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 VERT
풀과 나뭇잎, 완전히 익지 않은 과일에서 맡을 수 있는 향 계열
윤해완과 나는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버려졌다. 내가 먼저 버려지고 그다음이 윤해완이었다. 그때 나는 나나 윤해완에게 닥친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할 만큼 어렸지만, 적어도 두 눈에 들어온 풍경 몇 가지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자는 내 목에 목도리를 단단히 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탓도 있었지만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차 안에서 여자가 내게 답답하고 두꺼운 옷을 몇 겹씩 겹쳐 입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자는 내가 입은 두꺼운 겉옷부터 털모자, 양말, 신발, 목도리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나를 품에 안고 차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혀 봤자 겨울바람은 피할 수 없이 매서웠다. 여자 역시 맹렬한 추위에 놀랐는지 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뚝 멈춰 서 버렸다.
여자는 무언가를 망설이며 한참을 서 있었으나 나를 안고 차 안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저 제가 매고 있던 두툼한 머플러를 풀어내어 보육원 대문 앞에 내려놓은 내게 몇 번이고 휘둘러 감싸는 데 그쳤다.
그녀의 떠날 준비는 내 품에 핫 팩을 넣어 준 다음에야 끝났다. 그러고도 여자는 나를 꼭 끌어안고 볼을 맞댄 채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내 귀에 대고 많은 말들을 지껄여 댔는데 무엇을 얘기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롯이 선명하게 남은 것은 맞닿은 볼을 적시던 뜨거운 눈물이 식고 나서 얼음처럼 돌변하는 감각뿐이었다.
지루한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도 머뭇대던 여자의 주저는 바람 소리를 보육원 안에서 누군가 나오는 인기척으로 착각하고 나서 허무하게 끝났다. 제가 아이를 버리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할까 싶었는지 불에 덴 듯 놀란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타고 도망쳤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여자가 나를 내려 두고 간 보육원 앞에 쪼그려 있었다. 처음에는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지만 곧 기력이 떨어져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점은 칼날 같은 추위에 온몸이 얼어붙은 나머지 다른 곳으로 가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쑥 어둠 속에서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거친 굉음과 함께 나타난 지저분한 차는 나와는 달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하다못해 시동을 끌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차의 뒷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바닥으로 떠밀어 버리고는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사물처럼 버려진 형체는 어린아이였고, 그리고 윤해완이었다.
차가운 땅바닥에 내던지듯이 넘어진 그 애는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제법 아플 만한데도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몇 번이나 애를 쓰고서야 비척거리며 작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비쩍 마른 윤해완은 겉옷은커녕 하다못해 양말조차 신고 있지를 않았다.
그래도 나보다는 나이를 먹은 덕이었는지 윤해완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보육원의 불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추위에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나는 희미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하지 못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옮기는 게 고작인 것처럼 느리게 걷던 윤해완이 갑자기 멈추어 선 게 그때였다. 보육원 바로 앞에 설치된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나를 발견한 그 애는 방향을 바꿔 내 앞에 서더니 손을 뻗어 차갑게 얼어붙은 내 볼을 만졌다.
어쩌면 동생이 있었을까? 나이보다도 한참 발달이 늦었던 주제에 윤해완은 내가 저보다 아기라는 것을 쉽게 알아챘다. 그러고도 한참을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작 더듬거리며 하는 소리가 이랬다.
“아기…… 아기 추워.”
그리고 윤해완은 내 팔을 잡아끌며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다. 그게 녹록지 않자 어디서 배웠는지 업어 보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윤해완은 차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터무니없을 정도로 옷을 얇게 입고 있었고 잔인한 날씨는 아이의 몸을 쉽게 더디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해완은 포기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져 가면서도 나를 질질 끌고 반쯤은 업어 보육원 문 앞까지 가 그것을 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낡은 여름 내복에 감싸인 윤해완의 작은 몸이 잔인한 학대로 인한 멍으로 얼룩져 있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보육원 어른들은 우리가 한참 나이를 먹을 때까지도 그 일에 대해서 떠들어 대기를 좋아했다. 그때 윤해완이 얼마나 어렸는지, 그리고 나는 그런 윤해완보다도 또 얼마나 더 작고 어렸는지, 그런 두 아이가 서로를 발견해 살려 낸 사건은 그야말로 신이 돌본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벅차 이야기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내 이름과 생일을 따 윤해완의 이름과 생일을 정해 준 것이 얼마나 사려 깊은 일인지에 대해 은근히 피력하고 싶어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만 쳤다.
윤해완이 윤해완이 된 것은 그들이 별생각 없이 지은 이름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윤해완은 처음부터 윤해완이었다. 그 애는 그러기 위해서 태어났다. 내 이름과 생일을 나눠 가지고 나를 살릴 수 있게 그 자리에 오기 위해서.
그것은 나의 변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 * *
보육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나는 자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자리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으면 늘 꾸물대며 이불을 들추려는 윤해완의 손길이 느껴졌다. 괜히 장난기가 동해 이불을 꾹 누르고 들추지 못하게 하려고 해도 윤해완은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좁은 틈 사이로 파고들곤 했다.
이불 속은 아주 좁아서 우리는 몸이 반쯤 겹쳐진 상태로 낄낄거리며 서로를 간지럽히거나 바닥에 깔린 요 바깥으로 밀어 내는 장난을 쳤다. 그러다가 지치면 바싹 붙은 누운 채 맞닿은 몸을 끌어안고 나른한 온기를 즐겼다.
“해언아,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줘.”
그렇게 서로를 안고 있는 사이, 윤해완은 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항상 붙어 있었던지라 내가 아는 이야기나 제가 아는 이야기나 별다를 게 없는데도 그랬다. 하여튼 윤해완은 타고나기를 좀 맹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졸린 목소리로 학교에서 겪은 일이나 TV에서 본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가리지 않고 속삭여 주었다. 그렇게 내가 잠이 깰 즈음이면 윤해완이 잠이 들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이라곤 그를 만지고 관찰하는 것밖에 없었다.
어둠에 감싸인 채로는 많은 것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손을 뻗어 윤해완의 젖살이 남은 부드러운 볼이나 채 자라지 못해 말랑거리는 코끝, 그리고 푹신하고 도톰한 입술 등등을 만졌다. 손끝을 주의 깊게 움직이면 기다란 속눈썹 같은 것도 느껴 볼 수 있었는데, 그 속눈썹이 윤해완의 하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모양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윤해완은 항상 몸이 따뜻한 편이어서 그런 그 애를 만지고 있노라면 나도 금세 잠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축소되어 있던 세상은 눈을 감으면 더욱 좁아졌다. 둘 다 오메가로 발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좁고 답답하고 더운 이불 안에서 나는 것이라곤 서로에게서 나는 뜨거운 체온의 냄새뿐이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이불은 턱 끝까지 내려진 채였다. 보통 나보다 일찍 일어나던 윤해완은 대부분 옆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상한 허탈감에 사로잡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고작해야 세수와 양치를 하러 화장실을 다녀오는 정도였기 때문에 윤해완은 오래 자리를 비우진 않았다. 행동이 야물지 못했던 그 애는 세수를 하고 나면 항상 앞머리며 소매며 옷 앞섶이 젖은 채였는데, 눈을 뜨고 있는 나를 보면 뽀얗게 갠 얼굴을 하고 활짝 웃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윤해완이 그렇게 나를 혼자 깨어나게 한 아침에는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분노가 그 말간 얼굴을 향해 솟구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윤해완이 나를 남겨 두고 우리의 둥지를 떠나 버린 데 대한 배신감이라는 건 조금 더 나이를 먹은 후에야 알았다.
하여튼 그럴 때마다 나는 윤해완에게 못되게 굴었다. 윤해완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숨기거나 망가뜨리기도 하고 모질게 놀려서 울리기도 했다. 가끔은 일부러 혼날 짓을 하고 나 대신 윤해완이 혼나게 만들기도 했다.
평소에도 윤해완은 늘 내가 저지른 잘못까지 자기가 했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른 애들보다 자주 혼나는 편이었다. 우리에겐 누구의 잘못으로 누가 맞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윤해완은 내가 저보다 작고 어려서 나를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일 것이다. 어차피 윤해완은 누군가 조금만 밉게 말해도 금세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뚝뚝 쏟곤 하던 탓에 마음이 약한 보육원 원장은 그 애를 오래 꾸짖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내내 보육원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세상에는 저에게 절대 해를 끼칠 수 없는 상대에게만 쉬이 잔인해지는 인간들이 있는 법이었고, 부모 없는 아이들만큼 그들의 화를 손쉽게 북돋을 존재는 찾아보기 어려울 터였다.
그날은 윤해완에게 유독 운이 나쁜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부추겨서 동네에서 가장 성질이 괴팍하기로 유명한 남자의 집을 목표물로 삼았는데, 원래대로라면 일을 나갔어야 할 남자가 하필 술병이 나 집에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나는 윤해완이 나를 혼자 깨어나게 한 것 때문에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당 안에 있는 조형물을 깨트리려 돌을 던지는 모습을 목격한 남자는 그 자리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남자의 화난 얼굴을 보고 기겁을 해 곧바로 도망을 쳤지만, 뒤에서 우물쭈물대며 돌 한번 던지지 않은 윤해완은 그러질 못했다.
팔을 잡아끌었지만 윤해완은 꼼짝도 하질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게 맞을 터였다. 윤해완은 화난 어른에게, 특히 화난 남자 어른 앞에서는 맹수 앞에 선 사냥감처럼 그대로 바싹 굳어 버리곤 했으니까.
윤해완의 공포에 질려 얼어붙은 옆얼굴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짜증스러움뿐이었다. 나를 화나게 한 윤해완이 무서워하는 걸 보고 어쩌면 약간의 통쾌함마저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손을 두 번 당겨 보려고 하지도 않고 그대로 뒤를 돌아 뛰었다.
그때 남자는 꽤 가까이 다가와 있었지만 둔중한 그가 날쌘 아이들을 잡을 수 있을 리 없으므로 그냥 손쉬운 사냥감을 물었다. 등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탁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몸을 숨길 곳이 나올 때까지 한번 뒤돌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뒤돌아섰을 때 본 것은 남자가 윤해완의 뺨을 세게 치는 모습이었다.
거칠게 얻어맞은 윤해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옹송그렸다. 그것 말고는 저를 지킬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웅크리고 또 웅크렸다. 그럼에도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과한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씨근대던 그는 윤해완의 목덜미를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워 보육원까지 질질 끌고 갔다.
누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금방 울어 버리던 그 애는 울지 않았다. 얻어맞은 뺨을 한번 만져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시체같이 새하얗게 굳은 얼굴로 남자의 폭력적인 행동을 인형처럼 감내하고만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원장을 우습게 보고 깽판이라도 칠 계제였던 듯하나, 원장은 윤해완의 새빨갛게 부은 뺨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갔다. 많은 아이들을 한 번에 통제해야 되다 보니 시설의 선생님들은 원생들에게 가끔 가벼운 체벌을 할 때도 있었지만, 윤해완이 버려지기 전 심한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평소에도 원장은 그 애에게만큼은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 손을 올리지 못하게 하던 터였다.
원장은 윤해완을 곧바로 뒤로 숨기며 언성을 높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원장과 남자가 다투는 모습을, 그리고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윤해완을 지켜보았다.
고성이 오가던 어느 순간, 윤해완은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누군가 저를 지켜 준다는 것을 겨우 깨달은 모양이었다. 악다구니를 지르는 두 어른 사이에서 윤해완은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소란에 나온 선생님들 중 하나가 윤해완을 챙겨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그 애는 한참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 서러운 울음 사이에서, 내가 저를 버리고 갔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윤해완은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는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방을 쓰고 있던 탓에 윤해완이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시간이 되자 칼같이 불이 꺼지고 희미한 수면등만이 켜졌다.
잠이 오지 않고 기분이 이상했다. 마구 성질을 부리고 싶기도, 와락 울음을 터트려 버리고 싶기도 한 제멋대로 널뛰는 마음에 나는 잠을 자는 대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한동안 나는 세상과 나를 분리하는 얇은 장막에 둘러싸여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아무리 얇은 이불이라도 그 안에서 오래 누워 있으면 공기가 부족한 기분이 들고 숨이 찼다. 하지만 이불을 걷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엇인가로부터 숨고 싶었다기보다는 그게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은 때로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지루하고 경멸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꾸물거리며 이불 한구석을 들추려는 손길이 느껴졌다.
평소와 달리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불 안으로 윤해완의 머리가 불쑥 들이밀어졌고, 그 애는 가는 몸을 구부리고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완전히 닫지 않은 이불 사이로 연한 불빛이 스며들었다. 그 한 줄기 빛만으로도 윤해완의 한쪽 뺨이 새빨갛게 부어오른 게 보였다. 나는 나보다 키도 큰 주제에 아기처럼 안기려 드는 윤해완의 얼굴을 안고 그 부어오른 얼굴을 손으로 살살 쓸어 주었다.
그러자 윤해완은 나를 보고 배시시 웃더니, 눈을 감고 스륵 잠이 들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날이었다. 윤해완이 내 이불 안으로 들어왔고 그 애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데도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윤해완을 깨웠다.
“해완아.”
“…….”
“일어나 봐. 해완아.”
항상 깊이 자는 윤해완은 인상을 찡그리며 깨려 하지 않았다. 신경질이 난 나는 이불이 흘러내릴 만큼 윤해완의 몸을 세게 흔들었다. 윤해완이 참다못해 반쯤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오늘 나한테 화났어?”
잠을 억지로 깨운 데 짜증 어린 기색이 역력하던 동그란 얼굴이 아리송하게 변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졸린 눈만 깜빡이던 그 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 안 났어.”
“오늘 내가 버리고 갔는데도?”
“으응.”
“왜?”
“너한테는 화 안 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졸렸던 그 애는 커다란 눈을 얼른 감아 버렸다. 금세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일정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또 그 애를 깨워 물었다.
“그럼 앞으로도 나한테는 화 안 낼 거야?”
“으응.”
“무슨 일이 있어도?”
“으응.”
윤해완의 그 말은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마음 안 깊은 우물로 남았다. 그 애가 아니면 채울 길 없는, 더없이 깊고 깊은 우물이었다.
나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들이 미웠다. 그렇게 쉬이 생기는 미움을 지우는 데는 오랜 시간과 복잡한 방법을 필요로 했다. 예를 들면 윤해완의 뺨을 때린 남자가 마실 술에 락스를 타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들었던 일처럼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리라 생각했으므로 나는 누구도 믿거나 마음에 들이지 않았다.
윤해완만 곁에 없었다면 그대로 살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항상 붙어 있는 그 애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눈물도 웃음도 어처구니없이 쉬운 주제에 미워하는 것만큼은 어려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윤해완의 곁에서는 내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의문은 커져만 갔다. 나 스스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답을 얻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우리는 한날한시에 버려졌다. 떨어질 틈 없이 붙어 자랐고, 어른들은 우리를 마치 쌍둥이처럼 취급했다. 그런데 왜 윤해완과 나는 다른 것인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부모로부터 버려졌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에 윤해완은 나보다 훨씬 잔인하게 버림받고 학대받은 터였다. 버려지는 아이들에게도 급이 있다는 것을 그 애를 보고 알게 되었을 정도니까.
그런데도 윤해완은 버려질 때나 나이를 먹고 나서나 항상 같았다. 한결같이 쉽게 웃었고 쉽게 울었고 그리고 절대로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해 주기만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다르고, 나를 이상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그 애 옆에서만 온전히 숨을 쉴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답을 얻게 되었다.
나는 부족하고 너는 넘치도록 가진 이유는, 네가 나를 채우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윤해완은 나를 위해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윤해완이 가진 페로몬샘의 장애도 내 이론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내 이름과 생일로 모자라 향까지 나눠 가진 윤해완은 내가 잃어버린 조각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의심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윤해완이 유일하게 나를 거부했던 그 순간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었다.
고작 윤해완이 다른 남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질투가 아니었다. 맨정신으로 생살을 베어 내는 지독한 고통이었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고 영원히 내 것이어야만 하는 것을 잃은 끔찍한 상실감이었다.
물론 우리 사이에 끼어든 이물질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다른 이야기였다. 정신을 잃은 윤해완을 그 창고에 두고 돌아오던 날 우연찮게 보육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와 마주쳤을 때, 나는 반드시 그가 내가 느낀 고통을 겪게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럼에도, 그때까지만 해도 윤해완이 밉지는 않았다. 열에 들떠 앓고 있는 그 애를 보았을 때는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 오기까지 했다. 물론 윤해완이 내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려는 시도를 했을 때는 화가 나긴 했다. 그래도 관성처럼 그 애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윤해완이 지워 버린 기억에 대해 알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나는 윤해완의 전부를 원했다. 그 애의 아주 작은 부분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는 조각난 채로 태어난 나를 온전히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기보다 스스로의 일부를 버린 그 애의 행동은 내가 절대 윤해완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으리라는 선언이자 윤해완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은 모진 복수와도 같았다.
나에게 그런 짓을 한 윤해완을 용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을 겪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윤해완의 곁을 떠났다.
시간은 하릴없이 흘렀다. 일상은 평온했고 의도하지 않은 대로 풀리는 것 하나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은 삶을 산다고 말하기에는 지극히 사소한 일일 뿐이었다.
온몸을 송곳처럼 헤집고 다니는 그리움에 못 이겨 몸을 떨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윤해완의 곁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윤해완을 완전히 망가뜨려서라도 가지기에는 나는 그 애를 너무 증오했고, 그리고 또 너무 사랑했다.
* * *
우리가 이불 안에서 잠들었을 때, 언제나 윤해완이 나보다 먼저 깨어났던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윤해완보다 먼저 깨어났던 어느 아침을 기억한다. 아마도 우리가 중학생 때였는데, 몸이 자란 탓에 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기에는 너무 좁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그 애는 어김없이 나의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오곤 했다.
아마도 윤해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치를 만들어 숨는 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더 기꺼웠다. 나이를 먹고 몸이 자라 누워 있는 자리가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더욱 바싹 맞닿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이불 안에서 눈을 떴을 때 윤해완은 눈을 감고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잠들기 전 머리끝까지 꽁꽁 싸맸는데도 이불은 어쩔 수 없이 틈이 벌려져 있었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뻗어 나와 윤해완 사이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틈을 꼼꼼히 닫았다.
누구도 해칠 수 없을 것처럼, 단단히.
나는 마치 한 몸인 듯이 윤해완에게 바투 누웠다.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닌 두 명의 소년이 편히 호흡하기에 이불 안은 너무 좁고 답답하고 더웠기에, 윤해완은 숨을 쉬기 힘든 듯 잠든 와중에도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가 숨이 막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히 이 이불 안에 갇혀 있기를 바랐다.
그 이불 안에서는 윤해완의 숨소리가 모든 음악이자 소음이었고 윤해완의 체온이 모든 계절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우리가 멸망한 세계의 왕자님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 잠들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서로의 품 안에 있었다.
아마도 내 세상이 끝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내 품에 안긴 윤해완을 떠올리며 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