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해안가의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해완의 볼을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간질였다.
벌써 30분째 속도를 내서 달리고 있는데도 지치지를 않았다. 체력이 꽤 올라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해완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재이식 수술이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고, 첫 번째 수술과는 달리 이번에는 경과나 컨디션이 좋았다. 그때는 해언이 죽었다는 끔찍한 스트레스를 버팀과 동시에 챙겨 줄 사람 없이 홀로 후유증을 겪어야 했지만, 이제 해완에게는 유준도 곁에 있는 데다 마음에 거리낄 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자란 보육원에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윤슬이 푸르게 반짝이는 바다와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번갈아 바라보며 해완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했다. 컨디션이 완전히 안정되고 나면 당연히 다시 요리를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다니다 만 대학을 다시 다니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 듯했다.
물론 그 전에, 해완에게는 꼭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딱히 길을 찾아 달리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제가 어느 추억을 찾아 달리고 있음을 해완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하지만 거리낄 이유도, 멈출 이유도 더 이상은 없었다. 때문에 해완은 차가 달리지 않는 좁은 해안 도로를 달려 이정표도 존재하지 않는 탓에 이전에 와 본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조차 없을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렸다.
해완의 기억 속에 늘 선명한 거목이 보이는 순간, 갑자기 차오르는 숨에 그는 끽 자전거를 멈추어 섰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전거에서 내린 해완은 그것을 끌며 느리게 걸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서 낯선 소년을 발견한 것도 오늘같이 날이 좋은 초가을이었다. 소금기가 밴 바람과, 잎의 끄트머리를 물들이는 수줍은 붉은빛 따위를 떠올리며 무심코 고개를 돌린 해완은, 그대로 얼어붙은 듯 멈추어 서 버렸다.
9년 전 그날처럼, 버스 정류장 의자 위에 강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등을 곧게 펴고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얀 스틱은 당연히 놓여 있지 않았지만 흐트러진 머리가 바닷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드러나는 아름답고 매끈한 이마와 짙은 눈썹을, 소년이었던 해완이 사랑했던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마치 거짓말과도 같은 상황에, 해완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며 강현을 바라보기만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뻣뻣해진 다리를 간신히 몇 발자국 더 움직여 걸었다. 일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강현을 비스듬히 바라볼 수 있는 그 자리는, 저를 소개할 용기조차 가지지 못했던 해완이 홀로 사랑을 키우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니 강현은 해완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어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해완의 뒤에서 거센 바람이 분 그때 갑자기 무엇인가를 느낀 듯 눈을 뜬 강현의 시선이 정확히 해완이 선 자리를 향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찰나, 해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꿨던 꿈이 중첩된 듯한 기묘한 감각에 숨을 멈췄다.
그 모든 것에 압도되어 두 사람은 한동안 홀린 듯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강현이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해완을 향해 몸을 기울인 순간, 해완은 먼저 입을 열었다.
“거기 있어.”
해완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이번엔 내가 너한테 갈 거니까.”
스스로의 발로 끝내 건너지 못했던 도로를, 그리고 강요에 의해서 좁힐 수밖에 없었던 도로를 이번에 해완은 오로지 저만의 의지로 훌쩍 뛰어넘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더 이상 가까워질 곳이 없음에도 힘주어 안고 또 안았다. 그렇게 심장을 맞대고 있는 사이, 강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였어.”
“응?”
“9년 전에, 이곳에서 맡았던 은목서 향. 그게 너였다고.”
그렇게 말하며 강현은 젖은 뺨을 해완의 목덜미에 비볐다. 그의 눈물에 그 스스로의 은목서 향이 녹아나는 것을 느끼며, 해완 또한 눈물을 흘렸다.
스무 살에서 스물아홉 살이 되는 시간.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순식간에 간추려진 그곳에서, 해완과 강현 두 사람이 온전히 다시 만난 순간이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