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천후는 학부모 참관 수업을 보러 왔지만, 그때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보통 점심시간에 붙여서 수업 이후 자녀와 식사를 같이 하거나, 마지막 시간에 붙이는 식이었는데 아침 조회시간부터 들이닥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어쩐지 다른 차가 하나도 없더라. 제가 너무 일찍 왔네요.”
“아닙니다. 허허허. 이사장님께서야 언제든지 학교에 오실 수 있지요.”
덕분에 참관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그를 맡는 역할은 고스란히 교장, 교감의 역할이 되었다.
그들이 맞이한 건 이제 막 20대 초반을 맞이한 남녀였지만, 이들이야말로 이 학교에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그 주체들. 그들의 태도는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뭔가 불편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제가 드릴 말씀이지요. 학교 운영에 뭔가 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간단히 변장용으로 쓴 선글라스 아래에 걸린 웃음을 보고 둘은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았다. 딱히 그가 이 학교에 대해서 책을 잡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닌가 보다 하고 말이다.
그들은 익숙하게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런 것은 따로 없습니다. 이사장님이 오시고 난 이후부터 건물을 신축하고, 운동장에 천연잔디도 깔았는데 저희가 뭐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서울 복판에 지어진 이 학교의 시설은 본래도 나쁘진 않은 편이었지만, 영천후가 이사장을 맡은 이후론 아예 다른 곳으로 탈바꿈했다.
주변 부지까지 매입해서 온갖 운동부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운동장이 생겼고, 천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잘 정비된 트랙이 휘감고 있었다. 한쪽에는 수영장까지 있었다. 그 관리는 학교가 아니라 따로 설립한 재단 측에서 하고 있는 덕에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시설이 갑자기 좋아지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눈치챈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퍼졌고, 올해 들어선 1학년 신입생이 작년의 5배 이상 늘어났다.
세상이 세상인지라 대부분 학교에선 1학년생은 예상 정원을 못 채우는 경우가 흔했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상 주변 학교로 갈 학생들을 전부 빨아들인 수준이라, 그들은 은연중에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저희야 이사장님이 언제까지고 주욱 직을 유지해주시면 그것만 한 일은 없습니다.”
“하하.”
그들에게 있어선 진심 그 자체였지만, 천후는 아부성 발언으로 받아들이고는 그저 웃었다. 그는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학교를 둘러보았다.
그가 온단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싹 청소를 해놓은 만큼, 교내는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풀이 돋아나는 철인데 화단에 잡초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라…. 좋네요.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랑 같이 배울 수 있는 건.”
“네.”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한 자리에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천후는 창문 안쪽으로 비치는 광경이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유그드라실 안에서도 구조된 어린 마법사들에게 일시적으로 교육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지만, 천후는 거기에 발걸음도 하지 못했었다.
딱히 그걸 가지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지만, 이런 광경을 보면 자신이 얼마나 삭막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아 씁쓸해지곤 했다.
그렇게 교장, 교감들의 안내를 따라서 학교 안을 돌아다니던 천후는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서 후문 쪽으로 향하는 코너를 돌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후문과 닭과 토끼 등의 동물을 기르고 있는 곳이 나올 터였다. 그런데 그 구석을 돌 때에 천후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음?”
“왜, 왜 그러십니까?”
“뭔가 문제 되는 거라도?”
작은 목소리에도 흠칫한 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천후는 허리를 숙여 땅에 떨어져 있던 것을 주워 올리곤 빤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다 피운 담배꽁초였다.
“…….”
천후는 표정 변화 없이, 그저 고개만 돌려서 물끄러미 둘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들의 안색이 새파래진 것은 물론이었다.
‘크, 큰일이다!’
‘아이고. 이제 우린 다 죽었어!’
이곳은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모이는 일종의 포인트였다. 초등학생이 무슨 담배인가 싶겠지만, 요즈음엔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어느 학교에서나 있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이 학교에선 그런 일이 없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오늘 이 시간만큼은 화두로 올라서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둘은 당황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바로 그때.
휙. 최대한 인기척 없이 코너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 양복을 입은 여자가 판토마임을 시작했다. 라즈베리였다.
샤샤샥. 샤샤샤샥! 검은 양복을 입은 그녀는 갑자기 근엄하게 몸을 정돈하더니, 검지와 중지를 입가로 가져가는 흉내를 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는 손가락으로 교감과 교장을 가리켰다.
‘저게 무슨 소리야?!’
직접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저걸 어떻게 알아보라고? 교감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
그보다 조금 눈칫밥이 있는 교장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급히 말을 꺼냈다.
“죄, 죄송합니다. 흡연실이 옥상에 있다 보니까 ‘교사’들이 이곳에 와서 피우는 경우가 있는데…. 주의를 했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군요. 다시 한 번 말해두겠습니다.”
그 말에 꽁초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천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세요. 아무리 귀찮아도 초등학교에서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면 안 되잖아요?”
“그, 그럼요.”
“흡연 장소가 부족해서 문제인 것 같으니 추가로 설치하도록 하죠. 그 뒤부턴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네요.”
“네, 네.”
말은 가볍게 하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기색은 얼음장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천후는 이 건에 대해선 딱히 더 말하지 않고 다시 웃으면서 동물들을 보러 갔다. 아무래도 그들의 변명을 믿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희주는 달랐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지요.”
“네, 네엡….”
천후는 그저 주의를 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광경을 같이 보았던 희주는 전혀 달랐다. 그와는 달리 완전히 원인을 짐작한 그녀는 평소보다도 싸늘한 눈을 하고 있었다.
‘으아. 이건 언니한테도 아웃이었나 보네.’
수습해주려고 고생했던 라즈베리는 달달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까지 속일 방법 같은 건 라즈베리 역시 몰랐던 것이다.
둘은 차마 앓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파리하게 질려있을 뿐이었다.
*
그 뒤로도 라즈베리는 몇 번인가 슈퍼세이브를 발휘해서 둘의 목숨을 지켜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교장실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고부터는 완전히 그녀의 손을 떠난 문제가 되었다. 저 안까지 따라 들어갈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그들은 감사 아닌 감사를 받으며 죽을 지경이 되었다. 관습적으로 빼돌리던 자금이 언급되었을 땐 머리털 끝이 곤두섰다. 천후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옆에 같이 앉은 희주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기다리고 있었던 학부모 참관수업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내려온 천후는 슬쩍 상황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생각보다 부모님들이 많이 오진 않았네요?”
“맞벌이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요.”
희주의 공작으로 이브와 에바, 이그네스는 같은 반으로 들어왔다. 그 반의 학생은 총 30명이 조금 넘었는데, 참관수업에 온 학부모는 천후와 희주를 제외하면 6명 정도였다.
“흐음.”
하긴. 아주 저학년도 아니고 이제 4학년이다. 걱정돼서 한 번 와보는 나이는 이미 지나가긴 했다. 아마 이 정도면 오히려 많이 온 편이었다.
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온 사람 중에서 가장 장신인 데다가, 정장에 선글라스를 하고 있다고 해도 젊은 나이를 숨길 수 없다 보니,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의 눈이 집중되었다.
“하. 하하하.”
갑자기 다들 자기를 쳐다보자 부끄러워진 천후는 아무 말 없이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보니 확실히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의 어머니들이 대부분. 위화감이 대단하다.
그제야 천후는 번지수를 틀린 느낌을 제대로 받았다. 한편, 그가 들어오는 걸 이그네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바보. 결국 와버렸나. 자기 생각해서 말한 거였건만….”
“아! 오빠다!”
“안 돼! 일도 빼먹고 여긴 왜와!”
순간 학부모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귀까지 새빨개진 천후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말 들을걸.’
왜 이 생각을 여태 못했지? 너무 의욕에 넘쳤다. 확실히 그가 아이들의 부모 노릇을 하고 있긴 했지만, 사정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봤을 땐 나이 차이 나는 오빠일 뿐이었다. 당장 애들 호칭부터 오빠고.
한차례 웃었던 학부모들 역시 오빠가 이런 자리에 왔단 게 무슨 뜻인지 지레짐작했는지, 갑자기 괜스레 숙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중 한 명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이 고생이 많네.”
이걸 뭐라고 답해야 해? 순간 머릿속이 기화되는 걸 느낀 천후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결국 이렇게 말했다.
“네, 네에…. 하, 하하.”
한편, 참관 수업에 같이 들어와 있던 라즈베리는 그 광경에 풉 하고 웃으면서 이그네스 쪽에 손을 흔들었다. 이그네스는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한차례 교실이 시끄러워진 와중에 선생이 들어왔다.
“자. 조용. 이제부터 4교시 수업 시작한다. 학부모님들께서도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해주세요.”
“네~.”
약속한 것처럼 한목소리로 대답한 학부모들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녀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얼굴을 수습한 천후는 간신히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수업은 참관수업이 있기 전에 아이들에게 말을 어느 정도 맞춰놓은 대로 진행되었다. 보통 수업 중에 질문 같은 건 나오지 않지만, 오늘따라 열성적으로 손을 드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 짜고 치는 판이었지만,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천후는 그 광경을 바르게 앉아서 지켜보았다.
“학교…. 선생님…. 수업…인가.”
이런 광경이 있을 거란 건 관념적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다. 체감한 것은 말이다.
청소년기까지 그를 교육한 것은 AI를 가진 로봇인 프레이, 프레이아였다. 칠판이나 화이트 보드의 자리는 그 녀석들의 눈에서 떠오른 홀로그램이 대신했다. 그걸 넘어서 일리미네이터가 되기 위해서 인간 병기가 되기 위한 준비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일상적인 이 광경은 그에겐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꼬옥.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희주가 그의 손을 잡아왔다. 그녀의 손은 평소보다 아주 약간 따뜻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그 손을 꼭 감싸 쥐었다.
*
참관수업이 끝난 이후, 천후는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러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난 그냥 네가 부끄러워서 그런가 했지.”
“그렇게까지 속이 좁진 않다.”
“호되게 배웠습니다.”
“다 먹고 나선 얼른 돌아가거라. 괜히 시끄러워진다.”
“그럴 거야. 까칠하긴.”
“흥.”
옥신각신거리면서 식사를 마친 천후는 그 이후 담임선생을 찾았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학부모들 역시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담임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대답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는 요즘 초등학교에서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30대 초반의 남자 선생이었는데,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그는 한눈에 봐도 무뚝뚝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한차례 질문 공세가 끝나는 타이밍을 보고 조금 잠잠해지고 나서야 그에게 찾아간 천후가 물었다.
“우리 애들은 어떤가요? 아, 저는 이브랑 에바, 이그네스의 보호자인데요.”
“그렇습니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그는 슬쩍 아이들 쪽으로 눈을 옮겼다가 말했다.
“아주 말썽꾸러기들입니다.”
“헉….”
단박에 직구로 꽂히는 말에 천후가 입을 벌리고는 집중했다. 어째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자, 상황을 지켜보던 라즈베리는 얼른 몸을 날려서 열심히 판토마임을 보냈다.
그러나 그 남선생은 그 신호를 정면으로 보고서도 뭔지 알아보지 못했는지, 하던 말을 계속 했다.
“남자아이들이 못 따라갈 정도로 활동적입니다. 성적은 둘 다 나쁘진 않습니다만, 조금은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물을 부서뜨릴 때가 종종 있을 정도니까요. 그때마다 주의를 시키고 있습니다만, 잘 고쳐지지 않는군요.”
“그, 그렇군요.”
“가능하시다면 가정에서도 신경 써주셨으면 합니다.”
‘히이이익!’
저 양반이 지금 뭐라는 거야? 순간적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느낌을 받은 라즈베리는 덜덜 떨었다. 지금 누구한테 가정교육을 들이대고 있는 건지 알기나 하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걱정되어서 은근슬쩍 양상을 지켜보던 교장과 교감도 사색이 되어서 필사적으로 라즈베리와 함께 그만두라는 판토마임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 전혀 알아먹지 못한 듯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게…. 저분이 이사장님인 걸 아는 사람은 이 학교에서 그리 많지가 않네. 그러다 보니.”
“으아아. 난 몰라.”
마지막에 와서 이런 대참사라니. 망했어. 다 끝났어. 라즈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들에게 사망 선고를 내보였다.
그러나 그때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저도 좀 더 아이들에게 신경 쓰겠습니다. 솔직히 말씀해주셔서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담임의 말을 들은 천후는 그의 손을 양손으로 꾹 움켜쥐며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런 그를 마주 보며 담임은 담담히 말했다.
“학생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건 교사인 제 의무입니다. 다만 태도가 불량한 것은 아니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적은 둘 다 좋은 편인 건 아실 테고…. 아. 이그네스의 경우엔.”
“걱정할 것 없겠죠?”
“대체로 그렇습니다만…. 너무 어른스러운 것이 오히려 걱정이긴 합니다.”
그 말에 천후는 절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멀찍이서 듣고 있던 이그네스의 표정은 매우 안 좋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이나 그와 말을 나눈 천후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학교를 나섰다.
“좋은 담임선생님이네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저렇게 솔직하게 말해주실 분이 얼마나 있겠어요?”
DS를 만들고 나서 저렇게 직선적으로 자신에게 말을 해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특히 아이들이 얽힌 문제라면 더더욱 그랬다.
“저분 만난 것만으로도 오늘 와볼 가치는 있었네요.”
“다행입니다.”
굉장히 만족한 천후는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던 라즈베리는 이마를 짚고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뭐지? 이럴 거면 내 노력은 대체….”
“모른다. 알 거 없으니, 신소리 그만하고 얼른 돌아가라.”
휙! 이그네스에게 쫓겨나듯 학교에서 나온 라즈베리는 그렇게 궁시렁거리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담임선생은 이후로 은근슬쩍 학교 내에서 터치 불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진 몇 없는 남선생이란 이유로 별의별 일을 떠맡곤 했는데, 그게 싹 사라진 것이다.
“별일이군.”
거기까진 좋았지만, 그 뒤로 은근슬쩍 교장과 교감이 그에게 압박을 넣어올 때가 있었다.
“험험. 자네만 믿네. 잘해야 되는 거 알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험! 으험! 애들 잘 가르치라 이거네! 이 사람 키만 멀대처럼 커가지곤!”
“네…….”
반 성적이 부족하단 건가? 그렇다고 억지로 아이들에게 압박을 넣을 순 없는데….
그렇게 담임선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착각하며 오늘도 교사의 역할을 다해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