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236화 (236/324)

236화

폭주한 이그네스는 이강호의 특성으로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사건 자체는 그렇게 쉽게 무마되지 않았다.

국내에 DS를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쇼크로 다가왔다. DS 본사 폭탄 테러를 일으킨 청년은 처음엔 발뺌도 해보고, 마법에 걸린 척 미친놈 연기까지 하다가 그 모든 게 간파당하고 나서야 제대로 입을 열었다.

“마법사들이 전부 부자인데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30년 전만 됐어도 저런 것들은 전부 군대 아래서 움직여야 했는데.”

어이를 날려버리는 발언에 일리미네이터들은 할 말을 잃었다. 매번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고 있는 게 그들이었다. 당장 서브 퀘스트 디제스터만 해도 그걸 토벌하려면 일개 중대에서 대대급 병력이 완전 무장을 갖추고 나서야 잡을 시도를 할 수가 있었다.

그걸 대행해주는데 3천만 원이 그렇게 비싼 돈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하나같이 퇴치 시세가 낮게 형성되어있어서 다행이라는 분위기인데, 이들은 전혀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영천후의 자택에 총기를 가지고 쳐들어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들은 구속되자마자 한 목소리로 홍희주가 과잉 방어를 했다고 주장하다가, 그 모든 의견이 묵살 당하자 추가적인 시위를 하겠다고 되려 엄포를 놓았다.

“이게 정당방위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전 할 말이 없군요.”

“거, 걱정 마십시오. 법리적으로도 절대 DS 쪽이 질 수가 없으니까.”

싸늘한 천후의 목소리를 들은 경찰청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이번 건은 대한민국이 테러에 얼마나 취약한 국가인지를 한눈에 보여준 사건으로 낙인이 찍혔다.

DS, 영천후의 사회적 지위는 사실상 현직 대통령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인데, 그의 사저가 인근에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기로 무장한 세력에게 일시적으로 점거당했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DS가 국내 안보의 한 축인 디제스터 쪽을 담당한다지만, 어디까지나 기업. 그들이 방비할 수 있는 한계는 법으로 정해져 있었고, 당연히 이런 일반인들의 무기 소지나 테러 위협을 대비하는 것은 군경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신뢰가 무너져버렸다.

“이들에게 총기와 폭약을 유출한 세력이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해서 찾아내겠습니다.”

“…….”

가라앉은 천후의 눈에 신뢰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 차라리 매지션 레이지나, 마법사가 일으키는 사건은 일종의 천재지변이라 그걸 막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총기와 폭약을 입수하여 난장판을 피울 때까지 전혀 잡아내지 못하는 걸 본 이상 신뢰가 성립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천후는 이러한 테러가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미리 언질까지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그 감상은 더했다.

“저…. 그런데 직원이나 가족분들은….”

“경비 팀 두 명은 중태였지만 치료를 받고 내려와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행히 상처 없이 무사합니다. 그리고 이그네스의 경우…,”

거기까지 말한 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식적으론 이그네스가 괴한들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마법을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다행히도 이그네스는 폭주한 상태에서도 공격성이 높지 않아 사람은 공격하지 않았기에 그 정도 발표로도 소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서울 하늘을 불바다로 만들긴 했지만,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천후의 입에선 나지막이.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제가 이 나라에 있을 이유가 있나 모르겠군요.”

“!!!!”

지금 이 대담은 정부인사뿐 아니라 각 언론사가 정식으로 촬영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발언이 나와 버리면….

아니나 다를까. 그 이야기를 들은 기자들의 입이 딱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다시 집어넣을 수 없었다. 천후 자신이 그럴 생각이 없었으니까.

‘크, 큰일이다.’

이 파장이 얼마나 클지….

경찰청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새었다.

*

<특보! DS 한국 거주에 회의감 드러내.>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아무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서 살 생각은 없다!>

다음날 신문 1면에는 그가 했던 말이 제멋대로 각색되어 장식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한민국 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지금 상황에서 DS가 정말 한국 뜨면 어쩌려고?”

“미친놈들! 일리미네이터가 적은 무슨 놈의 적이야! 정신 나갔냐?”

드래곤이 퇴치된 지도 반년 이상. 그 이전과 이후. 디제스터에게 입는 피해는 극감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DS의 텔레포테이션 시스템 덕분이다. 그러나 이 허가는 어디까지나 영천후라는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며, 국가나 유그드라실이나 다른 마법사를 믿고 허가를 해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장 영천후는 자택이 습격당한 상황에서도 텔레포트는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자제심이 있었지만(물론 다른 마법은 사용했지만 말이다), 다른 마법사들의 경우는 더욱 쉽게 사용하고 돌아다닐 것이다.

뭣보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풀어준다 한들, 그처럼 등장과 동시에 놈들을 순살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이는 없었다.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대한민국에선 디제스터가 3분 이상 날뛰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상황.

이 평화가 미친놈들 집단 때문에 깨져야 한다고? 그걸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까진 마법사 관련으로 시위를 하던, 삭발을 하던 무관심하던 시민들은 그날로 민감해져서, 마법사 반대 시위에 똑같이 시위로 대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규모가 한 100배쯤 차이가 난단 정도?

“야! 경찰들 안 비켜? 지금 누굴 보호하는 거야!”

“너희가 지킬 건 우리지 저놈들이 아니다!”

수 차이가 이렇게 나자 경찰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마법사 반대파를 지킬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가지고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동안 정부에선 반 마법사 단체들을 강력하게 압력, 조사했고 그 결과 이들이 해외에서 조직적으로 테러를 명령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때부턴 일방적인 체포의 향연이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채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공권력이 진심으로 움직이면 어떤 힘을 보이는지를 확실히 보여준 정부는 부디 그들의 영웅이 자신들을 떠나지 않길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영천후는 그 시점에서 전혀 다른 것에 신경이 빼앗겨 있었다.

*

유그드라실.

냉전 시기에 발족하여 지난 50여 년간 마법사들을 지켜온 집단.

초인이라 불러 마땅한 SA 랭크 마법사들의 힘을 빌어 그 누구도 추적하거나 포착할 수 없는 공중요새를 만들어 굴리고 있는 이 집단은 기존 국가들에겐 깡패나 다름없었지만…마법사에겐 희망 그 자체였다.

국가나 집단이 마법사를 좋게 받아들여 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역시 초자연적 능력이 마법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몰래 연락만 성공한다면 보호받을 수 있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마법사들에게 너무나 달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집단에서…. 지금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포기하시죠. 그녀의 마력동화는 이제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까?”

그 유그드라실 마법사가 DS 본사에 찾아와서 하는 말에 천후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그네스의 힘이 한 번 풀린 이후. 그녀는 리미터가 통하지 않아 줄곧 이강호가 옆에 붙어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진리구현자 특성이 발휘되고 있는 동안엔 리미터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중복으로 걸어본다든가 하는 시도도 무의미했다. 특성이 꺼지는 순간 리미터도 박살 나버렸다.

이에 천후는 전용 리미터가 어렵다면 이전보다 강화된 리미터라도 제작해달라고 의뢰를 했고…. 그 대답이 바로 위의 말이었다.

“이미 한 번 한계를 넘은 순간 끝난 겁니다.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당신들이 그러고도 마법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야?”

그의 눈에 싸늘한 살기가 돌았다. 하지만 앞에 선 마법사들은 냉랭히 답했다.

“마법사라니요? 이전에 답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멸급 디제스터라고.”

“말이 안 통하는군…. 당신들하고 말하다간 내가 돌아버리겠어.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국지부장 님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나타난 엘모세와트의 아이들을 포착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한동안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아 본사에서 근신 중입니다.”

“……당신들 정말 돌았군?”

유그드라실이 마법사들의 요람이라지만, 그래도 S 랭크 마법사는 손에 꼽게 적었다. 그중 하나인 최완의 활동을 지금처럼 난장판인 상황에서 막아버리다니?

말이 한국지부장이지, 최완은 대표적인 무투파로 유그드라실이 정말 무력을 사용해야 할 때에는 언제나 그 전면엔 최완이 있었다. 언제 알자드를 쫓아낸 난민보호소에서 폭동이나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자승자박도 정도가 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던, 이것이 유그드라실의 정식 판단입니다. 그렇다고 당신과의 관계를 무너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기존 사양의 리미터도 제공해드리고, 마도구 제작자인 고인규와 접촉하는 것도 허용은 해드리죠.”

“…….”

굳이 이렇게 말한단 건, 접촉해도 답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뿌드득하고 이를 간 천후의 목소리에선 짐승과도 같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대체 이렇게 해서 당신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 말에 유그드라실 마법사들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사정이라는 것이 있지요. 양보할 수 없는 것도. 당신이 그녀를 품어주고 싶은 건 인간적으로 이해하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불의의 사태에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의의 사태라니. 이그네스가 뭘 한단 말입니까? 이제 와선 그냥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데.”

그 말에 가장 앞에 있던 그들의 대표는 작게 실소했다.

“그건 두고 보면 아실 겁니다.”

순간 천후는 머릿속이 시원하게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꼈다. 또 이 태도다. 또 자기들끼리만 아는 정보를 숨기고 있다.

대체 이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인단 말인가? DS의 주인인 영천후는 지금 당장도 한 명의 개인의 힘으로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그에게 호의적인 정규 공격대들까지 합치면 각국 정부가 어지간한 의지가 없는 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정도의 입지를 확보했는데도 그에게 비밀을 가진단 말인가?

“당신들과 길게 이야기할 게 없다는 건 알 것 같군요.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그럴 리가요. 당신의 도움은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도 말해주시는군요.”

만남은 결국 그렇게 흉흉하게 끝나버렸다. 천후는 그들이 돌아가고 나가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

자택에 휑하니 구멍이 뚫린 상황이다 보니, 천후의 가족들은 임시로 엔체스터 호텔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중 이강호는 이그네스의 상태가 상태인 만큼 24시간 밀착마크 중이었다.

“미안하게 되었구나. 하는 일이 바쁠 텐데도.”

“음. 어린애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스윽. 딱딱한 손이 그녀의 이마와 뺨을 훑었다. 그녀는 어른 중에선 가장 그녀를 애 취급하는 쪽이었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다 보니 신기하게도 이그네스 역시 반발감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입장이다 보니 더더욱.

“어차피 당분간 좀 쉬고 싶었으니까 괜찮다.”

“응.”

이래저래 이브나 에바가 가장 의지하는 것도 강호였다. 무서운 일을 겪은 직후이니, 둘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잠시 쉴 생각이었다. 거기에 사람이 하나 더 추가된 정도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그럼 이제 자야 하니 씻을까?”

“아. 먼저 씻으마.”

“응? 왜 같이 안 하고?”

“그, 그런 건 부끄러운 게다.”

“그렇다면야.”

진리구현자 특성을 세세히 컨트롤 하려면 시야에 들어올 필요가 있었지만, 단순 무효화 효과는 그녀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발휘한다. 잠시 눈에 그녀를 두지 않는 정도로 어떻게 되진 않는다. 그래서 강호는 그녀가 혼자 목욕하는 것을 그냥 놔두었다.

그리고 이그네스는….

“…….”

쏴아아.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졌다. 차가운 물이.

그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욕조를 채웠다.

이그네스는 천천히 턱에 앉아 발을 담갔다. 물에 몸을 담그기 전에 잠시 쉬는 동작. 단지 그 뿐이었는데.

욕조에선…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래서야.”

이그네스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어깨는 들썩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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