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마법사 테러는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들의 보호가 없으면 디제스터에게 시달려야 하지만, 그들 역시 똑같은 괴물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일리미네이터를 두둔했으며,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10년간 쌓아온 신뢰는 한두 건의 사건으로 무너질 정도로 얄팍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마법사에 반발하던 이들이 물밑에서 올라오는 데에는 충분했다.
“나라 안을 어지럽히는 일리미네이터들은 모두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나라에서 관리해야 한다!”
“그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힘은 인류 전체를 위해 쓰여야 한다!”
반향이 가장 컸던 것은 일본이었다. 오로치 사태 이후 국내 일리미네이터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나빠져 있었던 일본에선 사건이 이어지자 시위가 이어졌다.
디제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잠깐의 공백기. 일리미네이터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휴식하고 있는 시기였기에 되려 그 파장은 더욱 커졌다.
내각은 무너지기 직전. 정부에선 이들을 쉬이 진정시킬 수 없었고, 그동안 일리미네이터의 집을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일본 일리미네이터들은 일본에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금 당장이야 디제스터 공백기라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다시 활개를 칠 텐데 이들이 빠져나가면 감당이 안 되었기에 일본 정부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떠돌았다.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유럽에선 일리미네이터가 활동할 때, 엘모세와트의 아이들로 추정되는 마법사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10년 전. 디제스터가 막 나타나서 활개를 치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1~2년은 모를까, 그 뒤로 이들은 적어도 사람이나 마법사에게 대놓고 위협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직접 그들을 노리는 세력이 나타나자, 일리미네이터 활동 그 자체가 위축되었다.
특히 메인 퀘스트 때에는.
“안 그래도 위험한데 자폭테러를 하는 놈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일한단 말야.”
“당분간 메인 퀘스트는 좀….”
서브 퀘스트 급 디제스터는 몇몇 건을 제외하면 군경으로도 대처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결국 메인 퀘스트인데, 여기에 참가하는 것을 일리미네이터들이 몸을 사리자 디제스터가 장시간 날뛰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일리미네이터들을 지켜줘야 할 유그드라실은 알자드의 난민 보호소 운영과 정신 세뇌를 하는 장소를 역추적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큰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반동은 곧 정규 공격대의 업무 증가로 이어졌다. 일반 기업에서 도저히 메인 퀘스트를 수행하지 못하자 정규 공격대에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드 리버티와 머니 크래프트는 상대적으로 대테러 대비가 좀 더 잘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DS의 경우.
“후우….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일본에 찾아온 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방일은 일본 일리미네이터들에게 부탁을 받아서 다녀온 것인데, 같은 일리미네이터인 그가 얼굴을 비쳐서 신용도를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효과가 있어서 잠시 잠잠해지긴 했지만, 천후는 이것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신뢰를 되찾아야 할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호텔 거실의 소파에 몸을 묻은 천후는 TV를 틀었다. 틀자마자 뉴스 화면에서 특보로 프랑스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한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사람마다 ‘마법사 추방’, ‘색출’, ‘공정한 사회’ 등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맨 앞의 연단에선 백발의 노신사가 큰 목소리로 연설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싸워야 했습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는 대가로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갈취해왔습니다. 이것은 안전을 대가로 국가와 국민들을 상대로 협박을 해 강탈한 것과 다름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법은 일종의 세금으로써 제공해야 합니다.”
“와아아아아!”
노인의 말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을 본 천후의 눈엔 짙은 피로가 감돌았다. 지금 저 연단에서 연설하고 있는 노인은 유럽의 유명한 인권운동가인 ‘장 피에르’였다. 인권 운동가라는 타이틀은 달고 있었지만, 그의 논조는 요 수년간 보통 인간과 마법사 사이의 괴리를 좁혀야 하고 그 수단은 마법사들의 완전한 자기 공개에 맞춰져 있었다.
마법은 신기하고, 만능의 힘.
그것이 인류에게 주어졌다면.
마법사가 인류를 칭한다면 그것을 모두와 나눠야 한다. 그것이 공평한 것이며 그것이 천부인권이라고 외치는 사람이었다.
단, 장 피에르가 다른 입으로만 떠드는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법사인 자기 딸을 정말로 프랑스의 국가 일리미네이터로 일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자기 아버지가 연설을 할 때마다 같이 등장해서 국가 일리미네이터로 활동하는 게 얼마나 멋지고, 보람있는 일인지 설파하곤 했다.
그렇다곤 하더라도 지금까진 그를 따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의 영향으로 급격히 그 추종자가 확 늘어 나버렸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더니. 딱 그 꼴이군.”
마법사의 공급, 유통을 맡았던 알자드가 사라지고 난민보호소를 차지하게 되면서, 위조되지 않은 기록은 더욱 손에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엘모세와트의 뿌리를 잡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이 문제였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조직이고, 마법사의 탄생 비율 등을 생각해보면 테러를 위한 ‘탄환’ 역시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서방 세계에 미리 심어두었던 이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정말 딱 이 한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이 한고비를 넘기기가 너무 어려웠다.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자, 그들은 죽기 살기로 사회 분란을 일으키고 있었고…. 마법의 존재는 지키는 쪽 입장에선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치트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방비가 있는 유그드라실의 손이 묶인 이상, 쏘면 쏘는 대로 맞는 입장이 되어버린 지금이 가장 위험했다.
안 그래도 이런 사태를 염두에 둬서 알자드의 협상제의를 받아들였던 것이었지만, 그것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아직 한국에선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네. DS 직원들이나 가족들에 대한 경비도 크게 늘린 상태입니다.”
“한동안은 조심해야 할 거예요. 우리도….”
“문제없을 겁니다….”
DS를 설립할 때부터 테러를 염두에 둬서 경비업체를 고용해둔 상태긴 했지만, 천후는 그것만으론 안심할 수 없어 그 규모와 질을 몇 배로 늘려놓은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절대 가족들이 해를 입을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안하다.’
어째선지 가슴 한편을 꾹 짓누르는 불안감은 막을 수 없었다.
*
그녀의 현실은 두 가지였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원래부터 그 진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 역시.
귓가에 들려오는 이명은 복음이었고,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아주 조금 걸리는 이 느낌은 거슬리는 것.
아쉽게도 이것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그러니 끌어안고 간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라즈베리는 길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니. 배회라는 말은 옳지 않다.
그녀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명확했으니까.
“언니.”
“오셨어요.”
DS 본사 인근 건물 앞. 날씨에 맞게 두꺼운 점퍼를 걸친 10대 소녀 둘이 라즈베리를 보고 인사했다. 라즈베리는 그들을 표정없이 바라보았다.
이들의 정체를 안다.
자매.
세상 곳곳에 흩어진 그녀의 자매들.
‘파파’가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 움직이는 아이들이었다.
“여긴 내 구역이야.”
“도움이 필요하실 거라고. 파파가.”
“언니는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하셔야 한다고. 파파가.”
표정 하나 없이 하는 말에 라즈베리는 눈을 깜빡였다. 얼마 전이었다면 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실히 그녀는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상황이었다.
‘자매’들 중에서 최고의 출력을 가진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단 한 번 사용하는 탄환으로 사용하기엔 너무나 가치가 높았으니까.
그래서 그녀에겐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자유였다. 이제 자신의 역할을 다 할 때다. 지금까지 이미 한껏 저항해왔으니, 더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너희는. 어쩔 셈?”
라즈베리의 목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계획의 확인. 자매들은 잠시 눈을 깜빡였지만, 순순히 그녀 앞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밝혔다.
“DS 본사를 포격합니다.”
“경비와 일리미네이터들과 교전합니다.”
그걸로 그들의 말은 멎었다. 라즈베리는 추가로 물었다.
“그 뒤엔.”
이 말에도 순순히 답한다.
“없습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이제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들은 기계처럼 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눈에는. 표정에는 감정이라곤 터럭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걸 보고서.
라즈베리 미키스트리는. 작게 웃었다.
“그래?”
그들과는 다른, 완연하게 피어난 자애로운 미소. 그녀의 손이 둘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둘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
“아!”
“언니. 무엇을….”
부들. 부들부들. 그녀의 손이 닿은 순간 소녀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녀들을 내려다보는 라즈베리의 손엔 희미하게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라즈베리는 쓰러진 둘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여력이 있을 때. 해야 해.”
라즈베리는 귓가에 들리는 이명과 초자연적으로 연결된 감각을 통해 인근에 배치된 ‘자매’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수만도 수십. 그들 하나하나의 마법사 랭크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그 수는 문제가 된다.
아마 이들이 급습한다면 아무리 DS 본사라도 쉽게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경비를 강화해놨다곤 해도 유그드라실 통제 없이 텔레포트나 영체화를 제멋대로 해대는 녀석들을 현대 화기만으로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일리미네이터들 하나하나는 이들에게 역량이 밀리지 않겠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괴물을 잡으려고 일하는 사람들이지 사람 잡으려는 이들이 아니었다. 성인도 아니고 나이에 따라선 10세 수준의 아이들도 있는 ‘자매’들을 상대로 쉽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해야 한다.
“내가…!”
라즈베리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다른 건물의 8층. 여기에도 2인조의 소녀들이 있었다. 이번엔 인사도 없었다.
“아.”
“엑시던트.”
자매끼리 공격하는 일이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지, 그녀들 역시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하지만 라즈베리는 느꼈다. 이 ‘커뮤니티’에 그녀의 위험성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순식간에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명이 커졌다.
“아으으으!”
고통? 고통은 아니다. 그저. 자기를 잃어버릴 것 같은 감각.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어가는 감각에 라즈베리는 몸서리쳤다. 그러고 있을 때….
“언니.”
“폭주.”
“재조정 필요.”
“파파. 만나야 해.”
파밧. 파밧. 파밧. 그녀를 중심으로 소녀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무감정한 눈을 한 소녀들. 그 수는 이윽고 수십이 되었다. 인근에 있던 모든 자매들.
그들 하나하나를 훑어본 라즈베리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주먹을 꾹 쥐었다.
“전부 왔군요. 바라던 바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한꺼번에 상대해드리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