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 앤 라이-57화 (57/58)

57화.

“여기 잡고 엎드려.”

은하를 가볍게 들어 올린 태건이 시트를 완전히 뒤로 젖힌 후, 은하를 돌려세웠다. 진이 빠져 헤드를 겨우 잡고 엎드린 은하의 하얀 나체가 보였다.

“하아, 너무 예뻐. 진짜…… 존나 야하다, 설은하.”

다짜고짜 몸을 겹친 태건이 허리를 틀어쥐었다.

“아…… 아으…….”

은하의 잇새에서 긴장과 흥분이 함께 감도는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여……보. 얼른, 얼른 해줘.”

애처롭게 애원하는 목소리에 태건은 다시 미친 듯이 몸을 겹쳤다. 애써 신음을 참으려 노력하던 은하는 고성을 질러 댔다.

“아, 안 돼, 아, 아읏!”

은하는 여느 때보다 더 빨리 쾌감에 물들었다. 그런 은하를 보며 태건은 거세게 몸을 겹쳤다.

“아아!”

“윽!”

끝 간 데 없는 쾌감에 온몸이 떨렸다. 태건은 그대로 은하를 일으켜 세워,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하아, 아, 자기야, 너무 좋다.”

은하에게 입을 맞추며 태건은 다급히 다시 몸을 겹쳤다. 입을 맞추는 은하의 잇새로 타액이 질질 흘러내렸다.

“읍, 으읍!”

은하에게 점차 끝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태건이 긴 머리카락을 살짝 그러쥐고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설은하.”

움찔. 달콤하고도 다정하게 꽂히는 그의 목소리에, 은하의 몸이 화답하듯 반응했다.

“평생 이렇게 살자. 죽을 때까지 핥아 줄게. 너도 나만 만져. 읏!”

머리를 관통하는 쾌감에 태건은 다시 은하의 허리를 쥐고 미치도록 몸을 겹쳤다. 아, 아악! 완전히 고삐가 풀린 은하의 신음성이 차창을 넘어 숲속까지 울려 퍼졌다.

“하아, 나 갈 거 같아. 여보, 자기야…….”

“같이 가. 나랑 같이, 윽, 으윽!”

한껏 달아오른 몸에 마지막으로 거칠게 몸을 겹친 태건은,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아, 진짜 죽을 거 같아.”

“나도. 너무 좋다.”

“어때? 처음으로 차 안에서 한 소감이?”

“좋아. 하루 종일 하고 싶을 정도로.”

“풉.”

피식 웃음을 흘린 은하가 태건의 얼굴을 붙잡고 자잘하게 키스를 내렸다. 얕지만 애정 어린 입맞춤에 태건의 가슴속에도 뭔가 통통 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집에 갈까?”

“저녁 먹고 간다고 했다며. 두 번만 더 하고 가자.”

“하여튼, 이 짐승.”

타박하듯 흘겨보는 은하를 꼭 껴안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 좋다. 내 와이프 냄새.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태건의 얼굴 위로 다시 은하의 입술이 내렸다.

* * *

“푸른아! 하늘아!”

“엄마!”

“마!”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은하에게 소리를 지르며 안겨 들었다.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뽀얀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울 애기들 엄마 없이 잘 있었어?”

“마! 이쯔즈즈던짜쓰하! 어! 어?”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푸른이의 옹알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은하는 입술을 들이미는 하늘이에게 볼을 내주었다.

“자식들, 아빤 보이지도 않지.”

“아기 왔니.”

“다녀왔어요, 아버님. 힘드셨죠.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그런 말 말어. 일은 잘 끝났고?”

“네. 아버님 덕분에 일도 잘 끝나고, 쉬기도 엄청 잘 쉬고 왔어요.”

“얼굴 밝아진 것 보니 그런 것 같네.”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셔서 주무세요. 내일은 아버님 좋아하시는 해물탕 끓일게요.”

“그래. 아이들 얼른 재우고 너희도 푹 쉬어.”

“네. 푸른, 하늘! 할아버지한테 빠빠이 해야지?”

취침 인사를 시키는 은하의 목소리에 푸른이와 하늘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어찌나 격하게 인사를 하는지, 머리가 땅으로 고꾸라져 큰절을 하는 모양새가 될 정도였다. 그 모습에 또 웃음이 터진 부친이 허위허위 손을 내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자기 들어가서 아버님 안마 좀 해 드려.”

“그럴까?”

“응. 아버님 곧 쓰러지실 듯.”

부친의 방에 들어가기 전 태건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었다. 흐읍, 하. 짧게 심호흡을 하는 사이에도 은하의 체향이 한껏 나와 태건은 기분이 좋아졌다.

“빠! 빠! 엄마! 빠!”

하지만 떨어지라는 듯 한사코 저를 밀어내는 푸른이와 하늘이의 모습에 태건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하여튼 이 꼬맹이들. 설은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자가 너무나 많았다.

“아버지, 힘드시죠?”

“힘들기는. 웃을 일이 많아서 그런지 피곤한 것도 모르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졸음에 겨운 눈 밑이 어둑했다. 아침에 분명 맛있는 거 사 드린다고 결심했던 거 같은데. 반나절 사이에 더 수척해진 부친의 얼굴을 보며 태건은 지레 찔렸다.

침대에 누운 아버지의 팔을 잡은 태건은 수업 시간에 배운 마사지 기술을 알차게 써먹었다. 손길이 제법 시원했는지, 부친의 눈이 가물가물했다.

“아들 대학 보내니까 이런 건 좋네. 이래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는 건가 보다.”

“네.”

서서히 잦아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건은 문득 옛 생각에 잠겼다. 시골집에서 은하와 재회한 날이었다.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아버님이 알려 주셨어.’

‘……아버지가?’

‘응.’

마지막으로 태건을 면회하고 나온 은하는 한번 만나고 싶다는 부친의 전화에 바로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러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열쇠 하나를 건네주는 부친에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태건이 할머니 집 열쇠예요.’

‘네?’

‘시골이라 불편한 점이 많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 만한 집으로 고치고 있으니까…….’

아버지는 예전에 곽 씨 아저씨가 서울에 잠깐 올라왔을 때, 돈을 건네며 시골집 수리를 부탁했다. 태건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할머니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조금이나마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여행을 하다가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요. 이왕이면 태건이한테 와도 좋고.’

혹시라도 연락이 끊기면 이 사람에게 전화하라며, 아버지는 곽 씨 아저씨의 전화번호까지 꼭꼭 적어 주었다.

그렇게 나직하게 제 행보를 설명하는 은하의 목소리에 태건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아 내렸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오늘 아침만 해도 괜히 아버지의 가슴을 쑤시는 말이나 해 댔었는데.

‘나 아버님 좋아.’

‘……응. 고마워.’

‘우리 아버님이랑도 같이 살자.’

‘그래.’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아버지의 포부는 결국 실패했다. 평생을 도시에서 운전대만 잡아 온 분이 갑자기 흙을 만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평생 열심히 일하신 덕분에 지금 번듯한 차 사장님이 되셨으니, 이제 조금 걱정을 덜어도 되겠지. 태건은 괜히 벅차오르는 마음에 아버지의 손을 더 꾹 주물렀다.

쌔액, 쌕. 아이들 등쌀에 힘들었는지 금세 잠든 부친의 코 고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불을 덮어 주고 나오는 태건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 * *

“차푸른! 차하늘! 이것 놓으세요.”

쌍둥이를 키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분명히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같은 물건 두 개를 사 놓았건만, 서로의 손에 들린 게 더 좋아 보이는지 꼭 하나를 두고 기 싸움을 벌였다.

오늘의 이슈는 장난감 싱크대에 달린 수도꼭지였다. 그게 빠지는 줄도 몰랐던 은하는 수도꼭지를 쑥 빼서 빙빙 돌리는 푸른이의 행동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야! 아이야! 아이야아!”

5분 먼저 태어나 누나 타이틀을 거머쥔 푸른이는 목소리가 컸고, 얌전하고 세상 순하게 생긴 하늘이는 힘이 셌다. 수도꼭지의 머리와 꼬리를 각자 잡은 아이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정체 모를 옹알이를 시작했다.

“어우, 이 꼬맹이들. 안 되겠네.”

울거나 떼쓰거나, 모종의 이유로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 태건만이 쓸 수 있는 치트 키가 하나 있었다. 바로 양 어깨에 아이들을 매달고 비행기를 태우는 것이었다.

“조심조심.”

190센티미터를 넘는 태건의 어깨에 매달리는 게 무섭지도 않은지, 아이들을 정말 깔깔대며 좋아했다. 집 안을 울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태건과 은하도 방금 전의 아수라장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우우우웅. 태건호 1호가 금성으로 날아갑니다. 부우우웅!”

천생 무뚝뚝한 태건이 아이들의 앞에만 서면 180도 변했다. 어떤 날에 그는 비행기가 되었다가, 아기 동물들을 인솔하는 염소 선생님이 되었다가, 또는 가족들에게 제 딸기를 나눠 주는 작은 여자아이도 되었다.

“꺄! 아빠! 빠!”

태건과 그의 어깨에 달린 두 아이를 보며 은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눈가에 잡힌 주름은 평소 그녀가 얼마나 웃고 사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래서 세상은 살아 봐야 안다는 걸까.

한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살아 있으니 어떻게든 희망이 은하의 인생에 비집고 들어왔다. 제 눈앞에 존재하는 저 세 사람은 그 희망의 증거물들이었다.

“아아, 아빠 머리카락 잡으면 안 되지, 아! 차푸른!”

잘생긴 남편의 탈모행을 막기 위해 은하는 서둘러 푸른이를 넘겨받았다. 대놓고 태건을 괴롭히던 푸른이는 은하의 품에 안기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긋 눈을 휘었다.

“와, 차푸른. 저 저 앙큼 떠는 거 봐.”

푸른이의 뺨에 꾹 입술을 누른 은하가 태건의 목을 끌어 또 뽀뽀를 해 주었다.

“하늘이도 쭈.”

입을 꾹 다물고 미간을 찌푸리던 하늘이 은하가 입술을 내밀자 얼른 제 고개를 들이밀었다. 하여튼 이 질투쟁이들. 수시로 제 사랑을 요구하는 세 사람에 은하는 정말 미치도록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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