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세계각지에서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한 이후, DS 본사 경비는 크게 강화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경비일 뿐이었다.
DS는 일반 기업체였고, 여기에 군 기지가 들어서거나, 경찰이 알아서 지켜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경비업체 역시 대한민국은 안전한 사회인 만큼 총기로 무장을 한 것은 아니었고, 방검복을 입고서 함부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제지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 외엔 군견이나 마찬가지인 개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거동수상자를 확인하는 정도일까?
물론 이들은 경찰도 아니니, 지나가는 시민을 불심검문한다든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내부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시도 등을 미리 차단할 뿐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내에 있는 경비, 경호업체들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한계였고, 보통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저기 저편에서 웬 작은 RC 카가 질주해오기 전까지는.
“저게 뭐지?”
“오퍼레이터가 사용하고 있는 건가?”
이들이 RC 카를 보면서 느끼는 감상은 또 달랐다. 일리미네이터 업계에선 배틀 데이터 수집, 분석을 위해서 무인 헬기나 차량이 흔하게 쓰였다.
DS의 경우 오퍼레이터를 굳이 무리해서 현장에 투입하지 않고, 본사 건물에서 오퍼레이터 팀이 이런 장비들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통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꼭 오퍼레이팅 뿐 아니라, 이렇게 어떤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을지 테스트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즉. 본사 부지 내부에서 RC 카가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약간 해이해졌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잠깐만. 오퍼레이터 팀에서 부지 밖으로 물건 내보낸 거 없다는데?”
“뭐?”
그 와중에 혹시나 해서 연락했더니 돌아온 말에 정문을 지키던 경비원들은 당황했다. 그럼 저건 누가 움직이고 있으며, 무슨 일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그들 스스로 내리기 전에.
일은 터졌다.
콰쾅!!!!
정문에 도착한 RC 카가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차량 검문소가 단박에 날아가고, 방금까지 이야기를 주고받던 직원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히히.”
멀찍이서 결과를 확인한 남자는 작게 웃었다. 이야기 들었던 대로, 대비가 너무 미흡해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주차장까지 들어가게 할 걸 그랬네.’
대한민국은 사제 폭발물 테러를 당한 적이 별로 없다 보니, 그 대비 메뉴얼이 부실했다. 경찰부터가 그랬으니, 민간 경비 업체는 더 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좀 더 크게 일을 벌이지 못한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골목으로 들어가 리모컨을 버리고, 쓰고 있던 모자와 옷도 빠르게 갈고서 빠져나갈 준비를 마쳤다. 사전부터 미리 준비되어있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거기.”
“…헉!”
남자는 그 사이에 차량을 타고서 골목을 포위하고서 다가오는 방검복 차림의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사제폭발물 대처는 분명히 미흡했던 게 사실이었지만, 이 주변에는 DS가 설치해놓은 CCTV가 사각 없이 깔려있었다. DS에선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조종자를 포착해낸 것이다.
“잠시 나와주시겠습니까?”
“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경찰!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은 이미 불렀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엇….”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쿨하게 터트리고 빠져나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남자는 결국 어어 거리면서 경비 업체 직원들에게 둘러싸였고, 그동안 버려진 옷이나 리모컨 등의 증거물은 철저하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도록 지켜졌다.
*
“사제 폭발물 테러라니. 이 무슨….”
라즈베리 사건 이후로 상심하여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천후는 양복을 갖춰 입고서 본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중차대한 일이다 보니, 조사 결과는 금방 나왔다. 애초에 범인은 이미 잡아둔 상태에, 증거물도 확보한 상태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였다.
범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완전히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이었으며, 정신지배 같은 것을 받고 있는 상태조차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계획하고 저지른 일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선처해주세요.”
“…….”
허겁지겁 달려온 경찰 앞에서 하는 말은 가관이었다. 그가 테러에 사용한 폭약은 당연히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일반인이 총기 하나 구하기도 힘든 것이 대한민국인데, 저런 말은 변명이 될 수가 없었다.
도주를 위해서 갈아입을 옷을 배낭에 챙기고 있던 놈이 사전 계획을 안 했다고 우기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당장 검문소에서 일하던 경비인력 두 명은 생사를 헤매고 있었다. 에바 때와 비슷하게 파편이 심하게 섞인 상처를 입었기에, 유그드라실로 올려보냈음에도 생사를 장담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선처를 운운하다니? 현장의 분위기가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졌다.
“조사 결과는 어떻습니까?”
“블로그나 특정 사이트에서 원래부터 반 마법사 성향을 강하게 비추고 있던 인물입니다.”
“폭약을 넘겨준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최대한 알아봐 주세요. 일단…. 저희 쪽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겠습니다.”
당분간 사회의 전면에 나서는 일은 삼가고 싶었다. 하지만 본사에서 불꽃이 치솟아 오른 이상 수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찰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해 복장 체크를 한 천후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한국 사회에서조차 그를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슬프고, 억울하고, 답답했다.
게다가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어떤 부추김을 받아서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집을 비우게 된 게 걱정된다.’
희주를 남겨두고 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려웠다. 그는 자기 몸이 두 개가 아닌 걸 원망스러워했다.
*
대한민국의 시위문화는 촛불시위 등장 이전, 이후로 갈린다고 할 정도였다.
촛불시위 등장 이후부터 극단적인 폭력 시위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다. 사회에 퍼진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함부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허나…. 그렇다 할지언정.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밖이 시끄럽구나.”
“오늘도 왔군요.”
창밖을 바라보는 희주의 시선은 차가웠다. 건물 밖에서는 일부러 담장 너머 안쪽에서 보이도록 만들어놓은 피켓들이 보였다.
대한민국에선 영천후의 영향력이 워낙 광범위했던 덕에, 반 마법사, 반 일리미네이터 시위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라즈베리 사태 직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천후 자택 앞에서 그런 성향의 인물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주장하는 논리는 부의 분배와 마법사는 불안한 존재라는 것 등이었다. 강화된 경비는 그들을 철저히 차단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강제 해산시킬 순 없었다. 덕분에 그의 가족은 쉬이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
“세상이 이리도 흉흉하니…. 앞으로가 걱정되는구나.”
아이들에겐 라즈베리가 잠시 고향에 찾아갔단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이그네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 천후가 맞서 싸우기로 한 적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해뒀다고 생각한 대비는 아직도 미흡했다.
아니, 이 경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대비 자체에 한계가 있었던 것에 가까웠다.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만 계속 일어나니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고나 할까?
“이겨내실 겁니다.”
“네 남편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아닙니다.”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홍조가 피어나는 게 보였다. 어떻게 봐도 그런 관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부부관계로 봐주는 걸 싫어하느냐면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이그네스로선 그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뭐야? 무슨 이야기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방에서 케이크과 차를 내온 이브와 에바가 말에 끼어들었다.
“별말 아니다. 그냥 요즘 춥단 말이다.”
“그러게에.”
“라즈베리 언니는 왜 하필 이렇게 추울 때 갔대.”
“…….”
이 둘에겐 라즈베리가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말해두었다. 그녀들이 듣고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힘겨운 이야기였으니까.
“부모님 문제라니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래.”
“그래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라즈베리가 있을 땐 중간중간 비는 시간. 특히 잠들기 직전엔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곤 했다. 그런 그녀가 사라지자, 둘은 심심함을 희주나 강호, 이그네스에게 풀곤 했다. 사람 하나가 줄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최근엔 이렇게 대화에 어울려주는 게 일과가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이렇게 담화나 나누다가 하루가 지나가야 했다. 밖에선 난리가 나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탕!!!
그렇게 생각하게 한 것은 단 한 번 들린 소리였다. 일상에서 쉽게 듣기 힘든 소리.
“총소리…?”
에바가 멍하니 중얼거린 그 직후, 밖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경찰이 쓰러졌다!”
탕! 타타탕! 사람들이 급히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경비 업체용 인터폰이 울렸다. 그것을 받은 것은 희주였다.
“무슨 일이죠?”
“그, 극단적인 반 마법사 시위대가 나타나더니 경찰들을 살해하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서 피신하십시오.”
대한민국은 집회의 자유가 허용된 국가다. 굉장히 불쾌하지만, 그의 집 앞에 사람이 모여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돌변할지는 모르는 일이라, 현장엔 당연히 경찰들도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봉고에서 우르르 내린 새로운 무리가 총기를 꺼내 그 경찰들을 살해하고 저택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희주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니 무장 경찰들이 금방 도착할 것이다. 영천후의 자택이다. 국가 최중요 인물의 가족들이 있는 집안이니 당연히 저 시위대 전체를 제압할 정도의 수는 오리라.
그렇지만 시간이 걸릴 터. 그 시간을 벌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기껏 강화해둔 경비 업체도 총기 앞에선 손도 발도 못 쓰고 있었다. 덕분에…입장이 역전되었다.
“이그네스. 둘을 데리고 지하 쉘터로 가세요.”
“희주, 너는 어쩔 셈이냐?”
“다치는 사람은 줄여야지요.”
그녀의 손에는 어느샌가 칼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이그네스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현대 상식이 부족하다지만, 칼로 총을 제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짓 하지 말고 너도 와라!”
“공도.”
이그네스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희주는 그 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그냥 허공에 칼을 찔렀다. 그러자 베란다 창문을 깨고 들어오려던 남자 하나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는 게 보였다.
“…….”
“시야가 확보되면 걱정 없습니다. 자. 어서.”
그렇게 말한 희주는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강화마법이 걸린 그녀의 움직임은 이그네스의 눈으로 좇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벙쪄있던 이그네스는 곧 고개를 크게 내젓고는 이브와 에바의 손을 꽉 잡았다.
“자. 가자꾸나.”
“으, 응.”
그렇게 대답했지만, 막상 에바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 초자연적인 처치로 트라우마가 완화되었지만, 실제 총성을 직접 듣자 아무리 그래도 다시금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은 것이다.
둘의 그런 사정까진 모르는 이그네스는 조급한 마음에 외쳤다.
“어서! 움직이거라!”
“아, 알아.”
그래도 간신히. 정말 간신히 에바의 발걸음이 떨어졌다. 이그네스는 둘을 먼저 지하실로 내려가게 하고서 가장 뒤를 맡았다.
바로 그때였다.
챙그랑!!! 창문 하나가 완전히 박살 나는 소리가 나더니, 거친 목소리가 집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샅샅이 뒤져서 가족들을 찾아내!”
아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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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가 이런 상태긴 합니다만.
모두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