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혼란의 시기>
향한 곳은 산중 마을이었다. 유럽의 시골 특유의 호젓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어린아이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마을 전체에 퍼져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의 전반적인 문제이지만, 이 나라 역시 고령화 사회가 찾아와있었고, 특히 지방 도시의 고령화는 현대 사회에선 피해가기 어려운 문제였으니까.
그들은 마을의 저 안쪽. 커다란 저택 안에서만 살고 있었다. 개인용 비행기에 활주로를 설치해놓았을 정도의 대부호가 사는 땅.
그 사유지에 이미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직접 보는 일은 손에 꼽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그곳을 일종의 불가침의 ‘영지’로 인식하게 되었고, 젊은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저택의 존재에 대해서 전설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거기에선 이 나라의 많은 고아를 받아들이고 있고, 아주 훌륭한 분이 살고 있다고.
바로 그 사유지의 활주로를 향해 한 대의 경비행기가 날아들었다. 무사히 내려앉은 비행기에서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이 여럿.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한 명의 여성이 내렸다.
활주로에서 저택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데도, 비행기가 멈춰선 곳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아이들이 사열하듯이 죽 늘어서서 그녀의 도착을 반겼다.
반겼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 특별한 행동을 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꽃을 뿌리거나, 그녀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하나같이. 그녀가 등장하자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허리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 역시 그것을 보고 별생각이 들지 않는지, 그들을 지나쳐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이만 3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현관문이 열리고, 그 안쪽으론 넓은 거실과 양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의 시작점에는 조각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여성의 조각상이 서 있었고, 벽면에는 유명한 화백들의 그림들이 몇 개나 걸려있었다.
허나 여자의 눈길은 전혀 그곳을 향하지 않는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계단을 무시한 그녀는 몸을 돌려 복도로 향하더니, 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서재인 것 같았다. 그리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걸까? 기껏 고급 가죽으로 양장 제본한 책들엔 사람 손이 닿지 않아 먼지가 쌓여있었다. 여자는 그 책장 중 하나 앞에 서더니, 책들 몇 개를 순서대로 몇 번인가 만졌다.
그러자…. 드르르륵 소리와 함께 무거운 책장이 마치 문처럼 옆으로 젖혀지며 그 안쪽 공간을 드러냈다.
“…….”
처음 보인 것은 계단. 그것을 통해 지하까지 내려가면, 이제 직선으로 쭉 연결된 통로가 보였다. 저택이 등지고 있는 산으로 향하는 길. 사람 손이 닿아 네모 반듯하게 깎인 이 통로의 벽면 중간중간엔 조명이 달려있었는데, 여자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필요한 조명만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그렇게…. 다시 길고 긴 통로를 얼마나 더 걸어갔을까.
끝없는 직선으로 되어있던 통로의 끝은 지금까지 와는 달리 돌이 아니라 금속으로 막혀있었다. 외부에서는 수동으로 열 수 있는 장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왼쪽 벽면의 지문, 홍채인식 장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여자는 그것에 손과 눈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 두께만도 수십 cm는 넘는 문이 열리며. 그녀의 눈앞에 새로운 광경을 내비쳤다.
백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보였다.
연구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밖’에 있었고.
아이들과 부모들은 유리 안에 격리되어있었다.
그들 중 연구진 중 일부가 그녀가 등장하자 다가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답은 필요 없으리라. 여자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그들을 지나쳤다. 눈에 비치는 광경들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자신이 이 ‘시설’의 정체를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구역질이 났다.
‘이상해.’
왜.
처음 느낀 의문은 이것이었다. 느낄 이유가 없다.
여자는 판단을 내렸다. 이것이 파파가 자신을 부른 이유라고. 어서 그를 만나야 한다고.
발걸음을 옮기면, 이제 보이는 것은 수많은 수조와 인큐베이터. 그 안에는 다 자란 아이들과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이 액체 속에서도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수십 개가 있는 공간 속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탁자와 소파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너머에는 백색 외관에 붉은 십자가를 그려놓은 금속 재질의 관을 연상시키는 알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 팔뚝보다 굵은 고압 전선들이 무수히도 많이 연결되어있었다.
여자의 눈은 멍하니 그 관을 향하다가, 천천히 내려와 그 앞에 높인 소파에 향한다. 거기에는 있었다.
그토록 찾았던 사람이….
“파파.”
양복 차림에 흰 턱수염을 약간 기른 노인이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얼굴은 이렇게 가까운데도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건 대수가 아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표정 없던 여자는 이런 얼굴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 다가가 그 무릎 앞에 꿇어앉았다.
노인은 그녀가 무릎에 고개를 기대오자 천천히 그 손을 들어서 그녀의 머리 위에 올려 쓰다듬었다.
“왔느냐, 나의 딸. 레졔나.”
“응. 파파….”
그 손길만으로도 녹을 것 같은지 여자, 라즈베리 미키스트리는 그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가만히 그 촉감을 즐겼다. 한동안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던 노인은 그러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재조정이 필요한 모양이구나. 사회에서 움직여야 해서 자유의지를 주었는데 그것이 너를 속박할 줄이야.”
“응. 라즈베리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이러다간 파파의 말도 듣지 않게 될 거야. 그럼 레졔나는 아빠의 착한 딸이 아니게 돼. 그건 싫어.”
“기특하구나….”
작은 칭찬에도 레졔나는 울먹이며 기뻐했다.
“그럼 이 아비가 일단 지난 네 기억을 들여다봐도 되겠느냐?”
“응.”
순순한 허락과 동시에…. 소파 뒤의 관에서 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 관에서 마법사의 오오라와 같은 희미한 빛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천천히 전선을 따라 흐르는가 싶더니, 노인이 앉은 소파를 감싸다가 이윽고 라즈베리까지 함께 감쌌다.
웅. 우우우웅…. 고압전선들 중 일부가 스파크를 일으키자, 알아서 그 연결이 해제되면 화재와 폭발을 막는다. 그렇게 오오라의 투사는 유지되었다.
노인이 말한다.
“아…. 재미있는 것을 보았구나. 이그네스라. 마력동화 마법사. 희귀하군. 샘플로 삼고 싶은데.”
“안 돼, 아빠. 걔는.”
“그렇구나. 너무 강하고…통제할 수가 없군. 하지만 그럼 또 다른 방법이 있지.”
노인의 입가가 슬쩍 구부러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바뀌었다.
“자아. 그럼 레졔나. 조정을 하자꾸나. 괜찮겠지?”
“응. 파파―”
그녀는 환영한다는 듯이, 바라마지 않는다는 듯이 양손을 벌리며 재촉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때.
아주 잠깐.
정말이지 아주 잠깐, 그녀의 녹색 안광이 꺼졌다.
“싫어….”
“응?”
“싫어…. 이런…거….”
머리가. 아프다.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감각. 이 몸에서 자신은 이물질이 되어버린 것 같다. 몸에서, 뇌리에서 괴리되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정수리가 눈으로 보일 것만 같은 느낌.
자신이 말한다.
“받아들여. 더 귀찮게 하지 마.”
차가운 목소리. 자신의 목소리 같지가 않다.
“진짜 나는 나야. 밖에 나가려고 잠깐 만들어낸 가짜 주제에.”
라즈베리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 아니 자기 자신인 레졔나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냥 잠깐. 밝은 자신을 연기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 게 바로 자신.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지만, 그건 마치 해일을 몸으로 막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몰려오는 의식의 파도에, 작은 각설탕은 버텨낼 수가 없다.
“아…. 아아…. 아아아아….”
노인의 손을 타고 내려와 온몸을 감싼 오오라가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라즈베리의 눈에선 눈물이 나왔다.
아아. 대체 뭐였단 말인가. 나의 인생은.
이런 일을 당하기 위해 살아왔던 건가? 그녀는 자신이 왜 영웅을, 히어로를 동경하고 바랬는지를 지금 이 순간 깨달았다.
가여운 라즈베리. 가짜 나. 네가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 잠들렴.
단 한 번. 마지막으로 레졔나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라즈베리는 그 ‘자신’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을 읽었다.
동경의 마음도.
아아. 과연. 그렇구나. 역시 레졔나의 말은 사실이다.
결국 오리지널은 그녀다. 그리고 그 오리지널인 그녀조차도…….
마음이 침략 당한다. 이제 그녀를 성립시키던 모든 요소가 사라져 갔다. 그 마지막에.
레졔나의 입에서. 아주 작은. 기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싸부………….”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
“음…….”
세계에선 반 마법사 테러가 매일 같이 일어나고, 아랍에선 성자로 추앙받던 사람 하나가 실종되어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월가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는 거인에겐 혼란조차 기회가 된다. 세계의 향방. 그 흐름을 가장 확실하게 읽고 있는 귀신들은 ‘이벤트’를 돈으로 환산한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세상은 온통 돈 천지. 돈투성이다. 그 황금의 바다를 눈앞에 둔 이들은 오늘도 자기들끼리 모여 파티를 벌이곤 했다.
그 안에서.
루셀 가의 영애로서 재계 거물들의 파티에 참가했던 프리니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일어났나?”
“…네.”
그녀의 곁에는 엔체스터의 말예, 로자미아 엔체스터. 친란이 함께하고 있었다. 프리니는 오늘 이 자리에선 진정한 그녀의 신분, 루셀 가의 가주이자 머니 크래프트의 진정한 수장이란 걸 숨긴 상태였지만,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 친란은 어지간한 거물보다 그녀와의 소통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었다.
그런 친란은 프리니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파티 홀에서 빠져나와 객실 인근의 소파에서 눈을 붙였던지라,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
미래 예지자. 네츄럴 소스라는 것이 들키지 않더라도, 혹시 마법사인가 의심받기만 해도 거동이 불편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신경을 쓴 것이다.
허나 이제는 다시 벽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친란은 말없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뜻을 헤아린 프리니는 그 손을 잡고 함께 객실로 들어갔다.
“무엇을 보았지?”
프리니를 앉힌 친란은 곧장 물었다. 그 물음에 프리니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 어느 시점부터 뜨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건가.”
그녀의 예지는 만능도, 정확한 것도 아니다. SA 랭크의 금제도 있고, 그게 없다손 치더라도 보았던 비전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경우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되었다.
그녀의 미래 예지자 특성이 강력한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때에’, ‘대상을 어느정도 한정하여’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해에 정해진 횟수만큼 할 수 있다는 점이 그녀의 특성 최고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종종 이렇게. 그녀가 의도치 않았는데도 비전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사용 횟수에서 빠지지 않는 이 무작위 예지는….
끔찍한 대재앙을 예언하곤 했다.
“대자가 오기 전에 불꽃이 타오른다. 이것을 진압시킬 자는 역시 대자 뿐. 그러나 그 희생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
그 내용에 친란은 침음성을 흘렸다. 너무 추상적이라 알아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들린듯한 이야기를 꺼내던 프리니는 천천히 숨을 내쉬더니 다시 한 번 작은 입을 움직였다.
“불꽃. 이그네스…. 조심해야……해요. 현재 정세. 연계. 이거. 위험해요.”
“이그네스라면…. 그가 영국에서 데려온 그 아인가.”
친란과 이그네스 사이엔 그다지 친분이 없었다.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직접 그녀를 지명해 위험하다는 예언을 들어버린 입장이다. 친란은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에게 전하지. 감사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네…….”
작게 고개를 끄덕인 프리니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2월의 끝자락임에도 떨어지고 있는 눈송이들.
‘그래도…. 막지 못하겠지만.’
모든 조치가. 저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덧없다.
적어도. 당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