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233화 (233/324)

233화

라즈베리의 실종 이후. 영천후는 최완에게 그녀에 대한 소견을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아마 그 아이는 엘모세와트의 처리를 받은 마법사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구나.”

“그럴 리가…. 라즈베리의 배경은 깨끗했잖아요. 아저씨가 보증했었잖아?”

천후나 최완이라고 바보는 아니어서 알자드가 용의 선상에 섰을 때, 이미 라즈베리의 동의를 받고 인적사항을 조사해보았다. 그녀의 가족들도 찾아가 조사를 해보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깔끔한 결과가 나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완은 침통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 사건 이후 그 부모들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때 조사할 때는 좀 더 특별히 공을 써뒀겠지.”

“…….”

천후의 눈에 노기가 깃들었다. 무능력함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것은 신뢰를 배반한 것과 다르지 않다. 최완 역시 이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대신 그가 꺼낸 말은 다른 것이었다.

“이번에 구해낸 아이들의 증상 및 증언을 토대로 보자면, 이들은 일종의 정신 연결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자드의 스펠 쉐어 같은 겁니까?”

“거기에서 일반인이 빠져있다는 점 빼곤. 비슷하지.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간 거랄까. 스펠 쉐어는 결국 마법사 여럿과 사람 하나를 폐인으로 의식적으로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면, 이건 인형이 된 마법사들을 외부에서 컨트롤 한다는 차이가 있지.”

“그런 게 가능 합니까? 아니 그럼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다면 스펠 쉐어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잖아?”

“상황의 차이랄까. 이 정신 연결, ‘커뮤니티’에 명령. 방향성을 심어줄 수 있는 건 결국 마법밖에 없거든.”

“…마법사가 이들을 조종하고 있단 말입니까?”

“마지막까지 가면. 그렇지. 다만 이 명령을 심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야. 똑같은 정신 영역까지 침투하고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닌 한…. 아마 여기에 S 랭크 정신계열 마법사가 활약하고 있겠지.”

천후는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막막함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라즈베리는 그 커뮤니틴지 하는 상태에서도 맨정신을 유지하지 않았습니까?”

“원래가 고 랭크라 내성이 있을 수도 있고. 아마 조건부 방벽처리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게 중론이다. 커뮤니티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끔 말이지.”

“그게…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커뮤니티 상태에선 기억이나 감정적인 정보들이 모두 공유되니까. 방아쇠를 당기는 본인은 그것을 외부에서도 수신할 수 있겠지. 이런 마법적인 연결 상태는 어떤 수단보다도 보안적으로 완벽하고.”

“…그런 거치고는 상대의 반응이 너무 굼떴잖아요?”

최완의 말대로라면 알자드가 이렇게 쉽게 자신의 거처를 내줘서는 안 됐다. 진작에 그들의 활동을 눈치채고서 거래와 유통을 한동안 정지했어야 정상이다.

“그 부분은…. 두 가지 의견이 있다. 하나는 알자드와 이 ‘커뮤니티’ 운영 주체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거기까지 말한 최완은 잠시 뜸을 들였다. 머리에 피가 쏠려있던 천후는 그 기색에 바로 소리를 쳤다.

“말해요. 또 뭐죠?”

“……또는. 그 아이가 자체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었던가.”

“…….”

“자신을 지배하려는 시도에 대해. 혹은 커뮤니티에 소속시켜두는 시도에 대해서.”

천후의 표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것을 본 최완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희망을 주려는 시도로 보일 것 같아서 말하기 그랬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천후는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 이야기를 나눴다간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최완의 방을 나와버렸다.

양부가 한 말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이지만…. 찾아내기만 한다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신호를 보내왔다는 점이다.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그것을 알아주지 못했다.

그 사실에 천후는 머리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구해낼 수 있다는 희망만을 생각하기엔…너무나 뜨거운 감정이 그를 휘감았다.

*

라즈베리가 실종된 이후. 영천후 자택과 그 가족에 대한 경호는 더더욱 강화되었다. DS 일리미네이터 경호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사설 군대를 연상시키는 경호에 질려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미국, 유럽에선 일리미네이터 테러도 여러 번 일어났다니 이 정도는 당연하지.”

“게다가 라즈베리 건도 있었으니.”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단숨에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활발한 성격이었던 라즈베리는 일리미네이터 사이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친근하게 대하는 편이었는데, 그녀가 변을 당했으니 그 충격은 헤아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누군가가 다쳤네, 시위가 일어났네 소리를 들어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위기감, 경각심이 그들을 휘감았다. 더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해요. 어지간하면 마법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일할 때 말곤.”

“그야…. 당연히 자제는 하고 있는데.”

“후우.”

레이나드의 말에 몇몇 일리미네이터들은 난색을 보였다. 그들은 마법사용이 인정된 몸. 물론 디제스터 퇴치 때만 한정해서지만, 말이 그렇고 사실 실생활에서 습관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도 많았다.

영천후는 이그네스 사태 이후로 철저할 정도로 이것을 조심하고 있었지만, 일반 사원들까지 그처럼 행동하진 못했다.

물론 유그드라실도 이 모든 걸 다 감지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알아챘다 할지언정 사소한 수준이면 그냥 흐지부지 넘어갈 테지만, 일반인이 이걸 곱게 봐줄 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일리미네이터 활동을 하면서 이미 마법의 제한이 풀린 몸. 그들에겐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자제심이 필요한 일인지라 쉬이 그러겠노라고 말하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본 레이나드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심경은 이해가 가는데…. 사장님이 상심하고 있는 동안에라도 지켜줘요. 이럴 땐 눈치를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아.”

“그건…. 그렇죠.”

“노력해 보겠습니다.”

천후의 평소 태도는 일만 잘하면 사람이 어떻게 지내든 상관하지 않는, 좋게 말하면 방임주의, 나쁘게 말하면 천후 특유의 무관심 주의에 가까웠는데, 덕분에 일리미네이터 뿐 아니라 DS 직원 전부가 직장을 상대적으로 편하게 여기곤 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눈치를 볼 땐 봐야하는 법. 물론 그가 이런 걸로 직원들에게 시비를 걸진 않겠지만, 적어도 자신들을 생각해주는 그를 위해서 신경 거슬릴 거리는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서로 간의 예의일 거라 그들은 생각했다.

한편, 사원들의 분위기를 수습한 레이나드는 정태원을 불러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위기가 좋질 않아. 너무 어수선해.”

“당분간 해외 레이드는 거절하는 게 나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천후도 만나보니까 꼴이 말이 아니던데….”

“당연하겠죠.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당장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야. 너도 몸조심해라.”

그의 말에 정태원은 힘겹게나마 웃어 보였다.

“에이. 그래도 대한민국 안에선….”

“…….”

그렇지만 그 웃음에 대답은 없었다. 덕분에 태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 나라 안에서도 안전하지 않다고요?”

“당장 라즈베리가 막지 않았으면 DS 본사가 날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잖아. 그리고…. 그런 마법사들보다도 정말 무서운 건 사람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법이지.”

“그런….”

드래곤 사태 이후로 영천후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었다. 그 어떤 사람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국민 영웅. 사람들 사이에선 이번 대선에 그가 출마한다면 대통령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그것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그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일종의 터부에 가까운 수준까지 온 것이 지금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사람을 걱정한단 말인가?

“기우였으면 좋겠네요.”

“그건 나도 그래.”

그렇게 답하는 레이나드의 선글라스 너머엔 자신감이 없었다.

*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난 환경에 따라 같은 사물을 봐도 다르게 반응한다.

예를 들자면 패스트푸드. 막도날드는 미국에선 일반적인 패스트푸드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이 저쪽 제3 세계 국가에선 어떨까?

그 나라에선 중산층 아버지가 굉장히 큰 결심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고풍스러운 양식당으로 변모한다. 햄버거를 썰어 먹기 위해 나이프와 포크까지 내어주며, 직원이 직접 서빙을 해서 음식을 자리까지 가져다주기도 한다. 건물 안에는 중무장한 경비원이 지키기까지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RC 카는 어떤가?

서울 거리 한가운데. 머리를 길게 기르고 야구모자를 쓴 청년 하나가 리모컨을 들고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의 앞쪽에는 50cm 정도 크기의 멋진 RC 카가 인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서울 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닌지라,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걸 보며 신기해하며 길을 비켜주었고, 몇몇은 폰카로 찍기도 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 외에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그냥 신기한, 특수한 취미를 가진 사람인가 보다 하고 모두가 이해해줬다. 그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인식.

하지만……. 이 장면을 저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보았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왜 저렇게 태연하지 하고.

그들의 세상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이 남자는 전혀 다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일단 길에 있는 모든 행인은 그와 저 무선 조종 자동차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도망갔을 것이고.

당장에 경찰이건, 혹은 군벌이건, 근처 폭력조직들이건 나타나 그에게 총기를 겨누며 리모컨을 내려놓으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들에게 저것은 전혀 다른 것을 연상시켰을 테니까.

IED. 사제 폭발물을.

“흥흐흥.”

귀에 이어폰을 낀 남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RC 카를 조종했다. 이것을 구하는 것도, 이 ‘안’의 것을 구하기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마음만 먹자 그들이 조달해주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한번, 그의 발걸음이 거리에서 딱하고 멈췄다. 그의 눈앞에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하나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질렀기 때문이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연이어 값비싸기로 이름난 외제 차들이 줄줄이 지나갔다.

서울 시민들 사이에서 이 거리는 리치 로드라고 불렸다. 부자들의 길. 이 도로에 서 있다 보면 하루에 두 번, 이렇게 수많은 외제차 들의 향연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출몰하는 시간은 오전 9시와 5시 반가량. 이렇게 된 지 몇 개월 지나자, 시민들은 그 시간대엔 이 길을 지나다니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워낙 비싼 몸값들이니 잘못하다 사고라도 치면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길의 정체는 DS 본사로 통하는 길이었다.

일리미네이터들은 대부분 나이가 젊고, 수많은 경급 디제스터 퇴치로 재산을 미친 듯이 축적한 바람에 그만큼 소비를 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DS 본사 주차장은 온갖 최고급 차들의 온퍼레이드였다. 처음엔 주차장으로 만들었던 이곳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차량 정비사들이 고용되어서 매일같이 차를 돌보는 것이 일이 되었다.

“후우.”

DS 본사 건물에 도착한 남자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 정문 앞에는 경호가 강화된 만큼 수많은 슈트 입은 남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들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힘든 일이리라.

그렇지만….

저들 자체가 목적이라면?

“배때지가 부른 더러운 마법사들을 돕는 반역자 새끼들.”

청년의 손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RC 카가 DS 본사 정문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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