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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256화 (256/324)

256화

<위선 그 너머>

난민 보호소에서 날뛴 알자드의 모습은 포착되었고, 현지에 침투해있던 첩보원들은 이동 경로를 토대로 그들을 분류할 수 있었다.

정규 공격대의 사주를 받은 이들은 신의 국가 전체가 아니라 데스웨도우로 그 대상을 한정해서 토벌을 결정했다.

그 진행은 순조로웠다. 어용 PMC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란 정부는 비난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것이 컸다.

이들 역시 신의 국가를 견제하는 입장인 것도 있지만…. 그보단 다른 점이 영향을 끼쳤다.

"2년간 경급 디제스터는 무상으로 퇴치해주겠다라… 나쁘지 않은 조건이구려."

유그드라실의 보조를 받은 천후는 빠르게 움직였다. 미국을 설득한 이후, 그는 주변국 정상을 만나면서 이 일을 눈감아줬을 때의 이득을 제시했다.

"최근 나라 안이 매우 시끄러워서 디제스터 대비는 부족한 편이었소. 정규 공격대가 손을 빌려준다면 그것만 한 것이 없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도자, 자하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중동지역의 경우 잦은 전쟁과 불안 정상태의 지속, 계급제 사회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 일리미네이터는 정말 드물었다.

때문에 디제스터 문제로는 언제나 골치를 앓았고, 정말로 질색하는데도 급할 때는 서방에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일리미네이터들은 다른 곳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 갔고, 그들은 원치 않게 국부를 유출해야 했다.

하지만 천후는 여기서 주변 4개국에 정규 공격대의 무상지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DS뿐 아니라 컨퀘스터가 연계된 계약이었다. 그들은 옳다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선 '무상'이라는 부분은 큰 의미가 없고, '부르면 반드시 와준다'라는 부분에 더 눈이 갔지만….

"자네들은 좀 말이 통하는구려. 확실히 유그드라실 쪽보단 나아."

"……."

사람 만날 때마다 이 소리를 들으니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구름 위에 떠 있었던 존재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유그드라실은 마법사들에겐 몰라도, 기존 인간 세계의 정점에 서 있는 자들에겐 '거래'를 제시하지 않았다. 통보에 가까웠고, 그 기저엔 폭력이 깔려있으니 누구라도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분명 그건 마법사들에겐 이득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그렇지도 않다. 결국 이놈들은 인간과 소통할 생각이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날 때마다 한층 안심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을 보고서 천후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하자드는 천후가 제시한 조건에 기꺼워하면서 말을 이었다.

"흠…. 가능하다면 일리미네이터 양성법도 좀 배우고 싶은데."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건 마법사들이 두려움을 먼저 떨쳐내지 않으면 힘듭니다."

"흐음… 그럴 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복지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절대 왕정국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마법사들을 언제 초인 병사로 만들지 누가 안단 말인가?

당장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활동하는 모든 일리미네이터는 국가 일리미네이터였으며, 국왕인 하자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이들만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보고 돈만 보고 일리미네이터 활동을 하겠단 건 세상 모르는 어린애나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좋소.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서방의 한정적인 개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소. 그리고 그대들이 이곳에 올 때마다 늘 국빈으로 대접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난민 보호소 쪽 문제는 유그드라실이 계속해서 관리하게 될 겁니다."

"아아. 그쪽엔…. 병사를 좀 더 보내야겠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국경을 뚫고 들어올진 몰랐지."

대응을 늦춘 건 사실이었지만, 저렇게 남의 나라 국경선을 개무시하고 넘어올 거란 생각은 그도 하지 못했다. 초기엔 그저 한 20, 30명쯤 동시 테러라도 벌였나 하고 있었는데, 장갑차가 기어들어와 사람들을 쓸어버렸다는 소리엔 아무래도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외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내용의 말이 오갔다.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명분은 이쪽에 있었고, 각 국 수장들이 응한 덕에 어용 PMC의 움직임은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데스웨도우가 틀어박힌 요새 인근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

하루가 멀다고 하늘에서 미사일이 날아왔다. 그들이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먼 강가에서 드론 항모가 드론을 날려보내고, 그때마다 요새까지 날아온 무인기들이 미사일을 쏴 재꼈다.

그뿐만 아니라 전투기들도 시시때때로 나타났다. 그 모든 걸 마법으로 대응하고, 피해를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데스웨도우는 사력을 다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전방에 지상군이 나타났단 보고를 받은 이들의 얼굴은 한층 어두워졌다.

규모는 여전히 이쪽이 크지만, 장비의 질이 다르다. 저쪽은 지금 자기들이 그냥 미군이랑 다른 게 없단 걸 숨길 생각도 없는지 첨단 무기로 완전히 떡칠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그냥 점령이라는 것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냥. 다 쓸어버린다.

단지 이것에만 집중한 미군은 정말이지 두려운 존재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한 이유는 그 이후 치안을 유지해주던 과정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나라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괴뢰정부를 수립하지도 못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냥 거슬리는 놈들이 있어 다 치워버리고 그 뒤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거칠 것이 그나마 조금은 있던 양아치가 그 모든 걸 집어치우고 폭력에만 집중한다면?

지금 그들의 눈앞에 그런 놈들이 있었다.

"이거…. 승산이 없는데?"

"지금이라도 흩어지는 게…."

그나마도 규모가 상대적으로 소규모라 버티고는 있었지만, 풍전등화라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상황도 없었다. 자기들만 일방적으로 때릴 수 있는 거리에서 두들기다가 대응이 더는 불가능해지면 쏟아져 들어올 셈이 뻔히 보였다.

데스웨도우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가장 말단까지 상황을 파악하고 도주를 준비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알자드는 그들 앞에서 웃었다.

"오. 어디 도망들 가보라고. 누구 손에 먼저 죽나 볼까?"

이미 온몸에 오오라를 체인처럼 치렁치렁 엮어둔 그의 발언에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에게 반항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히 죽는다. 이래죽나 저래죽나 차이는 없었지만, 그 몇 분, 몇 시간의 차이라도 두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지라 그들은 공포에 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들 마. 내가 너희에게 싸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마. 그러니… 싸워."

그의 수하들은 의아해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싸울 여건을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단 거지? 현대전은 병기의 성능이 모든 걸 좌우한다.

더 멀리. 더 먼저, 더 빨리, 더 많이 때리는 놈들을 이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알자드는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싶더니, PMC의 전차 앞에 나타났다. 예고도 없이 등장한 그는 그대로 전면장갑을 후려쳤다.

투콰아앙! 폭음이 울리며 전차의 전면장갑이 허망하게 날아가고, 안에 타고 있던 모든 이들이 사망했다.

"헉…!"

"마법사다!"

하드보드지로 만든 전차 모형을 사람이 전력으로 집어 던져도 이것보단 원형이 남겠다 싶을 정도로 엉망을 만들어 놓은 그는 싸늘한 눈웃음을 지었다.

"안되지, 안돼. DS를 불러와. 아니면 마법사를 왕창 끌고 오던가."

전장에서 빛이 날뛴다. 그때마다 기계화된 차량이 은박지처럼 구겨지고, 총탄은 대상을 찾지 못해 허공을 쏘았다.

"으, 으아아아아!"

패닉을 일으킨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지르며 기관단총을 난사했지만, 간신히 맞춰봐야 탄환은 그대로 튕겨 나왔다.

"이, 이런 미친…"

그가 이렇게 전장을 엉망으로 만드는 동안, 데스웨도우의 포가 불을 뿜으며 지옥도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어용 PMC는 그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그들이 자리 잡은 요새로 들어오는 길이 워낙 좁아터져서, 막상 차량을 직접 투입하기는 굉장히 꺼려지는 곳이라 먼 거리에서 완전히 끝장을 내고 보병을 투입하려던 차였는데 이렇게 기습을 당한 것이다.

게다가 그냥 기습도 아니고 마법사 하나. 단 하나에 모든 것이 농락당한다. 이놈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소닉붐이 일어나 사람의 육신이 갈가리 찢기고, 가볍게 두드리면 전차가 박살 나는 꼴을 직접 눈앞에서 본 사람들의 현실 감각은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다.

그나마 자주 접하는 C 랭크 일리미네이터 수준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는 화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놈은 이미 그 선을 넘어서 있었다.

그들의 공포를 한 몸으로 받으며 알자드는 양팔을 벌렸다.

"자아. 어디 마법사는 없는 거냐? 꾸물대면 정말 다 쓸어버릴 수가 있다고?"

그 말과 함께 요새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오오라를 감고서 지상에 내려앉았다. 스펠 쉐어 상태가 아닌, 조종당하는 마법사 아이들은 보통 사람들을 보고서도 태연하게 손을 들며 캐스팅을 시작했다.

살인을 하는 데 망설임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전 세계에서 반 마법사 시위가 일어날 만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개인적인 양심? 그런 게 과연 어디까지 브레이크가 되어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 역시 얼마든지 사악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그들은 중무장한 테러리스트 정도는 귀여워 보일 정도로 위험한 폭탄이었다.

"쏴라."

"네."

알자의 명령에 소년들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손에서 빛무리를 토해냈다.

바로 그 순간!

파치치치칙! 눈앞에 흑색의 전격이 흐른다. 폭음은 그 뒤에 울렸다. 마지막으론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방금 일어난 조화를 가렸다.

그렇지만 알자드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야 왔나?"

소년들의 손에서 마법이 방출된 그때. 흑색 전격이 날아들어 그것들을 모두 쳐냈다. 그 후속 열 폭풍을 한 몸으로 모두 이겨내고서 바로 선 상대를 보고서 알자드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야 좀 해볼만 해지겠군. 드래곤 슬레이어."

"알자드 무자헤딘!"

거친 흙먼지를 흩으며 걸어 나온 흑염, 영천후는 저 먼 요새에서부터 오오라가 연결된 알자드를 노려보면서 노성을 자아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왜 이 정도의 힘이 있으면서 이딴 짓이나 하고 있어?"

"하하하. 글쎄. 내 목적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야. 난 그저… 네 뒤에 있는 저 친구 같은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지."

뒤를 돌아보면, 천후의 등장으로 간신히 살아난 병사 하나가 이 부조리한 상황에 할 말을 잃고서 다리를 후들거리고 있었다.

인간의 외모를 하고서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지? 왜 너희는 그런 것을 타고난 거냐? 이런 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 사기다.

입으로 읊고 있는 것도 아닌 데도 알자드에겐 그의 감정이 그대로 들려왔다. 그런 감정을 맛있다는 듯이 맛보며…. 그는 천후에게 덤비라는 듯이 손짓했다.

"자. 그런데 지금 네가 나에게 물어볼 건 이런 게 아닐 텐데? 응? 너야말로 이 꼴이 날 걸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나나 다른 놈들에게서 뭘 얻어내고자 했던 거냐? 어디 자기 입으로 말해보시지? 세계의 영웅."

으드득. 천후는 깨부숴버릴 것처럼 이를 갈면서 놈을 노려보았다. 그의 주먹은 천천히 앞으로 올라왔다.

"라즈베리는 어디에 있는 거냐?"

"하하하하!"

그 질문에 알자드는 박수를 쳤다. 진심으로 유쾌하다는 듯이. 그렇게 몇 번이나 손뼉을 치던 그는 웃음을 멈추고서 말했다.

"글쎄? 어디 알아내 보시지? 위선자 새끼."

콰직!!!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흑암이 전격 되어 대지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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