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287화 (287/324)

287화

<그들이 바랬던 것>

최근 영천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현안은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텔레포테이션 시스템의 확대. 한국에서 거두는 효과에 눈독을 들인 선진국에선 하나같이 그것이 자기 나라에서 실현되길 원했다. 그렇지만 유그드라실은 그것을 확대할 것인가의 여부를 영천후에게 맡겨버렸다.

어떨 땐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배척했으면서, 이런 권한을 그에게 넘기는 유그드라실의 이중적인 태도는 눈에 거슬렸지만, 그들의 입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지상에서 활동하는 일리미네이터 중….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믿을만한 자가 유그드라실 입장에선 영천후였던 것이다.

그의 성장배경, 정신적인 문제점 등을 파악하고 있는 유그드라실은 그가 이것을 함부로 다루지도, 이를 통해 마법의 대중화에 열을 올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다른 정규 공격대. 월드 리버티와 머니 크래프트, 컨퀘스터 모두 국가 친화적인 면모가 있었다.

이들에게 정식으로 마법을 사용할 권한 같은 걸 넘겨줬다간 그 나라 자체가 폭주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만 영천후의 경우 대한민국 자체에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고, 이걸 계기로 마법이 퍼져나가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유그드라실 스스로 관리하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최초 그에게 권한을 넘겨줄 때부터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텔레포테이션 사용이 공식화된 지 수개월. 이제 그 영역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천후는 미국에 와있었다.

*

늦은 밤. 창밖으로는 불야성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빛나고 있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한복판, 수많은 건물 조명들이 내는 빛이.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였지만, 그와 대비되게도 불이 꺼져있는 곳들이 있다. 건물 외벽의 간판은 화려하게 빛나지만, 방 안의 불은 꺼져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부유함과 화려함에 뒤섞여 나타난 조화라고 할 수 있었다.

“으음….”

그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방탕함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 방탕함을 상징하는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비음을 내면서 허리를 뒤로 꺾었다. 앉은 자세로 고개를 위로 치켜들며 감미로운 소리를 낸 그녀는 몸을 한차례 떨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이미 힘을 다했는지, 그녀의 몸엔 땀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녀의 상대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허리춤에 딱 달라붙어 있는 그녀의 둔부를 커다란 양손이 움켜쥐더니 그대로 거칠게 움직여댔다.

“앗! 아으응!”

그녀의 체중이 마치 종잇장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건지,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이 들썩들썩 들렸다가 내려온다. 여자는 이어지는 쾌감에 몸부림치면서 상대의 가슴을 손톱으로 긁어댔지만, 그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더욱 기세 좋게 그녀의 몸을 통째로 흔들어대던 그는 그러다가 세게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붙였다. 순간 폭포수와 같은 기세로 그녀의 몸 안에 무언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접합부에서 뽑혀 나온 양물은 그대로 나머지 내용물을 그녀의 둔부와 등 위로 토해냈다.

“하아악…. 하아악….”

그제야 행위의 연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여자는 숨을 고르면서 자신 아래에 있는 남자에게 입을 맞췄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고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한 태도였지만, 여자는 그리 싫지 않은지 볼이 발그레하고 달아올랐다.

“못 본 사이에 훨씬 심해진 것 같군. 이젠 정말 도저히 혼자선 못 버티겠네만.”

“후…. 얼마 전부터 계속 이런 상태라. 곤란한 참이야.”

“후후후. 이거야 희주도 곤란하겠군.”

미국의 야밤에서 몸을 섞고 있던 건 천후와 친란이었다. 엔체스터 가문의 후계자인 그녀와는 이렇게 미국에 용무가 있을 때 정도나 만나곤 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밤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이 와중에도 아랫도리는 부족하다는 듯이 다시금 일어나 벌떡 대며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치고 있었다. 그걸 본 란은 깔깔 웃었다.

“큰일이군. 내 다른 비서들이라도 불러와야 할까?”

“그런 건 됐어…. 안 한다고 죽는 게 아니니까.”

“흐음? 그럴 순 없지.”

고개를 내저은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몸에서 내려와 귓가에 속삭였다

“자네의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싫다면 내가 끝까지 상대하는 수밖에. 대신에…. 리드를 부탁해도 될까?”

“…….”

악랄한 여자다. 꿈틀거리던 것이 완전히 빳빳해졌다. 한순간 콧김을 크게 내쉰 천후는 그녀를 아래에 눕히고는 그대로 다시 깔아뭉갰다. 어둠 속에선 다시 비음이 터졌다.

*

그 뒤로 몇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그는 진정되었다. 그동안 완전히 진이 빠진 란은 천후의 부축을 받고 나서야 씻고서 다시 침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팔에 머리를 올리고선 속삭였다.

“으음…. 왜 희주와 함께 오지 않아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거지?”

“요즘 너무 자주 오고 갔으니까. 그녀도 쉴 때가 있어야지.”

“이런. 나는 철저하게 세컨든가? 나쁜 남자로군.”

“…….”

순간 천후는 대답하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란은 다시 한 번 웃고는 그 볼에 입을 맞췄다.

“아직 순진함이 덜 빠졌군. 이럴 땐 그래서 싫으냐고 물어보면 되는 것인데.”

“…그런 뻔뻔한 소린 못해.”

“후후.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네. 피차 모르고 만난 것도 아니니. 나는 나대로 즐기고 있네만?”

“항상 생각하지만…. 너랑 희주 씨 생각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어….”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꽤 골치가 아파진다. 그가 인상을 쓰자 란은 다시금 입을 두 번 더 맞추고는, 그 입술에 검지를 가져갔다.

“좋아. 그럼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 대신에…. 자네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그 말에 천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녀와 만난 것은 텔레포테이션 시스템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현안 때문이었다.

“나온 건가?”

“후후. 그래. 엘모세와트의 연구 자료 해석이 끝났다.”

두 달 전.

영천후와 유그드라실, 그 외 다른 정규 공격대…. 사실상 지구상 마법사를 대변하는 모든 단체가 모여서 한 비밀 조직을 박살냈다.

그 이름은 엘모세와트.

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마법사를 연구해오던 연구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조직이었다. 그들은 그 뒤로도 수십 년간 마법사를 납치하여 인체실험을 자행하고, 사람을 마약으로 절이고, 여자 마법사를 강제로 임신시켜 마법사 브리딩을 시도하는 인류사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범죄를 저질렀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자 정신 지배당한 마법사 아이들을 테러리스트로 삼아서 전 세계에 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마법사들은 드물게도 한자리에 모여서 이들을 격퇴. 완전히 와해된 엘모세와트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중심부. 엘모세와트 시스템을 통제해오던 기계 인격은 영천후에게 지금까지 쌓아온 엘모세와트의 연구 자료를 남겼다.

천후는 그 내용을 확인해보았지만, 워낙에 방대하고 복잡하여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좀 더 전문적으로 확인해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유그드라실이었지만, 천후는 이내 포기했다. 이들에겐 분명 분석능력은 있겠지만, 그 내용을 온전히 알려줄 거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외에 다른 공격 대장들은…. 미안한 이야기긴 하지만, 이것을 악용할 소지가 있었다. 엘모세와트의 시스템이란 기밀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어느 국가에서건 똑같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유그드라실에게서 두 번째로 신뢰받는 인물에게 데이터를 넘겼다. 디제스터가 나타났을 때 공격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을 해냈고, 세계와 마법사를 위협할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가져왔던 친란에게.

그녀는 처음엔 저어했지만, 결국 받아들고는 비밀리에 데이터를 좀 더 상세히 조사해주기로 했다. 그 결과를 오늘 가져온 것이다.

“일단 자세한… 시각적으로 표현한 자료는 이후에 따로 넘겨주지. 지금은 일단 설명만 듣게.”

“음.”

고개를 끄덕이는 천후는 한 번 바라본 그녀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그의 가슴을 검지로 통통 두드리며 말을 시작했다.

“일단. 엘모세와트의 목적. 이것은 자네가 만났다는 기계 인격. 루스트 그윈들링을 자처했다는 녀석의 말대로 모든 인류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네. 엘모세와트는 일단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최소단위로 한 가정당 마법사 한 명을 소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지.”

“음. 거기까진 알고 있어.”

“그래. 하지만 엘모세와트의 연구 자료를 자세히 분석한 결과…. 그것은 중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너머에 있더군.”

“그 너머?”

“그렇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전 인류의 마법사화. 이것이 그들의 목표였네.”

천후의 눈이 부릅떠졌다.

“전 인류의 마법사 화라고? 그게 가능해?”

마법사가 세상에 태어날 확률은 1/1,0000. 이걸 1/1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게 의도한다고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천후가 놀라 묻자, 친란은 그녀의 가슴판 위에서 손을 한 번 슥슥 내저으며 말했다.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그것은 여기에서 중요한 점이 아니야. 요는 그들은 무조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연구를 해왔다는 게지. 그리고 이들의 데이터엔 일견 신빙성 있는 부분도 있네. 당장…. 마법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경우, 확률적으로 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모양이니까.”

진정으로 ‘브리딩’을 계속해나갔다면…. 그들은 마법사 아담과 이브로 삼아 전 인류를 마법사로 갈아치우는 게 딱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엘모세와트의 연구 결과였다.

“애초에 이 루스트 그윈들링이란 자의 가설 자체가 혁신적이네. 엘모세와트 내부에서도 그의 가설을 접하기 전과 접한 후로 실험 양상이 나뉠 정도더군.”

“그 가설의 내용이 뭔데?”

천후의 물음에 친란은 루스트 그윈들링의 가설에 관해서 설명해주었다.

마법사 연구자 루스트 그윈들링.

그의 가설은 먼저 ‘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그가 주장하는 신이 무슨 기독교의 신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가 가지는 초자연적인 힘. 그 힘의 출처가 되는 자, 어떤 존재, 혹은 언어로 표현하기 난해한 무언가. 그것을 일단 ‘신’이라는 단어를 붙여두고서 시작하는 것이다.

마법사의 힘의 근원은 이 ‘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마법사들은 모두 그것에게서 힘을 나눠 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그드라실이 은연중에 밝힌 ‘마법사는 1,000년 전부터 존재해왔다’라는 발언에 그는 당시에 무언가 ‘사건’이 있어서 이 ‘신’의 힘이 인류에게 부여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때부터 그의 연구는 마법사 자체보다는, 마법사의 기원을 되짚는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애석하게도 그 최초의 사건은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다른 성과를 얻었다. 바로 마법사들이 시대에 따라서 점점 ‘증가해왔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한 근거를 획득한 것이다.

“증가해왔다고?”

“음. 루스트 그윈들링의 가설에 따르자면, 최초에는 마법사의 수가 1/10,000은커녕 훨씬 적었다더군. 그게 점점 비율이 커지면서 현대에 와선 이 정도가 되었다는 거네.”

“하지만 그게 엘모세와트가 해온 짓과 무슨 상관이 있지?”

“조급해하지 말고 끝까지 듣게. 그 와중에서 루스트는 생각했지. 그렇다면 자연적으로 전 인류가 마법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과도기는 너무 길다. 어떻게 하면 그 기간을 ‘단축’ 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그 답을 하나로 보았지.”

순간 천후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그 의혹에 친란은 고개를 한 번 작게 끄덕였다.

“그렇네. 바로 신에 닿는 것이지. 그는 그것을 ‘신역’이라 불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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