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키웨에에에에!!!!"
여덟 머리 가진 괴물이 포효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떨리고, 산천초목들이 몸을 떤다. 놈을 잡기 위해 칼을 갈아왔던 사냥꾼들조차 얼굴색이 창백해지며 다리를 후들거렸다.
놈에겐 드래곤처럼 초자연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힘은 없었지만, 놈을 바라보며 진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반수 이상이 바로 어제 끔찍한 피해를 보고서 패퇴한 이들이었고, 그 충격은 당연히 남아있었다.
"쿠루루루루…."
녀석의 아가리에서 불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차가운 겨울. 그 열기로 인해 허연 김이 피어나며 불길의 전조를 알렸다. 공격대 전체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공격.
"강호 씨!"
그때. 통신기에서 특정한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하기도 전부터 준비를 마치고 있던 이강호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검을 뽑았다.
"카아아아아앗!"
놈들은 한계까지 들이쉬던 숨을 크게 내쉬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 입에서 나온 것은 그저 흰 연기에 불과했다.
"크룩?!"
이 상황에 당황한 건지, 오로치가 잠시 움직임을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로 그 순간.
"하아아아!"
푸칵! 땅에서 치솟아 오른다 싶었던 전격이 하늘 위에서 떨어져내려 놈의 긴 모가지 시작 부분에 내리꽂혔다.
파육음이 터지며 놈의 목살과 뼈다귀가 끊기며 목 하나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키웨에에에에에!"
꾸둑. 꾸두두둑. 목이 끊어진 자리에선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근육이 특정 형태로 솟아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머리 형태가 되었다. 뱀의 머리 모양으로. 그러나 그 길던 목은 없어져 아주 기형적인 모양새가 되었다.
"통했다!"
공격을 가했던 천후는 씩 웃었다. 드래곤 때완 다르게 이놈의 방어력은 그렇게 대단한 편은 아니다. 대신 놈이 가지고 있는 것은 강력한 재생력. 자잘한 상처를 입히는 것으론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번 공격대는 최대한 화력에 집중한 형태였다.
천후는 동시에 끊어진 목이 하수인으로 변하려는 것을 내리찍었다. 충격파가 터지며 목이 비명을 지르며 임시로 생겨난 다리들이 부러지고 쓰러진다. 그 뒤로 놈은 움직이질 못했다. 본체와 떨어진 후부터는 재생력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던 정태원은 빠르게 말했다.
"방어력 판단 확정. 전 공격대원 부채꼴 대형."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리미네이터들이 움직였다. 이미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저놈을 어떻게 잡자는 이야기는 끝나있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연습할 시간은 없었지만…. 적어도 공격팀 대부분은 기존 DS출신들인지라 쉽게 따라주었다.
부채꼴 대형은 간단히 영천후가 탱킹하고 있는 머리 쪽으론 절대 가지 않는 대형을 의미했다.
라이징 선 레이드 땐 오로치를 원형으로 포위했다면 DS는 오로치의 정면에 영천후 하나만을 두고 오로치의 측, 후방만을 반원을 그리며 포위했다.
"후우우우…!"
진형이 갖춰지는 것을 본 천후는 숨을 고르며 오로치의 앞에 섰다. 지금 이 진형은 영천후가 오로치의 머리를 전부 상대할 수 있단 전제로 짜인 진형이었다.
과연. 영천후의 공격에 자극을 받은 건지, 놈들의 머리 전부가 뒤를 향하지 않고 오로지 그 하나에게 쏠렸다.
진구지 하야토가 풀 캐스팅 방출마법을 사용한 이후 가장 위험한 개체로 찍혀서 브레스 세례를 받았던 것처럼, 천후 역시 그렇게 지정된 것이다.
8개의 뱀 머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저 혀 길이만도 사람 키를 우습게 넘기는 놈들이 저러는 꼴을 정면에서 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좋아. 어서 덤벼보라고."
특유의 전투고양에 휩싸인 천후는 되려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까닥여 보였다.
"캬아아아악!"
후우우우웅! 놈의 거대한 머리가 하늘과 땅, 공간을 전부 점유하면서 덤벼들었다. 브레스가 뜻대로 나오지 않자 직접 물어 죽이려 드는 것이다. 움직임 자체는 단조롭지만, 그 크기가 워낙에 거대하다!
"음!"
잠시 인상을 굳힌 천후는 순간 암전이 되어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음속이 넘는 속도로 지면을 직접 박차면서 회피기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몸에서 시작된 소닉붐이 도로와 건물들을 훼손시켰지만, 그는 그것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을 쫓는 머리들은 그것들을 마치 푸딩처럼 무너뜨렸으니까.
놈을 이 자리에서 상대하기로 한순간, 이미 저것들은 무너지라고 있는 조형물에 지나지 않았다.
'캬아아악!"
"쉐에에에엑!"
쿵! 쿵! 천후가 있던 자리에 놈들의 머리와 아가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때마다 땅 울림이 일어나면서 주변은 완전히 황무지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나 하나를 오래 따라다니는군!"
천후의 일갈과 함께, 놈의 몸 뒤편을 점한 공격대가 있는 곳에서 섬광, 아니 빛의 격류가 터져 나왔다. A랭크와 B랭크가 대폭 보강된 방출마법의 응집이 놈의 몸에 작렬한다!
"크웨에에에에에엑!"
푸확! 단숨에 놈의 몸이 반 가까이 날아가면서 천후를 쫓던 놈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놈의 몸에는 직경 40m가 넘어 보이는 바람구멍이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아무리 멸급 디제스터라지만 이 정도 피해는 치명적!
"됐다!"
초반에 워낙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제 계속 공격을 가해서 끝장내는 것만 남았다고….
멸급 디제스터와 만나본 적이 없던 일본 일리미네이터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전원 회피!"
드래곤을 상대해보았던, 그리고 멸급 디제스터 상정 훈련이 일상인 DS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 지령이 끝나기 무섭게.
쿠…쿠르르릉…!
"으아아악!"
"이, 이게 뭐야?!"
갑자기 멀쩡하던 땅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지면에 균열이 이는 걸로도 모자라 눈에 보이게 침강과 융기를 반복했다. 마치 땅이 원해의 파도라도 된 것처럼 출렁거려, 지면에 남아있던 보조팀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보조팀! 비행! 빨리!"
전원 회피라는데 왜 남아있고 지랄이야?! 정태원은 욕지기가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외쳤다. 다행히 그 소리를 듣고 반수 가까운 이들은 하늘로 떠올랐지만, 나머지 반은 캐스팅을 유지하지 못하고 진도를 측정하는 것이 무의미한 지진에 휩쓸려 비명만 내지를 뿐이었다.
그 사이에 미미르의 음성이 파고들어 왔다.
<오로치 제2페이즈로 판단. 지진 및 일부 자연현상을 통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갈라지고 벌려진 지면 사이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격대원들은 황급히 지면에서 튀어 오른 파편들을 피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는 시뻘걸 불길…. 용암이 치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지면에 남아있던 보조팀의 비명은 이제 절규가 되었다.
*
콰쾅! 콰콰쾅!
오로치가 나타날 때 한차례 분화한 이후 잠잠해졌었던 후지산이 다시금 요동치고 있었다. 그 피해규모는 당장 파악하기엔 너무 천문학적이라 일본 정부에선 잠시 손을 놓고 있었다.
터져 나온 화산재는 하늘을 뒤덮다 못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나 태평양 여러 섬까지 떨어지고 있었고, 태양열을 차단해 일본의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었다.
"이 미친. 이래서 멸급 디제스터 레이드엔 참가하기 싫었어."
"진짜 다행이군."
오로치 레이드가 시작된 이후 물밀듯 몰려나오는 하쿠네, 카마이타치, 시라누이를 상대하던 머니 크래프트와 컨퀘스터 일동은 치를 떨었다.
멸급 디제스터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단순히 육체적인 부분을 넘어선다. 드래곤 때는 기상을 조절해서 용오름을 만들어냈듯이, 놈은 강제적으로 지진과 화산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범위도 굉장히 넓어서 아직 오로치의 모습도 안 보이는 도쿄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진도 8 이상의 강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대륙판이 만나는 곳 한가운데에 있어서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지면 약한 곳도 많은 나라인데 이렇게 간헐적으로 흔들리면…. 다시 한 번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이것만 해도 당시의 것에 가까운 흔들림이었다.
"샤아악!"
"에잇, 꺼져!"
푸칵! 막 나타난 카마이타치를 등장과 동시에 먼지로 만들어버린 컨퀘스터의 B랭크는 혀를 찼다. 이미 도쿄 시가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일본은 경제 대국. 이 나라가 이런 식으로 무너진다면 세계 전체에 그 여파가 미치리라. 그나마 잡을 수 있으면 모를까 잡지 못한다면?
"알트! 다음 텔레포트다!"
"알았어! 빌어먹을!"
그나마 다행인 건 오로치의 하수인 놈들은 정말 빠르게 끝장내고 있단 점이었다.
오로치의 등장지점이 후지산인 만큼, 하수인들은 그 주변 50km 이내에 출몰해 혼슈 내를 헤집고 다니며 도심지까지 찾아오는 식이었는데, 이에 대한 대비는 확실하게 되고 있었다.
EU에서 나타났던 멸급 디제스터를 상대할 때 겪었던 고난을 떠올린 그는 입맛이 썼다.
"DS. 대단하군…."
DS만이 허가받은 대규모 텔레포트 시스템은 지금 일본에선 임시로 작용하느라 전 국토를 커버하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효과. 선망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느끼는 것은 선망만은 아니었다. 이그네스 때는 영국이 위기인데도 출동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꼬리를 말았다. 목숨 부지를 위해서라지만 부끄럽다.
그나마 여기서 부끄러움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맡은 일이라도 제대로 해내는 것이리라. 그들은 이 와중에도 텔레포테이션 캐스팅을 유지하는 DS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아. 아아아아아…."
레이드 상황과 도쿄 시내의 상황을 보고받은 유우베 고죠는 의자에서 몸을 덜덜 떨었다. 손에선 핏기가 완전히 빠져나가 마치 시체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방금 직접 조인을 해야했던 파견 동의서도 일본 역사에 남을만한 오점이 될 테지만, 도쿄 시내가 지진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태 당시 간 나오토의 심정이 이랬을까?
"군…. 웨이브를 상대하는 자위대의 상태는 어떻소?"'
"큰 피해 없이 막아내고 있습니다. 머니 크래프트, 컨퀘스터의 역량이 뛰어나고, 텔레포트가 허가되어 자위대가 움직일 일이 최소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공격대는 파급까진 몰라도 하쿠네까진 육상 자위대가 투입될 일이 없게 만들고 있었다.
하쿠네 출현 반경을 예측해 포위해서 병력과 일리미네이터를 배치해둔 것이 큰 효과를 보고 있었고, 정말 이것 하나만이 위안이었다.
"지진…. 지진 피해는?"
"오로치 레이드가 끝나기 전엔 집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진이 도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라…."
오로치를 중심으로 사방 수십 km에 걸쳐서 계속적이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일본이 지진대비가 잘 되어있다 한들, 이건 겪어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왜…. 왜 하필 내가 총리일 때에…."
유우베 고죠의 정치 인생은 순탄한 편이었다. 종전 이후로 긴 세월이 흘렀고, 당시에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은 많이 사라졌으며, 지속적으로 교육에 손을 써온 결과 일본 젊은이들은 과거에 대해 확실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파고 들어가 일본 피해자론, 군국주의, 우경화를 무기 삼아 정적들을 견제하고, 자신은 능력 있는 불도저의 이미지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것은 총리가 되어서도 잘 먹혔고, 그와 자민당은 다시금 오랫동안 일본의 정점에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허나 어느 시점부터 일이 꼬여…. 이제 모든 것은 외국에서 불러온 이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에겐 그걸 저지할 힘은 없었다.
오로치 사태가 끝난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총리의 목이 날아가는 것이 일본이다. 오로치 사태가 끝나는 그 순간. 그는 총리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터였다. 아니 과연 그것만으로 끝날까?
이미 그의 머릿속엔 오로치 레이드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기 보신에 대한 생각뿐.
탁자에 얼굴을 쳐 박은 그의 이빨은 끝없이 딱딱 맞부딪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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