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악마>
“가까이 오지…마!”
고오오…. 소녀의 몸에서 오오라가 위협적인 파형을 그리며 타올랐다. 그것을 보며 천후는 눈매를 날카롭게 세웠다.
“어차피 비켜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겠지? 그럼…. 말할 시간도 없어!”
파지지직. 소녀가 뭔가 주문을 자아내기도 전에 그의 몸에서 흑염이 타올랐다. 놀란 아이가 뭔가 대비를 해보려고 했지만, 그땐 이미 그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앗…!”
“흠!”
파직! 오오라가 충돌하면 한차례 스파크가 튀었다. 경추를 맞은 소녀는 그 일격에 모든 힘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B 랭크는 되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애초에 시야에 이렇게 대놓고 보이는 곳에 있었던 시점에서 상대를 잘못 골랐다.
물론 이게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디제스터의 결계를 뚫고 나올 수 있는 인간이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가 당한 것이니까.
“인간이라….”
천후의 얼굴이 아주 약간 회의감에 물들었다. 자신이 점점 그 단어에서 멀어지고 있단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럼 감상에 잠길 시간도 없었다.
아이를 저택 안의 침대에 누인 그는 브리핑 때 들은 비밀통로로 발을 옮겼다. 서재로 위장되어있는 이곳은 본래 몇 가지 절차를 걸쳐야 책장이 열리며 들어갈 수 있지만, 그는 좀 더 단순한 방법을 썼다.
콰쾅! 폭발음과 함께 책장이 박살 나며 통로가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안쪽 통로에서 비상음이 울려 퍼졌다. 통로 상단에서 몇 개의 벽이 내려와 길을 막는다.
“쓸데없는 짓을.”
그러나 그 모든 게 그의 앞에서는 무의미한 짓이다. 주먹을 휘두를 필요도 없이, 그저 달려나가는 것만으로도 철제된 문을 관통하며 그는 통로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지문, 홍체 인식기가 설치된 문앞에 설 수 있었다.
“하아아압!”
떠어어어엉! 카캉! 카카캉! 주먹을 뒤로 한껏 끌어들여 후려치자, 은행 금고문보다도 단단한 그 문이 찌그러지며 안쪽으로 튕겨 나갔다. 천후는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공격!”
그가 들어서는 순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너무나 뻔했다. 통로를 지나 나타난 내부 공간에는 아이들이 풀린 눈으로 방출 마법 캐스팅을 끝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발을 들이자마자 그것들이 지체 없이 발사된다. 폭발음과 함께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흙먼지가 일었다. 명령을 내렸던 연구복을 입은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정규 공격대의 마스터 급이라고 해도 기습에는 어쩔 수 없을 터. 게다가 들려온 보고로는 들어온 사람은 겨우 하나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끝이다. 밖에서 디제스터가 설치는 동안엔 추가적인 지원을 받기도 힘들 테니, 방어마법도 보잘것없으리라.
“괜히 힘쓰게 하고 있어.”
흙먼지가 가라앉자 거기에는 시체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아이들을 부려 퇴각준비를 하려 했다.
“내가 할 말이야. 그건.”
그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히익!”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남자는 놀라서 몸을 돌려보았다. 거기에는 흑염의 마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려다본다곤 해도 외곽선이 뭉개져서 코와 입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눈만이 간신히 구별이 되는 용모다.
이미 사람 꼴이 아닌 그 모습에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넘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살렸다.
퍼퍼퍼펑! 천후가 살아있는 걸 발견하자 아이들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공격을 재개한 것이다. 남자의 명령 따윈 기다리지도 않고 무영창 주문을 쏘아내는데, 그 한 발 한 발이 개인화기 총탄 이상의 위력이었다.
“후우….”
그걸 전부 맞아주던 천후는 잠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홀 안에 전격이 한 바퀴 돌았다.
빠지직!
“아윽….”
“으….”
그가 다시 남자가 있는 자리로 돌아오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아이들의 다리가 전부 풀리며 제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역시 최초공격 외엔 별거 없군.”
처음 딜레이 캐스팅으로 발사한 공격은 충격이 컸지만, 그것도 제대로 맞은 게 아니다. 오히려 안으로 뛰어들어서 직격당한 건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이 홀 전체가 무너지지 않게 하겠다고 위력을 줄인지라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 뒤에는 뭐…. 여기에 있는 모든 아이가 전부 방출계 주특기도 아닐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무영창 정도로 데미지를 입기엔 그의 강화마법이 너무 강하다.
차라리 딜레이를 여러 번에 나눠서 풀어야 했지만, 그의 특성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대비할 만한 사람이 그리 많을 리가 없었다.
천후는 슬금슬금 뒤로 기어서 도망가려는 남자의 옷을 밟아 멈춰 세우고는 그를 들어 올렸다.
“히익! 잠깐! 난 아무것도 몰라! 모른다고!”
“…머리가 나쁘진 않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지, 우리?”
“으, 읏?!”
천후가 싸늘하게 말하자 남자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여기서 시간 벌이용으로 배치됐다곤 하지만, 그래도 이 많은 아이를 통제할 정도의 지위는 있는 인간일 텐데 어떤 정보도 모른단 건 말이 안 된다.
“이 시설의 중추가 어느 쪽인지 길을 안내해.”
“시, 싫어! 가면 나는 죽을 거야!”
“후우…”
남자가 기겁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자 천후의 입에선 낮은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순간적으로 놀려서 그의 목을 잡았다. 힘은 주지 않았지만, 이미 불타오르고 있는 몸이다. 닿는 순간 살이 익는 소리가 나며 그의 목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살려줬다고 내가 너까지 잘 대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선택지는 두 개뿐이야. 여기서 당장 죽고 싶나? 아니면 잠깐이라도 살고 싶나?”
“아아아아아악!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알려드릴게요! 알려드릴 테니 제바아아알!”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천후는 남자의 목을 놔주었다. 땅으로 떨어진 남자는 공포에 덜덜 떨었다.
‘이, 이런 괴물 자식…!’
세상에 알려진 DS, 영천후라는 남자는 말 그대로 세상을 디제스터로부터 지켜내는 영웅 그 자체라는 식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남자의 착각이었다. 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의 차이일 뿐. 천후는 사실 그를 죽일 생각까진 없었지만, 적어도 여기서 분명한 가해자 입장이었을 이 남자를 반병신으로 만들 생각 정돈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차이를 지금 막 천후와 만난 남자가 구별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는 천후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섰다.
“당신이 들어온 이곳은 우리 엘모세와트의 중심시설입니다. 가장 핵심인 ‘수령’님을 뵐 수 있는 곳으로 직결되는 유일한 곳이며, 알프스 곳곳에 흩어져있는 지하시설이 이쪽으로 미로처럼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을 잡은 거야. 그 수령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네, 네엡!”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후다닥 앞으로 뛰어갔다.
*
삼군 연합군이나 유그드라실의 분석 결과보다도 이 내부 시설의 규모는 훨씬 더 컸다. 아무리 규모를 줄이고 줄여도 사람이 주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공간이 필요하고, 출입 루트도 여러 곳이다 보니 복잡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천후가 들어온 통로는 복층 구조 중 최중요 시설까지 곧바로 갈 수 있도록 분리되어있는 공간이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만큼 대비는 더욱 잘 되어있었다.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 게 맞는 거겠지? 응?”
“무, 물론입니다.”
벌써 세 번이나 기습공격을 받은 천후는 슬슬 남자를 의심하고 있었다. 물론 남자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뭐하는 괴물이야, 진짜?’
만나는 족족 지금까지 그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공들여 만들어낸 아이들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대부분 만나서 처음 공격을 해보기도 전에 당했고, 간신히 공격해도 피해낸 순간 다음 동작에서 죄다 실신해버렸다.
같은 강화계 중엔 그와 랭크가 맞는 샘플이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신체스펙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까 당해낼 가망이 없었다.
그 외엔 대부분 방출계로 상대했는데, 그건 이골이라도 난 것처럼 스치지도 못하고 제압당해버린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남자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안되는데, 진짜.’
이제 수령이 있는 곳까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거기로 통하는 길에는 ‘그곳’이 있는데, 아이들이 동원되고 있는 것만으로 분노가 가득한 이 남자가 보기라도 했다간….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미 그곳에 도착해버렸다.
“여긴…뭐지?”
통로 양쪽에 있는 방을 본 천후는 발걸음이 딱 멎어버렸다. 그에 남자는 곧장 몸을 돌려서 도망치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행동이었다. 바로 그의 목덜미를 잡은 천후는 그를 눈앞으로 가져와 다시금 물었다.
“여긴…뭐냐고 물었다.”
“컥! 크으으윽! 말할게요! 말할 테니까 놔주세요! 으으아!”
목에 이미 2도 이상의 화상을 입은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을 쳤다. 그를 놔준 천후는 힘겹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통로 양쪽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하나는…. 여러 개의 인큐베이터가 있는 방이었다. 거기에는 갓 태어난 걸로 보이는 아이들이 죽 누워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은 한 개의 침대를 혼자 차지하고 있었고, 몇몇은 한 침대에 다섯이고 열이고 가림없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방에는…. 눈이 풀린 여자아이들이 기운 없이 앉아있었다. 이제 열세 살? 열네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배가 부풀어있었다.
그녀들을 보는 순간 천후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뭐 하는 곳인지 이미 예상은 가고 있었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일종의 소망. 하지만 연구원 남자의 입에선 나온 말은 그의 바람을 무참하게 박살 났다.
“‘브리딩’을 하는 곳입니다.”
“브리…딩….”
빠직.
“아무리 우리가 마법사를 납치했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많은 마법사를 데리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특히 어린아이들만 이렇게 많은 건 말이 안 되고.”
세계가…. 무너진다.
“당신이 본 건 결과입니다. 우리가 밝혀낸 실험의 결과죠. 마법사가 자연적으로 태어날 확률은 1/10,000. 하지만 이건 ‘도구’로 쓰기엔 너무나 낮은 확률이에요. 우리는 이걸 끌어올릴 방법을 꾸준히 찾아왔습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이 자식의 턱을 가루로 만들어버려서라도 입을 닥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천후는 주먹을 움켜쥐면서도, 그 사이에 자신들이 이뤄낸 성과에 경도된 것처럼 읊어대는 남자의 말을 들었다.
“여러 가지 ‘생물학적 실험’이 있었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해진 점이 있습니다. 그건 마법사들 사이에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마법사가 될 확률이 통계적으로 훨씬 높다는 거였죠.”
어질.
“그것을 확신한 우리는 ‘플랜트’를 만들었습니다. 모체가 될 여자들을 확정하고 그들을 통해서 마법사를 낳게 하고, 좀 더 고위의 마법사를 ‘뽑아내기’ 위해서 브리딩을 했지요.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역시 마법사 암-, 아니. 인간 여자가 일생동안 가능한 임신의 횟수. 임신 기간 등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줄일 수 없는 문제더군요. 그러다 보니-”
어질. 남자의 말에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휘청대며 무릎이 꺾였다. 최악의 상상이 맞아버렸다.
이놈들은…. 정말로 사람을 가축처럼 다루며 마법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좀 더 완벽한, 안정적인,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하기 위한 인체 공장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 놓고서 눈앞에서 저렇게, 잘났다는 듯이 열변을 토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구역질이 나왔다.
천후가 물었다.
“왜….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왜… 대체 왜…!”
울음마저 섞인 질문에.
“왜긴요. 모든 인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공평한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악마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