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남자, 알자드 무자헤딘은 갈색의 군복을 입고, 발에도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이전 양복을 입었을 때보다도 더욱 노골적으로 화약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무장병력이 있군.'
알자드 본인은 무장하지 않았지만, 보호소 주변을 돌아다니는 같은 군복 차림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손에 대놓고 개인화기를 들고 있었다. 천후는 경각심을 바짝 곤두세웠다.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단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러니 들어오시죠. 시설은 보잘 것 없습니다만."
"사양 않겠습니다."
답한 그 순간 그와 함께 마중 나왔던 아이들이 와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각자 하나씩 들고 있는 바구니에 담긴 꽃들을 뿌렸다. 그것을 맞으며 천후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알자드의 난민 보호소는 그 규모가 대단했다. 거의 어지간한 아파트 단지 4개 정도는 들어갈 만한 공간을 전부 난민보호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시멘트로 된 단조로운 2층 가옥들이 주욱 늘어서 있어서 있었다.
처음 만들 때부터 완전히 계획해서 만든 것인지,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이 완전히 동일했다. 가옥 문 앞에 붙어있는 주소나 도로명이 없었다면 아예 구별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 집이 약 2,000채. 약 1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워낙 커서 그냥 보면 일반적인 시내와 다르지 않지만, 보호소 주변에 둘러쳐진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이들이 터키 일반 사회에서 격리된 이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벽 위의 초소와 거리 곳곳에 무장한 남자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 역시.
"엄청난 규모군요."
"요 2, 3년간 쏟아져 들어온 난민만 해도 수백만이 넘어가니까요. 이 정도로 해놓아 봐야 전체 수에선 티도 안 납니다."
"식사를 배급하는 것만도 일이겠습니다."
"중간중간에 좀 큰 건물들이 보일 겁니다. 그게 식당이죠. 식량을 대량 구매해서 거기서 조리를 직접 합니다. 대량 취사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보호소 내에 몇 없는 일자리다 보니 지원자는 늘 많죠."
보호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이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자국이 망가졌다면 터키 사회에 어떻게든 합류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난리를 피해서 제 몸 하나 간신히 건사해 나온 사람들이 돈이 있을 리가 없었고, 같은 생각을 하는 난민은 많았으며…. 터키 정부는 일자리가 난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어렵고, 부상 위험이 크며, 봉급은 적은 일자리만이 그들에게 간신히 주어졌고, 그것마저 감사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난민 보호소 안에 살아가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아주 귀중했다.
"이 시설에서 가장 핵심으로 삼는 부분은 의식주, 그리고 교육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많이 받으니까요.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미래가 없죠."
알자드의 말마따나 거리에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개중에는 가방을 멘 아이들도 보이고,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알자드의 부름에 응해서 꽃을 뿌리러 온 아이들도 있었고.
겉으로 보이는 이 난민 보호소의 사정은 이전 라즈베리가 말해준 것처럼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배급되고, 전기와 수도도 한정적이지만 공급된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주고 있다는 시점에서 훌륭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훌륭한 일을 겉으로 하면서 뒤에서는 사람을 거래하고 있단 말인가? 천후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천후는 알자드의 뒤를 따르며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건물과는 달리 4층 높이 건물에 도착한 알자드는 천후와 함께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거리 전체에 감돌던 빈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수제 양탄자와 푹신한 소파, 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탁자와 각종 전자 기기가 놓여있는 방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알자드가 손님을 접대하는 곳인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다녀오셨나요, 마스터?"
방 안으로 들어가자 머리에는 카츄사를 쓰고 메이드 복을 입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들이 깍듯이 그에게 인사했다. 알자드는 그것을 듣는 둥 마는 둥 안쪽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래. 아아. 손님들 몸 좀 털어드려라."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알자드의 말에 소녀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이들이 뿌려댄 꽃과 먼지투성이가 된 셋의 몸을 털어주었다. 이런 일에 익숙한지, 먼지가 피어오르는데도 인상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한편, 그들을 살펴보던 최완의 표정이 굳었다.
"이 아이들은!"
"왜 그러세요, 아저씨. …설마?"
"……."
천후의 물음에 최완은 말이 없어졌다. 대신 그의 몸에서는 은은한 오오라가 감정의 기복에 따라 흘러나왔다. 그것이 답변을 대신해줬다. 천후 역시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 둘은 '처리'가 끝난 마법사들이었다.
"자아. 그럼 앉으시죠. 얘들아. 차 좀 내와라."
알자드의 명에 따라 둘은 말없이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천후는 최완의 어깨를 지그시 한 번 짚었다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몸을 떨고 있던 최완은 결국 그의 옆에 앉았다.
그들이 모두 착석할 때까지 기다렸던 알자드는 메이드들이 차를 내오고 나서야 깍지를 끼면서 물었다.
“자아. 그럼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볼까요? 즐거운 거래 이야기를….”
짙은 다크서클 안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
실내에는 홍차 향뿐만 아니라 아로마를 피워놓았는지 희미한 꽃향기가 났다. 하지만 천후의 후각에는 여전히 화약과 철… 아니 피 냄새가 잡혔다.
꽃향기가 진해지면 진해질수록 같이 짙어지는 느낌. 천후는 그제야 이것이 단순히 냄새가 아니라, 알자드라는 인간에게서 자신이 느끼는 이미지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눈 아래 깔린 검정은 피로의 검정이라기보단 무감정의 검정이었고, 웃음 짓고 있는 지금 역시 그랬다.
위험한 느낌. 극단적인 이질감이 그에게는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온 인간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
그것이 포근한 분위기의 방안에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끈적끈적한 타르가 섞인 연기처럼.
'이 이미지에 속박당해선 안 된다.'
천후는 온몸에 얽혀오는 이미지들을 뿌리쳐냈다. 이것에 속박당해선 그와 말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으리라.
잠시 숨을 고른 천후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당신과 할 수 있는 거래는 제한적입니다. 저희의 용건은 짐작하시겠지요.”
“아아. 뻔하죠. 입양 문제겠죠.”
“입양….”
"네. 난민 아이들의 상당수는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니까요. 개중에서 조건에 맞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고 있지요."
"그 조건이라 함은?"
알자드는 턱에 손을 괴었다. 입가에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슬픈 이야기입니다만-"
이렇게 말한 그의 표정에는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저는 인간은 하늘 아래서 모두 평등하다고 믿습니다만, 입양아를 찾는 부모들은 이것저것을 따지지요. 그래서 입양 매니지먼트에도 조건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외모가 있지요. 그 외엔…. 병을 앓은 적이 있는가. 성 경험이 있는가의 유무…."
"성 경험?'
"이 아래쪽에서 설치고 있는 악마들은 아이들이 초경을 겪기 전에도 억지로 범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요. 슬프게도, 그렇게 '더럽혀진' 아이들을 원하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
천후와 최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얼굴들을 보고 알자드는 큭큭하고 웃으며 조금 더 목소리를 은근하게 바꿨다.
"하지만 아마… 두 분께서 묻는 건 이런 쪽이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그래요. 마법의 유무라던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내놓은 말에 최완의 입에서 노성이 새어나왔다.
“용건을 알고 있다면 간단히 하지.”
“하하.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죠. 이래 봬도 저도 지금 꽤 긴장해서 말입니다. 눈앞에 찾아온 사람들이 워낙 거물이어야 말이죠.”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마법사들을 거래하는 것을 그만둬주게. 대신 그만큼의 다른 대가를 치르도록 하지.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래야."
“당신이 엘모세와트에 마법사 공급을 끊는다면 당신의 보호시설. 혹은… 당신 개인에게 투자를 해드리죠.”
"흐음."
알자드의 입가가 슬쩍 뒤틀렸다. 약간 구미가 당긴 게 사실이었다. 특히 후자에.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탁자를 검지로 몇 번인가 두드리며, 최완과 천후를 슥 훑어보았다. 마치 파충류 짐승이 혀를 뻗어 얼굴과 목덜미까지 쭉 핥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 사람의 속을, 역량을 떠보려는 눈빛이 숨을 막히게 했다.
그렇게 잠시 둘을 재어보던 알자드가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로 줄 수 있습니까?"
"자네가 마법사를 거래하면서 얻는 연간 이득의 두 배를 주지."
"그것참…. 통도 크시군요. 하하."
알자드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에 따라 그의 구부러진 긴 머리들이 같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알자드는 그러다가 물어왔다.
"그래서…. 그게 끝입니까?"
"뭣?"
"그게 끝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모자란다고 할 셈인가? 그럼 원하는 금액을 불러봐!"
최완의 호통에 알자드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는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소파에 몸을 완전히 기댄 그는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순간, 천후는 그가 지금까지 자신들을 재어보다가 그 판단을 완전히 끝냈음을 느꼈다.
"아아…. 돈은 됐습니다. 두 배면 됐지. 내 말은…. 당신들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돈밖에 없냐는 거요."
"뭐…라고?"
"이거 참…. 말이 안 통하시는 분들이군."
어깨를 으쓱한 남자는 손짓으로 메이드들을 불렀다. 표정이라곤 하나 없는 그 아이들은 그의 손짓에 따라 그에게 다가와 꿇어앉았다. 알자드는 그 둘의 머리를 천천히 매만지며 말했다.
"제가 왜 난민보호소를 운영하고. 마법사 아이들을 팔아넘기고 있는지 아십니까?"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그것도 중요하지요. 중요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간에 관심이 많아서입니다."
"……."
"이곳은 한때, 더 떨어질 곳 없는 지옥에서 간신히 생환한 자들이 모이는 곳. 그래서…. 정말 온갖 사람을 다 볼 수 있죠. 감정의 도가니라고 할까. 그것들을 지켜보는 것이 저의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낮은 목소리가 방안을 맴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그것은 사이한, 유령이 뱉어내는 듯한 내용으로 귓속을 파고들어 왔다.
"그중에서 아이들은 희망에 차있지요. 교육을 받으며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새로운 부모를 만나서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 자신의 마법이 좀 더 낫게 쓰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남자의 손이 머리에서 천천히 내려가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다, 턱을 잡아 둘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했다. 감정 잃은 공허한 눈동자가 보였다. 그 안에는 조명을 반사할 뿐, 본래 있어야 할 빛이 없었다.
"바로 그런 희망들이 천천히 꺼져갈 때. 다시 만났을 때는 완전히 본성을 잃어 인형이 된 모습을 보았을 때의 쾌감을…. 이제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쓰이는 도구가 되었는데도 순순히 따르게 된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당신들이 대신해줄 수 있습니까? 그 대안을?"
목소리 낮고.
차가우며.
기복이 없다.
그 눈에는 광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보고 싶은 건 인간의 모든 감정이지. 모든 감정…. 그 중 절망과 무감정을 대신해줄 수 없다면. 이 거래는 의미가 없습니다."
지극히 미쳐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