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253화 (253/324)

253화

<똥 묻은 개를 잡으려면>

밤.

한차례 세계의 큰 위기를 넘기고, 격전을 치른 전사들이 모두 안심해서 잠든 그 시각. 같은 날에 다른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그때.

넓은 황무지 저편에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정체는 철갑으로 된 차량. 장갑차였다. 열을 지어 달리는 그것이 지면에서 모래먼지를 끌어올려 사방으로 흩뿌려댄다.

하늘에는 갈색의 공격 헬기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선행 비행하고 있었다.

평소 이들은 이 나라 전체를 집어삼킨 신의 전사들을 토벌하는 든든한 수호자 역을 해온 이들이었다. 현지 주민들은 그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보냈고, 현지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그들과 쉽게 친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동은 그렇게 의심을 사지 않았다.

국경선으로 향하기 전까지는….

"뚫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가 무슨 수도를 치게 아니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짙은 다크서클의 남자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그렇게 말했다. 아랫동네에서 워낙 난리가 나서, 터키 역시 국경에 군병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건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니 대비한다는 개념이라기보단, 난민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집중에 가까웠다.

신의 국가는 아직 터키를 직접 공격하는 것보단, 사리아 내부 정리에 조금 더 힘을 쓰고 있었다. 간혹 난민에 섞어서 테러리스트를 심고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일상적인 부분이라 언급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였다.

요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들을 막아내기엔…

"자아. 그럼 시작해볼까?"

웃음기 섞인 그의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뒤편. 평원 저편에서 빛무리와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달리고 있는 장갑차와 헬기 위를 통과해, 들어갈 수 있는 날만 기다리며 길게 늘어서 있는 난민들을 넘어 국경 검문소에 떨어져 내렸다.

불꽃이 치솟아오르며, 아비규환이 들려왔다. 그것을 보며 남자, 알자드는 웃음 지었다.

"너무 굼뜬데. 하하."

지옥이 펼쳐졌다.

*

알자드가 설치했던 난민 보호소는 아랍 국가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서양 자본의 힘으로 유지되던 이곳을 각 국가의 통치자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난민의 상당 퍼센티지를 소화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내칠 수도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알자드가 이 난민 보호소를 이용해 인신매매를 벌이고, 그걸 발각당해 도주했다는 점이었다. 그 뒤 난민보호소 운영은 유그드라실이 맡게 되었는데, 거기서 약간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알자드는 알아서 무력 집단을 돈으로 고용해 난민 보호소를 운영했다면, 유그드라실에게 넘어간 이후론 그 나라의 병사들이 지키게 되었다. 이것 역시 그들의 인식 하엔 서양 자본에 굴복했다는 굴욕감을 선사해주었고, 그들의 태도는 비협조적이 되었다.

투입된 인원은 알자드 시절의 1/3에도 미치지 않았고, 이 수로는 난민 보호소 내외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소란을 막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부분들을 커버하기 이해 유그드라실 마법사가 투입되었지만…. 초자연적인 힘으로 공백을 메우는 모습에서 난민들의 친근감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기껏 먹여 살려줬더니 불평불만은 더 늘어난 꼴이라, 유그드라실은 한참을 고생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자드가 사람을 좀 팔아먹었든 말든, 그가 보호소를 운영하던 시절이 더 좋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유그드라실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인식이 그랬다. 그리고….

드르르륵. 콰쾅! 쾅!

"으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획일적으로 지어진 난민 보호소의 건물들 사이에서 불길이 치솟아오르고, 총격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마다 간신히 연명만 하고 있던 이들이 피를 뿜어가며 바닥에 쓰러져 싸늘한 시체로 변해갔다.

"이, 이런…!"

유그드라실 마법사는 상황을 보고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허술한 국경을 단숨에 관통한 장갑차와 헬기가 난민 보호소로 들이닥치더니, 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방어 병력은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이놈들은 이미 어디가 가장 중요한 방어진지인지 알기라도 하는 듯 정확하게 타격했다.

애초에 내부 치안 유지도 빠듯했던 상황에서 이런 공격을 받았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정도 무장이면 이 나라 정규군이 달려오기 전엔 수습이 안 되겠지만… 그 움직임은 늦어지고 있었다.

'버렸구나…!'

그 이유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보호소의 운영을 완전히 자력으로 해내며 나라의 유력자와도 친분을 유지하던 알자드완 다르게, 유그드라실은 나라의 조력을 받아오면서도, 그 근간은 힘을 통한 협박이 존재했다.

이에 행정부는 난민 보호소를 굳이 지킬 이유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까놓고 난민이란 애초에 눈에 거슬리는, 부담만 되는 집단일 뿐이다. 현재의 이 나라의 경우엔 더더욱.

자력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이를 악문 마법사는 오오라를 끌어올렸다.

사람 상대로 폭력적인 마법을 사용해본 적은 없었지만….

"하아아아!"

콰아앙! 폭음이 터지며 보호소 건물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장갑차 하나가 뒤집혔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전부 제압하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피해는 줘야 한다! 그는 곧장 다음 영창을 준비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푸걱!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느껴졌다. 마치 허리 아래가 사라져버린 느낌? 놀란 남자가 뒤를 돌아보니, 파마머리의 남자 하나가 손날로 그의 등 뒤를 관통해 척추를 비틀고 있었다.

"으윽…!"

"아. 역시 마법사들이 지키고 있었군. 하지만 유그드라실에서 파견할 수 있는 마법사의 수라고 해봐야 뻔하지."

그 수준도 말이다. 단숨에 그를 제압한 알자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를 발로 뻥 차서 장갑차에서 기어 나온 남성들에게 보냈다.

"묶어놔. 영감한테 보내야 하니까."

"크으으…. 아니 그 작자는 어린애만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실험체가 늘어나는 걸 싫어하진 않지. 나이 먹은 놈들은 세뇌하기가 힘들어서 좀 돈을 적게 쳐주긴 하지만. 명단 뽑아놓은 것 있지? 장소를 옮겼을 수도 있지만, 일부는 남아있을 거야. 원래 여기 살던 마법사 꼬맹이들. 찾아."

"네."

그의 명령에 남자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그동안 알자드는 한 번씩 튀어나오는 유그드라실 마법사를 그때마다 제압했다. 상대 역시 마법을 쓸 수 있단 걸 알고 있음에도 상정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쉬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열 명 가까운 유그드라실 마법사와 어린아이들을 잡아온 그들은 난민들을 학살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병력을 물렀다.

"슬슬 군이 올 시간이다. 빠지자."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쏴 죽이던 그들은 알자드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난민보호소를 빠져나갔다. 사람을 죽이기만 할 뿐,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하는 행동에 마법사들은 놀람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여긴 당신이 운영하던 곳이었잖아! 이렇게 처참하게…!"

"아~.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리고 그런 건 나한텐 그리 대단한 의미는 없어. 요는 얼마나 날 즐겁게 하느냐. 그리고 그러면서 얼마나 돈도 벌게 해주느냐지."

반발하는 마법사의 뺨을 툭툭 두드린 알자드는 불길에 휩싸인 난민 보호소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름답군."

가식 한 톨 없는 진실한 웃음을 보며, 마법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 있는 이 자는…. 진실로 광인이었다.

*

유그드라실의 대응은 아쉽게도 조금 늦었다. 바로 전날 천급 디제스터를 상대하느라 인력이 빠졌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설마 아무리 정신 나간 놈이라도 재수 없으면 전 인류가 멸망할 수 있어 그에 대응했던 이 공백기를 노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놈들은 생각 이상으로 잔인한 집단이었다.

해당 국가의 군이 제대로 움직이기 전에 국경을 뚫어버리고 난민 보호소를 쳐서 학살한 놈들은 다시 순식간에 국경을 빠져나가 버렸다.

그동안 유그드라실이 한 일이라곤 이미 수천 명이 사망한 곳에 나타나 부상자를 치료해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들이 항시 겁박해오던 SA 랭크 마법사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타나지 않았고, 심지어 분명 유그드라실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S 랭크 마법사들도 침묵을 지켰다.

"치워! 그 손 치워! 내 아들한테 다가오지 마!"

"나가! 알자드를 돌려줘! 우리들의 영웅을 돌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물건을 던지거나, 뺨을 치려고 하는 난민들의 모습에 유그드라실은 대응하지 못했다. 바로 그 알자드가 현장에서 나타나 학살을 진두지휘했지만, 그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설명을 해줘 봐야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 알자드는 일종의 우상에 가까웠고, 과거 비교적으로 좋았던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놈들이 오고 나서 다 망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각 난민보호소 대표들은 유그드라실에게 떠나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해당 국가의 정부는 좋구나하고 그들의 등 뒤를 밀어줬다.

이에 응할 경우 그들이 아예 나라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 지원해주는 모습을 보고 착각하고서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진퇴양난의 상황.

결국 유그드라실은 이 상황을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금 세상에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

"알자드가 운영하는 용병집단이라…."

알자드가 가명을 사용하여 움직이는 용병집단이 난민 보호소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단 소리에 천후는 침음성을 흘렸다.

맨손으로 마법사를 상대해서 전부 생포해갔다는 증언을 들어보면 이건 다른 놈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자기 정체를 숨길 생각이 있지도 않은지, 그날 알자드를 봤다는 목격 정보도 나왔다.

하지만 여기에 개입하는 문제는 그리 쉽지 않았다. 아랍권은 반 서방 정서가 매우 뿌리 깊었고, 천후를 비롯한 정규 공격대들 역시 아랍에서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방법론적으론 유그드라실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을 터였다. 힘을 내세워서 움직이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도 없네."

자문차 찾아온 친란의 말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들을 그냥 놔두면 학살을 계속 일으키거나,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마법사 매매소를 운영하리라. 게다가 마법사를 처리하는 핵심 거처를 알아내지 못한 상황이니…. 이들을 잡아내서 정보를 캐낼 수밖에 없다.

"놈의 PMC는 대규모네. 아즈라엘이 멸망할 때 빠져나온 군인들의 상당수를 포섭했고, 당시의 장비도 운용하고 있지. 신의 국가 건으론 서방 쪽에서 지원도 받은 상태. 이들을 어찌하려면…."

"같은 군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나."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연이은 피해를 보면서 지상군 투입을 망설이고 있었고,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서 군을 투입하려면….

바로 그때. 친란이 무겁게 말했다.

"못할 건 없네. 군은 아니지만."

"음?"

천후가 반응하자 친란은 부채로 나오는 한숨을 막았다. 별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선 별수가 없었다.

"이 경우 우리 목표는 상대의 격멸과 정보의 획득이지, 점령이 아니네. 그러니 계속 그 자리에 눌러앉아 현지 주민을 상대할 필요도 없지."

"그렇지."

"그러니…. 고용하는 걸세. 놈들과 비등한 수준의 용병을. 거기에 정규군 병력과 무기를 섞어서 격멸. 이게 최선이네."

"……."

그녀의 입에선 여느 때보다 무서운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 뒤였다.

"그리고 그 비공식 재가는… 자네가 얻어야겠지. 손을 더럽힐 준비는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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