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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190화 (190/324)

190화

<유니크>

디제스터 퇴치비용은 패턴 연구가 진행될수록 점점 떨어지는 면이 있다. 특히 멸급 디제스터에 의해서 고정적으로 출현하고, 그 빈도수가 많이 늘어나 버린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일본이 DS에 지불하기로 한 퇴치금은 거꾸로 갔다. 처음 DS를 불렀던 때보다 1.5배 가까이 올라버려, 일본 일리미네이터의 퇴치금의 3배 가까운 금액이 되어버렸다.

"켁.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다니."

아마테라스의 리더 히로후미의 심기는 크게 불편해졌다. 지금까지 정규공대가 만든 기본 룰. 해외 레이드 퇴치금은 2배라는 규정에서 더욱 올랐으니 짜증이 날만도 했다.

DS뿐 아니라 이번 일본 사태에 투입되기로 한 다른 두 정규 공격대, 머니 크래프트와 컨퀘스터 역시 올려받게 되었다. 그 박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진구지 놈만 아니었어도."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까지 정세가 좋지 않게 돌아가게 한 진구지의 행동이 불쾌했다. 병신같이 덤볐다가 털리는 바람에 나라가 빚더미에 앉는 꼴을 보게 되었으니 당연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테라스는 생겨나지도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불평만 계속할 순 없었다. 진구지가 병상에 있는 동안 라이징 선 잔당과 아마테라스 양쪽 다 많은 일리미네이터를 잃었다.

패턴 분석이 완전히 끝난 지금은 부상자만 나오는 상태였지만, 그것만 해도 피로도는 쌓인다. 하쿠네 외에도 파급 디제스터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가 늘어나 버린 지금 시점에선 정규 공격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실력 좀 확인해볼까?"

*

일본에 투입된 정규 공격대는 3개. 그 수장들은 협약을 맺어서 로테이션으로 하쿠네를 상대하기로 했다.

"아직 하쿠네가 하루에 한 마리씩 나타나는 상황은 아니니까 조금 여유를 둬도 되겠죠. 그동안은 일본 내 파급 디제스터에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잔수입이지만 이것도 도움이 된다. 공격대들은 일본을 이루는 4개의 섬을 각각 맡기로 했는데, 일본 측에서는 자존심의 표현으로 가장 큰 혼슈를 맡았고, DS는 쿠슈. 다른 둘이 시코쿠와 훗카이도를 맡았다.

일단 분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소모가 컸던 라이징 선과 아마테라스의 상태는 급격히 호전되기 시작했다.

한편, 천후는 남는 시간 동안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본이란 나라가 컸구나."

원체 큰 아시아 대륙 자체가 왼편에 있다 보니까 잘 몰랐지만, 일본도 남한만 대고 비교해서 보자면 상당히 큰 나라였다. 남한의 면적이 혼슈만도 못하니 말이다.

"땅도 그렇지만, 영해…가 아니라 배타적 경제수역까지 치면 엄청 크지 말입니다."

"배타적 경제수역?"

"네."

라즈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범위를 보여주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 천후는 입을 벌렸다.

"엄청난걸."

단순히 땅덩어리만 가지고 생각할 게 아니었다. 북한의 존재로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부러울 정도의 경제수역을 일본은 가지고 있었다.

"난 사실 일본이 그냥 고만고만한 크기인 줄 알았어."

"얇고 길다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데, 꽤 큼다."

"이런 상태라면 유그드라실 서포트가 없을 때는 디제스터 대응에 꽤 고생했겠는데."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모든 지방에 일리미네이터가 충분히 배속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수도나 대도시 위주로 모여있는 상황에서 경급 등이 나타나면 사람이 모이는 것만도 시간이 걸렸다. 전국이 섬나라인 일본은 더욱 힘들었을 터였다.

"그래도 일본은 라이징 선이 금방 만들어져서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슴다. 일단 출동만 하면 해결은 되니까."

"그랬군."

고개를 끄덕인 천후는 다른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하쿠네에게 오염된 지역을 표시한 지도였다. 등장 시작시기부터 지금까지 11체가 나타난 하쿠네는 이미 일본 각지의 도심지를 녹여버렸다.

기본 패턴도 위험하지만, 잡은 이후에도 시체가 지역을 오염시켜버리는 덕에, 유그드라실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멸급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큰 경기침체가 일어날 거라 예상되고 있었다.

'지금이야 아직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매일같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아마도….'

일리미네이터의 공격은 군보다 섬세하지만, 디제스터의 특성 자체가 저 지경이면 피해를 줄일 수가 없다. 지금도 속수무책으로 삶의 터전이 망가지게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천후는 보고 있던 화면을 넘겼다. 이번엔 다른 공격대의 레이드 영상이었다. 아마테라스나 정규 공격대인 컨퀘스터나 결국 마지막 패턴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천후는 그것을 예의주시했다.

'저걸 어떻게 하는 수가 없을까.'

물리적으로 몸체를 완전히 소멸시키고자 해도 소립자 단위로 쪼개진 것이 산성으로 변하는 데엔 대책이 없었다.

그때였다.

"싸부."

"음?"

천후는 어느새 옆으로 바짝 다가온 라즈베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차례는 언제 오는 겁니까?"

"이번에 나타나면 우리 차례야."

"저 꼭 나가고 싶습니다."

"……."

"안 좋은 감정도 많지만, 이 나라 망하면 제가 잃는 게 너무 많지 말입니다."

"음. 만화?"

끄덕.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끄덕이는 모습에 천후는 살짝 웃었다. 정말 좋아하는구만.

"어차피 출전시킬 생각이었어. 내 참. 그렇게 좋냐?"

책하듯이 살짝 이마를 쥐어박자, 라즈베리는 아픈 척을 하면서 혀를 날름 내밀었다.

"재미있습니다. 저는 히어로 물이 좋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칸 코믹스도 좋아합니다. 그치만 일본 특촬물이 더 좋습니다. 하늘로 날아올라서 킥을 하는 게. 그런 구리구리한 것도 이제 찾아보기 힘듭니다."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감성인지라 천후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라즈베리와는 같은 집에서도 지내고, 대화도 많은 편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녀 자신에 대해선 깊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취향에 대해서 이해하려 한 적도 없었고.

천후는 문득 고인규가 한 말이 떠올렸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란 말이.

그러자 문득 지금까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미뤄왔던 것들. 이미 소통되고 있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은 사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건 라즈베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에게 그랬다.

"그렇게 재미있으면 나중에 한 번 보여주던가."

"!"

라즈베리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싸부라고 부르고, 이런저런 소리를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니 놀란 것이다.

"괜찮으심까?"

"응?"

"아니, 음…."

막상 이런 소리를 듣자 당황한 라즈베리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이들이나 이그네스에게 보여줄 때와 달리 쉽사리 그러겠단 말이 나오지 않았다.

라즈베리는 자신이 진면목을 보였을 때 그에게 부정당하는 것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럼 나중에 날을 잡아보지 말입니다."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던 라즈베리는 결국 중간지점을 제시했다. 이 나중이 언제가 될지는 라즈베리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줬다는 것을 기뻤다.

'다른 곳만 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라즈베리에게 있어서 천후는 등만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이미 자기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잡아두고서 그 한길만 바라보며 주변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아우르고 소중히 여기지만, 그것이 그들과의 동화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천후에게서 히어로의 잔상을 보고 있었던 라즈베리에겐 그렇지 않기를 내심 바랐었다. 히어로는 뒤를 돌아보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러나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눈길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그것이 성과를 보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싸부. 그…."

약간 안색이 밝아진 라즈베리는 다시금 뭐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유그드라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고시마에 하쿠네 출현. DS 출격 대기 인원 모여주세요.>

"왔군. 라즈베리. 그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하자."

"아. 넵!"

흠칫. 자기도 모르게 뻗었던 손을 거둔 라즈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제스터 등장 보고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 큐브 엘리베이터가 떨어져 내릴 옥상으로 달려가는 그 모습을 보자면, 다시금 등 뒤밖엔 보이지 않는다.

"…같이 가요, 싸부!"

그것을 보고 아주 잠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던 라즈베리는 곧 급히 그 뒤를 따랐다.

*

하쿠네의 패턴은 대부분 밝혀진 상황이었다. 이미 다른 정규공대는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고 DS도 그럴 거라 예상되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3단계 시점에서 공격대만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레이드에서 저는 참가를 하되, 패턴을 이끌어내는 정도로만 활동하겠습니다. 이번 레이드의 메인 탱커는 이강호 씨가 될 것입니다."

하쿠네를 직접 상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전멸 위기는 막아내겠지만, 그 외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천후가 나서면 시작과 동시에 큰 타격을 주고 끝장낼 수 있겠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 막상 때가 왔을 때 라이징 선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외국 레이드는 공격대원들만 참가하곤 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볼 필요는 있는 법.

"지휘권은 정태원 씨에게 양도합니다."

"지휘권 받았습니다. 전 대원 배틀 시그널."

하쿠네는 벌써 활동을 시작하고서 던전을 생성한 상태였다. 다행히 미리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현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피해가 아예 없을 수 없었다.

도전의 인장에 던전이 열리며 DS 공격대원들이 내부로 입성하자 예의 안개가 그들을 반겼다.

"먼저 가 있겠습니다."

천후는 다른 공격대원들보다 앞서 암전이 되어 뛰쳐나갔다. 놈을 때려잡진 않을 거지만, 놈에게 희생당하는 민간인까지 방치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캥!"

던전이 열리자마자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흑염의 마인을 본 하쿠네는 몸을 떨면서 거리를 벌렸다.

인간들을 공격하던 아홉 꼬리가 그 움직임을 멈추고 위로 곧추세워지며 일렁거렸다. 텐타클 뱀파이어때와 마찬가지로, A랭크 강화마법을 두른 천후를 보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경계심을 가진 것이다.

"일단…."

천후는 지면에서 아직도 좀비처럼 걸어오고 있는 인파를 내려보았다. 하쿠네가 어느 정도 행동을 보이기 전까진 사람들이 이성을 되찾지 못한다. 판단을 내린 천후는 놈에게 손을 뻗었다.

"캥!"

"장소를 옮겨야겠다. 여우야."

그 순간 흑염이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싶더니, 강력한 무형의 힘…예의 염동력이 수십 톤이 넘어가는 거체를 옴짝달싹도 못 하게 얽어맸다. 천후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저쪽 경기장 같은 곳이 보이자 그대로 놈을 그쪽으로 던졌다.

"캐앵!"

콰가가가각! 경기장의 옆쪽 벽면이 박살나면서 하쿠네가 바닥을 굴렀다. 금빛으로 빛나는 모피가 모래먼지와 피에 젖어서 엉망이 되는 꼴을 태연하게 내려다본 천후는 사람들이 패닉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며 전달했다.

"저는 당분간 민간인 피신 유도를 돕겠습니다."

"네. 전원 산개!"

그동안 근처까지 다가온 공격대원들은 하쿠네가 열 받아서 꼬리를 키우는 것을 보고 재빨리 흩어졌다. 그 순간 그들이 있던 자리에 칼날과도 같은 기다란 꼬리들이 훑고 지나갔다.

"으아! 난도가 더 올라갔잖아!"

"괜히 자극해 가지고선!"

하쿠네의 패턴상 약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방심한단 점이었다. 일리미네이터와 대치하고서도 민간인 공격에 더 집중하다가 큰 타격을 받곤 했는데, 천후가 아예 가지고 놀듯이 대하자 화가 났는지 처음부터 모든 공격을 공격대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공격대원들은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이-정도로!"

캉! 카카카캉!

사람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꼬리 공격이 허공을 수놓는 은선에 모두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캥!"

상궤를 넘어선 일에 하쿠네가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놈이 있던 자리에 하나의 인영이 하늘에서 내리꽂히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 대단치 않군. 이대론 금세 퇴치당할 텐데. 좀 더 힘을 내보지 그러냐?"

바이크 슈트를 입은 여성 하나가.

============================ 작품 후기 ============================

염동력 관련해선 너무 오래전이긴 합니다만, 1챕터 텐타클 뱀파이어전에 이미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정신 나갔을 때지만. 그걸 이제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됐단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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