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유그드라실로 올라온 최완은 치료마법을 받고 빠르게 회복되었다. 아니, 올라오기 전에 이미 천후가 투닥거리는 동안 상당히 회복된 상태였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턱이 다시 붙어있었으니 말이다.
“아저씨 능력은 정말 끝을 모르겠네요.”
“이런 재주라도 있어야지.”
어깨를 으쓱한 최완은 침대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아까 이야기를 계속하지. 놈은 스스로 스펠 쉐어 상태 된 것 같다.”
“그게 뭐죠?”
“흠.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그렇게 운을 뗀 최완은 눈동자를 슬쩍 라즈베리 쪽으로 옮겼다. 그녀가 함께 듣는 것이 꺼려진다는 사인이란 걸 깨달은 천후는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라즈베리. 아무래도 같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음…. 같이 구해온 아이들을 봐주고 있을래? 아니면 집에 먼저 돌아가 있어도 괜찮아.”
“…괜찮습니다. 싸부. 아이들을 보고 있을게요. 그리고 구출한 사람 중엔 아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번 사건으로 그녀가 받은 정신적 충격도 컸으리라. 그런데도 그녀는 비교적 침착하게 해야 할 일부터 찾으려하고 있었다.
“고맙다. 금방 이야기 끝내고 올게.”
“네.”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준 천후는 병실로 다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최완은 자세를 바로 하고는 입을 열었다.
“마법사가 등장한 지 천 년. 유그드라실이 정식으로 발족한 지 50여년…. 그동안 마법이나 마법사에 대해서 아무런 연구도 되지 않은 건 아니야.”
“…….”
서두에서부터 덮쳐오는 불안감에 천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최완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알아낸 것이 적은 것도 사실이지. 그나마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던 건 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냉전 중기까지일까? 이 당시 보호받지 못하던 마법사는 사람 형상을 한 병기에 지나지 않았다.”
“무슨…소릴 하고 싶은 겁니까?”
“사람을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단 거지.”
최완의 입에 쓴웃음이 걸렸다. 그의 눈길이 두꺼운 자신의 손으로 떨어졌다. 손등에는 털이 숭숭 난 그 손은 천천히 쥐어졌다 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법은 무엇인가. 마법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하면 도구화 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실험은 곧 인체실험으로 이어졌다.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마법사 그 자체 밖에 없었으니까.”
마도 병장. 마도구 역시 결국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마법사가 걸어놓은 반영구적인 마법의 발현이지, 보통 사람에게 마법 그 자체를 사용하게 해주는 편리한 것은 되지 못한다.
결국 마법과 마법사는 한 몸. 결코 분리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나 불편하지. 마법사 역시 인간이고…. 약물만으로 정신을 망가뜨리면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좀 더 편한 방법이 필요했다. 안 그래도 마법사는 귀했으니까 말이지. 그러다가, 한 가지 가설이 대두 되었다.”
“가설?”
“그래. 가설. 마법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고찰. 추측. 그것은 원래 인류 전체가 나눠썼어야 할 초자연적인 힘이 일정 수의 인간에게 쏠려서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법사란 게 확인된 인간을 해부도 해보고, 살아있을 때 검사를 해봐도…. 유전적인 차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결국 또 다른 인간이었다. 이것이 학자들이 내린 결론.
그렇다면 왜 마법을 가진 인간과 가지지 못한 인간이 발생하였는가. 거기엔 어떤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 요인까진 파악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마법이란 본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의 ‘양도’도 가능할 터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문제가 제시된다. 어떻게?”
두개골에 구멍도 뚫어보고, 송과선에 전극도 붙여보고, 별 해괴한 장치를 다 실험해봐도 기구로는 무리였다.
이후, 결국 이 가설에 대한 연구는 공식적으론 여기서 멈추게 된다.
마법사 자체가 워낙 희소자원이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체 실험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으니까.
게다가 이 주제의 실험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선 결국 마법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당장의 결과가 필요한 군이나 정부에선 거의 철학에 가까운 발상으로 시작된 연구에 계속 투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침 그즈음 유그드라실과 SA 랭크 마법사들이 대두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 결과에 관심을 가진 자들도 나타났다.
다름 아닌.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유그드라실이었다. 마법의 근원에 대해 가장 큰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마법사 본인들이란 거지.”
꾸욱. 주먹을 쥔 최완은 말을 이었다.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그 가설은 들어맞았다. 여러 번에 걸친 시험으로 우리는 과거 지상 국가들이 바랐던 마법을 양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방법론적으론 간단했다. 발견한 후엔 말이지. 10명 이상의 마법사가 인간 정신 기저에 존재하는 집단 무의식 영역까지 접속하고서, 일종의 정신적인 그룹을 이룬다. 여기에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해 극단적으로 정신이 고조된 보통 사람을 이 정신적인 연결에 끌어들이면…. 그는 이 10명의 마법사의 리소스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일종의 연결 상태가 된다.”
“…직접 실행해본 겁니까?”
천후의 질문에 최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남아있는 기록에는 그럴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직접 실행하진 않았다고 하더군. 당연한 게…. 일단 저 인간의 집단 무의식 영역까지 접속하는 건 마법의 도움을 받아서 어떻게 해낸다 쳐도, 저 영역에서 정신적인 그룹을 만들면…. 그들의 개인적인 개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려. 마법사 자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인형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만둔 거군요.”
“그래. 우린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을 뿐. 마법사를 잃어가면서까지 저런 짓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려면 그에 근접한 수준의 실험이 있었으리라. 천후는 도저히 굳은 얼굴을 풀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결과 자체를 원하는 놈들도 있었다는 거겠지. 그 결과가 방금 네가 직접 본 광경이다. 게다가 놈은 열 명 정도가 아니라 수십 명 이상의 스펠 쉐어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더군. 그럼 난이도가 더 올라가겠지. 말했듯이…. 보통 사람이 저 정신적인 그룹에 합류하려면 마약에 절여져도 될까 말까야. 정상적인 명상 등의 수단으로 그 정신상태가 되려면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기 직전의 석가모니가 환생해야 할 거다. 저놈은 피 대신 마약이 몸에 흐르고 있을 거다.”
“정말 미친놈이군요.”
단지 저 수혜를 누리기 위해 마약중독 상태를 자진해서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상태에서 보통 때는 사람들과 태연하게 섞여서 난민보호소를 운영하고, 그 운영자금을 끌어들이고 있었다니…. 강철 같은 정신력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한 감이 있다. 무엇이 사람을 저렇게까지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더 문제는…. 엘모세와트가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마법사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어있다는 거다. 우리 역시 연구에 대한 기본 발상과 과거의 자료들이 있고 나서야 간신히 확인한 사항을 놈들은 실제로 활용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또 뭐가 있을지 알 수가 없구나.”
이 스펠 쉐어라는 것은…. 마법사와 그 수혜자를 완벽하게 소비재로 생각하지 않으면 구현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마법사 역시 인간. 그들이 폐인이 되고, 목숨이 날아가더라도 숫자로. 실험체 하나가 죽었다고 생각할 마음가짐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놈들은 해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조건은 이미 패스다. 사람의 목숨은 놈들의 안중에 없다. 그렇다면….
마법사란 도구로 도대체 무엇을 더 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나 냉전 시기에서조차 쉬이 실행하지 못한 짓거리들이 태연하게 자행되었다면…. 그 결과물이 도대체 어떨지?
“지속적인 공급책을 잃어버린 놈들은 테러리스트화 될 거다. 조심하거라. 너의 소중한 것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
어느새 최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있었다. 10년 전. 사연이 있어 받아들인 양자는 이제 그에겐 진짜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할 순 없을지언정.
이 유그드라실은 성층권에 있고, SA 랭크 마법사의 힘으로 지켜지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야 할 아들의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그렇게 놔둘 생각 없어, 아버지.”
자리에서 일어난 천후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찾아낼 거야. 공급책은 끊었으니. 세공하는 쪽을 잡아내야죠. 도와줄 거죠?”
“할 수 있는 한.”
“믿죠.”
그 말을 끝으로 천후는 병실을 나갔다.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사람부터 진정시키러 가야 하니까.
*
천후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라즈베리는 함께 구조된 알자드의 메이드들 곁에 있었다. 유그드라실에 올라오고 나서 유그드라실은 그녀들과 알자드 사이에 연결되어있던 정신 연결을 끊었는데, 그 여파로 둘은 완전히 눈에서 빛을 잃고서 제 자리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실 끊어진 인형처럼 그저 앉아있었다.
“…….”
라즈베리는 가만히 손을 들어서 둘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었다. 방금까지 생기는 없어도 멀쩡히 움직이던 아이들이 완전히 생기를 잃은 모습을 보는 것은 견뎌내기 어려웠다.
특히 그들을 이렇게 되게 만든 것이 지인이란 걸 알아버린 이상….
“알자드….”
집안에서 추천했었던 서포터였다. 좀 신경질적인 면이 있었지만, 정을 붙일만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진면목은 그녀가 몇 년간 봐왔던 그의 모습과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여태까지 그걸 몰랐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그녀가 좀 더 그에 대해서 잘 알았다면 천후에게 빨리 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티 나게 전 세계에 포위망을 좁혀나가는 작업도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좀 더 깔끔하게 이들을 동시 습격할 수 있었을지도.
그 모든 전제가 그녀를 괴롭게 했다.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정신의 원초적인 영역. 자신이 자신이 아니고 모두인 영역. 모두가 자신인 영역. 그 경계가 모호한 곳에서 막 돌아온 아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아를 구성하지 못해, 인간의 육신만 가진 사기그릇이 되어서 이렇게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이들이 재활을 마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그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하나.
그녀를 사로잡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의문.
‘정말로 몰랐을까?’
응? 라즈베리 미키스트리. 알자드와 알고 지낸 시간이 몇 년이지? 그와 연을 맺고 노블레스 클럽을 전전한 기간만 3년이다. 그의 난민보호소에서 지낸 기간도 결코 짧지 않다. 그러는 동안 그의 의도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나?
라즈베리는 ‘자신’의 생각에 당황했다. 이 생각은…이상하다.
분명 자신이 하고 있는데도, 귓가에 이명이 울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속삭이는 감각. 가지고 노는 것 같은 목소리가 그녀를 혼란에 빠트렸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일을 알고 있었다면 그녀라고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히어로를 동경하는 그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고 까진 말하지 않아도, 해결해줄 수 있는 주체가 곁에 얼마든지 있었던 이상 말조차 못할까?
그녀의 곁엔 천후가 있었고, 그전에는 노블레스 클럽의 수장 안소니. 월드 리버티의 수장 패트릭이 있었다. 이것은 기우였다. 그녀는 이 사실에 대해서 처음 알았다.
그랬을 터였다.
꼬옥.
무심코 아이들을 끌어안은 라즈베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바로 그때….
“언니….”
“파파가 부르셔….”
지금껏 미동조차 하지 않던 아이들이…. 눈을 마주쳐왔다. 라즈베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들이 움직여서. 그녀들이 말을 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녀들의 눈동자에 비친 것에 놀랐다.
그것은…. 녹색 안광을 가진 소녀.
그 순간. 소녀는 깨달았다.
이들은 자신과 같음을.
“라즈베리. 이야기 끝났어.”
메이드 아이들이 있는 병실을 찾아 들어온 천후는 문을 연 순간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인형처럼 늘어진 두 여자아이의 앞.
의자에 앉은 갈색 단발머리 여자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분명 외모는 같은데도 도저히 라즈베리라곤 생각되지 않아,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라즈…베리?”
그의 목소리가 한차례 병실 안을 돌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소녀의 얼굴에 표정이 돌아왔다.
아주 살짝 미소를 머금은 처연한 얼굴.
“네. 마스터. 오셨습니까?”
지금의 라즈베리라면 지을 수 있는 표정.
그제야 천후는 안심하면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그 손을 잡아왔다. 천후는 그대로 그녀와 함께 지상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방금 보았던 그 얼굴을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순간 희주 씨인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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