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얼판타지아-100화 (10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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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후다닥 한편 써서 올려봅니다. 크릉~!

“리얼 판타지아 내의 서비스 9NA 65 마감합니다. 서비스 54B 오픈완료!”

“가이아 ! 서비스 오픈 코드 처리 완료! 개방 준비!”

리얼판타지아 수석 서버관리자인 장석진은 피곤함에 굳어 버린 듯한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고는 그의 옆에서 열심히 스크린을 체크하며 상황보고를 하고 있는 2급 서버관리자인 진민아를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

“ 민아씨! 일도 끝났는데 오늘 술 한잔 어때?”

새벽 2시를 가뿐히 넘기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로망인가! 아직 밤샘작업은 문제없는 체력이라는 것의  자랑인가! 집에서 자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사모님의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옆자리에 앉아있는 23살의 창창하고 이쁘장한 신참에게 술 한잔 신청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한마디 거절이었다.

“바빠요.. 흥!”

“쿨럭!”

나이를 봐라. 네가 나를 꼬실 군번이냐! 라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헐렁한 박스티를 입고서 한쪽에 담배를 꼬나물은 여자후배가  자신에게 콧방귀를 뀌자 장석진은 실없는 웃음으로 땀나는 상황을 무마시킨 다음 탁자에 놓인 담배를 호주머니에 집어 넣고 몇가지 소지품을 챙긴 뒤 반대쪽 건너편에서 작은 스크린에 눈을 고정시킨 채 이제 한물 간 키보드라는 구시대적 유물을 빠르게 타이핑하고 있는 강진을 바라보며 외쳤다.

“어이! 강군! 나 먼저 가네!”

“.....”

일에 너무 빠져있는 걸까? 석진의 말을 못들었는지 정신없이 타이핑에 여념이 없는 이번해로 자신과 2년째 일하고 있는 강군이 자신의 말을 씹자 약간 열이 받은 석진은 요란하게 헛기침을 한 뒤 서버관리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으...드디어 나갔네. 저인간!   강진씨~ 뭐해요?”

거의 매일 자신에게 찝적거리는 듯한 장석진에게 상당한 유감이 있었는지 장석진이 나간 문쪽을 노려보던 진민아는 붉게 물들인 긴 생머리를 상당히 오랬동안 건드리지 않아 이리저리 헝클어진 것을 손으로 쓸어주며  이 방안에 남은 마지막 남자에게 넌지시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대답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꺼주시지요”

“아니 나한테 무슨 반감 있어요? 무슨 대답이 그래요!”

“....”

화통한 성격으로 관리자들 사이에서 붉은 마녀로 통하는 진민아는 방금전 후퇴의 깃발을 올린 채 사라진 장석진과 자신은 다르다는 듯이 강진에게 그대로 쏘아 붙였지만 예의 강진이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열심히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놀리고 있자  뿌루퉁하게 솟아 올라오는 볼을 손가락으로 밀어 넣으며 테이블 위의 곤색 한손가방을 어깨에 매고는 주머니에서 다시 새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어이! 가이아의 보호자이신 강진씨! 가끔 주위도 둘러보면서 사시지요.”

“ 남이사! 가이아를 보호하든 가이아랑 놀러다니든. 서버 커넥트 관리자 진민아씨! 제발 가이아한테 진민아씨의  그 기기묘묘한 패션관은 가르치지 말아주시오”

웬지 말을 참 많이 한다 싶어 강진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진민아는 강진이 곧 자신이 몇시간전에 가이아에게 코치해 준 어떤 사실에 대해서 딴지를 걸자  도저히 못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은 뒤 관리실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후우...”

동료들이 모두 나가고 홀로 관리실에 남아서 작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빠르게 타이핑하던 강진은 잠시 후 피곤한 듯 머리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꾸욱 꾸욱 눌러준 뒤 와이셔츠의 윗단추를 한개 풀었다.

“ 큰일이군.. 큰일이야”

불과 며칠 전까지 꽤 안정적으로 나가던 가이아였다. 물론 그 전에도 가끔씩 자폐증 환자의 모습들을 보여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 있었던 것들과 뭔가가 틀렸다.

“케릭터라...”

1급AI들의 차별화된 의식구조에서 나오는 새로운 욕구의 한 면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가이아가 처음 자신에게 케릭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을 때부터 이상함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자신과  진민아에게 남녀사이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라던가 패션에 대해서 물어볼때는 정말로 가이아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거기에 전에는 없던 ‘규정의 침범’까지 조금씩 하고있는 가이아라...

“가이아...가이아... 재발 1절만 해줘”

강진은 가이아가 비밀리에 조금씩 어겨버린 ‘규정의 침범’에 대한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혹사시킨 자신의 손가락을 풀어주며 독백하듯이 말했다. 생각같아서는 가이아에게 양해를 구해서 가이아의 메인데이터를 뒤적거려 보고 싶지만, 1급 AI를 가진 가이아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 또한 그동안 가이아와 자신간의 쌓인 정에 금이 갈수 있었기에 강진은 제발 가이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제빨리 마무리 해 주길 빌며 스크린을 오프시켜 버렸다.

화창한 봄의 끝자락 정오의 햇살을 헤치면서 걷는 형민의 기분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들과는 틀리게 매우 저조했다. 물론 지금 자신이 이 거리를 걷고 있는 이유가 혜미와의 오붓한 데이트를 위해 나온 것임에 처음에는 매우 좋아했지만 혜미를 만나기 위해서 도시간 열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 열차안 홀로비젼에서 읽은 리얼판타지아의 새로운 뉴스들은 자신을 매우 기분 나쁘게 했던 것이다.

“흐.. 도대체 어떤 자식이야! ”

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로그아웃한지 20시간이 지난 지금 카마프라하왕국은 길드간의 전쟁으로 상당히 분위기가 냉각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어차피 자신이 계획한 일이었고 또 여기까지는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기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의외로 아이아스길드가 욕먹을 짓을 많이 했는지 아니면 그 전에도 다른 길드들이 아이아스길드가 접수하고 있는 구역에 상당히 가슴에 두고 있었는지 새로운 몇몇길드가 그동안 아이아스 길드가 벌여온 행패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섰다는 웃기지도 않은 명분을 내세워 아이아스길드 토벌에 합류했다는 것과 아이아스총길드와 그들의 동맹길드들은 의외로 잘 버텨주고 있어서 현재까지는 호각지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면 말도 안하지..”

하긴.. 아이아스총 길드가 버티면 버틸 수록 이 후 자신이 이번 일에 쏟아 부은 심력과 자금에 조금이라도 더 보상이 되겠기에 기분이 좋아졌었지만, 그 이후의 소식에서 얼굴이 찡그려 질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음모를 꾸미면서도 각 길드들에게 그렇게 당부하고 또 그렇게 조심해서 다녔건만 리얼판타지아 소식의 길드전쟁근황 뒤편으로 나온 이번 전쟁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는 인물의 스크린샷에는 자신이 로브를 뒤집어쓰고서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과 주점으로 들어가는 모습등이 아주 생생한 포즈로 찍혀 있었고 또한 그 밑으로 써진 리얼판타지아내의 떠도는 소문들에는 아이아스총길드의 무기창이 털려버렸다는 것, 아이아스길드는 이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고 있다는 것, 또 이번 아이아스길드의 무기창을 털어버린 것이 이번 전쟁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는 의문의 인물 단 한명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 인물에 대한 리얼판타지아사의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우어어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 속에 혼자서 머리를 붙잡고 궁상 섞인 비명을 질러버린 형민은 곧 자신을 이상한 듯이 쳐다보는 몇몇 인간들에게 사나운 눈빛 또는 건들면 피본다! 라는 뜻이 담긴 눈빛을 마구 쏘아 준 뒤 다시 툴툴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에휴...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더 이상 걱정해봤자 더 이상 쓸모없는 심력의 낭비만 있을 거라고 자위한 형민은 거리 가게들에 붙어있는 시계를 바라보곤 혜미가 기다리고 있을 중앙로 광장 밴치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약 10분정도 부지런히 걸어 중앙로 광장 벤치에 도착한 형민은 중앙로의 한편에 마련된 드넓은 광장 곳곳에 마련된 벤치들을 훑으며 혹시나 먼저 나와 있을지도 모르는 혜미를 찾다가 광장의 중앙에 있는 분수대 옆 벤치에 혜미가 다소곳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혜미야! 일찍 나왔네?”

“아! 형민오빠..”

책을 덮으며 벤치에서 일어난 혜미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형민에게 대꾸하자 형민은 혜미의 손을 잡고선 다시 벤치에 앉았고 혜미는 책을 백안에 집어넣고는 다시 형민을 바라보았다.

“책 제목이 뭐야?”

“헤헤.. 비밀이에요”

형민의 물음에 손사래 질을 치며 혜미가 비밀이라고 말하자 형민은 혜미가 읽고 있던 책에 궁금증을 접고 혜미와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 그럼 얘들하고는 잠시 헤어진 거야?”

“네..”

‘스틱스의 검’회원들이 저번 PK들의 습격때 급격하게 올라버린 카르마의 상승으로 모두 각자 클래스의 주신전이 있는 도시 들로 흩어졌다는 말에 형민은 놀라서 혜미에게 되 물었고 혜미는 이유모를 웃음을 띠우며 형민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어요. 원래는 모임내의 승급여행을 가야 하는 인원이 나오면 다 같이 승급여행에 따라 가서 승급을 도와주는게 원칙이지만 저번 그일 때문에 승급해야 하는 얘들이 한두명이 아니라서요. 어쨌든 그렇게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모이기로 했으니까 걱정 없어요.”

“끙.. 그렇게 돼 버렸구나. 그럼 너랑 혜인이는?”

당시에 혜미와 혜인이도 상당한 카르마를 습득한 것을 알기에 형민이 되묻자 혜미는 빠알간 혀를 쏘옥 내밀고는 형민에게 말했다.

“헤에... 빨리도 물어보내요. 아무튼 혜인오빠랑 저도 오늘부터 승급여행을 가야 할 형편이에요. 그런데 아쉽게도 저랑 오빠가 승급할 수 있는 도시가 오빠랑 약간 떨어진 아르젠이라는게 문제긴 하지만.. 음..! 그런데 이후에 다른 습격은 없었어요?”

자신과 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형민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혜미는 상당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듯 조심스럽게 형민에게 말했고 형민은 혜미가 PK들과의 악연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묻자  피식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없어”

“에... 뭐가 그렇게 대답이 짧아요.”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습격하면 습격당해야지 뭐”

습격하든 말든 별로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대답하는 형민을 바라보며 혜미는 한쪽 머리가 지끈거리자 인상을 쓰고는 형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가 있죠?!”

“없어.”

형민이 말하는 투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혜미가 형민에게 날카롭게 되물었으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아까와 같은 한마디였고 그녀는  옆에 앉은 그녀의 눈치 없는 애인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낮은 한숨을 쉬며 팩하고 돌아앉았다.

“에…….나 삐졌어요.”

“응? 삐지다니. 정말 아무 일 없었다니까!”

가끔 모르면 속 편하고 세상살이에 있어 도움 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형민은 이번 아리유에서 있었던 가이아와의 일이나 아이아스총길드와의 분쟁 따위를 괜히 혜미에게 말해서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혜미에게 최대한 그 이후의 일을 적당히 각색하여 들려주며 혜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정말이죠?”

새침하게 눈을 뜨고선 혜미가 형민에게 묻자 형민은 혜미의 고운 머릿결을 쓸어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이지!”

형민의 눈빛을 지그시 바라보던 혜미는 형민의 볼에 스치듯이 뽀뽀를 한 뒤 형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지 않기!”

“응...”

가이아가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사람이 아니니 걱정은 접어둔 채 혜미의 볼에 키스하며 살포시 안아주었다.

“쿠당탕탕!”

“에라! 그것도 못 피하냐! B !!"

편안히 의자에 앉아서 술을 홀짝이던 반백의 검고 투박한 안경을 쓴 성질더러워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전면의 시합장에 뒹굴고 있는 젊은이에게 더 볼필요 없다는 듯이 발을 까딱거리며 내려가라는 시늉을 하자 바닥에 뒹굴고 있던 젊은이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교수에게 외쳤다.

“케엑! 원교수님!! 제발!”

“C+"

"끄아!“

술잔을 휘휘 돌리며 눈을 감고 있던 원교수는  한마디만 더 하면 학점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주겠다는 듯한 눈빛을 젊은이에게 보내주며 뒤쪽에서 자신의 손에 맞는 무기를 들고 연습을 하고 있는 젊은 무리를 바라보며 외쳤다.

“ 김민식! 김덕영! 나와!”

짧고 굷은 원교수의 한마디에 대련에 앞서 몸을 풀던 젊은이들중 두 명이 슬금슬금 걸어나오자 원교수는 맘에 안드는 듯 고개를 갸웃 갸웃 하다가 나직히 말했다.

“ 학생들 빠지셨구만 그려. 걸음이 늦네! 너희 둘은 운동장 10바퀴를 뛰고 온다 실시!”

“시...실시!”

“20분!”

“커억!”

원교수가 지목한 두 학생은 뒤편에서 들리는 악마의 카운트다운에 놀라서 체육관 밖으로 뛰어 나갔고 원교수는 다시 눈을 감고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또다른 학생 둘을 지목하여 시합장에 서게 했다.

“시작!”

절대 고삐를 늦추지 않고 학생들을 몰아 붙이는 특이한 성격의 원교수의 방식을 잘 알고 있는 형민은 지금 바깥으로 튀어나간 두 친구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 본 뒤 손에 들린 두자루의 짧은 목검을 부드럽게 위 아래로 돌려보았다.

“킁... 책에서 봤던게..양쪽 역수였던가... 좌우 반대였던가?”

리얼판타지아 내에서 두자루의 단검을 쓰는 것에는 어느정도 익숙하여 처음 원교수가 무기를 들라고 했을때 별로 주저하지 않고서 자신이 쓰는 단검모양으로 생긴 플라스틱 단검 두개를 들은 형민이었다. 하지만 예전과 틀리게 무기를 들고서 대련해보기는 상당히 오래간만이었기도 했고 또 게임에서야 멋으로라도 양손 역수를 주로 쓰는 형민이었지만 친구와 몇 번 부딪혀 본 결과 찌르기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형민은 목도를 잡은 손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가장 익숙한 모양을 쥐어 보았다.

“다음 김형민! 나선일!”

상념에 빠져있던 형민은 자신과 다른 한 친구를 호명하는 원교수의 부름에 단검을 들고서 시합장 중앙으로 들어갔다. 대련전 예를 취하기 위해서 바라본 맞은편의 나선일이라는 친구는 다른 친구들도 가장 많이 쓰는  보편적인 평도를 들고서 자신을 바라보며 얼굴이 굳어있었고 그런 선일을 바라보던 형민은 짧은 목례를 한 뒤 왼발을 앞으로 살짝 앞굽이를 하곤 오른손을 귀 뒤로 숨겨 오른손에 든 단검을 숨기고 왼손의 역수로 든 단검으로 지그시 상대를 겨누었다. 상대인 친구도 평도로 자신의 미간을 겨누며 서로 긴장하던 찰나

“자네? 왼손잡이인가?”

김빠지게 만드는 원교수의 물음에 형민은 자세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차분히 대답했다.

“예.”

“호오.. 그래? 특이하구만 쌍단검에 왼손잡이라... 그런데 그 오른손에 든 단검은 그렇게 역수가 아니고 상수로 드는게 찌르는데 편하다네. 쯧쯔”

원교수가 혀를 차며 자신의 손모양을 교정해 주자 형민은  단검으로 머리를 한번 긁적인 다음 원교수에게 목례를 꾸벅 하곤 오른손의 단검을 상수로 들었다. 원교수는 형민과 나선일이 모두 대련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뒤 따라놓은 한잔을 쭉 들이키며 나직히 외쳤다.

“시작!”

원교수의 신호가 떨어지자 서로 자세를 잡고 있던 형민과 선일은 서로 빈틈을 노리며 잠시 옆걸음으로 움직이면서  동태를 살폈고 선일이 왼발을 쓸 듯이 움직이는 찰나 형민은 쌍단검의 날카로운 근접공격력의 잇점을 살리기 위해 쏜살같이 선일의 옆구리로 파고 들었다.

“따다닥! 따닥! 쿨럭!!”

“에?”

형민으로써는 방금 일어난 의외의 결과에 시합장 바깥으로 떨어져서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는 선일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원교수의 호통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이 멍청한 자식아! 단검으로 그것도 쌍단검을 쓰는 녀석한테 그렇게 쉽사리 근접을 허용하다니! 네 녀석이 미쳤구나. 그 큼지막한 목도로 단검한번 막고 끝낼래? 쌍단검이라는게 원래 연속공격의 묘라는 것도 모르냐?!!”

한참을 그렇게 옆구리를 부여잡고 헉헉대는 나선일을 꾸짖던 원교수는 시합장에서 단검을 든 채 멀뚱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형민에게 눈을 돌리고선 턱을 쓸며 말했다.

“단검 드는 법도 몰라서 그냥 멍청한 풋내기인줄 알았는데 몸놀림이나 쓰는 방법이 예사솜씨가 아니구만? 대단해 대단해.. 흐흐.. 그런데 어짜피 시합도 재미없게 끝났는데  어때 나랑 한판 떠보겠나?”

느닷없는 원교수의 대련 제의에 형민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다가 자신을 흥미있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원교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학점은 어떻게 됩니까?”

“아! 당연히 A+ 이지!”

원교수가 상당히 맘에 들었는지 엄지손가락까지 치켜들며 최고학점을 외치자 형민은 다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원교수에게 말했다.

“그럼 대련하기 싫은대요?”

“메야!”

어차피 A+도 맞았겠다 학교내의 무술귀신으로 소문난 원교수와 붙기 싫기도 하고 또 귀찮기도 했던 형민이 조용히 거절의 뜻을 표하자 원교수는 순식간에 눈썹을 역십자로 찡그리며 외쳤다.

“그럼 B!!"

형민은 아무리 학점이 좋은게 좋다지만 전공도 아닌 교양수업에서 원교수가 학점으로 강짜를 부리자 항의하듯이 외쳤다.

“그런 법이 어디있습니까!”

“내 법이야!!”

“쿨럭!”

자신과 대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A+을 조용히 들고 퇴장할 수 없다는 듯이 원교수가 선언하자 형민은 이 교수의 탈을 쓴 괴짜의 얼굴을 지그시 노려보다가 원교수의 청에 응했다.

“좋습니다!”

“그래야지. 흐흐”

갑자기 예정에 없던 원교수와 형민의 대련에 학생들은 시험이 늦어진다는 사실은 뒷전으로 미룬 채 학교 내에서 자칭 타칭 무술귀신으로 통하는 원교수의 실력을 볼 수 있다는데 웅성거리며 대련장을 흥미있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머리 보호대도 쓰지 그러나?”

원교수가 자신이 쓸 무기를 한 편에 마련된 무기 케이스에서 고르면서 말하자 형민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말했다.

“가슴 보호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교수님이야 말로 가슴 보호대 정도는 착용하시죠.”

왠지 자신을 어린애 보듯 하는 원 교수의 말에 형민이 비비꼬인 어투로 대답하자 원 교수는 실소를 하고는 두 자루의 짤막한 도를 집어 들었다.

“흐흐……. 자네가 내 몸에 칼끝이나 댄다면 생각해보지.”

“아……. 그러세요?”

자신을 약을 올리는지 아니면 그만큼 자신감이 있는지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원 교수의 태도에 형민은 발끈했지만 대련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 평상심을 잃는 다는 건 그만큼 더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 시작해 볼까?”

이미 준비가 다 끝난 듯 두 자루의 짤막한 도를 들고서 맞은편에 선 원 교수가 시작해 보자는 듯이 자세를 잡자 형민은 원 교수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천천히 자세를 잡다가 원 교수의 손에 들린 두 자루의 단도를 주시하며 원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도 쌍검술 이십니까?.”

“흐흐……. 내 옆구리에 있는 중도는 안보이나? 난 3자루를 쓴다네.”

뭔가 검도의 상식에서 어긋나는 원 교수의 행동에 형민은 더욱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서 천천히 검을 겨누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두 자루의 단검을 들었다면 일단 두 개 중 한 자루를 버리기 전에는 허리의 중도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고 또한 허리의 중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스피디한 빠른 몸동작을 필요로 하는 쌍검술에서 허리에 중도를 차고 있는 다는 건 형민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 시작하시지요.”

“그러 세나.”

그렇게 둘의 대련이 시작되고 검을 겨눈 채 잠시간 대치 상황을 이루고 있던 형민은 맞은편에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세를 취한 채 착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원 교수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 나이로 보나 체격으로 보나 일단은 내가 유리하다. 하지만 검술은 체력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 쳇……. 일단 공격이다>

더 이상 머리를 굴려봤자 아직까지 한번도 원 교수와 검 한번 맞대본 적 없는 형민으로써는 아직 그리 특별할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일단 탐색전 겸해서 공격해 보기로 했다.

“퉁.투퉁!”

가볍게 발을 구르며 몸의 박자를 맞추던 형민은 발끝이 적당히 민감해지기 시작하자 몸을 가볍게 흔들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원 교수의 빈틈을 찾아 돌진했다.

“타타타탁! 타탁!!”

“우와와!”

곧이어 요란한 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체육관을 작렬하자 둘의 대련을 관전하고 있던 학생들은 감탄사를 지르며 두 눈을 부릅떴지만 원 교수와 격렬한 근접전을 벌이던 형민이 빠르게 뒤로 후퇴하며 검으로 방어자세를 취하자 모두 어리둥절한 눈으로 형민을 바라보았다.

“호오... 감각도 좋구먼?”

방금 전 자신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짓을 벌인 원 교수가 재미있다는 눈으로 자세를 낮추자 형민은 조금 전 벌어졌던 접전에서 원 교수가 보여주려 했던 그 위험한 자세를 생각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확실히 검 3개를 쓰시는 군요.”

“흐……. 내가 허풍떨 사람으로 보이나? 심히 유감이로구만!”

형민은 이제 방금 전과 같은 체력소모가 심한 몸놀림을 피한 채 천천히 원 교수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야 검을 3개 쓴다는 말에 반신반의 하며 설마 3개를 쓸까하고 생각했지만 조금 전 원 교수가 순간적으로 뒤로 이동하며 오른손의 단검을 위로 살짝 던지고선 번개같이 왼쪽에 찬 중도 쪽으로 손을 움직이자 그대로 있다가는 자신의 거리와 빈틈까지 모두 내준다는 생각에 황급히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어떻게 된 사람이 움직이지도 않아!”

원 교수의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기회를 살피던 형민은 원 교수가 단검을 자신에게 겨눈 채 한발만을 사용하여 자신과의 위치를 잡고 있자 속으로 혀를 차면서 다시 한번 빠르게 돌진했다.

“하하! 머리도 좋구만! 내 중도를 봉쇄하려고 왼쪽으로 파고들다니!”

형민이 원 교수의 왼쪽으로 빠르게 짓쳐 들어가자 원 교수는 형민의 판단을 칭찬하며 형민의 공격에 응수 했다.

“탁! 타타탁!!”

어차피 양쪽이 둘 다 쌍검술이라면 단 한방에 상대를 끝장내기는 소용없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원 교수와 형민은 근접거리에 붙어서 초신 속으로 단검을 휘두르며 상대의 허점을 노출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얏!”

오른팔을 노리고서 빠르게 찔러오는 원 교수의 단검을 몸의 회전으로써 회피한 형민이 역수로 든 단검으로 원 교수를 공격하려 했지만 원 교수는 이미 기다렸다는 듯이 단검을 막으며 무릎으로 형민의 장딴지를 가격했다.

“큭. 젠장! 허초인가?”

공격당한 다리를 재빨리 빼내며 원 교수에게서 벗어난 형민은 조금씩 저려오는 오른쪽 장딴지를 애써 무시하며 단검을 들었다.

“ 내 왼쪽으로 공격하겠다는 것은 칭찬할 만 했네. 하지만 자네는 기본적인 검술을 조금 간과하는 구만. 어차피 검술의 묘는 허초라네. 뭐... 요즘 같이 무식하게 달라붙는 세상에서는 조금씩 사라져 가지만 허초야말로 검술의 진정한 재미라고 할 수 있지. 흐흐..  이제 그만하세”

이미 대련이 끝났다는 듯이 단검까지 늘어트리고 자신에게 조언해주는 원 교수의 말에 형민이 마음깊이 새겨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원 교수는 오랜만에 좋은 인재를 보았다는 듯이 흐뭇해했지만 뒤이어 흘러나온 형민의 말에 원 교수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 아직 안 끝난 듯 한데요?”

“뭐야?!”

원 교수는 이 황당한 소리를 지낄이는 어설픈 풋내기를 쳐다보며 실소를 했다. 빠른 검술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다리를 다친 주제에 아직까지 기가 살아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풋내기... 원 교수는 아직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한 채 객기를 부리고 있는 이 배은망덕한 제자에게 따끔한 훈계를 내려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단검을 들었다.

“후회하기 없기네!”

“이하 동문입니다.”

형민은 아까 와는 기세까지 틀려지며 자신을 노려보는 원 교수의 발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일단 원 교수가 자신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만한 좋은 조언을 해 준 것은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설프게 대련을 끝내고서 자신에게 훈계조로 조언을 해주는 원 교수의 아니꼬운 태도가 자신의 신경을 긁고 지나가자 이대로 끝내면 오늘밤 잠은 다잔 것이었기에 슬슬 아파오기 시작하는 장딴지를 플라스틱으로 된 단검으로 세게 찔러주며 전의를 다졌다.

“이대로는 못 끝내지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신에게 불리해 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형민은 대련으로 인해서 슬슬 예전의 감각을 찾아가는 몸을 유연하게 흔들어 몸의 긴장을 푼 뒤 빠르게 움직여 원 교수에게 근접으로 다가갔다.

“파팟! 타탁!! ”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갔다. 튼튼한 방어는 둘째로 한 채 쾌속의 단검술과 몸놀림으로 원 교수를 압박하는 형민과  그런 형민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물 흐르듯 막아내며 형민의 빈틈으로 차근차근 공격해 들어가던 원 교수는 곧 네 개의 단검을 맞대고는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큭... 자네! 힘도 좋구만!”

“흐흐.이를 말씀이십니까!”

어쩐지 대련 초반에 보여줬던 말투가 서로 뒤바뀐 듯 이제는 상당히 건방져진 형민의 대답에 원 교수는 피식하고 웃으며 아까 데미지를 주었던 허벅지를 무릎으로 살짝 쳤다.

“큭!”

“흐흐..아픈가?”

“칫...꽤 아프네요!”

“큭... 자네 이제 더 버티기 힘들 듯 한데 이제 그만하지!”

“설마요!”

형민의 장딴지를 무릎으로 톡톡 치며 약을 올리던 원 교수는 형민이 괜한 고집을 부리며 저항하자 이제 슬슬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잠시 시선을 형민의 장딴지로 돌렸다가 다시 형민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던 원 교수는 갑자기 자신의 시야를 꽉 채우는 검은 것에 놀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뻐어어억!!!”

“우와와와와!!! 박치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릿속이 노래지며 순간 사위가 핑핑 돌기 시작하는 원 교수의 뒤로 학생들의 친절한 공격 해설이 곁들여 졌지만, 원 교수는 뒤이어 느껴지는 배 부분의 강력한 충격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커억!!”

“우와아!! 크리티컬!!”

형민의 무릎이 원 교수의 배 부분에 작렬하자 학생들은 형민이 보여준 이 깨끗한 한방에 모두 놀라며 일어섰고 형민은 이제 자신의 앞에서 배를 움켜쥐고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원 교수를 바라보곤 오른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원 교수님! 다음을 발꿈치 찍어 차기걸랑요? 그러게 가슴 보호대 하시라고 했잖아요!”

대련에 취한 듯 눈이 휘끄덕 돌아서 원 교수에게 자신이 어디를 찰지까지 가르쳐준 형민은 곧이어 원 교수의 훤히 보이는 등짝으로 뒤꿈치를 내리 찍었다.

“케엑!”

“컥!”

뭔가 형민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한 학생들이 서둘러 형민을 말리기 위해서 대련장으로 뛰어들었지만 곧이어 형민이 들고 있던 발뒤꿈치를 원 교수의 등으로 떨구자 모두들 곧이어 들려올 원 교수의 비명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잠시 후 들려오는 타격소리나 비명소리가 자신들의 예상과는 매우 다른 두개가 들렸기에 감았던 눈을 떠서 대련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큭...크윽! 교수님! 어...어떻게...크윽!”

“괘...괘씸한 놈! 쿨럭..쿨럭!”

방금 전 광란아 버젼 형민이 교수님 상해사건을 일으키려던 장소에는 등과 허리를 붙잡고 쓰러져 끙끙거리고 있는 원 교수와 바닥에 쓰러져 다리를 오므린 채 양손으로 어딘가를 붙잡고 새우마냥 웅크리고 있는 형민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큭..큭 하하.. 아이구.. 나 죽네..”

“컥...윽...내...XX"

형민에게 단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체육관에 여학생들이 없었다는 점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부스스한 머리로 침대에서 일어나던 형민은 어제 원교수한테 맞았던 허벅지가 끊길 듯이 아파오기 시작하자 트레이닝복 바지를 들춰서 왼쪽 다리를 내려보고는 혀를 찼다.

“젠장! 퉁퉁 부었네!”

바지 속의 왼쪽 허벅지는 오른쪽의 다리와는 그 굵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 올라있었고 허벅지의 안쪽은 검은 피멍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끙... 맞은 곳은 바깥쪽인데 안쪽에 피멍이 들어버리네.”

어제 원 교수에게 맞은 허벅지는 그 날 저녁까지 계속해서 아파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부어오를 줄은 몰랐던 형민은 트레이닝 복 바지를 끌어올리고는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긁었다.

“아! 병원인가... 가기 싫은데..”

아무리 병원들이 무통치유라던가 빠르고 간편한 진찰을 한다 해도 병원가는 것 자체에서부터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형민은 한 참을 방안을 서성거리며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코트를 집어들고 문을 나섰다.

“원 교수~! 으드득!!”

형민은 자신을 이 지경으로까지 만든 그 기분 나쁜 원교수에게 저주의 말을 내 뱉고는 절뚝거리며 병원으로 향했지만 지금 현재 원 교수가 병원 침대에 드러누워 신음성을 흘리고 있다는 것은 절대 알 리가 없는 사실이었다.

원룸을 빠져나온 형민은 곧 서둘러 학교 앞  도로가에 설치된 택시 승차장으로 절뚝이며 걸어갔다. 어차피 현재의 다리로는 더 이상 걷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기에 형민은 택시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고선 승차장 앞으로 걸어가서 앞에 부착되어 있는 마이크에 행선지를 말했다.

“병원”

“병원! 접수되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친절하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행선지 접수가 끝났음을 가르쳐 주자 형민은 승차장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제 있었던 원 교수와의 대련은 다리의 상처 말고도 형민에게 많은 일깨워 주는 그런 대련이었다. 만약 어제 원 교수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그날 바닥에 뒹구는 것은 자신뿐이었으리라. 원 교수는 확실히 인정해야 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빠른 연속공격에 손발이 엉켜서 그대로 무너지겠지만 원 교수는 그것을 웃기까지 하면서 모두 방어해 냈고, 또한 지금과 같은 치명적인 상처까지 안겨주었다.

실초와 구별할 수 없는 허초와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능숙한 방어, 그리고 3개의 무기를 사용하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극단적인 변칙 공격, 그리고 그 능수능란한 허초들은 확실히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흠... 잘하면 써먹을 수 있을지도..”

“삐이이익! 병원으로 향하시는 손님께서는 승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제의 대련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던 형민은 자신이 기다리던 택시가 왔다는 승차장의 안내에 서둘러 절뚝이며 일어나서 택시에 올라탔다.

“그럼 오늘부터는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거예요?”

“킁... 그렇게 됐어. 어쩔 수 없지 뭐. 병원에 가보니까 허벅지내에 모세혈관이 죄다 터져나갔다는데. 후유증 가지기 싫으면 몇 칠 집에서 쉬라는군. 뭐... 학교 시험이야 다 끝났으니 방학이 좀 일찍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형민은 두툼한 기브스에 싸인 왼쪽 다리를 힘들여 게임용 의자에 올려놓으며 옆에서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혜미에게 말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때?”

뜬금없는 형민의 말에 혜미는 형민의 다리에 놓아줄 쿠션을 놓아주다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반문했다.

“뭐가요?”

“게임 말이야 게임!”

“아~ 리얼판타지아요?”

“그래”

뭔가 감이 잡힌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는 혜미가 쿠션을 넣어주자 기브스한 다리를 쿠션위로 올려놓으며 형민은 게임용 헬맷을 손에 들었다.

“음.. 지금은 다른 케러밴에 끼어서 혜인오빠랑 스티브씨랑 같이 군사도시쪽으로 가고 있어요. 별다른 일은 없고, 좀 특별한 일이라면 혜인 오빠도 승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인가?”

“호오.. 그거 잘되었네. 녀석 다음에 같이 사냥하게 되면 더 재미있어지겠지? 음... 나도 이제 시작해볼까?”

헬멧을 머리에 쓰고서 의자에 편안히 앉은 형민은 의자에 반쯤 상체를 기대고서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짓는 혜미에게  마주 웃음지어 준 뒤 손으로 혜미의 뒷목을 끌었다.

“쪼옥~”

“나중에 보자구요. 밀레나씨”

“사이토 오빠도요”

헬맷 안쪽에 부착된 차가운 금속판이 양쪽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러오자 형민은 꼬옥 쥐고 있던 혜미의 손을 살며시 놓으며 천천히 게임속으로 빠져들었다.

[바람을 머금은 그대 방랑자여! 카마프라하왕국이 지금 그대를 필요로 한다.]

게임 접속을 알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흐릿하던 시선이 점차 또렷해지자 사이토는 로그아웃을 했던 여관방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펴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음.. 게임시간으로는 한달하고 6일이 지난건가?”

현실 시간과 게임내의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본 사이토는 아이아스총길드와 다른 길드연합과의 전투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제 3차 복수극을 위해 다른 길드들한테도 숨겼던 모종의 조력자들 중 가장 믿을 만한 이를 메시지로 불렀다.

[멀린씨... 들리십니까?]

잠시동안 멀린을 부르던 사이토는 접속이 되지 않았나 하고 메시지를 끊으려 했지만 잠시후 급하게 멀린이 대답하자 피식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헛... 사이토씨! 오랜 만입니다. 그간 접속이 없으셔서 걱정했습니다.]

말끝마다 존대를 붙여 대서 이제는 그냥 그려려니 하는 사이토는 멀린에게 그간의 근황에 대해서 물었다. 3번째 복수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더욱 극비의 싸인 그런 길드가 필요했기에 사이토는 한동안 아리유내의 길드들을 수소문 하며 다녔고 재수 좋게도 찾아낸 것이 이 멀린이 길드마스터로 있는 레드플레그 길드였다. 운 좋게도 이들은 사이토가 원하던 데로 매우 알려지지 않은 그런 신생길드였고 또 재일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평양쪽 유저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약간의 단점으로 뽑자면 길드원 전체의 계급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과 재정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제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더욱 좋은 조건이었기에 사이토는 멀린과 접촉하여 자신의 계획의 일부를 말해주고는 계획에 동참시켰던 것이다.

[예! 사이토씨가 지시하신 대로 길드간의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이토씨가 지원해주신 자금으로 아리유와 근처 도시들의 광산쪽의 몇몇 길드들과 협상을 하여 한달 정도의 모든 무기 재료들을 계약하고 또 시장의 강철 잉곳을 중심으로 60프로정도 사들여 일단 시장을 잠시나마 동결시켜버릴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이토씨가 말하신 대로 최대한 아이아스 길드쪽의 동향을 살피면서 최대한 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요.]

[길드간의 전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특별한 일 없이 자신의 계획대로 차곡차곡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멀린의 말을 곱씹으면서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로그아웃하기 전부터 웬 만한 쓸모없는 물건들은 모두 팔아치우거나 가방에 챙겨두었기에 그 외 트렙이나 예비 무기들을 모두 확인한 사이토는 배낭을 어깨에 매고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멀린의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초반이야... 아이아스총길드가 상당히 선전하면서 길드연합을 밀어붙였지만, 확실히 무기재료들의 아이아스 총길드로의 유입을 막은 결과 몇 칠도 안되어 길드연합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더군요. 하지만 사이토씨가 아무리 다른 길드들에게 무기재료를 충분히 구입해 두라고 해 두었더라도 아리유의 상권이 얼어붙었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양측 모두 약간의 국지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 슬슬 우리가 움직일 때로군요. 이제 몇 칠 후면 시장이 조금씩 풀려나가면서 케러벤들도 유입해 들어오기 시작할 겁니다. 그 전에 확실히 한 몫 챙기고 아이아스를 죽여야 겠지요.]

멀린과의 마지막 메시지를 끝내고 잠시 눈을 감고서 앞으로의 스케줄들을 정리한 사이토는 아이아스 길드에 대한 마지막 복수를 생각하면서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흐흐흐!”

이제 슬슬 신경쓰기도 귀찮아져가는 이 복수극을 조금 더 발전적이고도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정체가 노출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귀찮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뭐... 그 만큼 스릴 있는 것도 재미있겠지.”

사이토는 여관방의 문고리를 잡으며 작게 읊조렸다.

멀린은 사이토와의 메시지교환이 끝나자 곧 길드룸에 마련된 조그만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정확히 반년 전쯤 멀린은 같은 평양에 사는 몇몇 친구들을 모아 빚을 내어 리얼판타지아를 시작하였다. 물론 주위에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에 허덕이며 게임같은 것을 한다며 수군거리며 그를 비난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게임 내에서  고생하여 돈을 벌고 또 그것을 현실적 가치로 바꾸어 생활에 이용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불황과 궁핍한 생활속에서 어느 정도 숨통을 트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래 전부터 장사를 해 오신 아버님에게 물려받은 상인의 머리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휴... 쉬운 게 있을 리가 없지만...”

처음 리얼판타지아를 시작할 때는 그래도 자신들은 상당히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서 조금정도 자만심을 가졌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일반인들이 무술이나 호신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반면 자신과 친구들은 어릴 적부터 함께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술을 배워오던 숙련자들이었다. 그래서 조금정도는 다른 이들보다 편하려니 했지만 현실은 틀렸다. 물론 돈도 조금씩 벌리고 계급도 계속 상승하여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난다며 좋아했지만, 어느날 친구녀석이 아이아스길드원들과 다투는 바람에 얼떨결에 아이아스 총길드의 적길드가 되어버린 이후로 멀린에게는 지옥이었다.

그 전까지 자신들을 가끔씩 도와주던 다른 길드들도 자신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퀘스트에 나가서도 혹시나 아이아스총길드와 마주치지나 않을 까 항상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렇게 고민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자신에게 다가와 엄청난 제안을 한 사이토는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기회였다.

“아이아스 같이  뽀개실라우?”

“네?”

이미 자신에 대해서 꽤 알고 있는 듯 몇 가지 신상에 대해서 묻던 사이토씨가 조용히 귓속말로 그 소리를 하자 멀린은 그 황당한  인간을  관찰하며 진짜 신용할 수 있는 인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곧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 계획들은 자신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몇 칠 뒤 그가 자신을 믿는다며 선듯 제시한 그 엄청난 거금에 그는 자신의 상인의 직감에 이 사이토는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감지했고 그 일 이후 그는 가장 믿을만한 자신의  많은 친구들을 모아서 거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의 세부계획을 짰다. 그리고 지금은 그 결실의 과정...

“이제 시작인가?”

멀린은 이럴 때 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속에 새기면서 사이토를 만나기로 약속했던 주점으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섰다.

아이아스 총 길드의 화려한 거성 4층에 마련된 총관실 안의 커다란 카펫위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서 연일 올라오는 서류들을 검토하던 카시미어는 각지에서 들려오는 무기와 장비수급에 관한 불평불만들로 인해서 아파오는 두통을 애써 억누르며 현재 다른 길드룸에서  재정에 관한 일로 자신과 같이 머리를 부여 잡고 있는 보좌관을 메시지로 불렀다.

[으으!... 젠장! 보좌관! 다른 도시에서 오고 있는 케러벤들의 현재 위치는?]

[앞으로 4일에서 5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일에서 5일... 카시미어는 긴 한숨을 내 쉬면서 의자로 몸을 묻었다. 요 한달 새는 정말 지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처음 길드 연합과의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무기창이 털린 사실에 대해서 숨긴 것은 어떻게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이미 다른 동맹길드나 적길드들은 그 사실에 대해서 자신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아무리 초반에 허세를 겉들인 대규모의 공격을 했어도 길드 연합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전투를 장기전으로 끌고 갔다. 마법사들을 이용한 빠른 게릴라식 전투와 무기나 장비들만을 겨냥한 치고 빠지기 식의 짜증나는 국지전들...

지금까지의 아이아스의 역대의 전쟁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식으로 밀려본적은 처음이었다. 최고의 장비와 최고의 팀웍으로 다른 길드들을 유린하던 아이아스 길드는 이제 2류에서 3류 무기들을 가지고서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결과로는 동쪽지역으로의 세력권 박탈... 단 하나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저들도 직접적인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는 것뿐...

[이번 사태를 획책한 세력들의 탐지는 어떻게 되었나?]

일단을 그 빌어먹다가 씹어 삼켜도 모자랄 그 침입자자식을 잡는 것이 문제였다. 동쪽이나 서쪽구역 한부분 정도는 길드연맹에 그냥 내 줘도 그것은 나중에 찾으면 그만이니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입자 자식은 틀렸다. 감히 대 아이아스 총 길드의 무기창에 자기집처럼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고서 유유히 도망쳐버렸다. 그것도 100인의 가까운 사상자까지 안겨준 채... 역대 사상 가장 치욕적인 일이었다.

[아직 재대로 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도시 각 길드들에 부분 부분씩 흔적들을 남기긴 했지만, 상당히 용의주도하게 움직였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꼭 색출해 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총관과의 마지막 메시지를 교환한 카시미어는 한쪽 벽에 걸린 카마프라하왕국의 지도를 바라보면서 낮게 읊조렸다.

“5일...5일만 버텨라!”

아이아스총 길드와 그들의 횡포를 이기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났다는 길드연합의 전투가 시작된지도 어언 한달... 아리유의 시장은 너무나도 썰렁하게 변해버렸다. 거의 30프로의 시장 매매 물품을 차지하는 무기와 방어구의 가장 기본재료라 할 수 있는 쇠가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그에 맞춰 급격히 뛰어버린 무기시장, 거기에 때맞춰 일어난 대규모의 길드 전쟁은 그나마 소규모 유저들이 저장해 놓고 있던 아이템들까지 모조리 쓸어감으로써 사실상 현재 아리유의 시장은 멈췄다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이제는 썰렁해져 버린 이번 사건의 주범이 거리를 걷고 있었으니, 그는 로브로 몸을 감싸고서 천천히 다른 유저들과 걷고 있다가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펄럭이는 로브를 적당히 추스르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킁... 예상은 했었지만, 조금 심하게 되어 버렸네.”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으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들에 대해서 약간의 반성의 기미를 보이던 사이토는 곧 그것도 끝났는지 다시금 주점으로 성큼 성큼 걷기 시작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뭐...”

저것이 진정 반성하는 자의 자세이던가... 사이토의 매우 불성실하고 건성인 듯한 반성에 항의 하듯이 아리유를 지나는 바람은 더욱 그 위세를 강하게 했지만 사이토는 연신 로브를 추스르면서 주점으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하였다.

“끼이이익!”

바짝 말라 건조해져버린 듯한 나무문이 그 특유의 마찰음을 내며 주점안의 풍경을 사이토에게 보여주자 사이토는 주점 안을 두어 번 쓸어본 뒤 곧 맨 구석자리에 앉아서 친구인 듯한 이와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는 멀린에게 다가갔다.

“죄송하지만 합석해도 되겠는지요”

“ 예~ 그러시지요.”

어짜피 추적정도야 메시지로써 서로 교환하며 피할 수 있지만, 행여나 주점안의 누군가에게 우연찮게라도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이토가 멀린을 처음 보는 사람인양 묻자 멀린은 빙긋하고 웃으며 곧 사이토의 장단에 입을 맞췄다.

[조금 웃기지요?. 무슨 첩보영화도 아닌데. 그런데 옆자리 분은?]

[하하.. 괜찮습니다.그리고 이 쪽은 제 친구인 코더라고 합니다. 저렇게 허름하고 빈티나  보여도 지금 7계급인  투사계급에 있는 친구입니다]

사이토가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며 멀린에게 메시지로 옆 사람이 누군지 묻자 멀린의 옆에 앉아서 사이토와 멀린이 서로 마주보며 끙끙대자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인상 더러워 보이는 엘프를 곁눈질하며 사이토에게 소개해 주었다.

“너! 저분이랑 무슨 얘기 하는 거냐!”

멀린과 사이토가 서로 마주보며 야시꾸리한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자 둘이서 뭔가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는 것을 느낀 코더가 멀린에게 묻자 멀린은 그 특유의 허허로운 표정을 지으며 코더에게 귀엣말로 몇 마디를 한 뒤 사이토에게 말했다.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그렇지요.”

테이블위의 물컵에서 물을 조금 테이블에 흘린 뒤 손가락으로 물을 손으로 그으며 멀린이  대답했다.

“슬슬 몸이 달아오를 겁니다. 그리고 그 분들과의 연락은 잘 되셨는지요?”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사이토가 넌지시 묻자 이번에는 코더가 그 질문에 대답했다.

“예! 제가 직접 가서 그 분들을 수도로 모셔왔습니다. 사정을 모두 말씀드리니 흔쾌히 승낙들 하시더군요.”

일이 예상대로 잘 풀려나간다는 것에 만족한 사이토는 멀린과 코더에게 상체를 바짝 수그리며  말했다.

“지금 우리의 최고의 목표는 아이아스 총 길드와 한 몫 잡는 것입니다. 거래에 있어서도 최대한 비밀스럽게 하시고 특히 다른 길드원분들의 입을 잘 통제하시길...그리고 그 분들께는 제가 따로 인사드리지 못하는 것을 말해주십시오”

“예!”

사이토와 멀린이 주점에서  밀담을 나누고 헤어진 뒤 정확히 3일 후 아이아스 총길드는 잠정적으로 아리유내에 있는 그들의 자존심의 상징이자 권력의 절정을 보여주던 거성을 내 주고 남쪽의 카마디스 블루로 쫓겨 갔다. 물론 아이아스 길드의 패퇴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갑자기 바뀌어 버린 연합길드의 대규모 물량전을 이용한 파상공세로 인한 것이었지만 아이아스의 길드성의 공성에는 갑자기 나타난 빌로아의 최강 길드인 ‘노인정 길드’의 엽기적이면서 잔혹무비한 대규모 마법이 선보였다는데서 아리유에 사는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노인정길드’를 건드리면 피 보는 길드 5위권 안에 올려놓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곳 아무도 찾지 않는 서쪽 구역 허름한 창고 안에서는 두 남자가 서로 탁자에 앉아서 흐뭇하게 웃음을 지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얼마 버셨습니까?”

암록색 후드를 두르고 로브를 걸친 남자가 조용히 묻자 상대편에 앉아있던 마법사로 보이는 인물은 손가락 세 개를 느릿하게 펴면서 대답했다.

“ 대략 3배 정도 남겼습니다.”

“그럼 240만정도?”

후드를 걸친 인물이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되묻자 마법사는 손가락 세 개중 검지와 환지를 꺽은 집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대충 3배지요. 280만 남겼습니다.”

“쿨럭...”

후드를 걸친 인물은 지금 맞은 편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마법사를 쳐다보면서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 혹시 한 달 전에 100골드에도 손 벌벌 떠시던 멀린씨가 맞으시는지요?”

“움..흐흐.. 죄..죄송합니다. 제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큭큭..!”

사이토는 탁자 반대편에서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헤픈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입을 주체하지 못하는 멀린을 사이코 멀린으로 바꿔 부르고 싶은 욕망이 무럭무럭 샘솟았지만 자신 또한 이번 음모가 상당히 퀠리티 높게 끝났다는데 기분이 매우 좋았기에 멀린이 웃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챙긴다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마지막 복수전이었다. 뭐 연합길드측에서도 솔직히 이기고서도 한 동안 좀 찜찜하겠지만, 이미 건너버린 강이요, 쏘아버린 화살이요, 떠나버린 버스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고 , 2일째 되던 날 멀린이 연합길드를 찾아가서 엄청난 양의 강철잉곳을 거래할 것을 슬쩍 던진 것이 주효하게 먹힌 것이었다. 물론 마음같아서는 사이토도 그 곳에 끼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자신이 노출시키기 싫었기에 꾹 참고 있었지만 조금 전 멀린 으로부터 들은 성과는 대만족 이었다.

“전... 이제 약속대로 떠날까 합니다.”

“아! 예예..”

멀린의 웃음이 그치길 기다리던 사이토가 조용히 말하자 멀린은 곧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며 사이토의 말에 답했다.

“뭐...잡는 다고 계실 분도 아닌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처음 약속대로 이익금의 30프로를 제외한 전 금액을 사이토씨의 창구로 넣어드리지요.”

“예... 그 일에 대해서라면 멀린씨를 믿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볼일이 없기에 사이토는 별 주저 없이 탁자에서 일어났다. 더 있어봐야 이제 할 일도 없었다. 또한 아이아스 총 길드는 더 이상 자신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이제 거대길드였던 때의 위세에 눌려있던 다른 중소길드들의 텃새나 핍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발에 땀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 이만... 나중에 인연이 닿는 다면!”

마지막 한마디를 멋지게 말하곤 주저 없이 창고의 문을 열고 나가려는 사이토의 뒤로 멀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시거들랑 메시지나 넣어주세요~”

“쿨럭...”

서쪽 창고를 나와서 여관으로 가는 거리들은 이제 조금씩 예전의 안정을 찾아가며 다시금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길드간의 대규모 전쟁이 끝나고 그동안 침체되었던 상권이 서서히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동안 집안에서 바깥외출을 쉬쉬하고 있거나 혹은 이번 전투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이제 슬슬 원래의 생활로 돌아오고 있었다.

“뭐...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서둘러 여관으로 돌아가던 사이토는 입맛을 다시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상처입은 호랑이가 떠난 산은 이제 주위의 여우나 늑대들이 들어차기 마련이다. 그 혼란스럽고 더러운 권력의 싸움에 이 일의 시발점이기도 한 자신이 휘말릴 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것대로 절대 사양하는 것이었다. ‘미스티 핸즈’   입 발린 소리 지껄이기 좋아하는 작자들이 자신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처음 복수극을 생각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감수는 하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제발 그런 식으로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귀찮아!”

신경질 적으로 로브를 꼭 말아 쥔 사이토는 가이아가 있을 여관 쪽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사이토는 여관비를 모두 계산한 뒤 은행에 잠시 들러 잔고를 확인하고서 몇가지 여행 장비들을 마련한 뒤 가이아도 없이 혼자 북쪽 성곽쪽으로 타박 타박 걷기 시작했다.

“에휴... 잠시간동안은 또다시 혼자인가?”

어제 여관방에 도착한 사이토는 자신이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귓가에 들려오는 가이아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순간 어리 둥절하여 가이아와 메시지를 교환했다.

[사이토씨! 미안해요. 한 동안 같이 여행할 수 없게 되었어요.]

[어째서? 혹시 그동안 내가 너무 소홀히 해서 삐진거야?]

지은 죄도 약간 있고 해서 미안한 목소리로 가이아에게 물었지만 곧 이어 들려온 가이아의 대답은 사이토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뇨. 요즘 리얼 판타지아의 아리유쪽에 세력균형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요. 운영진들이 앞으로의 이벤트계획들을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고 해서요]

[아..그래?]

어찌 보면 자신이 벌인 일로 가이아가 한 동안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것이기에 사이토는 연신 미안하다는 가이아를 안심 시킨 뒤 다음날 아침 혼자서 짐을 꾸리고는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찾...찾았다!”

거리 구석에 상당히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인영은 나직하게 욺조리며 몸을 일으켰다.

“끄응!”

다시 찾는데 너무나도 오래 걸렸었다. 게임에 다시 접속했을 때 이미 사이토라는 인물은 종적이 묘연했다. 자신의 애완견인 블링크도그 구피씨를 이용해서 찾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 그 넓은 아리유를 뒤질 수도 없게 된 릿츠카는 한 동안 정보 길드같은 곳을 통하여 사이토에 대해서 수소문도 해보고 아리유의 북쪽 지역인 라센시까지 알아보았지만 정말 사이토는 카마프라하 왕국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진 듯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사이토가 아리유에서 상당기간 머물것으로 예상하고서 나타날 확률이 가장 높은 북쪽 성곽 담에 붙어서 근 한 달여간을 감시했다. 한달... 말이 한달이지 그것은 정말 피를 말리는 짓이었다. 이제는 슬슬 담벽생활에 적응이 되어가는지 머리 위로는 휴대용 천막까지 치고서 옆에는 간식쪼가리들이 들은 작은 주머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그 깨끗하던 얼굴과 옷에는 먼지와 검댕이들이 묻어 있어 가끔씩 지나가던 유저들의 동전세례라는 부수입까지 얻어가는 릿츠카였다. 거기에 PK로써 항상 주위 유저들에게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하는 릿츠카에게 먼지들은 얼굴의 PK를 나타내는 붉은 문신까지 가려줘 이제 두건 같은건 쓰지 않고 얼굴에 검댕이나 칠하고 다닐까 심각한 고민을 하던 릿츠카였다.

“구..구피씨! 이제 결판을 내러 가요.”

간식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는 강아지를 가슴에 안은 릿츠카는 이제 거의 광기에 달한 눈으로 북쪽성곽을 넘고 있는 사이토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끈다는 것은 자신의 깔끔한 전적에 크나큰 오점을 남길 것이다.

“크릉! 초보지역만 지나면 찐하게 한번 만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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