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운명에 저항하는 자>
지금까지 뭄바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던 병기 면역 효과가 풀렸다. 그 소식이 전달된 순간.
오로지 그것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전 세계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대륙 간 탄도탄이 한 곳을 향한다. 국경을 넘어 도착한 포에서, 함선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며 하늘까지 닿은 세계수를 없애기 위해 날아들었다.
병기 면역 효과는 풀렸지만, 아직 인류 문명을 없애버리는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사일의 상당수는 폭발해야 할 시점을 제대로 잡지 못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폭 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발사된 발사체의 운동에너지는 전달된다. 악시스 문디까지 날아만 가면 이미 날아간 포가 일으키는 파괴에 기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이뤄낸 진정한 폭력이 강림한다. 악시스 문디를 타격하고 일어나는 후폭풍만으로도 뭄바이에 있던 디제스터들은 증발했다. 드높게 일어난 버섯구름은 악시스 문디의 모습을 가려버리고, 디제스터의 육신을 연료 삼아 지면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그 장관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양주먹을 움켜쥐었다.
“해냈다! 해냈어!”
지금까지 그들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힌 디제스터 무리가 깔끔하게 박멸되었다. 그 쾌거에 그들은 경도되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이 결과를 내기 위해서 처음 투입했던 인원의 절반이 사망했다.
너무나도 큰 희생. 아무리 인류 전체를 위한 발버둥이었다고 치장한다고 해도 죽은 사람은 죽은 거다. 그 현실은 냉엄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경과를 지켜보던 태원은 아직까지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긴장을 풀지 마세요!”
화력의 폭풍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 영향권에서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어려웠을 정도로, 이대로라면 지각이 깨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인류의 총력이 쏟아 부어지고 있는 상황.
하지만 태원은 그것을 보면서도 불안감을 느꼈다. 과연 이 화력은 대단하다. 연이어 날아오는 공격으로 악시스 문디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니까. 그렇지만….
“핵무기가 작동하지 않아…!”
본래 의도했던 화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특히 미, 중, 러에서 발사한 탄도탄의 발사체는 80% 이상이 핵무기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미미르로부터 방사능 경고가 발령되고 있지 않았다.
그건 곧 본래 준비했던 화력의 태반이 무력화되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그것만으로도 디제스터가 전부 쓸려버리긴 했지만…….
과연 본래 표적이었던 악시스 문디까지 그럴지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을 때.
치지지지지지직!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그 중앙부에서…이질적인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백열이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모든 흙먼지를 진정시킨 그 빛은 버섯구름조차 흩어버리고는 하늘 위로 쏘아 오르더니……하늘 전체를 빛으로 물들이며 세상 곳곳으로 날아갔다.
“아…….”
순간 태원과 마법사들은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폭발의 여파에서 물러나기 위해 뭄바이에서 빠져나와 수십 km 밖의 지면에 내려앉아 있던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땅에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과가 들려왔다.
<악시스 문디. 자신을 공격한 모든 병기가 사출된 장소로 반격 실행. 전탄 명중으로 예상됩니다.>
“허. 허허…허허허허…….”
미미르의 보고를 들을 것도 없이, 아라비아 해에 빼곡히 들어서 있던 함선들이 있던 곳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워낙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던 포격진형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 저 한 번에 끝장나버렸다.
<유그드라실 본체에도 몇 발의 공격이 감행되었습니다. 현재 원래 출력의 37%로 운행 중. 큐브 엘리베이터 운용에 일부 제한이 걸렸습니다.>
“……!”
연이어 들려온 절망적인 보고. 그와 함께 악시스 문디를 가리고 있던 버섯구름이 이윽고 완전히 사라지며…그 안에서 악시스 문디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은 건재했다.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지구를 뒤덮을 기세로 뻗어있던 가지들은 죄다 뜯겨나가 있었고, 지면에 박혀있던 두꺼운 뿌리의 일부도 손상되어, 그 거대한 몸체 자체가 기울어져 있었다.
줄기 중간중간에도 불길이 치솟거나, 끊어져 나가 있는 곳도 보였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놈의 중심핵에서 시작된 세찬 백열은 그 몸체를 전부 감싼 채,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원은 자기도 모르게 오열하며 땅을 내리쳤다.
“제기랄…! 제기랄!”
알고는 있었다. 이런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인류가 가진 어떤 병기도 놈의 중심핵에 타격을 입힐 수 없다. 오로지 인간, 그것도 특별히 선택받은 인간만이 놈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다. 그러니 마무리는 그들의 손으로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저것이 입은 피해는 너무나 경미하지 않은가? 5천 명의 목숨을 날려가며 시행한 공격을 받아냈다고 하기엔!
“대장님….”
그를 지켜보던 다른 일리미네이터, 하연 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지켜보았다. 무력함에 통곡하는 그 모습은 마치 자기 자신의 심정 그 자체를 대변하고 있었다.
<악시스 문디 완전 회복 예상 시간. 10분 이내. 그 이전에 중심핵을 파괴해야 합니다. 대책을.>
“대책….”
그 대책은 영천후였다. 그와 함께 남아있는 마법사들이 전력으로 모든 힘을 더해서 중심핵을 타격하겠다는 게 처음 계획이었다. 하지만…태원은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그의 손에선 더는 수족 같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이 다한 것이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의 총량은 다 다르지만, 지금 이 결과를 내기 위해서 그들은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었다. 랭크 차이 없이 대부분 완전히 고갈된 것이다.
이런…이런 상황에서 과연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때였다.
“일어나세요. 태원 씨.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 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도저히 이곳에서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긴 흑발이……바람에 흩날린다. 그 주인은 천천히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보세요. 저분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과 함께.
악시스 문디 앞에서 홍염이 치솟아 올랐다.
“사장님…!”
마지막 남은 인류의 보루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시선이 그 붉은 기둥에 붙박였다. 그때.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원 씨. 그리고 다른 분들도…. 저를 도와주세요.”
*
섬광이 있은 후.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그들이 맞이한 것은 현실 세상.
인류가 악시스 문디를 타격할 모든 힘을 잃어버린 세상이었다.
눈앞에는 백열로 타오르는 악시스 문디의 뿌리가 있었고, 후와 강호, 라즈베리, 이그네스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아…….”
악시스 문디가 부린 모든 조화를 그들은 보았다. 전 지구에서 날아오던 모든 병기를 요격함과 동시에, 그것이 발사된 곳으로 정확하게 공격이 가해졌다.
이건…이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하려고 했다면 멸급 디제스터와 싸우고 있던 마법사들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었으리라.
이것을 이제 와서 보여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힘의 과시 그 자체였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렸다.
“이건…말도 안 됩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절망이 의식을 뒤덮는다. 라즈베리는 자기 몸을 끌어안고 떨었다. 이그네스 역시 눈에 띄게 겁먹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 높은 곳. 하늘처럼 높은 곳에서 한 차례의 빛이 일었다. 중심핵이 있는 곳.
악시스 문디에서 떨어져 나온 그 빛은 천천히 지상으로 강림하여―인간의 모습으로 화했다.
그것은 영천후와 똑같이 닮은 한 남자였다.
별의 적자. 신의 대자.
“훌륭하군. 인간의 힘.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를 당해낼 수는 없다.”
딱히 자기 자신을 드높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뿐. 항거할 수 없는 진실을 입에 담는 신적 존재 앞에 모든 이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단 한 명.
그와 마주 선 단 한 명의 남자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무것도.”
그의 눈에서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꽃의 이름은 전의. 그것을 마주 본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어리석군. 친구. 방금까지 있던 그곳에서 나에게 몇 번이나 패했는지 잊어버렸나?”
그 인지와 시공을 초월한 암흑 공간 속에서 둘은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맞붙었다.
중간에 천후가 그곳의 상태를 깨달은 이후론 손을 섞는 걸 멈추었지만, 그전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싸웠고…영천후는 그때까지 끝없이 패배했다.
“네가 죽어가도 지탱해주던 세 명의 선조도 네 몸에서 빠져나갔고, 너에게 마지막 보정을 걸어주던 나의 힘도 이제는 없다. 너는 이제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해. 네 아버지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단 말이다.”
저항 그 자체가 의미 없었다. 이미 결정 난 결말. 무력한 저항은 추악할 뿐이다. 하지만 싸우는 자는 말한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런 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그렇다 해도 나는 싸우겠다. 네가 나를. 인류를 끝장내는 걸 단 1초라도 늦게 하겠어! 아니! 아무것도 끝나지 않게 하겠다! 그게…내가 정한 나의 사명이다!”
순간, 저항자의 몸에서 홍염이 치솟아 올랐다.
신위의 불길. 인간의 몸으로 신역에 닿아, 신을 해할 수 있게 되어버린 남자가 쏟아내는 불길.
그 불길을 마주 바라본 남자는 처음엔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곧, 그의 몸에서도 천천히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백열로 변했다가 마지막엔 아무것도 없어졌다.
신의 대자가 자신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증거.
“사명. 사명이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겠다.’ 그래. 그 범주 안에 라면 분명 나神도 들어가겠지.”
어느새 그의 눈에서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뤄야 할 사명의 범주를 넘어,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신의 눈길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영천후. 인간의 아들아. 저항해 보거라. 나는 별의 적자로서 너와 인류의 마지막 도전을 받아들이마.”
그동안…‘저쪽’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더라도.
신의 대자는 굳이 그 말을 생략하고는 그에게 손짓했다. 마치 선공을 양보해주겠다는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천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라즈베리. 이그네스. 그리고 선배…. 모두 물러서.”
“네?”
“무슨!”
“그, 그럴 순 없다! 어떻게 너 혼자 저런 자를 상대한단 말이냐?”
셋이 당황하는 소리를 냈지만, 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라즈베리와 이그네스는 방해만 돼. 선배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진리 구현자 특성은 너무 사용이 제한돼. 놈의 능력을 완전히 억누르지 못하는 이상….”
셋 모두 대단히 강력한 마법사고, 신역에 닿아 신을 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그럼에도 부족하다.
라즈베리는 레졔나 시리즈 링크를 발동시킬 수 없는 이상 신의 대자에게 타격을 입히기엔 너무 약하다.
이그네스는 실전경험이 너무 부족해서…정말로 방해가 될 뿐이다. 지금 여기까지 싸워준 것만으로도 미안할 지경이었으니까.
이강호 정도가 보조를 맞춰볼 만 하지만, 그녀 역시 신의 대자를 직접 억누르기엔 무리가 있다.
결국 그와 완전히 제한 없이 싸울 수 있는 건 완전히 신의 영역에 몸을 한 번 담갔다 뺀 영천후 본인뿐이었다. 대신, 천후는 단서를 달았다.
“물러서서…저쪽에서 준비하는 걸 도와주도록 해.”
“…….”
셋은 그 말에 의아해 하면서도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신의 대자는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도 막지 않았다.
어차피 눈앞의 이 남자가 쓰러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저들이 별에서 떠나지 않는 이상 어디로 향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그들은 얼마든지 보내줄 수 있다.
별의 적자가 말했다.
“그럼. 마지막 싸움을 시작하자.”
“그래…. ‘친구’!”
홍염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