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314화 (314/324)

314화

<아버지>

섬광이 터져 나왔다. 곧장 물리력으로 치환된 그 빛은 타클라마칸 사막 허공 한가운데서 쏘아져 정확하게 직선으로 날아갔다.

지구의 중력 따위 손쉽게 무시한 그것은 북반구를 빛으로 물들이며 남아있던 결계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는 그대로 지구 밖으로 이탈해 날아갔다.

전리층이 영향을 받으며 일어난 오로라가 하늘 위에 아름답게 피어오른다. 그것을 지상에서 올려다보면 그만한 장관이 없었지만, 본래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희소식이 아니었다.

총천연색의 커튼이 되어 일렁거리는 오로라는 곧 거기에서 자아내지는 혼돈을 그것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지적 생명에게 직접 가져다주겠다는 선고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올 자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하늘에 고고히 선 신의 대자.

이제 신의 힘을 이끌어내는데 부자연스러운 조화는 부릴 필요도 없다는 듯,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 아닌 그것은 무너지는 현실 위에서 유일하게 오롯이 서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유일한 신인류, 종언의 마법사이자 진정 별이 낳은 유일한 마법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런….”

그 이유는 그가 처음 노렸던 이가 상처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임시로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던 대가로 완전히 탈진해버린 저 앞, 인간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최후의 수호자가 건재했다.

본래대로라면 지금쯤 아예 그 영체조차 남지 않고 그대로 흩어졌어야 옳다. 그 이후 그는 힘을 펼쳐서 모든 인간을 멸해갈 생각이었다. 그의 힘에 닿아 생명을 다하게 함은 그가 인류에게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였다.

아무런 고통 없는 평온한 죽음. 잠시 눈을 감으면 그 순간 영육은 분리되어 영은 어머니의 의식으로, 육은 어머니의 대지로 돌아간다. 언젠가 누구나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그러나 지금 그것을 한 인간의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그만둬……. 제발…….>

“…….”

그것은 잡음이었다. 따지고 보자면 모깃소리나 다름없는 아주 희미한 잡음. 하지만 잠을 자고 있을 때 귓가 바로 옆에서 그 잡음을 들으면 어지간히 신경이 둔하지 않는 한 잠이 깨는 법이다.

그리고 이 인간을 멸할 신의 대자는 그 태생상 영적으로 그 누구보다도 민감했다.

<이런,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너에게 어떤 이득이 있다고….>

“득실의 문제가 아니야, 친구. 이건 내가 태어난 이유. 삶의 이유지. 네가 세상 모든 디제스터를 다 잡아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행동한 것과 다를 바 없어.”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 있었다. 아주 약한 두통과 속삭이는 소리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그는 쉬이 그럴 수가 없었다.

가이아, 그리고 그가 직접 정한 ‘인간’의 범주 안에 지금 자기 안에 자리 잡은 소년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랬다.

그는 인간을 멸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신의 대자로서, 인간의 모든 저항을 이겨낼 필요가 있었다. 그 자신이 인간의 시련이라면, 그것을 전부 감수하는 것 또한 신의 대자인 그에게 내려진 시련이었기에.

*

영천후.

인간 영주성과 유지민의 아들.

마법사와 인간의 때를 끝내기로 정한 가이아는 그 마지막이 될 시련을 가져올 존재를 인간이 낳게끔 했다. 신의 대자가 인간의 태아에 임한 것이다.

그렇게 영천후의 육신 안엔 인간 영천후의 영혼과 신의 대자의 영혼이 함께 했다. 태어날 때부터 말이다.

두 부부에게는 슬프게도. 인간의 영이 신의 영과 공존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인간 태아 영천후의 영혼은 그대로 신에게 밀려서 잠들었다. 또한 신의 영 역시 자신이 움직일 때만을 기다렸기에, 인간적인 활동을 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에 그의 정신은 거의 발달하지 못했다. 그나마 신의 영혼이 활동하지 않았다지만, 인간의 영혼은 그 공존만으로도 버티기 어려워서…그저 몇몇 필수적인 활동이나 의사소통만을 약간 익혔을 뿐인, 반 장애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대참사의 때가 왔다.

뭄바이에서 사건이 터졌고, 그날 인류 최후의 보루라 불릴만한 SA 랭크 마법사와 그들의 수장인 시원의 마법사, 랑크 메이거스마저도 쓰러졌다.

다만 그 싸움이 여파로 신의 대자 역시 힘을 소모했다. 그 틈을 타서 랑크 메이거스는 마지막 힘으로 신의 대자에게 봉인을 걸었다.

메이거스 시스템. 이것의 구조는 간단했다. 신의 대자가 힘을 소진한 사이, 그 육신을 인간의 영혼이 통제하게끔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의 대자에게 있어서 최강의 봉인이 되었다.

인간이 스스로 겪어야 할 삶을 살면서 정신이 형성되어가고, 그것에 그 역시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금세 그 몸을 다시 탈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나이를 먹고 시간을 지나…삶을 겪으면 겪을수록 이제 ‘허락’을 맡지 않으면 그럴 수 없게 되었다.

평생을 신의 영혼과 함께 한 그 소년은 이제 그 힘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윽고 동화되어간다.

스물이 넘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 기미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애초에 신위를 자기 뜻대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가…인간의 영혼을 가지고서 본랜 해낼 수 있는 짓이 아니다.

당장 저 최완조차도 그렇지 않은가? 아마 이대로 몇 년이 더 지났다면 그는 결국 이 육신을 그에게 넘기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합쳐졌을 터. 그리고 거기에서 정신을 쥘 주도권은…인간인 영천후가 가지게 되었으리라. 그것이 ‘패배’를 인정하는 시련의 도리이기에. 그리고 아마도…악시스 문디 역시….

“안타깝군. 하지만 이것도 네 선택이었다. 몰랐다고는 하지 않겠지? 너는 직감하고 있었어.”

물론 영천후는 이렇게 몸이 넘어가면 그 즉시 인간을 멸해버릴 과거 참극의 주인공이 튀어나올 거란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굉장히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란 건 직감하고 있었다.

랑크 메이거스가 대참사적 기억을 봉인해두었다지만, 그 일부는 오히려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마치 이 참극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처럼.

그 영향으로 천후는 기억이 봉해졌더라도 그에게 몸을 넘기는 것을 두려워해 왔던 것이다.

<그건…맞아. 내 잘못이지. 하지만 이건 아니야! 넌, 너도 보아왔잖아? 이 세계를 부수고 싶나? 전 인류를 그렇게 끝장내고 싶어?>

감정에 호소한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둘의 기억은 함께한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과거를 떠올리고 말았다.

유그드라실에서 지내던 시절. 솔직히 이때는 인간 따위 어찌 되던 상관없지 싶다. 그나마 그를 아껴주던 이들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때 각성하게 되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오지도 않았겠지.

문제는 그 뒤. 지상에 내려가고부터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랑하는 여자도. 귀여워 미칠 것 같은 아이들도. 많은 것을 알려준 형과 같은 사람들도.

성공을 겪었고, 그 모든 것이 이제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금 그와 함께하리라.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단 말인가?

“……!”

그 상념에 휩싸여가던 그는 그러다 흠칫 놀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이미 그 목소리는 모깃소리 정도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천둥이다.

<나-우리-는 그걸 버리고 싶지 않아…. 그렇잖아?>

“후…. 후후….”

신의 대자는 웃었다. 과연 강적이다.

과거 이 몸을 되도 않는 잡것에게 빼앗긴 적이 있었다. 그땐 터무니없이 쉽게 넘겨줘 버렸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조차도 메이거스의 안배 중 하나였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그가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덕분에 육체의 주도권은 견고한데도 이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입장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고.

유그드라실에 막 왔을 때. 아직 메이거스의 봉인이 불완전해 그의 목소리가 온전히 영천후에게 전달될 때 그는 늘 이렇게 말을 걸곤 했다.

당시. 정신이 빈약했던 천후의 반응은 늘 한결같았지만 말이다.

무시.

“이제 내가 그걸 할 땐가? 꽤 어려운 일이었군.”

자기 자신이나 마찬가지인 자가 내지른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그는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회복한 최완을 내려다보았다.

‘어리석은.’

정말로 어리석게도 그의 얼굴엔 약간의 희망의 빛이 돌아와 있었다. 자신의 절규에 돌아와 저항하기 시작한 양자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리라.

“그러나 무의미하다!”

신의 대자는 그 웃음을 철저하게 부수기 위해 움직였다.

이제 그에게 시련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인류를 수호하는 저 마지막 수호자를 쓰러뜨리는 것.

다른 하나는 이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

후자는 어렵지만…전자는 그렇지도 않다!

눈에서 살기를 일으킨 남자는 그렇게 최완에게 쏘아져 들어갔다.

“크윽!”

그의 몸에선 다시금 황금빛 오오라가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주문도, 수인도 없이 화염과 전격이 터져 나오며 남자에게 쏘아져 간다. 그러나 남자는 그것을 피하지도 않고서 거리를 좁혔다.

어느새 손발이 오가는 거리가 되자 남자의 손이 그의 목을 노린다. 그것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최완의 손등이 터져 뼈가 드러났다. 한 번씩 공격을 받을 때마다 최완의 몸이 조각상처럼 깎여나간다.

물론 사람의 몸은 조각상이 아니다. 그의 몸은 점점 피투성이로 변해갔다. 치유의 힘 역시 다했는지 그의 몰골은 이제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녀석이 일어난 모양이군!”

그것이 거슬렸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남자는 다시 한 번 손을 내질렀다. 그것을 최완을 팔을 교차해서 막아냈지만, 이제 그런 방어할 힘도 점점 떨어져 갔다.

뿌각! 끔찍한 소리와 함께 최완의 오른팔 팔목 아래가 뼈째로 뜯겨 나갔다. 그것을 멀리 내던진 남자는 일갈했다.

“그래. 당신의 아들은 깨어났다. 하지만…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거지? 너도. 녀석도. 지금 이 자리에서 끝난다. 그 뒤엔 너희가 지키려고 했던 모든 인간 세상 역시도.”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 사명을 외친 그는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마무리를 할 준비.

내면에선 비명이 들려왔지만, 무시한다. 무시하면 될 문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리라.

하지만 그 모습을 올려본 장년인의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맺혀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녀석이…깨어났다고?

지금 이 눈앞에서 당장 모든 인류를 멸살시킬 것만 같은 존재 안에서도 정신을 유지하고서 저항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충분하다.

그럼 충분하고말고….

“그렇지? 천후야?”

“큭! 네노오오옴!!”

처연히. 하지만 자상히 웃는 그 모습에 남자는 피를 토하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빠가각! 푸욱!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살이 꿰뚫리는 소리. 그와 동시에 최완의 행동이 멎었다.

남자의 손은 이미 터져버린 심장 조각들을 쥐고서 최완의 등 뒤로 솟구쳐 나와 있었다.

끝.

인간을 지키던 수호자의 끝이었다.

사명 중 하나를 이뤘다. 그러니 남자의 표정은 다시 밝아져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의 눈은 찢어질 듯이 커져 있었다.

“아니? 이건!? 으아아아아아악!”

“흐…. 흐흐……. 흐흐흐흐….”

찢어지는 비명과 웃음소리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울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 아버지. 아버지! 안 돼, 이럴 순 없어!”

비명을 내지르던 입에선 조금 다른 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주인이 누군지는 분명했다. 최완은 여전히 웃었다.

웃으며.

그저 웃으며.

하나 남은 두꺼운 손으로 영천후의 얼굴을 매만졌다.

“처, 천후야…. 돌아왔냐…?”

“그래! 돌아왔어요! 돌아왔다고! 그러니까 정신 차려! 지금, 지금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그러나 최완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다는 의미로.

“됐다…. 그보다…천후야. 잘 들어라.”

“…….”

순간 천후는 이것이 그가 남기는 마지막 말임을 직감했다. 눈앞이 희뿌예졌다.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착한…착한 사람이 되어라…. 네가 아무리 세상에 분노하고 부조리한 일을 겪더라도…언젠가 그걸 전부 뒤집어엎고도 남을 날이 올 거야….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 그때가 되었을 때…너를 아껴주고, 너를 이해해줬던 사람들이 있었단 걸 부디…잊지 말거라….”

그 내용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질릴 정도로 들은 이야기였다.

마치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예상했던 것처럼 해왔던 이야기.

다만. 그는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마지막 말을 그 뒤에 붙였다.

“그리고…그리고…부디…행복하게 살거라….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너에겐…그럴 자격이 있어….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 천후야……….”

스륵. 볼을 감싸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눈앞을 방해하던 물줄기가 그 길을 따라 흐른다.

그제야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환하게. 너무나도 환하게.

“아버지!!!! 아버지!!!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의 몸을 꿰뚫은 남자는 그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사막의 바람소리조차 그것을 덮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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