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칸 (12)화 (12/159)

12

놈이 휙, 솟아올랐다. 너무나 순식간이어서 도망칠 생각도 못 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팽, 날아오더니 놈의 이마 한가운데에 정확히 박혔다.

털썩, 쓰러지는 들개를 보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던 캘리는 워렌 공작이 성큼성큼 걸어가 놈의 머리통에서 칼을 뽑아 드는 걸 보았다.

온통 피가 튀어 물들어 있는 그의 얼굴은 마치, 지옥에서 이제 막 튀어나온 사자처럼 보였다.

와이엇이 뛰어왔다.

“마을로 들어온 놈들도 다 없앴습니다. 나머지 놈들은 강 건너 숲으로 도망쳤고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공작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캘리는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가만히 그 눈을 마주 보았다.

공작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푸덕,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날갯소리가 울렸다.

캘리의 눈이 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가까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쉴라가 보였다.

쉴라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쓰러져.

뭐?

쓰러지라고.

쉴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리고 그 뜻이 아까 방에서 말했던 의심받지 않기 위한 그 ‘쓰러지기’라는 걸 깨달았다.

“괜찮으십니까?”

오웬이 옆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워렌 공작도.

캘리는 결정을 했다.

“아.”

일부러 신음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고 무릎에서 힘을 뺐다. 휘청, 하면서 느리게 몸을 기울였다.

방향은 엘프 전사 쪽이었다.

***

몸이 휙, 들렸다.

그녀의 판단은 맞았다. 오웬은 쓰러지는 그녀를 재빨리 잡아주었다. 그런데 그녀를 안아 든 사람은 워렌 공작이었다.

성큼성큼, 그가 그녀를 안고 여관으로 향하는 동안 캘리는 그대로 정신을 잃은 척했다.

홀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방에 들어설 때까지. 그리고 침대로…… 던져질 때까지도.

털썩, 매트 위에 떨어져 그 반동으로 몸이 살짝 튕겨져 올랐지만 꿋꿋이 눈을 감고 있었다.

“어지간히 하시지.”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캘리는 움찔했다.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울린다.

“셋 셀 동안 안 일어나면…… 눌러달라는 소리로 알아듣겠어.”

뭐?

“하나…… 둘, 셋.”

캘리는 번쩍 눈을 뜨고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가 두꺼운 가슴팍 앞으로 팔짱을 낀 채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거죠?”

말을 더듬는 건, 진짜였다.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 정말 무서웠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가 팔짱을 풀고 다가왔다.

캘리는 침대에서 냉큼 내려서서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아, 저기…… 들개들은 어떻게 됐죠? 그, 제프리는 괜찮은 건가요? 주인장은요? 많이 다친 것 같던데…… 아!”

계속 뒷걸음질 치던 그녀는 빠르게 다가온 그에게 팔을 붙잡혔다. 다시 도망칠 겨를도 없이 와락, 품 안으로 끌려 들어간 그녀는 헉,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속삭인다.

“뭘까?”

캘리는 눈만 멀뚱히 뜬 채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뜨끔,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그가 의심하고 있어.

캘리는 서둘러 말했다.

“아뇨. 난…….”

“곱게 자랐을 백작의 딸이 첫날밤, 남편에게 칼을 들이대고…….”

“그 부분에 대해선 설명했잖아요.”

“달려드는 들개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무서웠어요.”

그가 눈을 가늘게 좁히자 캘리는 조용히 덧붙였다.

“진짜로.”

그의 입꼬리가 슬쩍 휘었다.

“무서움에 떨던 귀족 아가씨께서 칼을 던져 들개의 머리통을 명중시켜?”

“그건…… 너무 급해서……. 그 못된 짐승이 사람을 뜯어 먹는 걸 보니까,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봐.”

그가 화가 난 투로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난 어째서 부인 말이 하나도 믿기지가 않지?”

겁을 주듯 잇새로 내뱉는 말투가 너무 차가웠다. 하지만, 캘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아파요.”

그에게 잡힌 팔을 상기시켰다. 실제로 아프기도 했고.

그제야 그녀를 너무 꽉 쥐고 있다는 걸 깨달은 공작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손을 놓았다. 캘리는 재빨리 한 발 물러서며 잡혔던 팔을 주물렀다.

“젠장.”

그가 갑자기 자기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더니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한테 속이는 게 있으면 지금 말해.”

캘리는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그런 거 없어요.”

진실을 알면, 그는 나를 죽일 것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들개를 어떻게 두 동강 내는지 본 지금은 더더욱 비밀을 지켜야 했다.

난 목이 잘리고 싶지 않거든. 절대.

그의 눈이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

“만약, 속이는 게 있으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더 물러서던 그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가 멈췄다.

그리고 홱, 몸을 돌리더니 척척, 걸어가서 방문을 홱 열어젖혔다. 문밖에 서 있던 오웬이 흠칫하는 게 보였다.

“죽은 들개를 강가에 다 모았습니다. 지금 보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공작이 그녀를 흘깃, 돌아보았다. 그리고.

“방에 있으시오. 부인.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꼼짝 말고.

위협하듯, 차갑게 명령을 내린 그가 검을 집어 들고 방을 나가자, 캘리는 그제야 무너지듯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은 늑대가 날 의심하고 있어. 이제 어쩌지?

멍하게 앉아 있던 캘리는 벌떡 일어나 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쉴라.”

조용히 불렀다. 반응이 없다. 살짝 목소리를 높여서 다시 불렀다.

“쉴라.”

푸드덕, 날갯소리가 나더니 지붕 위에 있던 쉴라가 빠르게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

“마을 사람들 말로는 들개가 이렇게 사나워진 이유가 가윰 남작 때문이랍니다.”

강으로 가는 길에 오웬이 보고를 시작했다.

“몇 년 전, 이곳 드로퀸 영지에 쥐들이 판을 쳤답니다. 쥐를 잡으려고 고양이를 대거 키우기 시작했는데, 쥐들을 다 잡고 나니 이번엔 고양이가 문제였던 거죠. 먹이가 없어진 고양이들이 식품 창고까지 숨어들어서 식재료들을 엉망으로 만들었답니다. 고양이 수를 줄이려고 약을 놓기도 했는데, 워낙 영악한 탓에 소용이 없었답니다. 결국 개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라이칸은 피식, 웃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그 뻔한 결말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오웬도 더 이상 말하는 게 소용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말을 이었다.

“뭐, 짐작하시는 것처럼 그 개들이 이 모양이 된 거죠. 개를 좀 풀어놨더니 고양이들이 사라지는 게 효과를 보였고, 영주가 좋아하자 아랫사람들이 개들을 더 늘리기 위해서 마법사까지 동원했답니다.”

“마법사?”

“예. 늑대 몇 마리를 잡아다가 개와 교배를 시켰답니다.”

우뚝, 걸음을 멈춘 라이칸은 오웬을 돌아보았다.

“그게 가능하다고?”

“가윰 남작의 성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여자 마법사가 있답니다.”

라이칸은 인상을 썼다.

각기 다른 종족 사이에서 새로운 종족이 탄생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였다. 지능을 가진 종족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키는 건,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돌연변이군.”

라이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강가에 쌓인 시체 더미를 보았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오웬의 동의에 라이칸의 눈빛은 더욱더 차가운 빛을 머금었다.

“드로이에게 기사 둘을 붙여서 남작의 성으로 보내. 영주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되는지 알아봐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오웬은 재빨리 돌아섰다. 라이칸은 시체 더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칸.”

와이엇이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 하나를 데리고 걸어왔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잡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노인 말을 꽤 잘 따른답니다.”

라이칸은 노인을 보았다. 허리가 굽어 있고 얼굴은 쭈글쭈글한데, 눈빛은 맑았다.

“촌장인가?”

라이칸의 물음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 마을에는 그런 직위가 없습니다. 그냥, 제가 가장 오래 산 사람이라 제 의견을 경청하는 것뿐이지요.”

고개를 끄덕인 라이칸은 노인에게 명령했다.

“날이 밝는 대로 사람들을 동원해서 마을 주변에 울타리를 쳐라. 튼튼하고 촘촘하게. 사이사이에 종을 달아서 들개가 들어오면 곧장 마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고.”

“예. 알겠습니다.”

라이칸은 시체 옆에서 횃불을 들고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전부 태워라.”

기사들이 가축에서 나온 기름을 들이붓고 불을 붙였다. 시체를 태우는 역겨운 냄새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의심한다고?”

쉴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쓰러졌는데도 안 통했네.”

쉴라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자 캘리는 다시 동의했다.

“쓰러진 걸 안 믿었어.”

“덩치에 안 맞게 눈치는 빠르네.”

“빠른 정도가 아니야. 그 사람 눈은 마치,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속을 꿰뚫어 보는 자는 없어. 그래도 뭐, 워렌 공작은 좀 특별하긴 하지.”

“이제 어쩌지?”

“어쩌긴. 그래도 계속해야지. 널 의심하지 않을 때까지.”

“글쎄……. 공작을 속이는 건 너무 어려워.”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

“이봐. 캘리.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있어. 공작은 네가 백작의 딸이라는 걸 믿고 싶을 거야. 아니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그래. 하지만 의심이 되면 파헤칠 사람이야.”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네가 믿음을 줘야지.”

“나도 그러고 싶다고. 근데, 어떻게?”

“음…….”

쉴라가 탁자 위를 왔다 갔다 몇 번 하더니 우뚝 멈춰서 캘리를 보았다.

“세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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