…."

이거 참. 대놓고 이런 소릴 계속 들으니까 귀가 간지럽다. 막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다가 듣다 보니까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일 뿐.

지금까지 그에게 동경을 표시한 사람이 없던 건 아니지만, 보통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진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고. 덕택에 천후는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기뻤다.

"천천히 하면 되겠지. 일단 식사하러 올라가자. 좀 씻고."

천후는 바로 옆에서 팔짱을 껴오는 라즈베리를 거부하지 않고 1층으로 올라갔다.

*

그 뒤로 함께 찾아간 곳은 DS 본사였다. 셀레나의 최초 조언도 있고 해서 그는 보통 출근하면 훈련장과 사장실 두 곳만을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긴장해서 문제지.

그 본사의 지하에는 지금까지 유그드라실이 모아온 디제스터들의 행동패턴을 모방해서 구현해놓은 훈련장이 있었다. 디제스터 본체는 구현해두지 않고 행하는 공격만을 구현한 것이라 철저하게 회피훈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인간이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로 설정되어있다는 것과 안전을 생각해서 불꽃 공격 같은 것은 물이나 연기 등으로 대신 하는 정도였다.

물론…. 여기에서 인간이란 것 자체가 영천후에 맞춰져 있었고.

"으아…."

관전하는 라즈베리 입장에서는 저게 사람의 움직임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좀 있어서 그렇지.

"끝내줘. 끝내준다…. 그 가짜 사무라이랑은 차원이 달라."

모니터링 실에서 관전하는 라즈베리의 눈에도 거의 포착이 힘든 채찍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눈으로 보고 피하는 그 움직임에 라즈베리는 경탄을 내질렀다.

"사부로 삼길 정말 잘했어."

그냥 마법만 센 게 아니라 그는 하루의 상당 시간을 매일같이 투자해서 자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타인이 보기엔 거의 수도승의 고행과도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라즈베리의 눈은 점점 커졌다.

진면목을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화면에 얼굴을 바짝 가져간 라즈베리는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멋있어…."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아...

화수 두 개 들어간걸 이제 봤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대로 바보짓했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