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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260화 (260/324)

260화

유그드라실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출범한 지 50여 년. 그동안 마법사의 인권신장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일해왔지만, 그 결과는 아주 마뜩잖게 돌아왔다.

세상 모든 국가와 사람들이 그들을 의심했고, 심지어 마법사들조차 그들을 의심했다. 좀 더 친근한 이미지를 위해 빈민국에 집을 세워주고, 식량 지원도 해보고, 온갖 기부도 해봤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나마 일리미네이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미지 개선이 이뤄졌지만, 정작 핵심적인 각국 정상이나 고위층 인사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쳐준다고 해도 그들은 인간의 군대가 상대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처맞을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겁을 안 먹으면 그게 오히려 정신이 어떻게 된 거다. 게다가 그들은 막 발족할 때 실제로 SA 랭크를 통해 데몬스트레이션을 했었으니까.

그건 마치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서 우주인이 각국 수도 위에 비행접시를 띄워놓았던 것과 별다를 바 없었다.

문젠 거기에서 나오는 우주인은 너무 유능해서 인류의 발전을 알아서 이끌어줬지만, 유그드라실은 그 정도의 힘은 없어서, 언제나 교섭의 대상이었다는 거다.

총 든 강도를 앞에 두고서 말로 대화하는 심정이랄까.

그 결과. 유그드라실은 마법사의 대표성을 정규 클랜 마스터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최초 가지고 들어갔던 태도의 문제가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은 셈이다.

돌아와서. 그 결과. 유그드라실 마법사들은 기운을 많이 잃었다. 유그드라실 기관 전체가 뭔 짓을 했든 간에, 그들 개개인은 상당수는 정말 열심히 마법사들을 구해주려고 온 힘을 다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아…. 유그드라실 관둘까. 이럴 거면 일리미네이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왜 그래요. 싱숭생숭하게.”

“그렇잖아. 백날 이렇게 성층권에서 살아봐야 알아주지도 않고. 의심만 받는데.”

공중요새 유그드라실이란 거대한 구조물은 항공모함보다도 훨씬 여유 있는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지상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보다 편하냐면 그건 아니었다.

지상에서 올라오는 물자도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휴가를 받게 되면 무조건 지상으로 내려가곤 했다.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하는 것도 그리 즐겁진 않은데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니 역시 괴롭다.

누가 알아줘야만 선량하냐고?

반대로 이야기를 해보자.

그러면 안 될 이유는 뭔가? 대가를 바라는 선의는 선의가 아닌가? 선행을 유도하는데 대가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자신이 뭔가를 했으면 그것이 좋은 쪽으로 되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조건적인 선의로 모든 것을 해나가는 절대적인 선의를 발휘하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지, 그렇게 못하는 이들을 폄훼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침묵이 찾아왔을 즈음.

띠띠띠.

“전화 왔다.”

“경로 추적하고 인바운드 쪽으로 돌려.”

습관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그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입으로 아무리 궁시렁거려봐야 이미 몸이 일을 알아서 하고 있는 상태라니. 사람 천성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그동안 전화를 받은 직원은 빠르게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법사 보호기관 유그드라실에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전화는 통화기록이 남지 않고 도청도 당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성함과 거주하고 있는 곳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인바운드 팀의 말은 전화를 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자동으로 변환되어 들리게 되어있었다. 그러니 말을 못 알아들을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아무런 말도 없었다. 직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유그드라실의 경우 장난전화를 하면 그때마다 아주 즐거운 보복이 돌아가…. 그 비율이 지극히 낮은 만큼, 이런 반응은 특수한 것으로 생각해야 했다.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면 수화기를 내리지 말고 들고만 있어주시겠습니까?”

멘트와 동시에 직원은 곧바로 추적을 요청했다. 필요한 시간은 15초. 그녀는 탁자를 검지로 두드리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제3 세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위험을 맞이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어서, 유그드라실 역시 그 대응 방법이 발전되어 있었다.

그렇게…. 15초가 지났다.

“감사합니다. 바로 직원을 보내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에도 반대편에선 말이 없었다. 그녀 역시 더 대답은 필요 없었다.

“구조팀, 바로 내려가세요! 알프스입니다.”

*

항시 대기 중인 인원은 바로 큐브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4인 팀으로 구성된 그들은 완전히 내려오기 전부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여긴?”

“완전 산골인데…. 웬 활주로가 있는데?”

“부자 별장이라도 되나?”

아직 저택이나 근처 부지의 주인까지 알아내진 못한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주로 돌아다닌 곳은 분쟁지역이나 최빈국이 대부분이었지, 이런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한 상황 같단 이야기를 들었으니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콰아아앙!

단숨에 저택의 대문을 날려버리고 안쪽으로 뛰어들어간 그들은 넓은 중앙 현관 한편에 땅에 떨어진 수화기를 볼 수 있었다. 인상이 확 변한 그들의 몸에서 온갖 색의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무슨 일이시죠?”

폭음을 듣고 나온 갈색 단발머리의 여자, 레졔나는 눈매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 저택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한눈에 보아도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그드라실에서 왔습니다. 혹시 신고자이십니까?”

리더인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뒤편의 마법사들은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더 있나 마법으로 찾아보고 있었다.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낀 레졔나는 혀를 찼다. 조금 더 지나면 통로를 눈치채리라.

그녀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짚어보았다. 그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저쪽에 수화기가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녀는 저걸 자신이 이제야 봤단 것에서 충격을 받았다. 아주 잠시 정신을 놓은 시간 동안 유그드라실을 부르고, 전화기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한 것이니까.

‘이게….’

누구의 소행인지야 뻔했다. 오른손으로 자신의 옆머리를 가만히 짚은 레졔나는 그러면서도 입가에 빙긋이 미소를 띠었다.

“죄송해요. 마법사란 게 어떤 건지 궁금해서 장난 전화를 한 번 걸어봤어요.”

“…….”

남자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런 저택의 영양이니, 정말 그럴싸하게 들렸다.

“이제 그 정도는 분간할 수 있는 나이인 것 같은데 이러시면 안 되죠.”

“죄송해요. 저, 저한테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니지요? 개구리로 변하게 한다든가…. 네? 봐주세요.”

“하아.”

은근 애교부리며 하는 말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여운 외모를 해서 좀 혹해버린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됐습니다. 대신에 다음에 또 이러면 참지 않을 겁니다. 다들 저 같지가 않아요.”

“아니. 잠깐만. 여기 좀 이상-”

그때. 뒤에서 탐색마법을 계속 전개하고 있던 여자 마법사가 그렇게 말하자, 레졔나는 방긋 웃으며 남자를 확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너머로 여자 마법사를 마주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서 기이한 초록색 불빛이 떠올랐다.

“응? 뭐라고?”

“어…. 응?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별일 아니면 돌아갈까….”

다른 쪽으로 조사하던 마법사들 역시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멍한 목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야지. 저기. 아가씨?”

“네?”

남자의 부름에 냉큼 떨어진 그녀는 이번엔 리더와 눈을 마주쳤다. 이윽고 그 역시 눈동자의 빛이 사라졌다.

“치. 귀찮게.”

그들의 정신을 전부 제압한 뒤에야 레졔나는 원래 태도로 돌아와선 화를 냈다. 성질 같아선 죄다 치워버리고 싶지만…. 이들이 다시 멀쩡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로 의심받으리라.

“당신들은 여기서 그냥 장난전화를 한 여자아이를 본 거야. 내 인상착의도 잊어. 탐색마법 결과는 당연하고.”

“네….”

“알겠습니다….”

멍하니 대답하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레졔나는 그때 다시 머리가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아… 정말! 어서 가버려!”

그녀가 성질을 내자 그들은 기계적으로 경보로 큐브 엘리베이터로 돌아가 버렸다. 그들이 자리에서 사라지자 그대로 전화기를 잡아서 던져버렸다.

“아아! 귀찮게!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잔재 주제에! ‘마마’의 힘을 끌어쓰는 건 피곤하단 말야!”

그녀는 정신계열 마법이 주특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 전처럼 제대로 된 기억조작을 하려면 다른 쪽을 끌어와야 했는데…. 덕분에 아직도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가 아픈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걸 어쩌지. 보고해야 하나?”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이곳에 외부인이 들어왔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걸 말하면 파파한테 잔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조정을 한 번 더 받아야 할지도….

“그건…. 싫어.”

그렇게 생각하자 레졔나의 머리는 다른 쪽으로 굴러갔다.

이 저택까지 들어오는 길에는 카메라가 워낙 많이 깔려있었지만, 오히려 정원이나 건물 내부에는 레졔나가 촬영 당하기 싫어하는 바람에 전혀 없었다. 그녀에겐 다행히도, 이 덕분에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기록이 남지 않았을 터였다.

“그럼 입구는 내가 부순 걸로 해두고….”

말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오오라가 피어올라 문만 부서져 있던 입구가 완전히 휑하게 뚫려버렸다. 문이 부서지면서 안쪽으로 튄 흔적은 덕분에 완전히 지워졌다.

“이럼 되겠지?”

유그드라실 마법사가 큐브로 뜬금없이 문 앞에서 튀어나와서 살았다. 밝게 웃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뛰어들었다.

“바보구나, 라즈베리. 이런 짓 한다고 뭐가 될 리가 없는데. 이제 넌 없어. 넌 나한테 이제 두통밖에 안 된다구.”

그래. 이따금 찌릿찌릿 아플 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바라는 히어로 따윈 오지 않아.”

올까 보냐.

올 리가 없다.

그녀의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걸렸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것도 곧 사라지겠지. 그동안만 버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레졔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신기하게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찾아낼 수 없다.

엘모세와트의 본거지에 대한 의견은 이랬다. 다들 최선을 다해서 찾아내고 있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본거지가 있다고 추정되는 국가들이 좁혀지고, 그 내부를 수색하는 기미가 보이자 그들의 활동은 완전히 경색되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마법사 테러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반 마법사 시위의 빈도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모든 지표가 천후와 유그드라실을 절망에 빠뜨렸다.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위협이란 두려운 것이다. 공급책이 끊겼다지만, 그런 루트는 언제든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시는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삼엄하던 경계가 풀리고, 동향을 지켜보는 것에 질렸을 때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 그동안 비밀스럽게 힘을 길러오던 그들의 위협은 점점 더욱 커질 것이다.

그것이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생각하던 때에…….

“이상한데….”

얼마 전. 장난 전화로 알프스 산간에 다녀왔던 구조 팀의 리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 대단한 부분은 아니지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날 만났던 아이의 얼굴이 기묘하게 기억되었다. 하나는…15살 정도의 금발에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에 걸린 그는 그날 탐색을 맡았던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뭔가 이상한 게 없었느냐고.

“네? 그때요? 딱히 이상한 건…. ……어라?”

“왜 그래?”

“어. 이상하다…? 왜 이러지? 그때 우리 왜 그냥 돌아왔죠?”

“뭐?”

“거기…. 건물 아래쪽으로 이상한 지하 통로가 있었는데…. 아, 아니. 그랬나?”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며 머리를 쥐고 괴로워하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그날 봤던 사람이…갈색에 단발머리 여자 아니었어?”

여자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의 기억도 비슷했다. 그녀가 발견한 지하통로가 있는지 없는지 모호했고, 그날 나왔던 여자아이도 그랬다.

“내 기억이 왜 이러지? 맞아요. 근데 그 아이가 금발에 작은 아이 같기도 하고. 아니면…당신 어깨에…얼굴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더 말은 필요 없었다. 남자는 달렸다.

그날 본 여자의 인상착의는 낯이 익었다. 익을 수밖에….

“찾았다…!”

DS의 유일한…그리고 지금은 실종된 A랭크 일리미네이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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