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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160화 (160/324)

160화

<성과>

그렇게 DS를 만들고 다시금 한 달 가까이 지났을 무렵. 사장실로 한 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큰 몸집에 수염을 기른 남자. 최완이었다.

“대충 훈련 끝났다.”

“아. 아저씨. 뭐야? 한 달 내내 봐주고 있었어요?”

아무리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지만 그래도 양아버지. 부려 먹는 기간을 길게 잡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가 찾아오자 천후는 당황했다. 훈련 기간이야 원래 한두 달 걸릴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그를 계속 잡고 있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아. 뭐. 좀.”

천후의 말에 최완은 떨떠름하게 웃으며 뒷말을 숨겼다. 평소에 잘 보이는 태도가 아니라 천후가 의아해 하자, 옆에서 서있던 셀레나가 살짝 그의 귀에 귀띔해주었다.

“그게…. 벌었던 돈 결국 유그드라실이 떼 갔대.”

“…….”

“그래서 도로 끝까지 했다나 봐.”

아이고, 아부지….

천후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최완을 바라보았다. 천후가 중간에 도망 나왔다면, 최완은 완전히 유그드라실에 저당 잡힌 듯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본인이 금전적인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결국 파악되면 그냥 줘버리는 식으로.

무슨 사정이 있는진 몰라도 참 가엾고 딱한 자로다.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야. 왜 그래, 임마.”

“아뇨. 그냥 좀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크흑.”

간신히 감정을 수습한 천후는 한숨을 내쉬곤 물었다.

“그래서 어때요? 훈련 상태는?”

“역시 한 달 가지곤 한계가 있더라. 다들 3등급 정도? 개중 빨리 배우는 사람들은 1등급까지 올라갔지만 몇 명 안 돼.”

“흠. 그래도 그 정도면 많이 올랐네요.”

최완이나 천후나 입으로는 한 달 안에 2등급 찍게 하겠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마음속으로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다. 애초에 가장 숙련도가 뛰어난 영천후 본인도 몇 년이나 걸려서 체득한 거니까. 오히려 한 달 만에 평균 3등급 수준이 되었단 게 놀랍다.

“우리 집 키 큰 아가씨는 아직도 4등급인데.”

“읏….”

저편에서 듣고 있던 키 큰 아가씨는 움찔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 그야 제대로 시작한 게 늦어서 그런 거다!”

어련하실까. 어깨를 으쓱 한 천후는 강호의 반론은 무시하곤 최완과 눈을 맞췄다.

“수고하셨어요, 아저씨. 말씀드린 보수는 확실히 드리죠. 솔직히 그냥 아저씨가 직접 내려오셔서 일리미네이터로 활동하면 될 텐데. 세계를 위해서도.”

“후우….”

그 말에 최완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을 피했다. 다만 그 기색으로 자신도 그러도 싶다는 느낌이 절절히 전해져서 천후는 이 화제는 더 진행하지 않았다. 대신 천후는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아저씨. 그런데 신급 디제스터….”

“그만! 그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

“쩝.”

기겁하는 모양새에 천후는 입맛을 다셨다. 천후도 멍청이는 아닌지라 저번 나타난 예란이란 여자에 대한 것을 밝히며 그에게 답을 구했었다. 하지만 최완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도 고개를 내저으며 극구 대답해주지 않았다.

“잘 생각해봐요. 이 건으로 위험해지면 유그드라실의 책임론이 돌 겁니다.”

“크으….”

답답한지 시가를 꺼내서 입에 문 최완은 연기를 내뿜으면서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 좀 그만 괴롭혀라. 대답 못 하는 건 못하는 거야.”

“후우. 일단 제가 알아낸 건 있어요. 그 여자가 자기를 제준의 후예라고 했죠? 알아봤는데 제준이란 건 중국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더군요? 좀 놀랐는데. 설마 신급 디제스터는 진짜 무슨 신화적 신들의 후예 같은 겁니까?”

“…….”

연기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다년간 그와 지냈던 천후는 그 행동만으로도 답을 얻었다. 추론이 사실은 아니라도 그 뿌리라도 잡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천후의 등 뒤로 싸늘한 땀이 흘러내렸다.

‘뭐 이딴….’

디제스터에 대해선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제대로 결론 내린 것은 전무했다. 그들의 시체는 썩지도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흩어졌고, 그전까진 아무리 풀어헤쳐도 강화된 생명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심지어 흩어질 때 필연적으로 생겨날 구성 물질이라도 추출하거나 검출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번번이 실패했다. 밀폐 공간에 시체를 두고서 지켜보더라도 완전히 흩어졌을 땐 기체가 더 늘어나거나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식이니 놈들에 대한 연구는 그 근원보단 실제로 나타났을 때 개체별 행동 패턴 등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근원이 21세기에선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들에 있다니?

최완이 곤란해 하고 있어서 더는 파고들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잠시 입맛을 다셨던 천후는 그러다 미국에서 패트릭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좋아요, 아저씨. 그럼 다른 질문을 좀 할게요. 엘모세와트라고 아세요?”

“!”

흠칫하고 몸을 튕긴 최완의 눈빛이 달라졌다. 입에 물고 있던 시가조차 떨어뜨린 그는 놀람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지?”

“비밀이죠. 아시면서.”

“…….”

하하. 이분. 자기는 전부 비밀이라고 해놓고 이쪽은 순순히 말할 줄 아시는 분. 빙긋이 웃은 천후는 여유로운 태도로 최완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본 최완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기 앞 탁자를 두드렸다.

“이리 와봐.”

“왜요.”

“와봐, 임마. 말해줄 테니까.”

“오. 웬일로?”

최완은 기본적으로 유그드라실의 대변자였다. 그가 입을 연다는 것은 이것이 천후에게는 공개해도 될 만한 정보라는 것이다. 정말 드문 일인지라, 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최완이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오, 이 자식. 맨날 고생만 시키고. 나도 알려주기 싫어서 말 안 해주는 게 아니라고. 그만 좀 괴롭혀.”

“으헤헤. 아니 따로 물어볼 사람이 없잖아요! 죄다 틀어쥐고 있으면서. 정말로 막 가볼까요? 프레이, 프레이야에게 물어볼까?”

그 이름이 나오자 최완은 잠시 움찔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물어보지 마. 걔들도 모르니까. 금제가 괜히 금젠 줄 아냐.”

“쩝. 그래서. 엘모세와트는 뭔데요?”

“후…. 네 입에서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땅에 떨어진 시가를 주워서 다시 입에 문 최완은 미간을 엄지로 꾹꾹 눌렀다. 그 얼굴은 한순간에 피로로 얼룩졌다. 천후는 순간 이것이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과연 최완의 입에선 심각한 말이 튀어나왔다.

“간단히 말해서. 엘모세와트란 일종의 비밀조직 같은 거다.”

“비밀조직?”

“그래. 그들의 목적은 간단해. 보통 사람들이 마법의 수혜를 누릴 수 있게끔 하는 거야. 마법사를 도구로 삼아서 말이지.”

“음……!”

“놈들은 마법사들을 약이나, 다른 조치를 해서 사람의 말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상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유그드라실에 있을 적 너는 정보 통제를 당하고 있었으니 잘 몰랐겠지만,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세상에.”

끔찍한 내용에 천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최완은 시가를 뻑뻑 피우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야. 그러면서도 놈들은 마법사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려고 통제하에 있는 마법사들을 폭주시키거나, 일리미네이터 관련 시설에 테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도 이놈들은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아. 사실상 우리 유그드라실의 주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주적 수준이 아니잖아요? 왜 지금까지 그냥 놔둔 겁니까?”

이것조차 그들이 나서지 못하는 문제란 말인가? 천후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하지만 최완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냥 놔둔 게 아니야. 이 건엔 우리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전부 색출해낼 수 없었어. 몇몇 완전히 상품화된 마법사들을 구출한 경우도 있지만,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그들을 산 놈들조차 당시의 기억이 교묘하게 지워져 있더군.”

“네? 그건….”

“그래. 그쪽에도 마법사가 있다는 거지. 더 높은 기량의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하면 되겠지만…. 놀랍게도 S랭크의 정신 제약이었다. 그건 유그드라실에서도 어쩔 수가 없어. 초기엔 그래도 몇 번 꼬리를 잡혔지만,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된 지금은 완전히 오리무중이다.”

“위성이 있잖아요?”

“유그드라실 위성이라고 만능은 아니야. 전 세계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할 수 있을 리가 없잖냐. 그리고 기본적으로 디제스터에 우선해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너도 하고 싶은 말은 많겠지만, 유그드라실은 그 본체도 디제스터 퇴치 지원을 위해 운용되는 시간이 가장 많아. 드래곤 사태를 직접 겪었으니 알고 있을 거다.”

“…….”

그것은 반론할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나타나는 디제스터를 대비하기 위해 유그드라실은 매일 같이 성층권에서 텔레포트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만 천후는 그럼에도 여력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최완은 시가의 맛이 떨어지자 재떨이에 눌러 끄며 말했다.

“어디서 그 이름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우리의 눈에 띄지 않고 힘을 기른 이상, 그들이 얼마만큼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감도 잡을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 너처럼 눈에 띄게 마법사들의 이권을 챙겨주는 존재가 나타나면.”

“위험할 수도 있다?”

“너는 괜찮겠지만.”

최완은 가만히 사장실 안쪽의 여자들을 눈으로 한 번씩 훑었다. 천후의 어깨가 낮게 떨렸다.

“어느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까?”

“글쎄…. 한참 눈에 띄게 활동할 때도 사회 고위층과의 접촉이 잦았던 놈들이니까. 그 두목 되는 놈은 양지에서도 대단한 놈일 가능성이 높지. 국가수반이래도 이상하지 않아.”

“…….”

“그러니 최대한 조심해라. 사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해줄 생각이긴 했는데. 이렇게 날이 잡혔군.”

“아저씨가 말해주는 시기는 언제나 늦어요. 일이 터지고 난 다음이니까.”

“음….”

그 말엔 할 말이 없었다. 최완은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다.

“일단…. 그들의 ‘상품’의 거래처는 대부분 독재국가, 혹은 사회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였던 곳이었다. 올해도 몇 건쯤은 잡아냈지. 하지만 전부 말단이야. 더는 접근할 방법이 없다.”

“…….”

유그드라실은 어디까지나 마법사들. 8,000명 ‘밖에’ 안 되는 마법사들의 단체다. 이 중엔 정치인도 없고, 기업가도 없다. 조사하고자 한다면 초자연적 수단뿐이지만, 그 정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유그드라실에 대한 반발심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용할 수 있는 최종 수단-마법을 사용한 기억 조사에서조차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면, 일어나는 한 건 한 건의 사건에 대응하는 것 말곤 정말 남은 방법이 없으리라. 하지만….

“…….”

잠시 턱을 괴고 있던 천후는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패트릭이 조심하라고 한 이유는 충분히 알았다. 그가 그렇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던 이유도.

‘노블레스 클럽 내부에도 엘모세와트가 침입해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군.’

심증을 가지게 한 구체적인 사건도 있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을 완전히 공표하면 그들 사이에서도 의심이 횡횡할 테고, 간신히 만들어놓은 천상의 정원이 엉망이 될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아저씨. 말씀 고마워요.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군요. 일단…. 당장은 방비를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겠네요.”

“음. 그래.”

의견 교환을 끝낸 둘의 분위기는 그제야 조금 가벼워졌다. 그 뒤로는 조금 한담이 오갔다. 그 분위기를 파악한 걸까? 함께 사무실까지 오고서도 눈치를 보고 있던 라즈베리가 다가왔다.

“싸부. 누굽니까?”

“응? 아. 우리 아버지.”

“오! 파파! 안녕하세요!”

아버지란 말에 반색한 라즈베리는 천후의 옆에 서서 배꼽 인사를 했다. 몸은 이미 다 큰 아가씨가 이렇게 인사하니 최완도 기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싱글싱글 웃으며 천후의 팔에 매달리자 표정이 달라졌다.

“야. 너….”

“아니. 잠깐. 무슨 생각하는진 알겠는데 아니거든요?”

“새끼야. 허리 삭는다…. 경찰에 잡혀가고 싶냐?”

“아니라고! 그리고 동의하면 13살 이상….”

“13살 이상이면 뭐? 계속 씨불여 보지?”

순간적으로 안광이 폭사 되어 나오는 걸 보고 천후는 입을 다물었다. 법이고 나발이고 아비로서 널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한껏 느껴졌다.

당연히 그 뜻에 정면 대항을 할 생각이 없던 천후는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했다.

“하여간 그냥 아무 관계 아니라고요. 저도 미성년자한테 이상한 생각 안 해!”

“…….”

대놓고 ‘이 새낄 믿어도 되나’하는 눈을 한 최완을 보고 천후는 약간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양아들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즈베리는 둘의 한국어를 못 알아듣고서 그냥 고개만 갸웃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비상. 비상. 경급 디제스터 출현. 출현지 서울 마포구.>

흠칫.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그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한참 의혹으로 곤경을 치르던 천후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걸고서 최완을 바라보았다.

“딱 좋은 타이밍이네요. 한 달간 아저씨가 가르친 학생들 성과 좀 보죠.”

그게 어떤 의미인지야 뻔했다. 너털웃음을 터트린 최완이 양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자식아.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레이드 시즌이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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