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이탈>
터키 국경 인근의 난민 보호소에서 알자드와 협상이 결렬된 직후, 유그드라실은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보호소들까지 같이 덮쳤다.
사전에 습격이 예상되었던 만큼, 많은 마법사들이 빠져나갔지만 그럼에도 100명에 가까운 마법사를 구해낼 수 있었다. 개중에는 ‘처리’가 끝난 이들과 아직 자행되지 않은 이들이 섞여 있었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유그드라실의 반협박과 정규 공격대 연합, 그리고 서방국가의 적극적인 압력이 해당 국가들에 작용한 덕분이었다. 이 습격을 정식으로 승인받는데 들어간 로비자금만 해도 천문학적이었다.
그럼에도 유그드라실은 크게 기뻐할 수 없었다.
알자드에게 마법을 부여해주는 ‘스펠 쉐어’. 그 구성원의 대부분은 빠져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에 구해낸 마법사의 수는 전체의 1/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 나머지 2를 추적하는 일 역시 유그드라실의 몫이었다. 텔레포트를 반복하며 도망가는 대상을 추적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국 그들뿐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이 끌어안은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난리통에서 난민 보호소의 총 책임자였던 알자드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사라져도 난민은 남는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곳곳에 퍼져있는 그의 난민보호소에서 보호하던 난민의 수는 무려 34만 명.
이들의 명운은 이제 고스란히 유그드라실의 손에 떠넘겨졌다.
뒷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아랍권 시민들은 이것을 서방의 강압적인 개입으로 받아들였으며, 갑자기 지도자를 잃은 난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반발과 마주해야 했고, 동시에 테러리스트화 되었음을 확신하는 알자드 세력에게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했다.
유그드라실 뿐 아니라 이제 마법사 세력…. 정규 공격대들 역시 ‘지키는 입장’이 되었다. 언제든지 낭인이 되어서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이들과는 다르게, 마법사. 일리미네이터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쌓아온 입지와 자신의 안전 양쪽 모두를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DS도 마찬가지였다.
*
2월의 끝자락임에도 올해 겨울의 추위는 여전했다. 겨울 하면 삼한사온을 떠올리는 것도 무색하게 올해는 따뜻한 날을 별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아. 엄청 춥네.”
“그러게….”
하지만 이 추운 겨울 날씨에도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도쿄 신주쿠 역. 환승 노선만 10개에 달하는 이곳은 세계에서도 가장 복잡한 지하철역으로 손꼽힌다. 일본 서브 컬쳐에서 신주쿠가 던전으로 변하는 소재를 사용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만큼 이곳엔 하루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이용했다. 일일 이용객만 500만이 넘는 역사.
이곳에서 디제스터가 한 번 출현하면 그때마다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곤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쉘터를 늘리는 것 외에는 손을 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로치 사태가 끝난 이후. 일본 역시 얼마간 디제스터가 출현하지 않게 되어 이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난장판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에 오히려 더 늘어났다. 그리고 사람이 늘어나다 보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멍하니 홀로 서 있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나타난다든가 하는.
“…….”
소녀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인파 사이에서 그저 서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녀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지만 그뿐이었다. 이 바쁜 현대사회에서 자신과 관련 없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힘든 행위.
게다가 어린 소녀다. 잘못 말을 붙였다간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 현재 일본의 아동 보호는 매우 엄격해서, ‘뒤에서 따라오던 사람이 수상하게 생겼다’라는 이유로 경찰을 불러 임시 구속을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미아로 의심하고 함부로 돕겠다고 잘못 나섰다간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들이 그녀의 존재를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지웠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소녀의 손이 움직였다. 인파를 향해서.
그것은 어린아이의 의미 없는 율동. 잠깐 눈을 두는 이들은 있어도 아무도 그것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전까지는.
“세상을 지배해야 하는 것은 우리 마법사다. 우리야말로 새로운 신인류다. 너희는 우리에게 보호받으면서도 아무런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니 모두 죽어 마땅하다.”
그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에는. 그 내용에 거리를 지나던 모든 사람들이 움찔하여 그녀를 돌아보았다.
사람 사이에서 마법사가 나올 확률은 1/10,000. 하지만 외부에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인원수는 그것보다 더 적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마법사를 보는 경우는 보통 디제스터가 출현했을 때, 일리미네이터를 봤을 때 정도였다.
그것도 사실상 상황 종료 후 편집이란 편집은 전부 끝낸 영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고, 직접 마법사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마법사란 일리미네이터였고, 그들은 이 사회를 유지해주는 구성원 중 하나였다. 허나 지금 이 순간.
그 당연한 전제가 뒤집히려 하고 있었다.
소녀의 손에서 섬광이 터졌다. 그 섬광은 열파로 변하여 정면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던 수십 명의 사람을 사람 모양의 불탄 고깃덩이로 바꾸었다. 열파는 2차로 충격으로 변해 통로를 뒤흔들었다.
“꺄! 꺄아아아악!”
“도먕쳐!”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달은 시민들은 그녀에게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선 자리에서 수십 미터 밖의 목표물도 쉽게 맞히는 마법사에게 도보로 도망치는 사람을 쏴 죽이는 것은, 슬프게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콰쾅! 다시 한 번 폭발이 터지며 지하 통로의 모든 전등이 먹통이 되었다. 간신히 작동한 몇몇 비상등만이 대피로를 표시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곳으로 도망칠 힘이 남아있는 사람을 얼마 남지 않았다.
<신주쿠 환승 통로 내에 매지션 레이지 발생 경고! 모든 시민은 쉘터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비명과도 같은 경고 방송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디제스터 때와 마찬가지로 쉘터를 찾았다. 디제스터의 공격도 막아내는 이 안이라면 분명 안전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러나….
“어디에 숨어도 소용없다.”
“히이이이익!”
굳게 닫힌 쉘터의 문을 반투명해진 상태로 뚫고 들어온 소녀는 다시 한 번 손에 빛을 모았다. 영체화. 아주 특수한 디제스터나 가지고 있는 특성이었지만, 마법사인 소녀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학살.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전혀 저항하지 못했고, 그녀와 직접 조우하기 전엔 그녀가 경고 방송에서 나오는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채지조차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신주쿠 역 내부를 지옥도로 만들어가던 소녀는 그러다 어느 시점에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 입에서는 몇 마디 읊조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지상에 나와 있었다.
“나, 나왔다!”
지하 통로에서 난리가 나는 동안 출동한 경찰들은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거리를 두고 둘러쌌다. 이미 아래에서 수백 이상의 사람을 도살하고 나온 괴물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대비.
이것이야말로 일본이 안전한 국가이자, 마법사에 대한 인식이 아주 관대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본래는 나타나는 그 순간 화력을 집중해 벌집으로 만들어야 마땅했다.
“…….”
그들에겐 다행히도 그녀는 시선을 옮겨서 경찰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았다. 그 대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방송국 카메라. 그리고…. 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인영들. 유그드라실의 마법사들.
“경찰을 물러주십시오! 매지션 레이지에 걸린 마법사는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마법사들은 당장 광역 방어마법을 펼치며 경찰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소녀는 깔깔 웃으며 외쳤다.
“레이지? 나는 레이지에 걸리지 않았어. 내가 이러는 것은 내 자유의지지.”
“뭣?”
유그드라실 직원은 당장 방송국 기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건 위험하다. 이전 케이스처럼 레이지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통제당해서 날뛰고 있는 마법사였다.
매지션 레이지가 발동한 경우, 눈앞의 파괴와 성욕, 그리고 기본적인 위협 감지가 가장 우선시된다. 그래서 자신이 다치거나 위험해지면 그 자리에서 도망칠지언정 금방 파괴를 일삼고 다니기에 잡아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저 소녀는 아예 이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실제론 다른 이의 명령이나 강압, 지배를 통해 저렇게 행동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땐 알게 뭔가?
“제압해!”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원 가지곤 기억조작부터 할 수가 없다. 직원들은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 그녀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왜? 이런 열등한 인간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 하지? 그들은 우리 발밑에 깔려야 할 노예다! 너희 유그드라실 역시 똑같이 생각하고 있잖아?”
“시끄러!”
“우리가 인간의 주인이다. 그들은 노예다! 마법사는 신인류다! 인간은 전부 사라질 거다!”
주문을 외지 않는 대신 수인과 마력만으로 마법을 사용하니 그 캐스팅 타임도, 위력도 떨어진다. 정면으로 그녀가 발한 섬광을 받아낸 직원들은 단숨에 그녀의 양손과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제압했다.
그러나….
“흡. 흐으….”
아주 잠깐. 낮은 신음. 울음 섞인 신음에 직원의 눈이 커졌다.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푸콱!!!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비명이 터지고, 카메라에는 그 장면이 노골적으로 찍혔다.
“!”
직원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휘둘러, 주변의 모든 방송장비를 터트려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방송국 측에서도 당황하며 겁에 질려 물러났다.
‘이런….’
순간 그들은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보기엔 지금 명백히 미성년자인 상대를 쓸데없는 말을 하니 그 자리에서 제압해 죽여 버리고, 촬영을 막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그러면서도 주요장면은 전부 나갔다.
그들이 시신을 수습해서 일어나자, 경찰이나 방송사 측 사람들이 겁에 질려 주춤주춤 물러서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어떤 존재와 마주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자각했다는 듯이….
*
일본에서 일어난 마법사의 민간인 테러는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마법사가 마음을 먹음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진 이 사건은 마법사와 일리미네이터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부분이 은폐되긴 했지만, 오로치 사태 당시 일본 내 공격대의 우왕좌왕과 진구지 행동의 의문성, 그 능력에 대한 의심은 원래부터 사회에 팽배해있었다.
사람들은 DS는 숭앙할지언정 일본 일리미네이터들은 믿지 않았다. 그것이 이 사건을 통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게다가 사건은 이걸로 끝나지 않고, 여러 국가에서 마법사 테러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그들이 하나같이 입에 올리는 논리는 사람들을 미혹했고, 마법사를 꺼리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 그 자체를 믿지 못하는 불신을 불러왔고, 마법사 판별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지켜봐 주세요. 저의…변신!>
새벽 6시. 조금만 지나면 이 집 식구들은 기상이 빠르니 곧 일어날 시간.
그때까지 뜬 눈으로 TV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눈동자에 좀 더 짙은 두려움이 서려 있다는 것이리라.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뭡니까…. 이상함다. 지금 저…. 많이….”
그녀의 귓가에는
<으아아아아아!>
TV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아.”
또 다른 목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잠결에만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