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성탄. 크리스마스.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이 날은 일본에선 이제 하나의 축제일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 나간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모두가 이날을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 바람이 무색하게.
하늘에서 떨어진 화염은 거리를 뒤덮었고,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던 크리스마스트리는 그 형태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하쿠네 동시 2체 출현.>
오로치가 등장한 그 순간부터 하수인 웨이브는 시작되었고, 끊임이 없었다. 웨이브를 담당하기로 한 머니 크래프트와 컨퀘스터는 쉴틈 없이 놈들을 처리했다.
"어서 오로치 레이드를 시작해줬으면 합니다."
"재래식 병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으면 어서 활동해주시길."
오로치 자체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놈이 살아있는 한 이 지옥은 계속된다. 아무리 정규공격대라지만, 이 피로도가 중첩되는 것은 버틸 수 없었다.
"징징대지 않아도 할 참이었소."
진구지 하야토는 각 공격대 대리인의 말을 일축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로치가 나타난 지 하루. 그동안 라이징 선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레이드에 참가할 인원 배정을 하고, 전술을 준비했던 진구지는 총리에게 말했다.
"라이징 선. 출격 준비 끝났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출격 행사를 시작하지."
한시가 급한 이 시점에서도 일본 정부는 라이징 선의 출격 행사를 준비했다. 그것은 과거 구 일본군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쇼로, 레이드가 끝나고 다시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용도였다.
일본 정부와 라이징 선이 이미 레이드 성공을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수많은 자위대원들이 도열한 가운데 선 일리미네이터들이 억지로 모셔온 일왕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일왕은 불쾌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일본 구제를 위해 온 힘을 다하라."
"네!"
"천황 폐하 만세!"
양쪽에 선 정치인들과 장교들, 그리고 진구지가 먼저 소리치자 병사들과 나머지 사람들도 얼떨결에 따라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머문 광신에 가까운 기운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들었다.
그 장면을 일본의 각 방송사가 찍어서 전 세계에 송출했다. 생방송으로 흘러나오는 화면을 보고 아시아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이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 같은 것은 말로만 하고 있었단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으니까.
"라이징 선! 출격!"
물론 그렇게 생각하라고 일부러 이 자리를 마련했던 진구지는 호쾌한 미소를 지으며 공격대원들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오로치를 잡기만 하면 우민들은 그에게서 구세주를 투영할 테고, 앞으로 일본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변하게끔 유도할 수 있을 터였다.
"오늘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
그 말 자체엔 당연히 찬성이었지만, 지금 이놈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지 훤히 읽히고 있기에 다른 일리미네이터들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진구지도 답을 바라진 않았다.
애초에 이들에게 답을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내가 하면. 너희는 알아서 따라야지. 천한 것들이.
광오한 웃음을 지은 진구지는 떨어져 내리는 큐브 엘레베이터 아래의 대괴수를 바라보았다.
레이드의 시작이었다.
*
"시작한다."
사실상 일본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천후였지만, 해당 사태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최악의 경우, 라이징 선이 레이드를 실패하면 그 뒤엔 DS가 나서야 할 가능성이 컸기도 했고.
그동안 나름대로 죽을 똥을 싸며 지켜왔던 게 전부 무너지진 않길 바라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천후 너는 모질지가 못해서 큰일이다."
"나도 일본 정부나 진구지는 싫어. 그래도…. 민간인이 다치는 걸 어떻게 두고 봐."
"후우."
천후보다 해당 문제에 좀 더 감정적이었던 강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민간인 여론이 안 좋아서 쫓겨난 녀석이 할 이야기는 아닐 텐데, 참 속도 좋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잖아. 찜찜한 날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그렇지."
바로 어제까지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해 산타 복장을 하고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한가득 안겨줬었던 천후였다.
사무실 안에는 아이들과 라즈베리가 장식해둔 미니 트리와 장식들이 이곳저곳에 걸려있어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온몸으로 알리고 있었다.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기분인지, 다 같이 화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라이징 선이 지상에 떨어져 내렸다.
*
"크군."
몇 번의 분출 이후, 어느 정도 안정화된 후지산의 정상에 내려선 진구지는 오로치를 바라보며 감상을 밝혔다.
머리부터 꼬리 길이 200m, 다리는 4개 모두 땅을 짚은 채 똬리를 틀고 분화구 위에 누워있는 것이 장관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멀리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힘들 정도의 뜨거운 용암 안에 완전히 몸을 파묻은 채 누워있는 놈은 그 무엇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공격대원 전원 비행."
다나카 유우마가 죽고 임시로 임명한 공격대장의 지시에 따른 진구지는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그제야 놈의 전신이 눈에 전부 들어왔다.
"흥."
진구지는 놈을 보고 전의를 불태우며 도를 뽑았다. 부상당해 누워있던 사이에, 그리고 아마테라스를 정리하면서 일본 일리미네이터의 총 전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히로후미를 포함해 B랭크 4명이 사망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번 레이드에 100명 가까운 인원을 투입할 수 있었다.
타국 정규공대가 웨이브를 맡아주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전력으로 놈을 무찌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많았다. 정부 측에서도. 라이징 선 자체 전력분석에서도.
그런 상황임에도 출격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른 것은 진구지 나름의 사기를 북돋기 위함이기도 했다.
"레이드 시작!”
외침과 동시에 후지산 사방에서 오오라가 치솟아 올랐다. 그것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후지산 정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용암에 몸을 담구고 있었던 괴물이 움직인다. 그것만으로도 산이 떨리고, 잠잠해졌던 분화구가 들끓었다.
“키에에에에에에!”
여덟 머리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인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제야 상대를 제대로 판별한 괴물이 아가리를 벌렸다. 그 안에 도쿄를 화마로 뒤덮이게 했던 화염이 맺혔다. 그 순간.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통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발사!”
놈이 느긋하게 분화구에서 일어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간 동안 캐스팅은 끝나 있었다. 혹시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여 풀 캐스팅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60인의 하프 캐스팅이 놈에게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피할 곳 없이.
콰르르릉!
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보조와 교대로 빠져있던 인원을 제외한 전원의 공격. 하지만 공격대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회피!”
분명 초화력이 퍼부어져서 놈의 몸엔 구멍이 뚫려있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잠깐 균형을 잃고 휘청대는가 싶었던 놈은 그대로 입에 머금은 화염을 내뱉었다.
쿠화아아아악!
여덟 머리에서 쏘아진 불길은 정확하게 날아다니는 일리미네이터들을 노렸다. 워낙 뿌려대는 범위가 넓어서, 이걸 전부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브레스의 중심점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가 최소한의 피해만 보게 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스치듯이 맞은 이들조차 비명을 내질렀다. 보조 인력이 충분히 투입되어 모두 화염 방어 마법을 걸고 있는데도 그랬다.
리타이어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마나 오래 계속될지 모르는 레이드 내내 이런 고통을 이겨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키에에에에에에!”
완전히 용암 속에서 걸어 나온 오로치는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한차례 포효를 내지른 놈은 그대로 산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오며 머리를 놀렸다.
“빨라!”
“크!”
드래곤 만큼은 아니지만 오로치도 멸급 디제스터. 천연의 방어력 때문에 한 명의 공격만으론 제대로 상처를 입힐 수 없다. 그 때문에 여럿이 뭉쳐서 공격해야 했는데, 그것은 곧 놈이 노릴 타겟이 줄어든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일리미네이터들도 제대로 놈에게 피해를 주려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쐐애애액!
크게 호를 그리면서 움직이던 놈의 목 중 하나가 갑자기 말이 안 될 정도로 쭉 하고 길어졌다. 지금까지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던 팀 하나가 놈의 머리 옆쪽에 받혀서 허공에서 핏물로 변해 갔다.
“쿠루루루…!”
시체 일부는 놈의 입으로 굴러 들어갔는데, 놈은 그 완전히 찢긴 다리를 씹는 과정조차 없이 그냥 삼켜버렸다.
“으, 으으으으!”
<오로치 패턴 확인. 목 길이 조절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미미르가 말해왔지만, 이미 희생자가 난 상황. 모든 이들이 치를 떨면서 피하는 데 집중했다. 지상에 숨어있던 이들도 그리 안전하지 않았다. 목을 움직이면서 그때마다 화염을 조금씩 뿜어내는데, 그것만으로도 주변 지면이 불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피하는 데 급급하군!”
한참을 날아다니던 진구지는 혀를 찼다. 놈은 하늘을 날지 못하지만, 날아다니는 것을 공격할 수단은 확실히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로 여러 팀을 동시에 공격하니, 도저히 공격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체엣. 유우마만 살아 있었어도!’
그렇다곤 해도 결국 8개 동시 타게팅이다. 한 팀에 5명씩, 40명이 쫓기면 그때마다 여유가 있는 팀을 돌려가며 딜을 계속 할 순 있을 터였다. 하지만 유우마가 죽고, 경험이 일천한 임시 공격대장이 그 자리를 맡자 그때그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하쿠네 레이드로 단련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패턴이 전부 파악된 다음의 이야기. 진짜 실전을 치르는 입장이 되자 역량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공격대장 팀! 전장 이탈! 원거리에서 지휘하라!”
그렇다고 지금 와서 공격대장을 갈아치울 수도 없는 노릇. 진구지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 할 수 있단 페널티를 감수하고서 그를 멀리 보냈다.
그제야 몸이 편해지고, 시야가 넓어진 공격대장이 제대로 된 딜 사이클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4개 팀을 포인트맨으로 지정해서 놈들의 주의를 집중적으로 끌 수 있게끔 했다.
그것만으로도 공대원들은 크게 수월해진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동안 오로치는 처음 공격받았을 때의 피해는 모두 회복하고 말았다.
‘재생력이 대단하다!’
따지고 보면 2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놈의 몸은 깔끔해져 있었다. 이건 곧 지속적으로 꾸준히, 재생력 이상의 공격을 퍼부어야 한다는 소리. 지금 상황에서 그게 가능해지려면….
“머리에 딜 집중!”
놈의 택틱 전부가 저놈의 머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날뛰고 있는 대가리 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상대하기 편해진다. 그렇게 판단한 공격대장의 지령이 떨어졌다.
“으아아아!”
“이리와라!”
화아악! 섬광이 터트리며 포인트 맨 팀들이 놈들의 머리를 한 점으로 유인했다. 근, 중거리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춤추는 부나방과도 같은 움직임에 괴물들은 아가리를 벌리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딜러!”
“지금!”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섬광이 터진다. 하지만 이번엔 단순히 움직임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진정한 공격. 그리고 그중에는….
“죽어라아아아아!”
진구지 하야토의 공격도 섞여 있었다.
뽑아든 일본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자, 거기에서 백색 섬광이 튀어나왔다. 검에서 발사된 그 섬광은 포인트맨을 쫒던 오로치의 머리를 관통하고서 후지산 능선에 커다란 흠집을 내고서야 멈췄다.
쿵! 쿠쿠쿵!
수십 미터 길이의 목이 지면으로 떨어지며 그 피로 비가 내렸다. 진구지는 그 비를 맞으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역시 놈의 공격에 상당히 고생한 상태였다. 거기에서 간신히 풀 캐스팅을 딜레이해서 지근 거리까지 다가가 작렬시켰으니 그 희열이 대단했다.
“빌어먹을 놈!”
“키웨에에에!”
목 네 개를 잃고서 날뛰는 놈을 보고서 진구지는 미소를 지었다. 이 타격은 이놈에게도 치명적일 터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놈의 목을 잘라낸 절단면에서 다시 머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재생이 그나마 조금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다면, 저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목이 길어지진 않았지만, 불 뿜는 목적으로는 쓸 수 있을 정도의 형태는 되었다.
“저건!”
<머리 재생. 오로치는 8개의 머리를 항상 유지합니다.>
“젠장!”
일리미네이터들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목 자체가 당분간 길어지진 않을 거 같으니 그나마 낫지만, 이래서야 고생해서 목을 딴 의미가 퇴색한다.
게다가…. 문제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꾸루루….”
“꾸루루루….”
“아니?!”
촤악. 촤아악!
베어냈던 머리들에 갑자기 다리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제자리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구지 외의 공격도 받아서 엉망진창이 된 몸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대가리 형태 자체는 유지하고 있는 놈들이었다.
졸지에 하수인을 만들어낸 격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하수인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중 셋은 자신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공격을 한 적을 향해….
“!!!”
진구지의 몸이 빠르게 하늘을 노닐며, 입과 손이 움직였다. 그가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포착한 보조 팀들 역시 전력으로 그에게 화염보호 주문을 중첩해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완성되기 전에―
“키웨에에에에!”
목을 잃은 충격에서 벗어난 오로치 본체의 입 역시 함께 벌어져, 그가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화염으로 틀어막았다.
“아! 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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