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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185화 (185/324)

185화

"어떻게 됐나?"

유우베 고죠는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파악을 채근했다.

아오모리 현에서 하쿠네가 나타나 던전이 펼쳐진 지 30분가량이 지났다. 진구지 하야토가 건재할 땐 경급 레이드에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라이징 선은 정규 공격대인 만큼, 무작정 끌어모은 것보다 훨씬 빠르게 모여서 투입되었다. 유그드라실의 지원까지 받아 현장에 투입되는 데 걸린 시간이 6분. 즉. 그 후로 24분이나 흐른 것이다.

레이드가 길어지는 것은 결코 좋은 조짐이 아니라는 것은 유우베 고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 던전 소멸 확인!"

그때. 계속해서 상황을 보고하던 자위대 장교가 날카롭게 외쳤다. 하쿠네의 공격성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내부로 투입했던 무인 장비들 역시 태반이 망가졌다. 덕분에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던전 내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던전이 소멸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레이드가 성공했던가.

던전 내 모든 인간이 마침내 모두 사망해버렸던가….

유우베에게는 다행히도, 일단은 전자였다.

일단은.

하지만 유우베는 절대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무너진 던전에서 걸어 나온 라이징 선의 대원, 그중 임시로 공격대를 이끌고 있는 스즈키 아야메로부터 연결된 통신을 들었기 때문에.

"하쿠네 퇴치 성공했습니다."

"오오! 수고했소, 스즈키!"

"다만…."

침착하게 퇴치를 입에 올렸던 스즈키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만…. 피해가 컸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라이징 선은 당분간 정규공격대의 지위를 내려놓겠습니다."

"무, 무슨?"

"B랭크 2명, C랭크 8명이 사망했습니다. 하쿠네 레이드 생존자 15명…. 사망자 중에는 공격대장 다나카 유우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헉…!"

유우베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애써 만들어놓은 구도가 전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몰려오는 암담함에 몸서리쳤다.

공격대장의 사망. 이것은 진구지 하야토의 부상만큼이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게 확실했다.

보통 한 국가에 경급 이상 레이드의 공격대장을 맡을 재목은 많지 않았다. 다나카 유우마는 일본 최고의 공격대장이었고, 그를 대신할 사람은 국내에 아예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레이드가 길어지면서 민간인 사상자도 많아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눈대중으로도 천명은 넘어 보이네요…. 퇴치보수는 받지 않겠습니다. 부디 복구에 써주세요."

"이럴 수가…."

일이 너무 크게 번졌다.

한순간의 치기는 지옥을 불러왔다. 유우베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암흑밖에 보이지 않았다.

*

"흉악하군. 생각 이상인데."

"유우마…."

라이징 선의 배틀 데이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그드라실에 갱신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천후와 공격대장들은 침음성을 냈다.

"벌써 세 번이나 잡았던 놈이 추가패턴을 낼 줄이야."

"아마 유우마도 추가패턴이 있을 수 있단 생각은 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이…"

레이드에 참여하는 일리미네이터도, 레이드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공격대장도 인간이다. 눈앞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화염에 구워지는 꼴을, 놈의 꼬리에 몸통이 양분당하는 꼴을 보고서 침착성을 유지하긴 힘들었고, 하쿠네가 유도하는 상황 자체가 흉악했다.

촬영 장비 대부분이 박살 난 상태라 배틀 데이터는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싸우는 전체 구도는 바랄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태원은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짐작해낼 수 있었다.

"저 상황에서도 팀을 나눠 카마이타치에 대응하면서 하쿠네를 상대했습니다. 피신 유도와 카마이타치 상대로 한 팀씩 빠지고 15명이 남은 상태에서 싸웠으니 당연히 화력이 부족했고…. 민간인을 공격하던 꼬리를 그들에게 돌리면서 몸체를 사용했군요. 그 상황에서도 레이드를 성공해낸 겁니다."

"하지만 '두 번째' 소환한 카마이타치의 진공 칼날에 당했군요."

"하아…."

태원은 괴로워하며 얼굴을 양손으로 덮었다. 레이나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넌 저 녀석과 친했었지."

"사리가 밝은 친구라 말이 통했습니다. 공사분별이 확실한 놈이라, 라이징 선 내부 사정은 전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만.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공격대장들 사이에는 그들 나름의 커뮤니티가 따로 있었고, 나이가 비슷했던 태원과 다나카는 국가를 넘어서 친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릴 줄은 태원으로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경급 디제스터 중에서도 손으로 꼽히게 강한 놈인 것 같네요. 텐타클 뱀파이어 수준이거나 그 이상."

"재생력도 매우 강하고, 우리가 인간인 이상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을 쥐고 흔드는 면이 아주 흉악합니다."

출현부터 민간인 사이에 섞여서 나타나고, 레이드 도중에도 민간인을 공격하고, 이 때문에 인력이 분산되게 한다.

지금까진 진구지 하야토를 위시한 초 화력으로 밀어붙였지만, 그게 성립되지 않자 레이드 내내 사람을 미치게 했다.

소환패턴 역시 까다롭기 짝이 없다. 근, 중거리 모두 강한 카마이타치의 진공 칼날로 견제를 넣으며 꼬리를 길게 늘여 공격해오면 공격할 시간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형님. DS에서 저, 강호 선배, 라즈베리를 제외한 인원으로만 25인 공격대를 구성해서 상대하면 당해낼 수 있을까요?"

"배틀 데이터가 올라온 이상 할 수는 있지. 일단 기량도 우리 쪽이 좀 더 나으니까. 컴뱃 캐스팅이 가능해진 게 천만다행이군."

간단히 전개를 예상해본 레이나드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전 로마이어 체재처럼 B랭크를 2인만 투입했다간 전멸을 보기 십상인 놈입니다. 역시 던전화 디제스터…."

"그래도 이걸로 하쿠네의 모든 패턴은 파악되었으니, 일본인 일리미네이터도 특성화를 해서 대처가 가능해지겠죠."

라이징 선이 잠시 정규공대 자리를 내려놓았다지만, 그게 완전히 활동 정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멸급 디제스터 전조가 찾아온 이상 이들은 쉴 수 없다. 모든 것이 해결되기 전엔.

그러니 일본은 전조 3단계가 시작하기 전까진 괜찮을 거라고 천후는 생각했다.

하지만.

"글쎄. 그건 어떨까?"

"네?"

"진구지가 병석에 누워있지 않았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레이나드는 의아해 하는 천후를 바라보았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성장은 했지만, 역시 세상의 상리엔 아직 능통하지 못하다. 특히. 물밑에서….

그의 높은 시야 아래에서 일어날 진흙탕 싸움에 대해선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좀 더 붙어있어 줘야겠구만.'

목을 꾹꾹 주무른 레이나드는 배틀 데이터를 다시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참상의 펼쳐지고 있는 화면 내의 도심지가 아니라,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호랑이 없는 숲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아비규환이.

*

하쿠네 레이드는 성공했다.

10명이 죽었지만.

그러나 10명이 죽었다.

그 후폭풍이 없을 리가 없었다.

"라이징 선을 당신이 맡고 있었던 게 문제 아니오?"

"다나카 유우마까지 사망하다니. 제정신입니까?"

"라이징 선의 피해가 이렇게 큰 이상 새로운 편제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겠소?"

호랑이 없는 숲. 공격대 인원의 1/3 이상이 날아간 라이징 선은 제 기능을 잃었다. 그렇다 해도 일본 내 최대 세력이었지만, 그건 진구지 하야토의 존재가 있을 때나 유지가 가능한 것이었다.

레이드에서 공격대장이 죽고, 두 명의 B랭크가 사망한 상황에서….

라이징 선은 분열했다.

그뿐 아니라 라이징 선 소속 외의 B랭크들까지 나서서 책임론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총 10명가량의 B랭크가 최초로 한 일은 간단했다.

스즈키 아야메의 매장.

"……."

그녀의 얼굴은 피로감에 절어있었다. 레이드가 끝난 다음 날이 되자마자 이 꼴이 나버렸다.

라이징 선내에도 진구지 하야토를 정신 나간 또라이로 보는 사람은 널려있었고, 지금까지 쌓여있었던 불만이 그가 눈앞에 보이지 않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B랭크 사상자가 난 것이 너무 결정적이었다. 진구지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들 역시 이 업계의 갑들. 원랜 누구 아래에서 치이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동일 선상의 인물인 스즈키의 통제에 따른 것은 그녀가 진구지 하야토의 전권을 위임받은 인간이기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전권대리인은 그들의 기준에선 '실패'했다.

그 순간, 지금까지 그녀에게 있던 일본의 모든 일리미네이터를 통제하던 권한은 이제 하늘로 붕 떠버렸다.

아니 정확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진구지 씨는 죽은 게 아닙니다만."

"어쩌란 겁니까? 그가 완치되어 돌아오더라도 이 책임은 회피할 수 없습니다."

"부끄러워하진 못할망정 이 자리에서까지 애인을 찾나? 죽은 다나카가 불쌍하군."

"……."

그의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 꺼내던 인간들이 때는 이때다 하고 날아다니는 꼴에 스즈키는 찬찬히 눈을 감았다.

이들의 말 중 일부는 옳았다. 레이드 시 공격대 통제는 다나카가 했지만, 어찌 되었든 당시 책임자는 그녀였고, 그녀는 이 비난을 받는 게 당연한 입장이었다. 다나카가 사망한 이상 더더욱.

문젠 이들이 원하는 것은 원랜 진구지 하야토의 것이었던 권한을 탈취하는 데에 있다는 거다. 그는 지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권좌를 위협받고 있었다. 원래는 눈에 치이지도 않았던 것들에게.

이 정도의 사태에서 한번 권한을 넘기면 아무리 A랭크라도 되찾기 힘들다. 그녀의 책임론이 바로 그에게 옮겨 갈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쥐고 있기엔…. 그녀에게 반발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될 대로 되라지.'

결국 스즈키는 손을 놔버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일본 일리미네이터 통제권한을 내려놓겠습니다. 이는 진구지 하야토에게도 정식으로 통보할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라이징 선의 완전 해체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건 알아두세요."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지."

차게 쏘아오는 말에 스즈키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여전히 라이징 선의 멤버입니다만, 이번 사태가 계속되는 동안. 혹은 진구지 하야토가 일어날 때까지 다음 권한 획득자의 통제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적당하군."

"어차피 당신이 하야토에게서 떨어질 일은 없으니까."

"자…. 그럼 누가 대권을 잡느냐인데."

한자리에 모인 B랭크들의 눈에서 번개가 튀었다. 탐욕의 번개가. 그 뒤론 그만큼 격렬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히로후미. 네놈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하아? 염병. 라이징 선 멤버였던 놈들은 다 저리 꺼져. 쪽팔린 줄 알아라."

"뭐래, 이 병신이? 지금까지 경급 디제스터를 잡아본 적은 있나? 커리어가 7년이면 무슨 소용이야. 너 같은 놈이 대표가 된다고?"

"오오. 그렇게 많이 잡아보셔서 열 명이나 죽어 나가게 하셨어요? 대단하시네. 진구지 아래 빌붙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개 주제에 사람 말을 배워서 왈왈대냐?"

"이 자식!"

"뭐? 어쩔 건데?"

덜컹. 덜컹. 의자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된 말싸움을 반복했다.

파는 간단하게 갈렸다. 기존 라이징 선 출신과 비 라이징 선 출신. 하지만 수는 후자가 여섯. 전자는 셋. 원래는 후자에 들어가는 스즈키는 사실상 발언권을 모두 상실한 상황이니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징 선에 있는 장비들이 가장 좋고, 진구지의 이름을 팔아야 유그드라실과 교섭할 때 더 이득이란 걸 모르는 바도 아닐 텐데?"

"그놈의 장비 타령은. 어차피 누가 대표가 되든 라이징 선의 모든 물자와 권리는 거둬서 사용하게 될 거야. 진구지 이름팔이도 그렇고. 라이징 선 출신만 가능할 것 같냐?"

"뭐라고? 미친 소리 하지 마!"

"미친 소리는 네가 하고 있지. 그럼 이 와중에 너희가 대표가 안 됐다고 라이징 선의 모든 장비를 공유하지 않겠다고? 곧 멸급 디제스터가 나타나서 일본이 박살 날 판인데? 너 같은 놈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 매국노야, 매국노!"

"뭐가 어째? 입에서 내뱉으면 다 말인 줄 알아?"

대립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들으며, 스즈키는 피로감에 눈을 감았다. 이 싸움은… 꽤 오래갈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데굴데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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