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수정 안하고 그냥 올립니다..ㅜㅜ.. 맘껏 씹어주시길..
ps. 아..이번 챕터는 태클먹는 날이군요.. -_-;
아리유에서 북쪽 성곽을 나와 2시간 정도를 쉴 새 없이 말을 타고 달리던 사이토는 가도 위를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빛에 얼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제로 덥다는 느낌은 그렇게까지 들지 않았지만 구름한점 떠 있지 않은 하늘 위로 내리쬐는 태양,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이 이글거리는 사막의 풍경 속에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막의 모래사구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지평선 끝으로 뻗은 삭막한 회색벽돌로 촘촘히 만들어진 길 하나가 사이토의 눈에 띌 뿐이었다.
“휘이이잉~”
메마른 사막의 바람이 주위를 쓸어보고 있는 사이토를 몰아치고 지나갔다.
“큭... 이거 이거 이제부터는 사막인가 보네. 말이 잘 버티려나? 낙타는 안 팔던데...”
혹시나 사막의 뙤약볕이 말이 지쳐버릴까 사이토는 말의 갈기를 슬슬 쓸어주며 달래주었다.
“쳇! 뭐 어차피 사막 생활 오래할 생각은 없으니... 초보자 존만 지나면...”
뭔가 계획이 있는 듯 별 걱정하지 않는 목소리로 뒷춤의 주머니를 소중히 쓸어본 사이토는 말을 재촉하여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하아! 힘들다.”
릿츠카는 먼지와 땀이 얼룩진 얼굴을 로브로 슥슥 문지르며 제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담한 체구에 긴 머리를 그대로 풀어헤치고는 사막의 풍경과는 이질적인 다크 서클까지 지닌 휑한 표정의 릿츠카는 아리유 쪽을 연신 노려보았다. 지금 릿츠카는 사이토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기 위해서 예전에 이곳을 지나면서 저장해 놓았던 게이트 스톤을 써야 했고 이번 사용이 마지막이었는지 최고급 게이트 스톤은 마지막 빛을 애절하게 내뿜으며 깨져 버리고 말았다.
“이곳...이곳에서 끝장을 보고야 말 꺼에요”
이미 아이아스 총 길드가 길드연합과의 세력싸움에서 패하여 카마디스 블루로 쫓겨 갔지만 그렇다고 계약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일을 맡은 이상 프로로써의 자존심도 문제려니와 자신에 대한 신용도도 문제였다. 거기에 지금까지 아무리 힘든 의뢰라도 한 달 이상을 끌어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것 또한 릿츠카의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로 남아있었다.
“끙... 여기서 까지 놓치면 안되는데...”
이제 상당히 홀쭉해져 버린 게이트 스톤 주머니를 어루만지며 릿츠카는 걱정스럽게 머리를 쓸어내렸다. 몇 칠전 이 다음 마을인 라센시를 샅샅이 뒤지면서 남용해 버린 게이트 스톤들은 하나 하나 깨져 나갔고 릿츠카는 다시금 아리유로 돌아오기 위해서 이 빌어먹기로 소문난 사막지대를 애완동물들만을 딸랑 이끌고 힘겹게 횡단해야 했다.
“아앙! 그 때 저장해 놓았어야 했는데... 이런 풍경은 정말 싫어!”
게임 옵션에서 더위에 대한 세부옵션을 조정하여 별로 덥다 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삭막하고 아무것도 없는 땡볕 아래의 사막풍경은 릿츠카로써도 도저히 무리였기에 몸을 더욱 바짝 수그렸다.
“어디 한번 볼까요~”
테이머의 특수스킬인 시야 공유를 사용하여 멀리서 이쪽으로 오는 가도를 지키고 있는 구피의 눈으로 가도를 관찰한 릿츠카는 슬슬 사이토가 나타날 때라고 생각하곤 초보자존 밖 5분 거리 즈음 정도로 자리를 옮겨 매복했다. 재수 없게 사냥대상이 초보자존으로 도망치는 것은 릿츠카로써도 샤양이었다.
“폴로씨! 나비씨 준비해요.”
속삭이듯이 누군가에게 말을 한 릿츠카는 가만히 엎드려 가도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는군요!!”
“도...도착이다.”
단조로이 나타나는 사막의 풍경들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사이토는 힘겹게 말을 뱉으며 말에서 내려섰다.
“으아! 심심해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이런 곳에서 사는 거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사이토의 푸념이었다. 도대체 이 리얼판타지아를 만든 인간들의 뇌를 해부 검토하여 논문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슷 비슷한 풍경들은 그렇다 치고 단조로운 모래 사구들을 지나면서 가끔씩 멀리서 유유히 모래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샌드윔이나 유유히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사이드와인더 떼거리를 몇 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지금의 사이토로 써는 그것들 또한 그림의 떡, 지금의 사이토는 그것들에게 섣불리 혼자 덤벼들 정도로 심심하거나 미치지 않았다.
“승급밖에 없어.”
이제 이 승급여행도 거의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뭐 어떻게 하다보니, 자신을 적으로 돌린 킬트길드나 아이아스 길드는 이미 회생불능으로 망가지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고생해서 온 것도 있고 또 아직 각 도시에는 그들의 잔당이 남아있었기에 안전제일 주의를 지향, 또는 생활화하는 사이토는 슬슬 지겨워져 오는 이 여행을 빨리 끝낼 생각으로 대규모 출혈을 감수하고 매우 고가의 특수아이템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흐흐... 승급여행 3일안에 끝낸다! 비장의 아이템 등장!”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멀리서 보이는 사냥감을 주시하던 릿츠카는 혹시나 사냥감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도망갈까 조심스럽게 수인을 맺을 준비를 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응? 뭐지?”
하지만 그녀의 바램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사냥감이 시간이 지나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랄 없이 뒤춤을 뒤적거리기 시작하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현재로써 가장 저주스러운 단어에 주문을 취소시키고서 벌떡 일어났다.
“으윽! 게이트 스톤!!”
“흐흐. 거금을 투자하여 얻은 비장의 아이템! 데이모스 관광 초 간편 패키지 최고급 게이트 스톤 셋트!”
뒷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사이토는 다음 마을인 고센용 게이트스톤을 손에 들고서 영롱하게 빛나는 자색의 게이트스톤을 바라보았다.
“멀린씨 고맙수다”
사이토가 없는 장장 한 달 동안 이 게이트스톤들을 마련하기 위해 발에 땀나도록 뛰었을 멀린을 생각하며 아리유에서 돈더미에서 헤엄치고 있을 멀린에게 잠시 감사의 마음을 보낸 사이토는 이 곳의 더 이상 미련이 없었기에 곧 바로 게이트스톤의 시동어를 외쳤다.
“게이트스톤의 주인이 명하노니, 대지에 기억된 주인의 발자취를 지금 여기에 열어라!!”
“파아악!”
릿츠카는 땅을 박차며 사이토에게 뛰기 시작했다. 릿츠카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변수가 생겨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 유저들과 같이 느릿느릿하게 이동하던 사냥감이 게이트 스톤을 이용해서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은 재수 없으면 추적하는데 만도 엄청난 시간과 돈이 투자될 것이다.
“으아! 최악이야!!”
머릿속을 헝클어 트리는 최악의 상황들을 애써 무시하며 릿츠카는 하늘과 땅속에서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두 존재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폴로! 나비!! 잡아!”
“크르르릉!” “ 까악! 까악!”
거대한 모래사구를 뚫고 불꽃과 함께 케르베로스가 튀어나오고 하늘 어딘가에서 나타난 하얀 뿔이 태양에 비춰 오색영롱하게 빛나는 대형 까마귀가 나타나 서로 갖은 폼을 잡았지만 뒤이어 떨어진 릿츠카의 불호령에 둘은 애써 잡고 있던 포즈를 집어 치우고 아직까지 이들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느릿하게 게이트스톤으로 발을 옮기는 사이토를 노리고 돌진했다.
“꽈과과광!
“꾸에에엑!! 께액!”
그러나 사이토는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릿츠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흉포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은 거대한 몸집의 케르베로스와 하늘의 제왕으로 통하는 까마귀들의 왕 뮤닌은 목표물을 잃어버린 채 볼썽사납게 처박혀 버리고 말았다.
“휘이이잉~”
건조한 사막의 바람만이 이 닭 쫓던 개꼴이 되어버린 릿츠카와 그녀의 애완동물을 위로하고 지나가자 릿츠카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인다. 죽인다. 갈기갈기... 죽이고야 만다.”
이제 릿츠카에게 남은 선택은 아리유로 되돌아가 데이모스까지 가는 게이트스톤을 구하느냐 아니면 꾸역 꾸역 뛰어서라도 뒤쫓느냐 뿐이었다.
“흐아아앙!!”
저녁 무렵 데이모스로 향하는 가도를 터벅 터벅 걷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암록색의 후드와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서 느릿느릿 걷고 있었지만 간간히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드러난 로브속 으로는 허리에 걸치듯이 매인 벨트와 그 뒤로 보이는 단검 손잡이 두개가 걸을 때마다 달그닥 거리고 있었고 걸을 때마다 보이는 손목에는 팔찌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무리로 보이는 별 무늬 없는 크고 투박한 팔찌 두개가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주위로 간간히 지나치고 있는 유저들이 사이토를 유심히 본다면 그의 로브안으로 보이는 특이한 재질의 천과 갑주에 흥미를 느꼈겠지만, 다른 이들은 사이토의 복장에 별 흥미가 없는지 자신들의 갈 길만을 재촉할 뿐이었다.
“히야! 여기인가?!”
너무나도 높은 성벽이었다. 예의 높은 계곡을 두른 듯 높은 성벽들이 주욱 둘러쳐져서 그 끝이 멀리까지 보일 정도로 웅장한 데이모스의 성문은 사이토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끙... 드디어 도착이군.”
감회가 새로웠다. 아리유에서부터 쉴새 없이 게이트 스톤을 사용해서 왔다지만 경계와 경계의 끝이라는 것 또한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기 때문에 근 4일이 걸려서야 데이모스에 도착한 사이토는 잠시 감상에 빠져서 데이모스를 둘러보면서 즐거운 기분을 만끽했다.
“언니!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요?”
“그래... 인상착의는 맞는 듯 하구나.”
“근데 듣던 것보다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대요?”
“그러게... 별일이구나.”
사이토가 데이모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갖은 촌티를 다 내며 성벽을 구경을 하고 있는 사이 멀리 바위 사이에 앉은 두 인영은 그런 사이토를 계속 관찰하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고 있었다.
“일단 다른 언니들한테도 알려야 겠죠?”
“그렇지...그렇지만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아 실망이구나”
서로 마주보며 수군거리던 두 인영은 볼일이 다 끝났는지 바위뒤로 사라져 버렸고 현재 자신이 어떤 이들로부터 품평을 당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이토는 한 동안 계속 성벽을 감상하다가 어깨에 맨 가방을 다시 고쳐 매고는 데이모스의 성벽으로 활기차게 걸어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사이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침실이 있는 2층계단을 내려오다가 1층 테이블에 가이아가 홀로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이아에게 반갑게 말했다.
“가이아 오랜만이야!”
“예! ...훗!”
이미 사이토가 내려올 것을 예견하고 있었는지 사이토를 바라보며 빙긋하고 웃음 진 가이아는 사이토가 웨이트리스에게 주문을 하고서 자리에 앉자 잠시 찻잔을 응시하다가 사이토에게 말했다.
“사이토씨는 오늘로 승급여행은 마지막이시죠?”
“뭐... 일단 목적지에는 도착했으니 마지막이라고도 할 수 있지. ”
“.....”
조금 활발해졌나 싶었던 가이아가 또다시 예전의 꿍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지 않자 사이토는 눈을 얇게 뜨고는 가이아의 다음말을 끈질기게 기다렸다. 이 방법은 저번 여행에서 몇 칠간 같이 생활하면서 터득한 방법으로써 말 중간 흐리기의 대가인 가이아에게 사용하기 딱 좋은 방법이었다.
“..........”
“ 저... 저..저... 사이토님... 배 안고프세요?”
“에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이길래 그리도 뜸을 들였는지 잔뜩 기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이토는 뱃속 깊은 곳에서 솟아 올라오는 더운 한숨을 바닥으로 분출시키면서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주문!”
손을 들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보라색과 힌색의 메이드복을 입은 웨이트리스가 다가오자 사이토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잠시후 주문을 받아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던 웨이트리스가 5초도 안되서 뜨끈 뜨끈한 요리들을 턱턱 들고 오자 사이토는 새삼스레 ‘게임이 좋긴 좋구만’ 이라고 생각하곤 가이아와 함께 나온 음식들을 하나 하나 사살하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식사가 끝나 먼저 스푼을 놓았던 사이토는 가이아의 확인사살과도 같은 상당한 먹성을 자랑하며 남은 요리를 모두 치워버리자 식은 땀을 흘리며 가이아에게 물었다.
“배부르니?”
“배... 요? 아.. 식욕게이지요? 지금 수치가 100%니까 아주 배불러요.”
“끙..그래..”
아무래도 가이아를 게임 내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1:1 개인 지도가 필요하다고 느낀 사이토는 카운터로 걸어가 음식값과 여관비를 계산하고는 가이아와 함께 방랑자의 신인 데이모스의 신전으로 향하였다.
“가이아... 이 세계를 관장하는 네게 할 말은 아니지만, 너도 알다시피 데이모스는 카모프왕국과 맞닿은 성채도시이고 또 이곳은 거리에서도 PK가 자유로울 정도로 경비도 없고 그 만큼 험악한 곳이니까 네 몸단속 잘해라.”
“넵!”
말하나는 잘 잘 듣는 듯한 가이아의 대답에 사이토는 가이아의 손을 잡고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둠의 신전이 자리한 성채도시 데이모스는 그 위치의 특이성과 게임사의 설정을 통해서 단 한명의 경비들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도시였다. 게임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민족, 인종 문제나 사회적 이슈로써 카모프 왕국과 자주 다툼을 벌이는 카마프라하 왕국으로서는 살인자라 하더라도 나라간의 전투라면 봐주는 형국이였다. 물론 이런 계기가 된 이유로는 양국의 최고 수뇌를 맡고 있는 1급운영자들이 서로 으르렁 거리며 더욱 전투를 부채질 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게임내의 설정에도 적국의 유저를 살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살인자가 되지 않고 오히려 경험치라던가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많았기에 데이모스야 말로 진정한 강자들이 모인 복마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으... 대..대단하다.”
한참 길을 걷던 사이토는 무심결에 나침판을 꺼내 보았다가 곧 감탄과 신음성을 흘리며 주위를 예리하게 노려보았다. 사막도시 특유의 모스크 양식을 가져온듯한 둥근 돔의 지붕을 지닌 건물들과 건물 벽들을 복잡하게 장식하고 있는 아라베스크 문양들 밑으로 웅성대는 사람들 중 사이토의 나침판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10프로에 달했다.
“역시 데이모스의 신전이 있는 곳이니 만큼 도둑들이 많은 것인가? 저 많은 사람들중 10프로가 내 탐지를 피하다니”
혀를 끌끌 찬 사이토는 다시금 가이아의 손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항상 은신스킬이 활성화 되어 다니는 도둑들은 서로간의 상당한 스킬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낮은 스킬치의 도둑이 높은 스킬치의 도둑을 탐지하지 못한다. 물론 이것 또한 확률상의 차이로써 오차 범위가 꽤 크지만 5계급 로그인 자신이 탐지하지 못하는 10프로의 고급계열 유저들은 사이토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멋지다...”
사이토는 넓디넓은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데이모스의 신전을 바라보며 그렇게 첫 감상을 터트렸다. 그 높이와 규모에서부터 타 건물들과 비교를 달리하는 거대한 데이모스의 신전은 흡사 다른 건물들을 장난감으로 보이게 할 정도의 규모로 떡하니 새워져 있었고 그런 데이모스의 신전의 다섯 귀퉁이에 세워진 거대한 오벨리스크들은 신전의 음침함과 장중함을 한 층 더 부각시켜 주고 있었다.
“가이아! 들어가자.”
“네...사이토씨..”
사이토는 가이아를 이끌고서 거대한 신전 입구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문이 없는 아치형의 대형 입구로 걸어 들어간 사이토는 가이아와 함께 천장과 벽면에 새겨진 벽화나 아라베스크를 구경하면서 꽤 높고 긴듯한 복도를 지나 이늑고 어둠의 신전안에 세워진 건물 안 광장으로 들어섰다. 넓디 넓은 광장 중앙에는 한손에는 한자루의 날카로운 검을 등에는 활을 맨 거대한 로브로 몸을 둘러싼 수 많은 신들중 유일하게 얼굴을 후드로 가린 방랑자의 신 데이모스가 서 있었고 석상의 네 방향으로는 금색으로 빛나는 크고 둥근 원들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들도 꽤 많네?”
승급을 위해서 온 듯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각기 자신의 클래스에 맞는 원에 서서 눈을 감고 있었고 가끔씩 검은 오오라가 번쩍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석상을 중심으로 북쪽은 어쌔신을 남쪽은 바드를 서쪽은 레인져를 동쪽은 도둑을 지칭하는 거대한 글씨가 원 안에 써져 있는 것을 본 사이토는 자신의 뒤쪽에서 광장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가이아에게 말했다.
“가이아”
“네..”
“가이아가 보기에는 내가 어떤 클래스와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이제 부터는 자신이 밟는 곳이 곧 자신의 클래스가 결정되는 것이기에 어쌔신과 도둑 사이에서 전부터 꽤 고심하고 있던 사이토는 가이아에게 자신의 클래스 선택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사이토씨의 클래스요?”
사이토의 말에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는 듯 턱을 손으로 감싸고 한참을 생각하던 가이아는 잠시 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뒤 사이토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사이토씨!”
양해를 구하는 듯한 가이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이토는 궁금증을 느꼈지만, 앞에 서있던 가이아가 순간 흐릿 흐릿해 지다가 잠시후 전과는 틀린 뭔가에 홀린 듯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갑자기 온 몸에 느껴지는 위화감에 가이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사이토씨께서는 현재 서브스킬을 5가지를 마스터 하셨으며 이에 대한 보너스 스텟으로는 힘 2 덱스 2 바이탈1의 추가능력치가 주어졌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현재까지의 사이토씨의 전투방식을 조합해 본 결과 현재로써 어쌔신 70 도둑 90 바드 40 레인져 60을 나타...에? 사이토씨 이정도면 ... 될까요?”
평소의 가이아와는 다른 매우 사무적인 말투로 자신에게 딱딱 끊어서 결과표까지 말해주던 가이아는 정신이 돌아오는 듯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예의 기존의 수줍은 처녀스타일로 돌아와 사이토에게 조용히 물었다.
“응...응..고마워.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 역시 나한테는 도둑이 딱인거 같네”
말을 마친 사이토는 곧 몸가짐을 바로 하고서 광장의 네 귀퉁이 중 한 곳을 차지한 도둑클래스의 거대한 금색의 원으로 걸어가 원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별 반응이 없네.
일단 원 안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몸에 별 다른 느낌이 없자 사이토는 좀 더 원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뚜벅..뚜벅”
원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던 사이토는 갑자기 머릿속과 눈이 기묘하게 뒤틀어진 암흑으로 변하며 서서히 몸이 어디론가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에 당황하여 이제 물속에 잠식된 듯 잘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최대한 몸쪽으로 끌어모으고 다음 상황에 대비했다.
“파아아앙!”
“크...여기가 어디야!”
이질적이고 끈적거린 무언가가 몸에서 사라진 뒤 정신을 차린 사이토는 주위를 둘러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끈적한 느낌... 어둠속에 보이는 것은 더러운 도시 하층민들이 사는 하수구의 풍경이었다. 검은 오수가 흐르는 도시의 강... 그 양 옆으로 보이는 거대한 기둥들과 기둥들 밑으로 모여 수군거리는 더럽고 악의에 찬 눈초리들, 그들의 머리 위로 희미하게 빛나는 등불들은 벽돌로 이루어진 듯한 바닥에 그 그림자를 한층 선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영혼의 방랑자들이 머무는 휴식처, 그들의 혼, 그들의 군주.. 너는 무었을 원하는가..!”
갑자기 머릿속에 천둥과 같은 음성이 울려퍼지자 사이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 물음에 대답했다.
“승급을 원합니다!”
사이토가 단호히 대답하자 그 목소리는 잠시 끊겼고,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오길 기다리던 사이토는 기둥가에 웅크리고 있던 인영들 중 세 명이 부스스하고 일어나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자 허리 춤에 이어드소드를 꺼내들고선 그들을 경계했다.
“선택하라!”
“네?”
무었을 선택하라는 것인지 어디서 들려오는 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목소리가 선택하라는 말을 하자 사이토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앞에서 싸우고 있는 인영들을 잠시간 바라본 다음에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명은 빠른 발놀림으로 나머지 둘에게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명은 손에 든 단검을 현란하고 날카롭게 움직이며 나머지 둘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고, 마지막 한명은 상체를 빠르게 움직이면서 나머지 둘의 공격을 회피하고 있었다.
“단검을 가진 이를 원합니다.”
“슈컥!!”
사이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검을 손에 든 이는 나머지 둘을 순식간에 찔러 죽여버린 뒤 사이토를 힐끔 노려보고는 다시금 기둥 옆으로 가서 몸을 웅크렸다.
“네가 선택한 마스터 테크닉은 너의 몸에 항상 머무르며 너를 악의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또한 워로그가 된 너에 걸맞는 새로운 힘 6개를 주노라”
목소리가 자신이 선택한 스킬의 이름을 말해줌과 함께 새로운 스텟을 주자 사이토는 아까전 단검을 움직이던 인영의 몸동작을 머릿속에 기억시키며 캐릭터 창을 열어 힘과 덱스에 능력치를 사용했다.
“다 끝났나?”
스텟조합을 끝마친 사이토는 예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의문을 표시했지만 잠시후 다시금 검은 암흑이 자신을 덥치자 이번에는 암흑에 저항하지 않은 채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파아아아앙!”
방금전과 똑같은 풍경, 음습한 도시의 뒷골목이 또 다시 나타나자 사이토는 실소를 터트리고는 머릿속에 들려올 정체불명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나는 영혼의 방랑자들이 머무는...”
“그래..그래~ 다음 다음~”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한 사이토는 이번에는 머릿속을 울려오는 목소리에 별로 당황하지 않은 채 주위 풍경을 구경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목소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었을 원하는가!”
“승급!”
짧게 대답한 사이토는 다시금 자신의 앞에 나타날 기술들을 느긋하게 기다렸고 잠시 후 기둥벽면과 바닥에서 두 인영이 미동도 없이 솟아 올라오자 두 기술을 유심히 관찰하던 사이토는 바닥에서 솟아 올라온 인영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저 녀석!”
사이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다시 사이토가 지목한 인영은 나머지 한명의 뒤에서 스르륵 하고 나타나 짧은 낫으로 목을 그어버린 뒤 사라져 버렸고 예의 목소리는 사이토에게 스텟과 함께 스킬을 소개해 주었다.
“대지의 어둠속에 녹아드는 기술... 팬텀 피규어는 적들로부터 너를 보호할 것이다. 또한...”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사이토는 새로 얻은 스텟들을 민첩하고 속도감 있는 자신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덱스와 어질 그리고 힘에 조금씩 투자 했고 그 이후로 2번에 걸쳐서 승급을 한 사이토는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몸상태를 채크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킁... 마지막 것은 엄청나게 대단해 보였는데...달라진 건 하나도 없군.”
세 번째로 얻은 절대 감각 스킬인 식스센스는 그렇다 치고 마지막 9계급인 로그 그랜져로의 승급에서 선택한 기술은 그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검은 그림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한 손에서 시리디 시린 푸른 오오라로 구성된 긴 검을 뽑아 자신을 찔렀던 기술인 그레이브 스피릿은 고통은 없었지만, 뭔가가 자신의 내부를 모조리 흔들어 버리는 느낌이었기에 사이토는 아까 그레이브 스피릿에 찔렸던 심장부위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눈을 감았다.
" 방황하는 영혼의 방랑자여! 네가 머무를 곳을 기억하라!"
마지막 아늑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머릿속에 단편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들...검고 깊은 물 속으로 사라져 가는 화려한 검의 모습, 생기를 잃은 듯 죽음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간 큰 눈동자..."
머릿속을 파고드는 수 많은 단편적인 영상들에 한동안 이마를 찡그리던 사이토는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던 것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리고는 방금전들의 영상들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했다.
"쉬이이이..."
이제 승급이 끝났다는 듯이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무릎쪽을 뱀처럼 타고 올라오는 검은 기운에 사이토는 생각을 멈추고선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 보고는 눈을 감았다.
예의 검은 어둠이 또다시 사이토를 덮치고 잠시 후 점차 또렷해져 오는 시야로 승급하기 위해 들어섰던 데이모스 신전 안 금색의 원들과 자신을 멍 하니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시선이 느껴지자 고개를 갸웃한 사이토는 이상하게 이질적이면서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들어 저쪽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이아에게 소리쳤다.
“승급 끝났다!!”
“.....”
하지만 승급 전까지는 상당히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리던 광장이 갑자기 쥐 죽은 듯한 침묵에 휩싸여 있자 사이토는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기분 나쁘다는 눈빛으로 째려본 뒤 가이아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 어어?”
뭔가 생각과 움직임이 둘로 나눠진 듯한 이질적인 느낌에 사이토는 왼발을 내딛고서 멋대로 흔들리는 상체를 간신히 바로잡곤 가이아에게 손짓을 했다.
“가..가이아! 나 좀 부축해줘”
“예?”
사이토의 부름에 가이아는 사이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달려왔다.
“사이토씨! 괜찮으세요?”
가이아가 사이토의 오른팔을 부축하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사이토에게 묻자 사이토는 피식하고 웃으면서 왼쪽 무릎을 손으로 톡톡 쳤다.
“별로 안 괜찮은데? 아이구!”
도저히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도..도대체 왜 이런거지?”
이 생각지도 못했던 기막힌 상황에 의구심을 느낀 사이토는 곧 시야 옆으로 캐릭터 창을 활성화 시키고 수치들을 확인해 보았다.현재 계급은 로그 그랜져로써 초급에 있었고 그 외 다른 클래스 스킬들은 처음 게임에 접속했을 때와 같이 59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새로이 얻은 4개의 스킬들은 기본치인 1이었지만 이것은 숙련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고 또 59라는 수치는 로그였을 당시 한계수치가 59였기 때문이었으므로 지금의 난감한 상황을 이해시키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랐다.
“가이아 일단 나가자.”
“예!”
가이아가 옆에서 부축을 했지만 데이모스의 신전을 걸어 나가는 사이토의 걸음걸이는 매우 불안하고 휘청거려 신전을 나온지 얼마 안되어 신전 외곽 광장에 도착한 사이토와 가이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주저앉았다.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몸이 재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사이토는 뭔가 잘못되어 버렸다는 생각에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긁어내렸고 그 옆에 쭈그리고 앉은 가이아는 사이토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머리를 싸매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치고선 사이토에게 말했다.
“아! 사이토씨 이유를 알았어요!”
“응? 뭔데?”
사이토의 말에 가이아는 밝게 웃으며 말하려다가 갑자기 얼굴이 시무룩해져서는 사이토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저... 사이토씨... 근데 저 아까 데이모스 신전 안에서의 모습 ...... 이상했죠?”
이유를 가르쳐 준다는 가이아의 말에 잔뜩 기대하던 사이토는 가이아가 조금 전 데이모스의 신전 안에서 보여줬던 그 이상한 모습에 대해서 묻자 턱을 긁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가이아에게 대답했다.
“별로? 조금 이상하기야 했지만...”
“저...정말요?”
“응...”
사이토의 대답을 들은 가이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의 그 모습은 리얼 판타지아에서 일반 유저의 능력이 아닌 컴퓨터인 가이아의 능력을 사용했을 때의 모습으로써 약간의 규정 위반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왠지 자신이 규정을 조금씩 위반한다는 것이나 또 아까와 같은 모습을 사이토에게 보이거나 알린다는 것은 그녀 자신도 별로 바라지 않았기에 가이아는 자신을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사이토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컴퓨터로써의 자신을 일깨웠다.
“현재 9계급인 사이토씨께서는 사용하고 계시는 게임기기들과 사이토씨의 현재 계급이신 로그그랜져의 능력보정이 맞지 않습니다. 원활한 게임을 위해서는 게임기기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응? 업그레이드? 그건 어떻게 하는데?”
난데없는 가이아 심각버젼에 땀을 삐질 하고 흘린 사이토였지만, 잠시 후 가이아가 게임기기의 대한 업그레이드를 말하자 가이아에게 다시금 물었다.
“게임기기의 업그레이드는 차후 관리자들이 유저에게 ..응?. 에? 어쩌지...죄송..해요. 사이토씨... 3급 기밀이네요. 헤헷!”
혀를 쏘옥 내밀고는 가이아가 말하자 사이토는 기밀이라는 말에 머리를 갸웃하고는 가이아에게 물었다.
“기밀은 또 무슨 소리야?”
“네?...헤헤! 그건!... 비밀! 로그아웃 하시면 저절로 알게 되요”
왠지 궁금한 것 물어보려다가 기밀 하나랑 비밀 하나를 더 떠안은 기분에 사이토는 신음소리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끙... 그럼 일단 여관으로 가자.”
“네”
가이아가 사이토의 팔을 붙잡고 천천히 일어나자 사이토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이아에게 의지한 채 천천히 발을 땠다.
데이모스 신전에서 사이토가 가이아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걸어 나간 뒤 신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곧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승급하는 것을 몇 번씩 보기도 하고 또 직접 해보기도 했기에 그 과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이토의 경우에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연속해서 다섯 번의 검은 오오라가 불꽃처럼 일어났기에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서로간의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마지막의 5번째 검은 오오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거대하고도 위협적인 크기였기에 사람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또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하지만 순간의 화재거리나 이야기 거리가 항상 그렇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추리정도밖에 하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이상한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으며 여느 때와 같은 데이모스 신전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찰칵~ 피이이잉!”
이마와 관자놀이에 붙어있던 금속판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헬멧이 헐거워지자 형민은 헬멧을 벗어 침대로 던져 놓고는 아픈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침대의 베게 위에 놓고 뒤로 털썩 하고 누웠다.
“뭐야! 가이아의 그 의미모를 웃음은!”
한참동안 턱을 괴고서 데이모스신전에서의 반신불수현상과 가이아의 미묘한 웃음에 대해서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형민은 문득 배가 꼬르륵거리며 식충이 요동하는 소리가 나자 손으로 배를 슥슥 문지르며 주방 쪽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음.. 뭐 먹을 것 좀 없을까?”
현관 옆에 마련된 좁은 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본 형민은 몇 시간 전에 혜미가 사다 놓은 듯한 과일 중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새파란 풋사과를 하나 집어 들고 절뚝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와삭~! 쩝...쩝!”
“삐~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사과를 먹던 형민은 컴퓨터에서 새 메일이 왔다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컴퓨터 쪽을 힐끔 하고 쳐다본 뒤 나직이 한마디를 뱉었다.
“음성명령 모드로 전환~! 메일 읽어봐~”
“삐~! 리얼 판타지아사에서 도착한 메일입니다. 메일 내용으로 적힌 텍스트로는 [현재 리얼 판타지아의 카마프라하 왕국에서 활동 중이신 고객님의 캐릭터 사이토와 관련하여 게임기기의 한정 부분에 대한 하드웨어 패치가 있을 예정이니 본 메일을 접수하신 사용자께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리얼판타지아사로 메일 또는 직접방문을 통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입니다.”
“하드웨어 패치?”
형민은 리얼판타지아사로부터 배달된 메일에서 뜻밖의 내용이 나오자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흐음... 회사 심벌은 맞는데...”
밑도 끝도 없이 자신에게만 하드웨어 패치를 한다는 리얼판타지아사의 메일 내용이 아마 자신이 겪고 있는 그 이상한 현상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형민은 리얼판타지아사에 내일 오전에 패치를 해 달라는 메일을 전송했다. 잠시 후 다시 침대에 누워 사과를 씹으며 무었을 할지 생각하던 형민은 다 먹은 사과씨를 쓰레기 통으로 던져버린 뒤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 썼다.
“뭐.. 내일 되면 알게 되겠지 뭐. 끙! 지금이 오후 7시니까 일단 한잠 자볼까?”
지금으로써는 단지 추측밖에 할 수 없었기에 형민은 내일이면 알 수 있는 일에 괜한 심력을 투자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침대에 머리를 파묻고 열심히 꿈나라로 가는 길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빠! 손님 왔어! 오빠! 손님 왔어!”
“응? 혜..혜미야! 너...어디야? 무슨 손님?”
꿈결처럼 들려오는 혜미의 목소리에 퍼뜩 잠이 깬 형민은 잠이 덜 깬 눈으로 방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조금전의 그 혜미의 목소리가 예전에 혜미가 놀러와서 장난식으로 저장해놓은 현관 인터폰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졸린 듯 멍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쿡쿡 눌렀다.
“끙... 도대체 몇 시간이나 잔거야?”
“오빠! 손님 왔어!”
“그래..그래! 알았다.”
형민은 기브스에 쌓인 왼쪽 다리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절뚝거리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누구십니까?”
형민이 현관 인터폰을 들고 상대에게 묻자 잠시 후 약간 탁한 음성이 인터폰으로 들려왔다.
“리얼 판타지아사에서 왔습니다.”
“아...! 약속이 있었지.”
머리를 긁적인 형민이 현관문을 열어주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작업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가로 세로 20센치정도의 상자를 가슴에 안은 채로 형민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불쑥 아침부터 찾아오게 되어 죄송합니다.”
“예? 아..침이요?”
어제 7시부터 잠이 들어서 오늘 아침까지 잠잤다는 것을 깨달은 형민은 헝클어져 있을 머리를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문 밖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 리얼판타지아사의 직원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 뒤 문을 잠갔다.
“그 기계는 뭔가요?”
게임용 침대의 시트를 뜯어내고서 휴대용노트북을 선으로 이은 채 뭔가를 계속 체크하던 직원이 처음에 들고 들어왔던 상자를 조심스럽게 개봉했고 그 안에서는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듯한 마름모꼴의 기계가 나왔다. 기계의 밑 부분으로 보이는 곳에는 플러그나 선을 이을 수 있도록 20~30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기계의 외부는 상당히 미끈하게 생겨서 손잡이 따위가 달리지 않아서 직원은 그 기계를 천천히 들어내어 게임기기 안쪽에 조심스럽게 설치하기 시작했다.
“아! 이거요? 흠...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 부스터..부스터입니다.”
“부스터요?”
“예! 일단 간단한 명칭으로는 부스터고 정식 명칭은 BWB 즉 Bionic Wave Booster입니다. 쓰임새는 뭐라고 해야 하나... 일단 게임기기와 사용자 사이의 생체데이터 전송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 주면서 또 그걸 조절해주는 기능을 하는 기계이지요.”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형민은 혹시 자신의 케릭터가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가 이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이 것을 설치하는 이유가 제 케릭터와 관련이 있습니까?”
그 말에 잠시 일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던 직원은 세팅이 끝났는지 시트를 다시 원상태로 덮으면서 형민에 말에 대답해 주었다.
“맞습니다. 실은 어제 고객님께서 승급하시면서 올리신 덱스와 어질스텟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기존의 게임기기는 게임내 사용자들의 동작명령을 100프로 수행할 수 있지만, 특정 이상의 속도를 넘어서면 게임기기가 감당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처럼 저희가 따로 나와서 부스터를 달아 드리는 거죠. 솔직히 이 일도 원래는 반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지만 일단 그런 고객 분들이 나오시면 저희들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따로 업그레이드를 시켜 드리지요.”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직원이 기계의 셋팅을 마치고 일어나자 형민은 직원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하고서 그와 함께 현관으로 걸어나왔고 잠시 후 현관에 마주선 직원은 형민에게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저... 고객님께는 죄송하지만 이 부스터의 설치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에게 말씀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왜죠?”
“그건 지금 설치되어 있는 저 부스터가 일단은 300만원 상당의 고가의 물건이기도 하고, 또 무료로 업그레이드 해 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 사실이 외부로 새 나간다면 많은 유저들이 앞으로 속도쪽으로 치중하는 캐릭터 셋팅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일단 이런 돈 안되는 무료서비스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리얼판타지아사의 방침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지금까지 이 업그레이드를 하신 분들은 모두 도둑클래스였고 또 그 정도 속도에 달하려면 9계급정도 되지 않으시면 꿈도 못꿀 것이기에 별 상관은 없지만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속도에 치중하다 보면 자칫 캐릭터를 망쳐버릴 수도 있기에 저희쪽에서도 사용자들에게 기밀사항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아주시고.. 이만”
“예! 안녕히 가십시오.”
직원이 돌아간 뒤 다시 방으로 돌아온 형민은 아까 전 리얼판타지아사의 직원이 한 말들을 되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부스터까지 사용해야 할 정도의 캐릭터속도라... 현재까지 개발된 온라인 게임의 하드웨어 기술은 사용자가 게임내에서 대략 200프로까지의 동작 속도 및 연출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 수준이었다. 물론 만들기에 따라서 하늘을 날거나 엄청나게 빠른 공격을 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동작도 일단은 사용자의 뇌가 그것을 인식하고서 조절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기에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그런 빛보다 빠른 속도의 검술은 아직까지의 기술로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나마 이런 특수기술을 게임상에서 구현한 것들이 리얼 판타지아에서는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이 것들 또한 게임기기의 속도 한계치를 넘기지는 않기에 생체 신호를 비약적으로 증폭시켜 준다는 이 부스터의 능력이 상당히 궁금해 지는 형민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보면 알겠지!”
복잡한 생각은 뒤로 미루고 일단 게임을 실행해 보기로 마음먹은 형민은 게임용 헬멧을 머리에 쓰고서는 천천히 게임용 침대에 몸을 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