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난리가 났다. 현재 상황은 그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이그네스 엠프레스가 불러낸 소환수, 이프리트 4체는 하나하나가 멸급 디제스터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모여든 공격대원들은 놈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것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거리 안은 무조건 화염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그것은 유그드라실 마법사들이 걸어둔 방어마법의 지속시간을 확실히 갉아먹고 있었다.
버거운 적. 시간은 제한되어있다. 이 상황을 일으킨 본체인 이그네스 엠프레스는 상처 하나 없이 구경조차 하지 않고 저쪽에서 다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지금 이 이프리트 소환마저도 전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꺼져!"
푸콱! 그 안에서 검은 불길이 이프리트가 휘두르는 불꽃 망치를 피해내며 놈의 안면에 날아들어 걷어찼다.
푸콱! 불꽃 그 자체로 이루어진 몸체가 크게 흩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정비한 다른 팀이 놈을 상대했다.
"이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가라!"
"알았어!"
강호가 외쳐오는 말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공격대는 팀을 다섯 개로 나눴다. 4개 팀은 하나씩 이프리트를 상대하는 팀.
월드 리버티, 컨퀘스터, 머니 크래프트, 그리고 천후를 제외한 DS가 그들이었다. 팀마다 노블레스 클럽 맴버가 3, 4명씩 들어가 힘겹게 이프리트를 맞아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팀이 바로 이그네스 엠프레스에게 접근하는 팀이었다.
영천후와 각 정규 공격대 마스터로 구성된 이 팀은 말하자면 결사대이자, 세계 최고의 일리미네이터 팀이었다.
그들의 앞을 막기 위해 아프리트가 방해하는 것을 걷어낸 천후는 곧장 이그네스 엠프레스에게 날아갔다.
"이그네에에에스!"
찢어지는 비명이 소란스런 전장을 갈랐다. 그 목소리를 들은 걸까? 이그네스 엠프레스의 둥글게 말려있는 몸이 조금 움찔했다. 그러나 그뿐.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말이 통할 상황이 아니야!"
"근접 거리에서 제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지."
플랜 C는 이론적으론 간단한 것이었다.
랭크 차이가 있더라도 영천후가 이그네스에게 접근만 할 수 있다면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전제하에, 그를 어떻게든 가까이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접근하려고 하면 이프리트들은 두드려 맞는 것을 감수하고서 그들을 쫓아왔고, 덕분에 직선거리론 닿는 데 5초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로막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아!"
강제로 이프리트의 스크린을 뚫고서 흑선 되어 날아간 천후는 결국 그녀와 500m 거리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찌이이이잉-
귀를 찢어버릴 것만 같은 이명이 울려 퍼지며, 허공에 적색의 파문이 그려졌다. 거기에 부딪힌 천후는 그대로 튕겨 나와 남극점 호수에 처박혔다.
"크학!"
"방어마법인가?"
"뚫겠네."
현상을 보자마자 어떤 것인지 알아챈 마스터들은 바로 캐스팅을 준비했다. 그 오오라를 본 이프리트들이 더욱 강력한 화염은 그들에게 쏟아냈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컴뱃 캐스팅의 끝자락에 닿은 이들이었다. 막무가내로 막 지른 공격에 당할 이들이 아니다.
"뚫어라!"
패트릭의 외침과 함께 4줄기의 흰색 광선이 허공에서 모여 하늘을 난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가, 마치 성문을 부수는 공성추처럼 그 끄트머리를 날카롭게 세운 에너지 파장이 정확히 천후가 때려 박았던 곳에 직격했다.
찌----찌이이이이이이잉! 카직!
그 힘을 받아내던 적색의 파장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조금 갈라졌다. 그 사이 호수에서 완전히 튀어나온 천후는 바로 그 자리에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아아아아아아!"
콰지지직!
몸이 바스러지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고속으로 때려 박히고 나서야 파장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것을 느낀 것일까? 몸을 말고 있던 이그네스 엠프레스는 그제야 말고 있던 몸을 바르게 폈다.
"이제야 일어났어? 어른이 되니까 잠만 늘었군?"
어른의 몸으로 밝게 타오르고 있는 이그네스 엠프레스는 대답 없이 그저 주변을 슥 훑어보았다. 마치 누가 자신의 잠을 깨운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이….
그 파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아리아가… 울려 퍼진다. 그것에서 느껴지는 기색은 명백한 적의. 그녀의 지척까지 다가간 모든 이들은 경계심을 높였다.
당장 이프리트가 내뿜고 있는 광역 화염만 해도 강력하기 짝이 없는데, 그녀가 진정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방어마법이 소진될 수 있었다.
이그네스를 상대하기 위해 공격대 마스터들에겐 좀 더 버프가 많이 걸려있다지만, 그게 그리 큰 의미가 있을지는 상대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
"갑니다…!"
시작은 천후가 열었다. 이미 초음속 이동이 가능한 상태의 그는 이 거리에서 이그네스가 있는 곳까지 1초면 접근할 수 있었다. 말을 완전히 내뱉는 것보다도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선 천후는 바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그네스!"
"아----"
낮은 음색의 아리아를 흘린 이그네스는 순순히 그에게 팔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천후를 당황하게 했다.
이미 이런 상황이다. 그녀는 지금 아무리 봐도 인성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는데, 그와의 접촉은 피하지 않다니?
'이성이 조금은 남아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걸지도 모른다. 한순간 그의 머릿속을 긍정적인 예측이 지배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지나지 않았다.
이그네스는 천후가 팔을 잡아오든 말든, 얼굴을 돌려서 패트릭 쪽을 바라보았다.
푸확!
"끄아아아아악!"
단숨에 패트릭의 몸에 불꽃이 치솟아올랐다. 타격을 동반한 그 발화 효과에 패트릭은 속수무책으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아…!"
게이즈 어택. 지금껏 영국에서도 천후를 제외한 인간에겐 발휘한 적 없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홍염이 그녀의 팔을 잡은 손에서부터 그의 흑염을 좀먹으며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악!"
천후는 버텨보려고 했지만, 그다음 순간 그녀가 귀찮다는 듯이 내저은 손짓에서 튀어나온 화염에 그 역시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패트릭이나 그나 죽진 않았지만, 겹겹이 걸려있던 방어마법이 상당히 소진되었다.
"아-----"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녀는 고고하게 하늘 위에 서서 땅으로 떨어져 내린 그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그녀 특유의 세상 전체를 살라 먹을 듯한 화염은 뿜어내지 않는다. 대신에 확실히 정련된, 사람 그 자체를 하나하나 노리는 강력한 힘이 그들에게 직접 꽂히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차라리 멋모르고 날뛸 때가 오히려 제압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확실히 자신의 힘을 인지하고서, 정확하게 대상을 가려 사용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끝이 안 보이는 여력을 가진 상대가 낭비까지 하지 않으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마법과 동화될 만큼 되어서인가, 그녀의 힘의 행사에는 큰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단순한 손짓, 눈짓만으로도 그들을 위협할만한 공격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할만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지금 그녀가 보이는 기색은 명백하게 '지금까진 워밍업에 지나지 않았다. 슬슬 진짜 힘을 써볼까' 하고 시동을 걸고 있는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진짜 싸움이 된다면….
"…젠장!"
길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녀의 기분에 따라서, 여기서 이렇게 꾸물대는 시간에도 공격을 당할 수 있다.
푸확! 그의 신형이 그녀를 향해 날았다. 일단 접촉은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할 수 있을 터였다. 일단 다시금 닿기만 할 수 있으면-
"아----"
그러나 그것은 천후의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이그네스가 그를 향해 손을 내뻗자, 그녀가 잠들어있을 때 펼쳐졌던 파장이 다시 한 번 그를 가로막았다.
"컥!"
그 강도는 그때보단 약한 것 같지만, 이걸 전개하는데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는 가만히 있지도 않았다.
화륵. 화륵. 다른 손으로 허공을 쓰다듬자, 불꽃의 공이 네 개가 형성되었다. 그녀는 그것들이 형상을 갖춤과 동시에 손을 휘둘러 내쏘았다.
콰아아앗! 화염구는 그 즉시 불기둥으로 변하여 마스터들을 덮쳤다. 공격을 예상하고 있던 이들은 그것을 간신히 피해낼 수 있었지만…
"아----"
허공을 그런 화염구가 수십 개씩 수놓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이런…!"
쿠쿠쿠쿠쿠쿠! 하나하나가 B랭크 일리미네이터의 풀 캐스팅 화력을 웃는 화염 기둥이 그들을 따라 허공으로, 지상으로 내리꽂힌다. 그때마다 그들은 피하느라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천후 역시 방어막을 깨고 달려들어 보았지만, 그 즉시 새로운 방어막이 나타나 그의 행동을 막아버렸다.
접근전이면 어쩔 수 있네 없네 이전에, 그냥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컴뱃 캐스팅 불가!"
"이건…. 당해낼 수가….!"
지난 10년간 세상을 지켜왔던 정규공격대의 마스터들조차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마다 시간은 간다. 이프리트가 뿜어내는 화염에서 버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점점 소모되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DS, 이프리트 퇴치 성공! 화력 지원, 갑니다!"
200m 높이의 화염 정령의 몸을 무너뜨린 DS의 마법이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불기둥을 뚫고서 이그네스 엠프레스에게 직접 날아갔다.
"아----"
그것에 놀랐는가, 그녀는 화염구 생성을 잠시 멈추고 그쪽으로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직접 화염이 쏟아져나와 그것을 받아쳐버렸다.
"이것도 안 먹히나..!"
공격대원 사이에선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그래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곧 DS뿐 아니라 다른 공격대도 이프리트를 끝장내고서 합류를 시작했다. 힘은 멸급 디제스터에 가까웠지만, 패턴이 지극히 단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아. 이 수가 한꺼번에 계속 덤비면 아무리 천급 디제스터라도!"
가망이 있다! 절망감에 사로잡혀있던 이들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그러나.
"아----"
이그네스 엠프레스가 다음 아리아를 내지른 순간, 그 기대감은 완벽하게 박살 났다.
푸화악! 푸화악! 다시금 남극점 호수에서 물기둥이 튀어나오더니, 똑같이 이프리트가 생성된 것이다.
<이프리트 추가 생성. 이그네스 퇴치 전까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어 보입니다.>
"이런 미친!"
"돌았어? 이걸…. 이걸 어쩌라고?"
이것들을 잡는 동안 리타이어 한 사람 수만 수십이 넘는데, 그걸 그냥 다 잡히면 그때마다 계속 불러낼 수 있다니?
승산이 없다.
모든 경우의 수. 만약의 만약까지 고려하는 레이나드조차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태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퇴각해야 한다.
하지만 퇴각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녀가 남극에 자리를 잡으면 3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 문명의 태반이 물에 잠길 것이다.
핵을 투사한다고 과연 그녀를 잡아낼 수 있을까? 순항미사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백 발이고 천 발이고 다 날아오기도 전에 요격할 수 있어 보이는데?
변수란 없었다.
없어 보였다.
그가 꺼낸 한마디를 듣기 전에는.
"공격대장. 공격대를 물리세요."
"…사장님?"
"전에…. 한번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죠? 씁니다."
"아…."
순간 레이나드와 태원은 그가 이전, 어렵게 꺼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이그네스가 천급 디제스터 지정을 받아 날뛰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깨달았다.
"안됩니다, 사장님! 그러다가 사장님까지 디제스터 판정을 받아요!"
"……."
통신기 너머에서 대답은 없었다. 태원은 머릿속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고, 경계했는지 그 정체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최악의 경우엔….
"만약…. 제가 이그네스와 마찬가지로 전혀 통제되지 않는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움직이게 하세요. SA 랭크가 없는 이상, 그나마 아버지와 유그드라실의 S랭크 마법사 말곤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이 없을 테니까."
"안됩니다, 사장님!"
담담히 그 최악의 경우를 읊는 것을 들은 태원은 급히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말에 돌아온 말은 그가 바란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때는……. 부탁합니다."
빠지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통신기 너머에서 울렸다. 아마도, 통신기.
"안됩니다, 사장님! 야! 이 병신아! 영천후, 이 새끼야! 안 된다고 하잖아, 내가! 공격대장 말 좀 처들어, 씨발!!!!!”
뭘! 뭘 부탁한다는 거야! 그때는 내가 세운 전략으로 네 목이라도 따달라는 거냐?
한참은 어린 그에게 고용된 후로도, 그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말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감정의 격해진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편. 이그네스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한 남자의 몸에서.
또 다른 홍염이 치솟아올랐다.
"…전 공격대원. 이탈합니다. 지금 당장. 유그드라실 인원까지, 전부."
이미 시작되고 말았다. 레이나드는 멘탈이 녹아내려 버린 정태원의 뒷목을 부여잡고서 그 자리를 이탈했다.
그의 아랫입술에선 피가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