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92화 (192/324)

192화

하쿠네의 등장이 점점 잦아지면서 일본 정부 역시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하쿠네의 독액을 막을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내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막상 연구할 독기의 입수부터 쉽지 않았다.

염동력으로 시료를 얻어 보자고 생각한 건 영천후 뿐만이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은 본체에서 분리되어 도망 다니는 꼬리를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이 때문에 언제 재생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염동력을 사용할 여력을 남기는 것은 어려웠다.

A랭크가 건재한 머니 크래프트와 컨퀘스터 역시 어느 정도 독액을 입수했었지만, 양이 워낙 적어서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연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천후가 독액을 뿌렸고, 연구는 진척되기 시작했다.

이 공로로 DS는 일본 정부에게 추가 보수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모든 하쿠네 레이드를 DS에 맡기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만…."

태원은 천후의 안색을 살피며 그렇게 말했다.

도심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쪽에 올인하는 게 정상적인 판단이긴 하다. 하지만 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바라겠지만, 아마 실제론 못하겠죠. 지금 이 전조 단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공격대만 다섯인데 그중에서 우리에게만 일을 몰아준다면…. 피로도는 둘째치고 멸급이 막상 나타났을 때 무슨 일을 겪을지 뻔하니."

일정 수준 일이 분배되지 않으면 머니 크래프트와 컨퀘스터는 아예 떨어져 나갈 거고, 라이징 선과 아마테라스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그들을 핸들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일단 의뢰는 들어오는 대로 수용할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염동력은?"

텔레키네시스가 딱히 엄청나게 특별한 마법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강력한 염동력은 본적이 없었다.

일리미네이터엔 방출계 주특기 마법사가 많다. 이건 아예 마법사의 태생적으로 다른 주특기 마법사가 비율이 적은 문제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DS나 정규공대면 모를까, 일반적인 일리미네이터의 주 업무는 서브 퀘스트고, 그것은 곧 솔로잉을 의미한다.

혼자서 잡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단 소리다. 그렇다 보니 화력이 강한 방출계가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포인트맨 같은 위험천만한 제도가 생긴 것도 이것에 기인한다.

게다가 회복 마법의 효율은 그렇게 높지가 않다. 유그드라실 최고의 회복 마법사인 이미연조차 죽은 사람을 살릴 정도는 아니고, 다 죽어가는 인간은 살릴 수 있지만 즉효성이 아니다.

그 정도의 큰 부상을 회복하려면 짧아도 하루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물론 이것도 자연 치유나 일반적인 수술을 생각해보면 기적에 가깝지만 말이다.

천후 같은 강화계열 마법사 역시 천후와 이강호의 개인 기량. 마법을 사용하기 전부터 인간 병기에 가까운 작자들이다 보니 그 효과를 보는 것이지, 어설프게 따라 하다간 디제스터에게 찢겨 죽기 딱 좋다. 영천후의 등장 이후 비슷하게 따라 하다가 죽어 나간 마법사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단순 화력이 떨어지는 염동력, 사물통제 주특기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하고자 하면 태원도 어떻게 억지로 사용할 순 있지만, 주특기가 아니라서 1.5리터 페트병이나 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강화계 주특기를 이미 가지고서 따로 주특기에 가까운 염동력을 발휘하다니? 궁금증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천후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조건이 상당히 특수한데. A랭크 이상의 강화마법이 걸려있을 때만 이 정도 위력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

"아마 레이나드 형님은 짐작하고 있었을 걸요?"

"음…. 어느 정도."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이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염동력은 과거 텐타클 뱀파이어 때 이미 그가 발휘했던 능력이었으니까.

"지금까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던 건가?"

"그보단…. 저도 A랭크 통제가 완전해진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드래곤 레이드 이후에나 좀 제대로 사용해볼 수 있었는데, 그 뒤에는 계속 쉬고 있었으니까."

그전까진 강화마법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꽤 빠듯했다. 염동력이 있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혼합해서 사용할 여유가 천후에겐 없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 정도의 염동력이 있었다면 아예 시민들도 모두 들어서 옮길 수 있었던 게…."

"아니. 아니에요. 뭔가 착각하시는데. 제 염동력의 컨트롤은 그리 완벽하지 않습니다. 무생물이나 디제스터 상대론 몰라도, 산사람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에요."

태원의 말에 천후는 고개를 크게 저으면서 기겁했다.

염동력이 강력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예 대충 넓은 범위로 감싸서 모으면 그만이었던 독기야 상관없지만, 한꺼번에 사람을 들어서 올린다 치면 그 와중 염동력에 죄여 죽는 사람이 나올 터였다.

"염동력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굉장히 거칠고, 제가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 섞여 있어요. 제가 강화마법을 쓰면 몸에 불이 붙는 걸 끄지 못하는 거랑 비슷하달까? 게다가 이건 제가 의도하고 캐스팅해서 사용하는 것도 아닌, 좀 정체불명의 힘입니다."

"무슨…?"

알아듣지 못할 소리에 태원이 눈썹을 튕기자, 천후는 입 안이 써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발휘하는 염동력은 마법이 아닙니다. 그냥 능력이에요. 마력조차 안 씁니다."

태원의 표정은 이번에야말로 딱딱하게 굳었다.

*

"그럼 올라가 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전력분석실을 나온 천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원과 레이나드가 보였던 심각하게 굳은 얼굴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그드라실이 마법사의 존재를 공표한 지 50여년. 그동안 마법사에 대한 연구도 진척되었다. 하지만 천후는 그들이 아는 상식에서 확실히 괴리되어있는 존재였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천후를 평생 속박해왔던 그 명제가 여기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물론 저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럴 테지만….

그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일지.

사람 닮은 괴물을 대하는 태도일지는… 때가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천후의 기분이 가라앉아있던 때였다.

"주인님."

낮은 목소리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복도에서 들려왔다. 무표정한 얼굴의 여자였다.

홍희주.

"희주 씨."

"무슨 일 있으셨나요?"

스륵. 가느다란 손이 턱 끝을 타고서 볼을 감쌌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 하지만 어째선지 천후에겐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 손을 감싸 쥐며 천후는 눈을 감았다.

"아니에요. 그냥…. 제 이야기를 좀 했죠."

"그렇군요."

희주가 굳이 물어왔긴 하지만, 천후는 그녀가 이미 오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걸 짐작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찾아올 리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약해질 시간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데도…."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겠죠. 이해는 해요."

이해는 한다. 하지만 힘들어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후가 아무리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에겐 인성, 이성, 감정이 있었고, 그런 정신적인 면모들은 타인의 반응에 따라 상처 입는다.

특히 그의 감정은 그 개인의 인생사에 의해 약간 기형적으로 형성된 덕에, 그 기반이 약한 만큼 더욱 그랬다.

"괜찮습니다. 분명… 이해해주실 거예요."

"……."

때문에…. 그녀의 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그를 긍정해주었던 사람이기에.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그녀에게 가장 먼저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보듬어주었다. 그땐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잠시 주먹을 움켜쥐었던 천후는 곧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탁한 감정들은 어느샌가 지워져 있었다.

"…고마워요. 올라가죠."

"네."

작게.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왔다. 천후는 그 손을 꽉 잡았다.

*

"형님.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뭐가?"

한편. 전력분석실에서 회의를 끝내고 자택으로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술집을 찾은 태원과 레이나드는 마주 앉아서 소맥을 들이켰다.

"아까 들은 이야기는…. 너무 충격인데요."

"……."

레이나드는 혼자서 벌써 몇 잔을 들이키느라 반쯤 맛이 간 태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레이나드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

레이나드는 천후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일단…. 이건 지금까지 몇 명에게 밖에 말하지 않은 사실입니다만."

"음?"

"네?"

목소리를 낮추자 둘 다 굳은 안색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천후는 그 둘에게 조용히 말했다.

"사실…. 몇 달 전 제 최저 랭크가 올랐습니다."

"……."

태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레이나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력랭크가 오르다니?

그런 경우가 없진 않았다. 아주 가끔. 어느 날 갑자기 마력 랭크가 한 단계 상승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계기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훈련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마법이라곤 평생 써본 적 없는 가정주부가 갑자기 득도하듯 랭크가 오르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만약 마법에 익숙해지는 것이나, 캐스팅 훈련 등이 조건이라면 매일같이 마법을 쓰는 일리미네이터들은 지금쯤 모두 고랭크 마법사여야 하리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리미네이터 사이에서 이런 마력 랭크 상승 현상을 겪으면 복권 맞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즉. 지금 이건 일반적인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전… 어릴 적에 F랭크에서 D랭크로 오른 적이 있었죠."

"그럼 그건 사장님 특유의…."

"확신은 못 하겠지만. 아마도."

복잡한 마음에 털어놓은 천후는 말을 이었다.

"돌아와서…. 중요한 건 랭크가 올랐단 겁니다. 제 기본 랭크는 지금 B랭크고. 그래서 A랭크 주문을 1분에 하나씩 세이브 할 수 있어요. 물론 이렇게 된 이상 스펠 세이브 용량 자체도 크게 늘었습니다."

그 말을 침착하게 듣고 있던 레이나드는 그러다 흠칫하고 물었다.

"잠깐. 그럼."

"네. 전…. 지금 마음먹으면 S랭크 강화마법 사용과 SA랭크 위력의 신위 발사가 가능할 겁니다. 실제 이미 제 스펠 세이브의 3할 이상은 S랭크 주문들입니다."

"세상에…! 그럼 끝난 이야기입니다! 당장 전 세계에 선언하죠! 멸급 디제스터에게서 세상이 안전해졌다고! 당신은 전 세계의 영웅이 될 겁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태원은 흥분해서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냉정함이 거짓말처럼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옆에서 말을 들은 레이나드는 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말이다. 왜냐면 레이나드 자신이야말로 원년 멤버…. 코스튬을 두르고 디제스터에 저항했던, 디제스터로부터 시작된 지옥이 끝나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레이나드는 침착하게 천후를 바라보며 태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앉아, 태원아."

"형님!"

"앉아, 임마. 진정해. 영 사장이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지 않겠냐?"

"아…."

그렇다. 그의 입에서는 '몇 달 전'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단 건 DS 공격대를 창설하기 이전 시점이라는 말이었다. 그때 이미 그런 상태였다면 정말 공격대 따윈 만들 필요조차 없었다. 정말 혼자서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멸급 디제스터는 혼자는 무리일지 몰라도, 노블레스 클럽 멤버 몇몇만 끌어들이면 쉽사리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공격대를 만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며 이야기를 꺼내고 있단 말인가?

한숨을 내쉰 천후는 레이나드에게 고맙다고 눈인사를 보내주곤 말했다.

"확실히 전 S랭크 마법을 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보다가 그만뒀어요."

"왜지?"

"형님과 같이했던 최초의 레이드를 기억하십니까?"

"텐타클 뱀파이어?"

"네. 그때의 저를 기억하십니까?"

"……"

당시의 천후는 심장이 관통당한 후, 최악의 상황에만 풀리게 설정해둔 A랭크 스펠 세이브가 자동으로 풀려서 날뛰었다. 일격에 정리할 수 있는 놈을 굳이 가지고 놀면서 도시를 죄다 뒤엎어 놨다.

사람은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앞에 커다란 적이 있었기 때문일 뿐…. 그 마지막에 그의 공격이 향한 곳은 유그드라실. 막지 못했다면 대참사가 났으리라.

"그때와 비슷합니다. 아니 더 심해요. 세이브를 해제하는 순간 이성이 날아갈 것 같더군요. 간신히 마법을 무효화시키고서 깨달았습니다. 전 S랭크 마법을 통제하지 못해요. 지금 상태론 도저히. 그런데 굳이 이걸 말하는 이유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쉰 천후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세이브는 해뒀다 이겁니다. 이전처럼…. 정말 끝장날 위기가 오면 전 이걸 쓸 겁니다. 그러니까…. 전력에는 추가해두세요. 다만 의지할 건 못 되는 전력으로. 제 오오라 색이 다르게 변하면 그 자리에서 다들 대피하세요. 통제가 안 될 겁니다. 자신도 없어요. 어릴 적부터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전부 아저씨가 받아냈었거든요.”

“…….”

“즉, 이런 게 있다는 걸 알아두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 그리고 두 번째는…. 저는 확실히 여러분들과 조금 다른 존재라는 거예요. 그러니 어쩌면 앞으로도 종종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적어도 두 분껜.”

태원은 마른 침을 삼켰다. 천후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엔 사용할 수 있는 결전병기가 있다. 하지만 이 버튼을 누르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자신이 통제할 수조차 없다. 다만 필요한 때가 오면 주저 없이 쓸 것이며, 그 현장에서 함께 할 당신들은 알고 있어달라는 뜻이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합리라는 가면을 덮어서라도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는 것을.

죽어도 밝히기 싫어할만한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에 태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상을 느꼈다.

소맥을 들이킨 태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그드라실이 왜 사장님을 가둬놨는지 알 것도 같아요….”

근본조차 알 수 없는 능력이. 그것도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발전해 있는 걸 봤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말이 SA랭크의 방출마법이지…. 드래곤 브레스와 맞상대를 했던 때의 신위만 해도 눈 딱 감고 쏘면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그걸 사전에 막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지 않을까?

"그런 소리 하지 마. 멍청아.”

레이나드는 한숨을 내쉬면서 반쯤 술에 절어서 휘청대는 태원을 잡고 술집을 빠져나왔다. 더 마셨다간 집에 찾아 들어가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차가운 밤공기를 맞아서 술이 깬 걸까. 태원은 밖으로 나오고 나선 그래도 멀쩡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나드가 말했다.

“천후가 굳이 우리한테만 따로 이야기한 심정을 좀 생각해봐라.”

“…….”

“그놈은 자기 여자들 말고 믿을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 거야….”

“알아요. 압니다. 형님. 하지만 정말…. 뭐라 말하기 힘드네요. 착잡합니다.”

“나도 그렇다.”

퍽. 그의 등을 두드린 레이나드는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태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정상이고, 형님이 대단한 거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빠르게 감정 정리를 해내다니. 씁쓸하게 웃은 태원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태원은 그 주먹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레이나드의 뒤를 따랐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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