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다이어 크로코다일'을 퇴치하는 데 걸린 총 시간은 23분이었다. 이전 키메라를 상대할 때 일리미네이터를 모집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던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차이였다.
게다가 그중 대부분을 차지한 건 교전 시간이 아니라 매봉산으로 유인하는 시간이었다.
실제 교전 시간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정부로부턴 5,200억의 보상을 약속받았다. 이 중 700억이 공격대원들에게 돌아갔고, 156억을 정부에게 재반환. 나머지를 DS가 가졌다.
이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KTX만큼이나 빠르게 돌아다니는 이놈이 30분 이상 활동했으면 무슨 꼴이 났을지는 너무 자명했기 때문에, 여론은 일정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뭣보다 국내에는 기본적으로 'DS는 그 정도 벌었으면 어딘가에 쓴다'라는 의식이 잡혀있었다. 그동안 때려 부은 돈이 그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이 소식은 또한 세계에 알려졌다. A랭크 없이, 아무 부상자도 없이 경급을 퇴치한 것은 상당히 보기 힘든 일이었기에, 일리미네이터들 사이에선 이슈화되기도 했다. 그들의 기량은 한눈에 보기에도 차원이 달랐으니까.
A랭크의 폭딜에 의존하는 기존 정규 공격대 인원들이 보기에도 말이다. 그들의 입에서 코리아라는 국가의 이름이 조금씩 오고 가기 시작했다.
일리미네이터가 모이는 시간 30분을 줄인 텔레포테이션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고, 다들 시도해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유그드라실의 허가는 아무 곳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 DS내부에선….
"다들 수고하셨어요. 고생 많이 하셨고. 오늘은 전력 분석팀과 이야기만 좀 나누시고 돌아가서 푹 쉬세요."
천후가 밝게 웃으며 해주는 말에 다들 주먹을 콱 쥐었다. 그래. 이 말을 듣고 싶었다. 수고했다고. 이제 우린 잉여가 아니야! 그들은 하나같이 으쓱으쓱 하고 자기도 모르게 어깨춤을 추었다.
그때까지만.
"다음부턴 20분을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다이어 크로코다일은 경급 중에선 하급에 속합니다. 이 정도론 부족합니다. 사장님이 이 정도의 성과를 보시려고 공격대를 운영하시는 건 아니니까요."
"크으으윽!"
"으그극…!"
전력분석팀장이자, 제2 공격대장인 정태원이 레이드 참가자들을 불러 앉혀 하는 말에 그들은 모두 이를 갈았다.
‘빡친다.’
‘사장은 칭찬해줬는데 이놈은 뭔데 돌아오자마자 갈구고 앉아있지?’
부들부들. 그들의 몸에서 한결같은 감정이 전력분석실에 휘몰아쳤다. 하지만 앞에 선 태원은 태연하게 그것을 받아내면서 오늘 있었던 레이드의 영상을 여러 화면에 틀기 시작했다.
"오늘 레이드엔 아쉬운 부분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금부터 파트별로 나눠서 설명해 드리죠. 일단 레이나드 공격대장님. 지휘에 대한 부분입니다."
"윽."
이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던 레이나드는 송충이 씹은 얼굴로 태원을 바라보았다.
'새끼야. 그래도 내가 네 스승 같은 건데 날 깔 거냐?'
파직! 레이나드의 눈에서 전기불꽃이 튀었다. 태원이 이러는 이유야 이성적으론 알지만, 그래도 그도 사람인데 연하에 자기 가르침 받던 놈에게 직언을 듣긴 싫었다.
물론. 정태원은 유일한 단점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레이나드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썅…."
저 눈치 없는 새끼.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레이나드는 그 뒤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7년 전 데뷔하던 시절부터 형님으로 모시던 인간을 발가벗긴 놈답게, 그는 모두 까기 인형이 되어서 전원을 말로 구타했다. 더 짜증 나는 건 그의 지적한 부분 중에 틀린 소리가 없단 거였다.
한눈에 봐도 영상에 비치는 자신들의 움직임이 이상적이진 못했다. 이제 막 숙련되기 시작한 컴뱃 캐스팅은 주춤거리느라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고, 키메라 적 버릇이 남아 언제 육체 폭탄이 날아올까 움츠러든 부분도 많았다.
게다가 태원은 정말 교묘하게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만한 부분은 따로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통에 말싸움도 못 하게 굴었다. 덕분에 25명은 트라이 시간의 2배 이상인 1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앉아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전부 이야기를 끝낸 태원은 후하고 숨을 내쉬고는 그제야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론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닥쳐.'
'이제 와서 훈훈한 표정 짓지 마, 이 새끼야.'
'한 대 치고 싶다….'
물론 듣던 사람들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
진짜 돌아가도 된단 이야기가 나왔지만, 공격대원들은 쉽게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쓸했던 것이다. 그들은 개인마다 주어진 리포트를 보면서 궁리를 했다.
머릿속을 도는 생각이야 복잡했지만, 구체적으론 이랬다.
"2 공격대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잉."
"내가 드러워서 다음엔 저런 소리 안 듣는다. 아오."
향상심을 촉구하는 방향은 여러 가지였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경쟁심을 유발하는 놈이 코앞에 있으니 들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도 프로였다. 그동안 헐렁하게 지내오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엔 자신이야말로 다른 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거기에서 보완점이 확연하게 제시되자, 그것을 채울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리포트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거 먹으세요."
"음?"
드세요도 아니고 먹으세요는 좀 이상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든 레이나드는 갈색 머리칼의 여자가 음료가 담긴 컵을 내밀며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이는 자기 조카뻘쯤 되어 보였다. 레이나드는 그녀가 얼마 전에 천후가 데려온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 고마워. 이름이 라즈베리였던가?"
"예스. 맞슴다. 오늘 정말 대단했슴다."
서빙 카트를 끌고 온 그녀는 한명 한명에게 음료를 건넸다. 선택의 여지 없이 전부 아이스 카페라떼였지만, 미녀가 서빙을 해주자 다들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음료를 다 돌린 라즈베리는 방금까지 정태원이 서 있던 앞자리에 서서는 말했다.
"오늘 엄청 멋졌슴다. 다들 짱임다. 존경함다. DS 오길 잘했슴다. 아까 그 사람 나쁜 사람임다! 사실 엄청 대단했슴다!"
파아아앗. 눈에서 쌍라이트를 켠 것처럼 튀어나오는 눈빛에 모두들 크읏 하고서 고개를 돌렸다. 너무 동경 일직선의 시선이라 도무지 정면으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칭찬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조금 당황한 일동은 레이나드에게 물었다.
"저 애는 누구예요? 아는 사이 같던데."
"견학 온 학생?"
서양인의 외모였지만 라즈베리는 한눈에 봐도 성인으로 보이진 않았기에 나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레이나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라즈베리라고, 얼마 전에 사장이 미국에서 데려온 애야."
"음? 양녀? 사장님 아직 결혼 안 하지 않았나?"
"야. 사장님 정도면 결혼 안 했어도 알아서 입양 자격 정돈 뚫어주지 않겠냐?"
"아. 그런가?"
잠시 이런 소리가 돌았지만, 그때 저쪽에서 한 남자가 베시시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무식한 것들아. 한두 살 차이에 무슨 양녀야. 이거지, 이거."
"아…."
그 손짓에 모두 단박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단상에 같이 올랐던 서포터 분 보니까 그런 취향인 것 같더라."
"후우. 사장이 참. 다 좋은데 사람이…."
"돈 잘 주면 교복을 밝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사실 스무살엔 그게 정상이지."
한순간에 오가는 경박한 말들에 레이나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노블레스 클럽이라고 A랭크 모임에서 직접 데려온 A랭크 일리미네이터야. 대체 댁들 뭔 생각들을 하는 거야. 다 불어버리는 수가 있다?"
"헉…!"
“레이나드 씨. 그건 아니죠. 헤헤헤”
안색이 새파래진 이들은 레이나드의 바지 끄덩이를 잡고 늘어졌다. 천후가 벽을 세워두지 않는 편이긴 했지만, 사람들 자체는 벽을 치고 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친한 레이나드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어가면 곤란하다.
잠깐 정신 놓고 여기에 누가 있는지도 까먹고 입을 털었다니. 모두 자신들의 무방비함에 한탄했다.
“???”
한편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들은 라즈베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주먹을 꾹 쥐고 말했다.
“존경함다! 저도 어…. 님들처럼 되고 싶습니다. 1인분 하고 싶슴다.”
“하하.”
그녀의 말에 다들 쓰게 웃었다. A랭크인 이상 그녀는 조금만 노력하면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딜러가 될 것이다. 1인분은 아마 당장도 충분히 해내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어린 소녀가 동경의 눈빛을 보내자 다들 흐뭇하게 웃었다.
“귀엽다.”
“사장이 데려올 만하네.”
“버, 번호 따볼까.”
“마지막 말한 새끼 잡아.”
“끄아아악!”
단박에 제압당한 남자는 농담이라고 몇 번이나 외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한참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여자 하나가 물었다.
“그런데 넌 지금 어디 사니? 엔체스터 호텔?”
“거기 살다가, DS 집에 삽니다.”
“…….”
그 순간 모두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레이나드의 표정도 굳었다. 그녀를 데려왔단 소리까진 들었지만, 동거한단 소리는 듣지 못했다. 직후 다시금 수군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벌써부터 집에 들였을 줄이야.”
“밝히는구만….”
평소엔 천후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실드를 쳐주곤 하던 레이나드 역시 이 시점에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일리미네이터들 사이엔 공공연히 ‘영천후 사장 영계 밝힌다’라는 소리가 돌기 시작했다.
“???”
물론 그 앞에서 듣고 있던 라즈베리는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사원들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은 전혀 모른 채 천후는 이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결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음…. 경급 디제스터에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해졌으니까, 대한민국에 출몰하는 건 무조건 제가 대응하고, 공격대들은 해외로 돌려야겠어요.”
“그렇게 결정하셨습니까?”
“네. 이왕 텔레포테이션 시스템이 도입된 거, 대한민국은 절대 안전지대로 만드는 게 낫겠죠. 이번에야 시험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고…. 해외 레이드를 뛰려면 어차피 유그드라실의 신세를 져야 하니까, 공격대는 그때 파견하는 게 낫겠어요.”
23분 만에 레이드를 성공했다지만 몸 크기가 2, 30미터는 되는 괴물들을 유인하는 과정에서도 피해가 상당히 발생했다. 경급을 상대하려면 일리미네이터가 발휘하는 화력만 해도 엄청나지는 문제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국내 문제는 그냥 천후가 직접 나서서 순삭시켜 버리고, 국외는 이미 피해가 상당하기 때문에 요청을 하는 식이니 그쪽으로 공격대를 파견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냈다.
“어차피 국내 건은 이미 처리를 했으니까, 당분간은 다시 안 나타나겠죠. 그동안은 여유로우니 저도 해외로 돌고요. 파급이야 B랭크를 하나 섞은 것만으로도 쉽게 잡히니까.”
그리하여 천후는 이번엔 다시 해외 레이드 일정을 잡았다. 막 생성된 정규 공격대의 실력을 알아보고자 하는 국가들도 많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이번에 투입되는 건 제2 공격대였다.
“해외에는 사실상 첫 시범을 보이는 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긴장한 얼굴로 대답한 정태원은 공격대원들과 함께 큐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들 역시 한 달 내내 굴렀기 때문에, 그 얼굴엔 전의와 의욕이 가득했다.
태원의 대답대로, 그들은 첫 해외원정을 무사히 수행해냈다. 해당 국가의 군대에 의해 이미 디제스터와 싸울만한 공터로 유인되어있었기 때문에 교전만 치르면 됐는데, 그 교전시간엔 10분이 걸렸다.
해외 원정이었기에 13배가 아닌 기존 금액의 2배인 800억을 받아왔고, 700억을 분배했다. 성과에 나름대로 만족한 천후는 상쾌한 미소로 정태원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수고하셨어요. 고생 많이 하셨고. 오늘은 전력분석팀과 이야기만 좀 나누시고 돌아가서 푹 쉬세요."
“네.”
같이 웃으며 대답한 태원은 그러면서 주먹을 꽉 쥐고 기뻐했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어이쿠. 정태원 씨. 안녕하세요. 교전 시간 10분 걸리셨다고.”
“…….”
“어디 오늘 차분~하게. 깊~게 이야기해 봅시다. 응?”
전력분석실로 들어선 태원은 레이나드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걸 보고서 딱딱하게 굳었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정태원은 그날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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