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새로운 시대는 오는가>
한편. 가르간츄아 바실리스크를 상대로 정규 공격대 측은 고전하고 있었다.
“게이즈 어택 범위가 너무 넓군.”
“비늘 발사도 거슬리는군요.”
바실리스크의 게이즈 어택은 단일 대상이던 이그네스 때와는 달리, 전방 60도 범위에 들어가는 모든 대상을 돌로 바꿔버렸다. 그나마 시야각 전부가 범위가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까?
이것만으로도 강적인데 놈은 몸에서 비늘을 세워서 발사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사들을 노렸다. 그 발사속도 역시 총탄 이상이다 보니, 발사하기 위해 세우는 그 동작을 못 보면 대응이 늦어버렸다.
그나마 투입된 유그드라실 마법사가 워낙 많아서 방어 마법이 모자라지는 않는다는 것만이 위안이었다.
“지긋지긋해!”
제이나를 위시한 머니 크래프트 공격대의 공격 일부가 빛을 뿜으며 날아갔지만, 그걸 맞은 놈의 몸은 빠르게 재생되었다. 물속에 돌 던진 것처럼 쑥하고 구멍 한번 뚫렸다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하. 무슨 저런.”
어이없어 내뱉는 말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비늘이 날아온다. 그때마다 유그드라실 마법사들은 지상에서 이미 석화되어버린 이들을 지키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력하고 있었다.
“안 좋군.”
간단히 평한 안소니는 산맥 저편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거기선 녹색과 적색의 오오라가 구름을 흩어내고 있는 게 던전 경계 너머로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역시 저쪽도 절대 좋은 상태가 아닌 것이다.
“최대한 빨리 끝장내야 해. 화력과 방어를 집중하지. 모이게들.”
그 의도를 읽은 일리미네이터들이 모여들었다. 안소니는 수인과 마력방출만으로 캐스팅을 유지하면서 외쳤다.
“유그드라실도 이쪽으로!”
“무슨 생각입니까?”
“전력으로 친다! 이 수라면 해낼 수 있겠지? 6초만 주게!”
그의 말과 동시에 주변에서 형형색색의 오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흩어져있던 모든 일리미네이터의 방출마법. 풀 캐스팅.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미친!”
“키웨에에에에에!”
가르간츄아 바실리스크 역시 그것을 깨닫고는 곧장 달려들었다. 갑자기 모여드는 거대한 힘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보이지 않는 역장이 틀어막았다.
“쿨럭…!”
“버텨!”
놈이 한 번 부딪힐 때마다 방어마법에 마력이 자동으로 쭈욱 빨려 나가며 그대로 몸에 부담이 되어 돌아왔다. 자기도 모르게 토혈한 그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욕을 내질렀다.
“이 정신병자 새끼들! 돌았어!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나 말을 계속할 틈은 없었다. 몇 번이고 몸을 들이박은 놈은 아예 그 전체에 게이즈 어택을 날린 것이다. 눈에서 섬광이 일면서 순식간에 마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길다. 6초란 시간이 너무 길어서 미칠 것 같다.
순수 무게만 1만 톤이 넘어가는 저 괴물이 조화를 하나 부릴 때마다 피골이 상접하는 기분이다. 아직 멀었나? 아직?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사!”
찌이이이이잉- 쿠확!!!!
한점에 모였던 에너지가 격류가 되어서 놈의 몸 전체를 휩쓸었다. 그 비늘 한 조각, 눈알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놈을 뒤덮고 지면을 쓸어버리고 나서야 격류는 사라졌다.
그들은 지금까지 나돌아다니던 거대 생명체가 완전히 증발해버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르간츄아 바실리스크 퇴치. 던전 경계가 무너집니다.>
“허. 허허…. 우웩. 씨발….”
지금까지 간신히 버텼던 유그드라실 마법사는 피를 게워내면서 주저앉아버렸다. 아니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이게 무슨 미친 짓거린가?
“난 씨발…. 절대 일리미네이터 안 해.”
때에 따라선 저런 목숨 건 짓거리도 해야한다니.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 은근히 지상으로 내려가서 활동할까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고막을 짖어버릴 듯한 폭음에 강호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잡았나 보군.”
지평선이 제대로 안 보이게 하던 던전 경계가 사라졌다. 그걸 깨달은 강호는 한 고비는 넘겼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놔….”
“응? 아. 그럴 순 없다.”
강호는 팔을 잡아서 약병을 빼앗은 아이가 힘을 주며 저항하자 간단하게 검병으로 목 뒤를 내리쳤다. 그러자 아이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뭐야, 저 여자….”
“괴물….”
그녀와 대면한 엘모세와트의 아이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가 등장하자 일단 마법이 써지지 않고, 약병을 깨려니 그때만 잠깐 자기 혼자 마법을 사용해 다가와서 그걸 다 빼앗아간다.
간신히 깨버리면 파급 디제스터는 10초 이내에 죽여버리고는 다시 마법을 다 막아버렸다. 완전히 세뇌당한 그들이라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무위였다.
그렇게 제압한 엘모세와트의 마법사가 이미 300은 넘었다. 일반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쯤 되자 수령에게 지령을 받으며 움직이고 있는 그들은 그녀와 조우하자마자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자. 항복해라. 어른들이 너희를 도와줄 거야.”
“도와줘…?”
그중 한 아이가 혹했는지 묻는다.
“통조림 더 먹을 수 있어?”
“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수령님 말씀 들어야지.”
“그래도…. 배고파….”
“그리고 이제 목소리도 안 들리고.”
이강호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 아이들은 곧 정신연결이 끊어지고, 단순하게나마 이지를 되찾았다. 마법사가 아닌 아이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컸다. 그걸 보고 참을 수 없이 안쓰러운 마음에 강호는 주먹을 움켜쥐면서도 간신히 말을 짜냈다.
“물론이지. 병을 내려놓고 저 군인 아저씨들에게 가면 먹을 것을 줄 거다.”
“정말? 통조림?”
“더 맛있는 거라도 말이다.”
“통조림보다 더 맛있는 게 있어?”
그런 게 어떻게 세상에 있지란 느낌의 말투에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수습하고 있다 보니, 저쪽에서 일리미네이터와 유그드라실 마법사들이 다가와서 통제를 돕기 시작했다.
“이걸로…. 일단은 수습된 건가?”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죽어버렸다. 이 비극은 앞으로 어떻게 되어도 수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쿠…우우우우우웅!
“아…!”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요동친다. 강호는 이것이 무슨 조화인지 알았다. 분명, 저편에서 계속되던 그의 싸움. 그것의 결과가 난 것이다.
“이런!”
바로 그에게 달려가야 했는데…! 하지만 그녀는 쉽게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그녀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만약 천후가 패했다면, 이 아이들은 곧장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가자. 자기.”
“아. 제이나 씨.”
“여긴 다른 사람들이 맡을 테니까. 어서.”
“…네!”
어느새 모여든 마스터급 마법사들을 본 강호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
치직. 치지직.
전기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다. 그럴 수밖에. 커다란 아나콘다 뱀처럼 길고 두꺼운 전선들이 실제로 끊어져서 전기불꽃을 내뱉어대니,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화재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차례 폭발이라도 일어났던 걸까?
방…. 아니 방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넓은 이 공간 안은 엉망진창으로 박살 나있었다. 전선은 끊어져 있고, 기계장치들은 부서진 정도가 아니라 녹아내려서 원형을 알기 힘들다.
천장에 달려있던 모니터는 땅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브라운관이 전부 깨진 상태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말짱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유리관 안에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 안을 채우고 있던 배양액과 함께 아이들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와 땅을 기며 신음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희미하게 오오라를 피워올리며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다음 보인 것은 관이었다. 벽면에 고정되어있던 그 관은 이제 뜯겨 나와 땅에 떨어져 있었고, 연결되어있던 모든 전선들도 끊어져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그 자체는 무사한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파와. 그에 앉아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달이 난 와중에도 그는 깍지 낀 손을 풀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보이지 않고 앉아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이 시설의 가장 핵심부의 천장에 길이 수십 미터의 구멍이 뚫려 햇빛이 들어오고 있는 이 상황에서까지.
스파크 튀기는 소리가 없었다면, 시간이 정지해버린 공간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쿠르릉…. 수많은 전선들이 끊어지면서 생겨난 그 잔해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한명의 남자였다. 키는 180대 후반에서 190 초반쯤 될까?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듯한 몸을 가진 그 남자는 몸에 묻은 잔해들을 털어내지조차 않고 천천히 소파에 앉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
그 바로 앞에 멈춰선 남자는 그의 턱을 손으로 들어 올렸다.
[대단. 하구나. 이것이. 마법사의 힘. 이것이. ‘내’가 꿈꿨던. 전 인류가 가져야 할 힘.]
“…….”
남자. 영천후는 그. 아니 ‘그것’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푹 숙이고 있던 얼굴에는 사람의 얼굴 대신, 그것을 정교하게 따라 만든 기계인형의 얼굴이 있었다.
아니. 얼굴뿐만이 아니다. 확인해보면 그 위에 피부와 비슷하게 도색해두었을 뿐, 금속으로 만들어진 몸체가 고스란히 들여다보였다.
“당신이…. 엘모세와트의 수령이라고?”
[그렇다. 나는 마법사 공급 이론을 만든. 루스트 그윈들링의 대체 실행자이다.]
“…….”
[그의 이론과 연구는 위대했지만, 그에게는 실행력이 없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이 위대한 연구를 중단하려 하고 있었다.]
“…….”
[그렇기에 2차 대전 시기부터 마법사를 연구하던 연구자들은 그의 사상을 감정 없이 완벽히 실행할 수 있도록 그의 이론을 토대로 움직이는 인공 영혼을 부여한 기계인격인 나를 만들었다. 나는 엘모세와트의 수령. 루스트 그윈들링이다.]
“하. 하하. 하하하…….”
천후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어깨가. 아주 작게 들썩였다. 그는 그것을 지나쳐, 관으로 다가갔다. 기계식으로 된 관. 천후는 곧 개폐장치를 찾아내고서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미라처럼 빼빼 마른 인간의 시체만이 누워있었다기계음이 들린다.
[루스트의 아내. 모리나 그윈들링은 강력한 정신계열 마법사. 그것은 생산된 마법사의 통제를 위한 가장 중요한 마스터키였다. 그래서 루스트는 대체품이 나오기 전까지 그녀를 최대한 오래 살리며 육체와 영혼을 보존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론의 실현은 나로 대체되고 나서 성공했다.]
“…….”
천후는 이미 파여서 휑하니 비어있는 그녀의 안와 언저리를 손으로 훑었다. 지금까지 일부러 반시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냉동 처리가 되어있었을 텐데도, 어째서인지. 따듯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일이다. 그 뒤로도 그녀를 대체할 샘플은 얻지 못했다. 루스트와 모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딸인 레졔나는 강력한 마법사였지만, 역시 대체품은 아니었다. 이걸로 엘모세와트 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졌다.]
“…….”
[하지만 가치는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가능성을 보았다. 당신의 ‘주장’대로 모리나의 도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스펠 쉐어 링크에 끼어드는 것은 본래 불가능 한 것이다. 거기에 나는 몇 가지 추론을 끝냈다. 세상엔 이미 있는 것이라고. 완성품이.]
“무슨…소리를 하는 거야?”
천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그것의 몸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완전히 뒤틀렸다. 그 뒤.
[아. 아. 아. 아. 이 연구결과는 반드시 후대에 남겨야 한다. 인류의 영달을 위하여. 그러니 미스터 DS. 당신에게 인류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자료를 후대에 넘겨주었으면 한다.]
달칵. 작은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대용량 메모리 카드였다.
그 뒤로. 스스로를 루스트 그윈들링이라 주장하던 기계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메모리카드를 집어든 천후는 몸을 떨었다.
그의 턱선을 타고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가…. 인류의 영달을 위해서야.”
뭐가. 인간을 위해서란 말이야….
네 말이 정말로 다 사실이라면.
너희는 이론만을 떠올리고 폐기하려던 남자를 잡아서 죽이고, 그를 상징 삼아서 지옥을 만들어냈다는 건데.
“뭐가… 뭐가 아쉽다는 거야! 그러고서 나에게 네놈들의 연구 데이터를 맡기겠다고?”
분노 담긴 목소리에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