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261화 (261/324)

261화

<대적>

“라즈베리를 발견했다고요?”

유그드라실 측에서 연락을 받은 천후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먼저 당시 목격자들에게 정황을 들은 천후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금전으로 사례했다. 그러자 그들의 태도가 조금 더 유연해지고 적극적이 되었다.

“그러니까…. 말투도 제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단 말이죠?”

“네. 아주 거칠고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정말이지 성심성의껏 답해줘서 천후는 그들에게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특히 라즈베리에게 성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난민 보호소 쪽에서 들은 증언과 일치하는 것 같아.”

라즈베리는 자기 입으로 말한 것처럼 노블레스 클럽을 전전하면서도 평소엔 알자드의 난민 보호소에서 지냈다.

그녀가 실종된 이후로 그녀의 흔적을 찾느라 온갖 노력을 다하는 동안 과거의 그녀가 어땠는지도 파고들었는데, 그 당시 보호소에서 지냈던 사람들 역시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말하는 라즈베리는 천후나 다른 공격대원들이 아는 성격관 전혀 달랐다. 좀 더 독선적이었고 제멋대로였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다.

쓰던 이름도 라즈베리가 아니라 레졔나라는 이름이었다.

천후는 이들의 증언으로 지금의 라즈베리는 이 ‘레졔나’의 상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즈베리가 그걸 뒤집을 힘이 없다는 것도. 그게 가능했다면 그 기회에 바로 같이 유그드라실로 도망 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

이 부분은 해결할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유그드라실의 치료를 받으면 의식을 잃은 아이들 중 일부가 회복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라즈베리의 경우엔 좀 더 정교한 상태였다. 과연 그녀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는….

“증언 상 저택 안엔 그녀밖에 없었으니, 신고는 실제로 그녀가 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라즈베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거겠지요.”

“…….”

희주의 말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라면 아직 희망은 있다. 하지만 이 희망은 시간제한이 있었다. 1분 1초가 아깝다.

비단 라즈베리뿐만이 아니었다. 지하로 연결되어있다는 통로…. 그 너머로 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방침은 빠르게 정해졌다.

“일단 구조를 우선하도록 하죠. 유럽…. 스컬린 씨를 찾아가야겠군.”

*

EU. 유럽연합. 유로라는 하나의 통합화폐를 사용하는 경제 공동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평등한 위치에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EU의 본 건물은 벨기에에 있었지만, 그들의 맹주는 사실상 독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일은 유럽의 경제적인 중심축이 되어서 EU를 받들고 있었다.

그리고 EU의 공격대, 컨퀘스터는 그 마스터부터가 독일인이었다. 독일 거대 자동차 재벌 3세인 그는 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지만, 10대 때 코스튬을 입고 초기적 일리미네이터 활동을 하다가 그 정체가 노출되었다.

그 건으로 기업에 상당한 타격이 왔지만, 그는 오히려 공격대를 만듦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하고, 이제는 유럽 유일의 정규 공격대 마스터로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요즘 신경 쓰고 있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저 동방의 반도국가에서 나타난 혜성, DS였다.

영국에서 나타난 이그네스를 대신 와서 퇴치해줬을 때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그네스 엠프레스 사태 이후 유그드라실을 아예 굴복시키는 것을 눈앞에서 보며 그는 천후에게 일종의 동경을 느끼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날짜에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더 제대로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다 오늘 그를 독대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당신이 없었다면 영국사태 때부터 견딜 도리가 없었으니까.”

손을 내저은 그는 사람을 시켜 차를 내오게 하고는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요즘 많이 바쁘다고 알고 있었는데.”

알자드 무자헤딘의 용병집단, 데스웨도우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그가 전장에 직접 마법을 사용하며 나선 일 때문에 DS 측에선 천후의 이미지 수습에 고생하고 있었다.

당시 알자드가 똑같이 마법을 사용해 군인들을 학살하곤 있었다지만, 쉽게 수습되는 일은 아니었다.

미리 미합중국 대통령과 아랍권 왕족과의 이야기를 끝내놓은 상태에서도 이랬으니 당분간은 아예 움직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가 얼굴을 비칠 줄이야.

스컬린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은 천후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엘모세와트 건으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음….”

어려운 이야기가 되리란 느낌이 확 들었지만, 스컬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 쪽에 본거지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특정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치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을 테죠.”

“아아.”

그제야 스컬린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더라도…. 놈들의 비밀기지에 마법사가 개입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화재 사건은 기본 예약이고, 얼마나 큰 피해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걸 그 나라 정부에 예고도 없이 저지르면 아주 즐거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허락해달라고 해서 해줄 것인가 역시 의문이다. 천후는 그 교섭을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이번의 경우엔 유럽 국가 내에서 군이 함께 움직이게 될 겁니다. 어쩌면 내전에 가까운 상태가 될지도 모르죠. 그 각오를 하게 만들려면….”

“흐음….”

유럽 국가에서 내전이라. 소름 끼치는 발언에 스컬린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해했다.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건 단순히 마법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상대는 권력자일 가능성이 높았고, 적어도 사설 군대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을 제압하려면 이쪽도 군과 마법사가 같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스컬린은 고민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컨퀘스터의 이미지에도 금이 간다. 지금까진 영천후란 인간이 총대를 메고서 모든 것을 다 맞아주었다면, 이제는 마법사가 인류의 권력을 컨트롤 하려 한다는 소리를 유그드라실이나 영천후 뿐 아닌 정규공격대 전체가 들어먹게 되리라.

그렇긴 하지만….

“해보지요. 더는 이런 피해가 확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른다. 스컬린은 그것도 파악 못 할 바보는 아니었다. 놈들이 본거지가 미국이었다면 안소니나 패트릭, 제이나 역시 이것을 강행했을 것이다.

그래.

이제 이런 건 정말 사양이다!

*

지면이 떨린다. 시민들은 도로를 따라서 이동하는 전차들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평소에 훈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정도 규모로 이동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이 지상 병력이 움직이기 전에 하늘에서는 이미 전투기들이 공기를 찢어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이 병력이동에 대해서 정부 측에선 아직 아무런 발표가 없는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SNS에서는 군이 움직이는 게 프랑스뿐 아니라 스위스,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라며 동향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건가? 그런 불안감에 사람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멀리서 관측하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관광지를 위장하고서 중간중간 망원경을 설치해놓은 전망대에서 헬기와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본 남자는 인상을 썼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곳이 삼국이 만나는 국경이긴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이다. 군이 이렇게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은 드물었다.

오히려 바로 그런 경향을 믿고서 이쪽에 기지를 만들어놓은 것인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게다가 ‘기지’로 통하는 통로는 저택 한 곳뿐만은 아니었지만, 연구동과 보스가 있는 곳으로 직결되는 통로는 그쪽이 유일했다. 그런데 그쪽으로 향하는 모든 육로가 차단되고 있었다.

지금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지만, 밤만 되어도 완벽해지리라.

“…발각됐다?”

인상을 쓴 남자는 빠르게 내부에 보고했다. 대응은 바로 취해졌다. 삼국 내부에서 야당 위원들이 거품을 물고서 사정 설명을 요구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국민 여론도 이쪽으로 기울었다.

일차적인 군 배치를 마친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시간에 발표했다.

“우리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연합군은 알프스 산맥 지하에 터를 잡은 마법사 테러단체 엘모세와트를 섬멸하기 위해서 군을 동원했습니다. 배치가 끝나기 전에 밝히지 못한 것은 기밀을 위하기 요하기 위함이었으니,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엘모세와트는 지난 몇 달간 세계 전체에서 마법사를 강제로 폭주시켜서 테러를 저지른 단체의 이름입니다. 이들은 유소년을 세뇌하여 폭탄으로 사용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수괴를 잡아낼 것입니다.”

공영방송에선 지금까지 있었던 테러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최대한 그 잔인성을 억누른 영상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런 마법사들의 폭주가 반 마법사 여론을 만들어왔는데, 그 모든 게 누군가에게 의도된 움직임이었단 건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미 군이 움직인 이상 증거를 내놓으라느니 하는 시민운동은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할 수밖에 없기도 했으니까…. 그동안 삼국 연합군은 알프스 산맥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굉장하군요. 이렇게 수월하게…….”

“비우호적인 우주인은 무서운 법이니까요.”

스컬린은 그렇게 답했다.

“…….”

“저들이 마법사를 다뤘다는 것 자체가 페널티로 작용했습니다. 유그드라실은…국가력으로 제거할 수 없는 우주인이었죠. 하지만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인 주제에 난폭하기까지 하다면.”

피유우우. 푸앙. 입으로 효과음을 낸 스컬린은 씨익 웃었다. 천후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두려운 존재에 대해서 인간이 대응하는 방식. 그 근본적인 부분을 마주한 느낌에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스컬린은 그런 천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오. DS. 그런 얼굴 하지 마요. 보통 사람에게 우리는 괴물이나 마찬가지예요. 그건 서로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니까. …당신은 아직 때를 덜 탔군요.”

“그런…걸지도 모르겠군요.”

“분명 그렇습니다.”

희미하게 웃은 스컬린은 굳은 표정의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그는 아직도 이상에 얽매여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얽매이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신도 그런 세계로 이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다른 남자의 등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것은 뜻밖에 말이다.

‘아. 안되지. 안 돼.’

하마터면 본색이 나올 뻔했다. 잘못하면 앞으로 얼굴 마주치기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버린다. ‘마법사인 것만큼이나 민감한’ 문제이니까.

아주 약간 달아오르려는 얼굴색을 간신히 수습한 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뒷짐을 지고서 함께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쒸우우우우웅!

알프스 산맥 한쪽에서 미사일이 날아와 지상군을 타격하기 시작했으니까.

화염지옥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