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94화 (194/324)

194화

진구지 하야토가 제정신이 아닌 건 일본 일리미네이터 사이에선 공공연히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건 지금껏 비 라이징 선 일리미네이터의 지주였던 히로후미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히로후미는 진구지와 만나기 전에 미승인인 점을 감수하고서 방어마법을 건 채로 그와 만났다. 외국 일리미네이터에게 칼부림하는 미친놈이니 말이다.

그러나….

각오를 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르르릉….

요정 안이 피바다가 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요정의 벽면에 진구지가 일본도를 휘두른 궤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상흔이 남더니,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예 건물 자체를 반동강 낼 기세로 방출 마법을 섞어서 사용한 것이다.

"이런 미친 자식! 무슨 생각이냐?"

히로후미의 시신을 수습한 아마테라스 멤버들이 소리 지르자, 진구지는 코웃음 쳤다.

"정해라. 너희가 함께할 사람이 거기서 뒈져서 목이 굴러다니는 시체냐. 아니면 나냐?"

"정신 나간 새끼!"

스물 중반이 넘은 놈이 중2병도 아니고 이상한 정신 질환이라도 걸렸는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소란을 일으키고서 유그드라실이 나서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한 명이 소리치자 모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진구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안 나서지. 나설 리가 없지 않나? 마법사 간에 일어난 문제에?"

"무, 무슨!"

그들은 어처구니없다고 여겼지만, 진구지는 진지했다.

"미천한 놈들. 유그드라실이 네년 놈들 부모도 아닌 데 징징거리지 마라."

마법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지간해선 참견하지 않는 것이 유그드라실이었다.

당장 이전 박찬휘가 한국군에게 정신지배를 걸고서 날뛰어도 그 후폭풍을 잠재우는 데 관여했지, 마법을 사용한 것 자체는 막지 않았을 정도였다.

대표자 선출을 위한 폭력 사용은 눈감아 주겠다. 그 폭력의 수단이 마법이라 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일어난 일은 일본 정부에서도 조작할 거다. 그러니 자. 선택해라. 죽을 테냐? 따를 테냐?"

진구지 하야토가 움직일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일본 정부는 단박에 그의 편을 들었다. 정부 입장에선 패가 둘로 갈리는 것을 원할 리가 없었다. 여우 두 마리보단 호랑이 한 마리가 낫다.

아마테라스 멤버들은 그제야 이 자리에 찾아들어 온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럴싸한 소리를 하더라도 직접 만나는 것은 피해야 했는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무너져가는 요정 안에 각양각색의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너 같은 또라이 새끼 밑에서 발이나 핥느니 차라리 죽겠다."

"칼만 휘두르면 다인 줄 아는 놈하고 뭘 하라고?"

그 수는 열 둘. 아마테라스의 절반이었다. 나머지 반은 히로후미가 사망한 순간 모든 것이 기울었다 생각하고 저항을 포기했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모두 라이징 선의 입맛에 맞게 조작될 터였다. 운 좋게 저항했다 살아남는다 한들 누가 말을 믿어줄 것인가?

"멋대로 지껄여라. 반은 현명한 놈들이군."

끌끌 웃은 진구지의 몸에서도 오오라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점에 달했을 때. 진구지가 외쳤다.

"나에게 대항한 걸 지옥에서 후회해라!"

그날. 긴자의 요정 하나에는 커다란 화재가 일어났다. 원인은 전기 합선과 가스 폭발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탓이었다. 현장에는 그 외의 이유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흔적들이 발견되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폭발의 영향이란 식으로 덮어졌다.

이 폭발 사고로 죽은 것은 13명.

공교롭게도 아마테라스의 수장 히로후미와 그 일행들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그들 모두 시체에서 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전해졌다….

*

올해 일본의 겨울은 추웠다.

홋카이도쯤 되면 우리나라 철원은 우스울 정도로 추워지는 것이 일본이긴 했지만, 기온보다는 분위기가 문제였다.

하쿠네의 출현은 계속되어 일본 전역을 위협했다. 그 빈도는 이제 일주일에 네 번을 넘어서고 있었고, 거의 매일 나타나는 상황이 되었다.

인구 밀집도와 출현 확률이 비례하는 특성상, 하쿠네와 디제스터들은 대부분 대도시 한복판에 나타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인간 공격성향이 극단적으로 강한 하쿠네는 큰 피해를 냈다.

등장 직후 출격까지 시간을 최대한 줄여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쿠네가 죽어서 내뿜는 독기를 받아낼 수단에 대한 연구는 다행히 결실을 보아서 독기를 중화시킬 방법을 찾아냈지만, 이미 땅과 공기 중에 흩어져 물체와 사람들을 녹여 내린 뒤에 하는 중화는 결국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신이 노하신 거야. 신께서 노하셨어…."

"학교에 가고 싶어…. 나가 놀고 싶은데."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일본 전역에는 공포가 만연했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거대 괴수가 나타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사지로 끌고 오는 괴물이 나도는 나라가 되었으니 당연했다. 4할에 가까운 일본인들이 한번은 하쿠네에게 정신지배를 당해본 상황.

정신을 차려보면 옆집 아저씨가, 술집 사장이,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간이 파먹히거나 화염에 잿더미가 되어서 사라지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갔다.

소비심리는 얼어붙었고, 계엄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9시가 넘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일본 정부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라!"

"자위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소수의 마법사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생각인가?"

그리고 그동안, 일본 국민들 사이엔 일리미네이터에 대한 회의론이 짙어져 갔다.

국내외 공격대가 선전하며 하쿠네가 나타나도 몇 분 내에 때려잡고 있긴 했지만, 아무리 빠른 대처를 하더라도 피해가 발생하고, 독기로 피해가 남는다.

반경 200m는 넓다.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 두 개 반경이 초토화된다는 소리가 된다. 이 때문에 독기에 직접적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은 일리미네이터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그들의 공로를 느낄 수가 없었다.

"공격대들이 우리 목숨을 가지고 돈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마법사에게만 맡겨둘 셈인가?"

"다 필요 없다! 우리의 힘만으로 이겨내야 한다!"

수년간 쌓아왔던 마법사에 대한 신용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일반인 사이에 마법사에 대한 적개심은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짜 적은 마법사가 아니라 디제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상한 소문 역시 섞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쿠네가 날뛸 때 던전 안에서 일리미네이터가 아닌 마법사들이 민간인들을 습격하여, 강도, 살인, 강간을 일삼고 있다더라. 역시 마법사들은 규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재일 조선인이 가장 많다. 역시 조선인은 다 죽여야 한다.'

*

"이상하군요…."

하쿠네 레이드가 없을 때는 서울의 자택에서 지내는 천후는 희주가 느릿하게 운을 떼자 물었다.

"뭐가요?"

"오늘 신문 기사입니다."

"흠. 아니, 이건…. 뭐 이딴 말도 안 되는."

내용을 확인한 천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피해가 늘어나면서 일본 내부 여론이 안 좋아지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다니.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간토 대지진 때나 도호쿠 대지진 때도 나오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희주는 표정변화 없이 고개만 갸웃했다. 패전 이후, 대재앙이 생길 때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위협은 단골메뉴처럼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히 예상했었다.

"소문이 퍼지는 전개가 조금…. 위화감이 있습니다. 마법사와 엮여서 이야기가 나온단 건…."

실제 저런 짓을 하고 다니는 마법사가 아예 없을까에 대해선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유그드라실 정도나 대답할 수 있을까?

사실상 준전시상황에 가까워진 일본에서 약탈과 폭동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 사이에 마법사가 섞여 있지 않을 거라곤 천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놈들도 있긴 할 거다.

그렇지만 그게 퍼센티지로 따지면 대체 얼마나 될까? 약탈범 전체에서도 극소수이리라.

약탈을 일삼는다는 이야기 자체는 나올 수 있지만, 거기에 굳이 마법사를 끼워 넣어서 이렇게 광범위하게 소문이 퍼지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리미네이터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럼….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는 거예요?"

"확신할 순 없습니다. 다만…. 의도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소문이 퍼지긴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

천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악화일로인 일본사태였지만, 멸급 디제스터 등장 시점이 머지않았고 그놈만 잡고 나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일리미네이터 사이에는 있었다.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 전체에서 마법사를 의심하고, 범죄자로 몰아가고,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지어가는 것은 그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방향이었다. 추호라도 말이다.

"한 번 박힌 의심은 시간이 지나도 잘 사라지지 않는데. 이 혼란스러울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과거 간토 대지진 때 일어난 학살은 당시 일본 정부가 상황을 유도하여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이 그럴 리도 없었다.

현재 5개 공격대 중에서 일본에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건 독기를 완벽히 한 점에 모아 거둬들일 수 있는 DS였고, 당연히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이유가 없었다.

"이 부분은 일본 정부에 협조를 구해보죠. 막아야 합니다. 마법사도 마법사지만, 교포들이 위험해요."

증오 범죄는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하면 이미 때가 늦다. 천후는 급하게 일본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

밤. 아주 늦은 밤. TV 위에 올려둔 시계는 새벽 4시가 넘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켜봐 주세요. 저의…. 변신!'

TV에는 눈보라가 치는 설산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변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

그것을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물체가 바라보고 있었다. 불을 죄다 꺼둔 어두운 방 안. 유일한 조명인 TV 불빛만이 이불 틈새로 슬쩍 드러난 두 눈동자에 비쳤다.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그 눈동자가 TV 위쪽을 향했다. 시계가 있는 곳. 숫자를 확인한 그 눈동자가 잠시 눈꺼풀에 가려지려 했다.

"…!"

하지만 그녀는 곧 몸을 파르르 떨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보고 있는 이 변신 히어로 물은 해당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화였다.

그러니 잠들 수 없었다.

잠들 수 있을 리 없었다.

라고. 라즈베리 미키스트리는 생각했지만….

스륵. 눈동자가 완전히 감기며 단 한 번. 엎드려있던 그녀의 고개가 완전히 침대에 떨어졌다.

설원에서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는 최종 보스와 변신 히어로가 웃으며, 울면서 격돌하는 소리가 그녀에겐 자장가가 되어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귓가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의 임무. -다하라.'

그것은 속삭임과 같았다. 그 내용은 그녀와는 무관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계속 잠을 청했다.

그녀는 피로했다. 요새 계속 레이드를 뛰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지간한 소리로는 잠이 깨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에.

영접했다.

"아이들아."

그것은 낮고.

"아이들아."

상냥한.

목소리만으로 감싸 안긴 듯한 기분이 드는 음색.

꿈인가 현실인가.

그녀의 눈엔 한 가지 풍경이 보였다.

드넓게 펼쳐진 꽃밭. 어린 그녀는 화관을 만들어 자기 머리에 쓰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서 웃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하나는 자신과 똑 닮은 여성.

다른 하나는 백발에 양복 차림의 남성이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희뿌예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다.

아아. 사랑하는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그중. 백발의 노인이 말했다.

"아이들아. 맡은 바 임무를 다해다오."

그 말과 함께 옆자리에 선 여성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사로잡혀, 그 말은 하나의 언령이 되었고-

"…응. 파파.”

일본. 평화로운 한 가정에 입양되었던 한국계 입양아 마츠모토 요시타케는 레이지를 일으켜.

제 가족을 모두 죽였다.

============================ 작품 후기 ============================

밖에 나오면 날이 너무 춥네요. 이제 11월인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