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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235화 (235/324)

235화

구둣발 소리가 집안을 돌아다닌다. 천후의 자택은 꽤 크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부 돌아보는데 그리 오래 걸릴 정도는 또 아니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나눠서 수색한다면 더욱 그랬고, 지하실 역시 가려져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금방 포착되었다.

"사람이 있다!"

"아!"

남자의 외침에 아이들은 더 빨리 아래로 내려갔다.

박찬휘가 이전 사무소를 날려버린 이후, 그의 자택은 추가공사를 해서 지하 헬스 시설 아래에 쉘터를 만들어두었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경급 디제스터의 주력 공격조차 한두 번은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쉘터였지만, 아이들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고, 남자들은 쉽게 그녀들 바로 뒤까지 따라잡았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쏴버린다!"

"꺅!"

쉘터 문을 열기 직전에 따라잡혀 버린 아이들은 총구가 들이밀어 지자 소리를 지르며 움직임을 멈췄다.

천후에게는 왈가닥처럼 굴 수 있지만, 복면을 쓰고 기관단총을 겨누고 있는 성인 남자들과 싸울 힘은 그녀들에게 없었다.

"그냥 죽여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뭐? 아니…. 그래도 어린애들인데 어떻게 그러냐?"

"그러니까 더 의미가 있지. 어린애한테도 가차 없다는 걸 보여줘야 할 거 아냐?"

'안 좋구나.'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들은 이그네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인질이 되는 정도라면 모를까, 이들은 아예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쏴 죽일 생각부터 하고 있는 목숨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자기들끼리 의견이 갈리고는 있지만, 큰소리치고 있는 남자가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는 상황. 이그네스는 마른침을 삼키다….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리미터.

쿵. 쿵.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해야 할지도 모른다. 곧 희주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보다 빠르진 않을 터였다. 그때가 되면 이미 늦다.

"새끼야. 쫄았냐? 그럼 내가 할 테니까 넌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

"아 이 미친 새끼. 좆대로 해라."

"!"

대화를 마친 남자 중 하나가 흐흐 웃으며 기관단총을 아이들에게 겨눴다. 놀란 아이들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흡…!"

눈매를 날카롭게 세운 이그네스는 리미터를 착용한 그 상태에서 무영창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빠직! 화아아악!

"으악!"

"뭐야, 이거!"

순간, 남자들의 눈앞에서 불덩어리가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법사다! 쏴!"

긴장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직후, 그들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깜짝 놀란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분명 총소리가 났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어?"

놀란 아이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을 때. 그녀들 앞에 선 불꽃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쉘터로 들어가."

"어? 이…이그네스?"

"어서!"

"으, 응!"

윽박지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당황하면서도 쉘터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그네스도 빨리 들어와! 어서!"

"……."

이그네스의 현재 상태가 영천후와 비슷해서일까? 아이들은 화염 마인이 된 이그네스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되려 그녀에게 손짓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 상태론 못 들어간다. 어서 문을 닫아라."

천후와는 다르게 주변 온도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이그네스가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들어갔다간 사우나처럼 달아오른 공기에 아이들이 탈진해버리거나, 산소가 금세 고갈되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주문을 해방한 그 순간, 이미 리미터는 한계에 다다라 박살 난 상태. 그녀라고 평소 여유가 있을 땐 여분의 리미터를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기에, 다시 리미터를 구하려면 자신의 방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그래두."

"어허. 나는 괜찮다. 봐라."

그녀는 최대한 아이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상황을 파악시켜줬다. 그녀가 슬쩍 남자들에게 시선을 준 것만으로 그들의 옷가지와 탄창의 탄약들이 발화했고, 간신히 발사된 총알 역시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녹아서 사라져버렸다.

S 랭크 이상의 방출계열 마법사인 그녀는 이 모든 조화를 일으키는 데에 영창조차 필요 없었다.

"자. 괜찮지? 오히려 같이 들어가는 게 더 위험하다. 그러니 들어가 있어라. 알겠지?"

"응…."

"그래두. 조심해?"

"알겠다."

불덩어리 상태임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제야 안심한 아이들은 쉘터의 문을 닫았다. 그것을 보며 가만히 웃던 이그네스의 눈매는…. 남자들 쪽으로 몸을 돌리고서부턴, 슬픈 빛으로 바뀌었다.

화륵. 화륵.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점점 강해져 갔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근처는 오히려 기온이 낮았는데, 쉘터의 문이 닫히자 거짓말처럼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통제를 할 수가 없구나…."

원하는 곳에 원하는 힘을 작용시키는 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힘까지 주변에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든 쉘터가 닫힐 때까지는 의지로 억눌렀지만, 그 직후가 되자 컨트롤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당장 쉘터 입구의 금속이 달아오르고, 지하실까지 따라 내려왔던 남자들은 엄청난 고음에 소리를 내지르며 내빼고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어지럽구나…후우…."

리미터를 풀자 그녀의 이성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잠깐 정신을 놓았다간 영원히 의식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서 방으로 가서 리미터를 다시 착용해야 한다. 그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2층까지 계단을 통해 가기엔 너무 오래 걸리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그녀의 손이 위쪽을 향했다.

*

경비업체 인원들이 무장 시위대에게 습격당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던 희주는 순식간에 여럿을 쓰러뜨렸다. 그러다 건물 유리가 깨져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

추가 인원. 경중을 잰다. 판단은 순식간이었다. 사복검으로 늘어났던 월하홍취를 원래 모습으로 바꾼 희주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집안을 뒤지고 돌아다니던 남자들은 총부터 들이댔다.

"쏴!"

드르르륵. 여러 명이 연발로 냅다 갈기는 소리. 그러나 그것이 사람 몸에 틀어박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

어느샌가 그들 사이에 나타난 희주의 검이 그들의 어깨나 허벅지를 찔렀다. 그때마다 남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탁. 탁. 탁. 남자들이 총을 놓칠 때마다 발로 차서 멀리 치운 그녀의 시선은 지하실 쪽으로 향했다.

쉘터까지 가는 덴 시간도 걸리고, 뛰쳐나가기 전 에바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체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고양이처럼 몸을 낮춰, 네발짐승을 연상케 하는 움직임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가 걱정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헬스장에서 쉘터로 내려가는 입구 쪽에서 남자들이 기겁해서는 도망쳐 나오고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아악! 길 막지 말고 비켜!"

"괴물이다! 괴물!"

제멋대로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남자들을 바라보던 희주가 몸을 움직였다. 그리 큰 움직임도 아니었다. 월하홍취를 쥔 채, 제일 앞에 달려오는 남자의 배를 밀어차기로 뻥 찼을 뿐.

"으악!"

그 단 한 동작으로 남자의 몸이 뒤로 붕 날아가더니 뒤에 같이 달려오던 남자들 여럿을 볼링핀처럼 쓰러뜨렸다.

"쿠헥!"

"컥!"

"……."

희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닥에 나뒹구는 남자들 하나하나를 잡아다가 명치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까무러쳐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안색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온도가…."

이 지하 헬스장은 천후와 강호가 사용할 때 외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데, 지금은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있을 수 없는 일. 희주는 한 가지 사태를 예상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쿠확!!!!

희주가 쉘터로 내려가려 하기 직전. 갑자기 계단에서 불꽃이 토해져 나왔다. 그것은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고 정확하게 대각선 위로 날아가더니, 건물을 관통해서 빠져나갔다.

"……."

뚫린 구멍 너머로 화창한 하늘이 보였다. 희주는 말없이 월하홍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지하 계단에서 화염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것은 허공에 떠 있었는데, 잠깐 희주 쪽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곧 지하실을 벗어나 더 위로 날아갔다.

"이그네스."

그 정체를 알고 있는 희주는 먼저 쉘터 상황을 확인해보았다. 문이 조금 녹아있긴 하지만, 보아하니 아이들은 안쪽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희주는 고개를 들어 1층을 지나 2층으로 향하는 이그네스를 올려보았다. 문제는 얼마나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였다. 일단 그녀를 공격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은 정신이 있는 것 같다고 판단한 희주는 땅을 박차 그녀를 쫓았다.

이그네스가 향한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화장대 안에 여분의 리미터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정확히 그곳으로 찾아왔다.

"으…. 아…."

말을 잘하기 힘든지, 이그네스는 짧은 신음을 내면서 화장대에 손을 댔다. 나무로 된 화장대는 단숨에 불타올랐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랍을 열어서 리미터를 팔에 착용했다.

차칵. 낮은 소리와 함께 리미터가 그녀의 팔에 딱 달라붙었다. 그녀의 몸이 불타오르고 있음에도 내구성이 그것을 버텨내고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빠지직. 낮은 소리와 함께 리미터가 조각조각 나서 땅으로 떨어졌다. 리미터가 버틸 수 있는 시일을 표시하는 붉은 선이 순식간에 한 바퀴를 돌아버린 것이다.

"아……."

후욱.

그 순간. 이그네스의 몸에 넘실거리던 화염이 아주 미세한 정도만 남기고 갑작스레 사라졌다. 그동안 이그네스는 괴로운 듯 자기 양 관자놀이를 감쌌다.

완전히 진정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 지금 리미터를 채우면 봉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상태.

그렇지만….

"공도."

희주는 그 자리에서 공간 이동으로 물러서 정원에서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아------------------"

쿠화아아아악!

화염 마인의 아리아가 울려 퍼지며, 겁화가 천후의 자택을 뒤덮었다.

그 광경을. 희주는 아주 약간 일렁이는 눈으로 올려볼 뿐이었다.

*

DS 본사 사제 폭발물 테러 관련 기자회견에 직접 응하고 있던 천후는 그 중간에 자택이 습격받았다는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눈이 돌았다. 기자회견 따위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것은 강호도 마찬가지였다.

본사에서 뛰쳐나온 둘은 불법이고 나발이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온 힘을 다해서 집으로 달려왔다.

오히려 이게 텔레포터를 찾아다가 공간 이동하는 것보다 더 빠를 지경일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미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그의 자택 주변에는 총격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그로 인한 사상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인님."

"희주 씨! 괜찮아요?"

"네. 아이들도 무사합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천후 역시 같은 것을 보며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총격전의 흔적. 집의 지하부터 옥상까지 완전히 관통한 자국 같은 것은 저것 앞에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

서울 상공을 뒤덮고 있는 홍염 앞에선.

그것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그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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