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얼판타지아-104화 (10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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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한편 뽑아 봅니다. [뭐 느끼기에 길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잘라보려다가 그냥 붙여서..

그리고 부활퀘스트는 약간 난이도를 하향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용이랑 맞짱은 너무 심한듯 생각되는군요.

“전원! 산개! 돌격대형!”

“전원! 산개! 돌격 대형!”

수십의 군마였다. 붉은색의 갑주들이 흡사 늑대들이 목표물을 노리는 양 살기와 긴장을 뿜으며 대열을 맞추자 선두에 섰던 인물은 오른손에 든 바스타드소드를 번쩍 들면서 크게 외쳤다.

“발도!....  돌격!!”

꽈두두두!

선두의 선 인물이 손을 내림과 동시에 일정하게 대열을 맞춘 군마들은 순간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왔다. 말위에 앉은 이들은 각기 약속이나 한 양 모두 말 옆구리에 채워져 있는 바스타드소드를 한손으로 잡은 채 뽑아 올렸고 대략 60~70명이 될 듯한 그들이 일순간에 뽑아들은 바스타드소드는 지금 그들 앞에 서있는 카모프왕국의 원정대들에게는 절망의 이름으로 다가왔다.

“아이아스의 이름으로!”

수십의 군마가 주문을 외우듯 크게 외치자 그들의 뒤편에 서있던 몇 명의 성직자들은 그들에게 축복의 마법들을 걸었고 이제는 완벽하게 빛 무리에 둘러싸여버린 붉은 갑옷의 기사들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의 빛을 뒤로 흩뿌리며 전면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며 넍을 잃고 있는 떨거지 들에게 돌진했다.

“으..으어!”

카모프왕국의 원정대 대장인 레종은 전면에서 자신들을 노리며 달려드는 붉은 갑주의 기사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연신 신음만을 삼켰다. 이미 저들에게의 저항은 무의미, 거기에다가 저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에 이미 원정대의 사기를 완벽하게 완벽하게 꺽여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레드 쉴드...”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듯  한마디를  흘린  그는 붉은 갑옷들의 가운데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한 인물을  응시했다. 카마 프라하 왕국내의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들 중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아이아스 총 길드의 레드쉴드 기사단... 그 자신도 레드쉴드 기사단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도 확인 되고 비공식적으로도 모두가 인정하는 그들의 돌격은 초무적, 마법공격에 있어서는 빌로아의 노인정 길드이고 물리 공격에 있어서는 레드쉘드 기사단! 그들이 단 한번 돌격을 감행 한 곳은 절대 다시 돌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깨끗한 마무리를 해버리는 그들, 엄청난 팀워크와 단체전 공격력을 자랑하는 그들, 어떤 이는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거대한 붉은 창, 붉은 물결... 공격에 있어서는 거침없는 파워를, 전술운용에 있어서도 최강을 달리는 그들이었다. 너무나 강한 그래서 한없이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에 그들은 붉은 갑옷을 착용한다고 한다. 그 누가 자신들을 발견해도 상관없다. 자신들을 공격해도 상관없다. 대신 자신들에게 검을 들이 댄 그 만큼의 댓가는 확실히 되돌려 준다.

토벌대의 대장은 자신들을 도륙하기 위해 달려오는 레드 쉴드기사단의 박력에 눌려 이제 자포자기에 빠졌다.   저들의 존재 이유는 처음 자신이 원정대를 맡을 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기도 했다.  카마 프라하 왕국의 아이아스 길드는 당시 수도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잃고 카마디스 블루로 쫓겨 내려간 상태였다. 그렇다면 레드 쉴드들도 분명히 자신들의 길드를 지원하기 위해서 이곳을 떠났으리라. 원정을 성공시킨 후에 따라올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부러움의 눈빛을 상상하며 그는 흔쾌히 그 요청을 수락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데이모스에 당당히 서 있었다. 아니 당당히 서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검은 자신들을 도륙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보였다.

“끝이다.”

후두두두둑!!

“크아아악!”

산개 대형으로 원정대로 돌진한 레드 쉴드 기사단은 원정대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며 바스타드소드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을철 추수를 하는 양 레드쉴드가 지나갈 때마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하늘 높이 날아가는 원정대 인원들이 팔다리와 목 그리고 하얀빛들... 단 한차례의 걸림도 없이 그들은 60여명에 달하는 카모프 왕국의 원정대를 단 한번의 돌격으로 쓸어버린 뒤 뭔가 양에 차지 않는 듯 대열을 회전시켰다.

“전원 경계”

“전원 경계”

대장인 듯한 이의 명령이 떨어지자 각자 그 명령을 외치곤 바스타드소드를 옆으로 늘어트리며 단 일인 이라도 살아남았다면 모두 주살해 버리겠다는 양 푸르륵 거리면서 경계하던 군마들은 잠시 후 대장의 외침에 따라 검을 안장 옆 칼집에 끼워 넣으며 대장 쪽을 바라보았다.

“납도후! 휴식하라”

“납도!”

레드 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푸른 머리의 카이엔은 레드쉴드 기사단에 휴식을 명한 뒤 그 자신도 땅으로 내려서서 땅바닥에 털푸덕 하고 앉았다.

“아이구! 죽겠다.”

“대장! 부하들이 봅니다.”

‘아! 보라고 그래!“

다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는 대장을 바라보는 부기사단장인 마사무네는 한숨을 내쉬면서 카이엔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넌 왜 앉냐?”

“저도 피곤합니다. 대장”

“그러던가...”

다른 단원들은 이미 그 모습에 익숙한 듯 서로 삼삼오오 모여 피식거리면서 자신들의 상급자들의 행태를 수군거렸지만 정작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두 덩치큰 남자들은 별 상관 없다는 듯 땅바닥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 아이아스 상황은 어떠냐?”

아무리 소속 길드라 하지만 길드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카이엔이 옆에 앉아서 메시지를 하고 있는 듯한 마사무네에게 묻자 잠시 후 마사무네는 볼을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제가 알리 없잖아요. 그 일이 있은 후로 암묵적으로 우리는 아이아스하곤 갈라진 거라구요. 물론 지금도 구호로는 아이아스를 외치고 있지만 그것도 조만간 바꿔야죠. 아까 못봤어요? 이제 왠만한 단원들도 거의 다 알고 있어서 아이아스 구호도 재대로 안 외친다구요.”

꽤나 키가 크지만 상당히 미끈하게 빠진 몸에 배를 감싸는 갑주가 없는 두꺼운 플레이트 메일을 걸친 길다란 푸른 머리를 휘날리는 미중년의 카이엔을 쳐다보며 그래도 이 레드쉴드에서 상당히 단정한 외모를 자랑한다는 마시모토는 다른 대원들에게 아이템 수집을 명한 뒤 대장을 흘겨보면서 대답했다.

“끙...그렇지.”

카이엔은 볼을 긁으면서 팔베개를 하곤 뒤로 누워버렸다. 아이아스의 길드마스터와 갈라선지 게임 시간으로 어언 5달이나 지났다. 뭐, 별로 후회는 없었다. 이미 그 일은 자신이 길드마스터보다 더 명성을 얻고 또 레드쉴드 기사단이 아이아스 총 길드 전투력의 30퍼센트를 넘어가면서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무릇 한 조직에서 어떤 부분 하나만 두드러질 정도로 강하다는 건 모난 돌맹이와 같은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길드의 가장 강한 자랑거리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역시나 길드마스터는 자신과 레드쉴드 기사단이 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 예로 말을 이용한 돌격을 주 무기로 삼는 레드쉴드기사단을 이 모래사막밖에 없는 변방의 사막도시 데이모스로 보낸 것부터가 그 증거였다. 물론 수도와는 틀리게 매일 계속되는 카모프왕국과의 국지전으로 인해서 즐거운 일들이 무궁무진 했지만 그 덕분에 자신들은 돌격기사단의 주 무기인 렌스를 버리고서 전투에 임하여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바스타드소드를 주 무기로 삼으려 한동안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마사무네! 데이모스네에 토박이 길드들은 요즘 어떠냐?”

거의 목까지 차오를 듯 길다란 바스타드소드를 밥상머리에서 젓가락 돌리듯이 붕붕 돌리며 땅에 이상한 글씨를 쓰던 카이엔이 땅바닥에 그린 우스꽝스런 용 그림에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옆에 앉아 말안장에서 휴대용 찻잔세트를 꺼내들고선 차를 마실 준비를 하는 마사무네에게 묻자 마사무네는 안장 안쪽 깊숙한 곳에 소중히 넣어둔 찻잎 주머니를 꺼내들고는 카이엔에게 말했다.

“그것보다 아이아스길드쪽의 그 제안은 생각 없으십니까? 어떻든 지간에 일단 소속길드는 소속길드인데...”

“생각없어. 그 꼴통들은... 도둑 한명한테 우롱 당해서 수도에서 쫓겨나다니... 그 전이라면 한번 정도 고민해보겠지만, 정이 똑 떨어졌어. 우린 이 데이모스에서 엉덩이나 살풋이 붙이고서 자리 잡으면 만사 땡이야! 어이! 필그람! 그거 가져와봐!”

카이엔이 레드쉴드의 돌격에 휩쓸려버린 원정대가 있던 자리에서 아이템을 수거하고 있던 대원 한 명에게 손짓을 하자 지명당한 필그람은 방금 집어든 큼지막한 순금 투구를 들고선 카이엔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습니다. 대장!”

“그래!”

꽤나 비싸 보이는 듯 화려하게 장식된 투구를 들고선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카이엔은 큰 덩치과 어울리지 않는 웃기지도 않는 승리포즈를 지은 채 마사모토에게 외쳤다.

“이정도 수확물들이면 떵떵거리면서 먹고 살겠지? 하하하!”

“어련 하시겠수.”

한심한 포즈가 자랑스럽다는 듯 단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 포즈를 그대로 시연하고 있는 푸른 머리의 멍청이를 바라보며 마사모토는 생각에 잠겼다. 이미 데이모스내의 상당한 세력을 지녔다는 길드들은 이미 자신들의 '데이모스에 엉덩이 끼워 넣기 작전‘에 절반정도 잠식당했다. 몇 칠 전까지 상당한 반항기를 내포하면서 사사건건 장난질을 치던 테시미어 길드도 길드 마스터인 그 꽃미남자식을 게임오버 시키고 주 사냥터였던 용의 계곡을 접수함으로써 잠잠해졌다. 뭐, 요즘 들어서 그 길드마스터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그 밑 참모진으로 있다는 여자들이 발 벗고 뛰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슬슬 장난을 쳐주고야 있지만 서도 그런 광신녀들에게 지금 쏟고 있는 것보다 더욱 더 자신의 신경을 소모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히... 히히히”

자신도 엽기스런 기사단장에 버금가는 꼴통이라는 것을 자랑하듯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주위로 펼쳐진 데이모스의 전경을 둘러보던 마사무네는 간간히 머릿속을 울려오는 데이모스 끄나풀들의 보고를 들으면서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그 광신녀들을 잡을 기회가 왔단 말이지. 흐흐...”

몇 주 동안 자신들의 골치를 썩이던 그 광신녀들이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것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무서워 슬금슬금 도망다니던 용의 계곡으로 ‘드래곤 아이’를 구하겠다고 떡 하니 나타나시겠단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모한 계획을 도출해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들이 필드로 나온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 재수없는 잔머리의 여왕 이페, 얼음 귀신 검귀 엘리오네스, 고양이 마니아 엘르, 원조 로리 실키...

“이번에는 확실하게 지워주지!”

어둠의 오오라를 내뿜으며 중얼거리던 마사무네는 잠시 후 찻물이 잘 우러나온 듯한 찻잔을 들고선 향을 음미하며 행복한 표정에 빠졌다.

“사이토씨! 사이토씨? 어디 계세요?”

조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사이토가 보이지 않자 시장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사이토를 찾던 가이아는 아무리 불러도 사이토가 나타나지 않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는 조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서 같이 시장길을 걷고 있었다. 내일 있을 상당히 고급 퀘스트일도 있고 또 대장간에 들러서 할 일이 조금 있다는 사이토였기에 가이아는 즐거운 마음에 사이토와 팔랑거리며 쇼핑을 나왔었다. 그런데 자신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사이토는 완벽하게 그녀의 옆에서 증발해 버렸다.

“사이토씨!”

“응? 왜?”

갑자기  들려오는 사이토의 목소리에  가이아는 황급히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그곳에서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사이토를 발견하고는 그 큰 눈에 눈물을 글썽하며 사이토의 손을 붙잡았다.

“어디 갔었어요!”

“뒤에 있었는데...”

“못 봤다구요!”

“끙...”

신음을 흘리면서 머리를 긁적인 사이토는 조금 전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방금 전 그는 잠시 옆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특이한 모양의 단검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리얼 판타지아에서는 기존에 단검들만이 아니라 그 단검들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드를 바꾸어 붙이거나 칼날의 곡선을 조절, 또는 다른 단검들의 특징을 합성할 수도 있었기에 이처럼 특이한 모양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사이토의 눈을 끈 단검들은 전혀 실용성을 무시한 듯한 화려하면서 복잡한 가드라던가 이미 단검이기를 포기한 듯 긴 손잡이에 아주 짤막한 검신을 단 듯 한 것이었기에 이 상당히 엽기적인 디자인의 단검들은 사이토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단검들은 상당히 낮은 듯한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허리를 굽히고서 조용히 그것들을 감상하고 있던 사이토였다. 그런데 가이아의 외침소리에 힐끔 쳐다보니 가이아는 자신이 있는 곳을 포함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짚이는 곳이 있었기에 사이토는 한숨을 내쉬면서 가이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마, 내가 도둑이라서 눈에 보여도 안 보이는 듯 한 걸 거야.”

“네?”

“도둑이기 때문이라고 도둑... 전에야 네가 나보다 계급이 훨씬 높으니까, 잘 보였지만 이제 9계급이 되었으니, 잘 안 보이는 거야. 음... 쉽게 말하면 존재감이 거의 없다 라고나 할까?”

“존재감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이아의 손을 끌고서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사이토는 다시 한번 9계급이 된 뒤로 생긴 또 다른 고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일단 사람이 많은 길을 다닐 때는 예전보다 더욱 더 사람들을 조심해야 했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사람들은 자신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채 사이토 쪽으로 부딪혀 왔고  또 자신과 면식이 상당한 가이아도 요즘들어 가끔씩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한번은 가이아에게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요즘 들어 자신의 얼굴이 모호하게 생각이 잘 안 난다는 대답... 9계급으로 승급하고 나서 달라진 생활 전반으로 인해 요즘 골치가 아파오는 사이토였다.

“스킬이 사람들의 기억까지 조정할 수 있나?”

“네?”

“아..아냐!”

혼잣말하는 사이토에게 가이아가 넌지시 묻자 사이토는 손사래를 친 뒤 머리를 가리고 있는 후드를 뒤로 벗겼다.

“후아!”

정말 오랜만에 벗어보는 후드였다. 거의 잘 때 빼고는 항상 머리를 덥고 있던 후드였기에 지금처럼 후드의 머리부분만을 등쪽으로 넘긴 사이토는 머리카락 사이로 솔바람이 스며드는 느낌과 볼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꽤나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물론 게임이라서 그런지 머리카락의 길이는 자신이 처음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정한 컷트머리 였지만,  상쾌하게 밀려오는 기분에 사이토는 뭔가를 생각한 듯 가이아에게 말했다.

“가이아”

“네?”

사이토가 후드를 벗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후드를 벗고 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사이토를 빤히 쳐다보던 가이아는 사이토가 자신을 부르자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나 평소에는 후드 벗고 다닐까?”

난데없이 후드를 벗어 보면 어떨까하고 가이아게게 제안하자 가이아는 잠시간 사이토를 빤히 쳐다보다가 반문했다.

“왜요? 그거 벗으면 그 에테르스킬인가 하는 것 안 되잖아요.”

“아! 이거 머리부분정도는 벗어도 스킬엔 상관없어. 단지 그 존재감을 희박하게 만드는 건 좀 줄어들겠지. 뭐... 대신 머리카락이라도 길게 만들어서 가리면 되지 않을까?”

사이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가이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이토의 머리카락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뭔가 상상이 끝났는지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사이토의 팔에 매달렸다.

“그럼! 머리 기르러 가요!”

“아? 응, 그래”

항상 자신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관심을 보이며 활기를 띠는 가이아를 바라보며 사이토는 가이아가 이끄는 대로 데이모스안의 헤어샵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잘났다고 생각해.“

“끙”

마사무네는 헤어샵 안에 놓인 의자에 누워 한참을 자화자찬중인 카이엔의 뒤에서 카이엔 모르게 살포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주며 공손히 대답했다.

“지당하십니다.”

“그 손가락 잘라달라고 시위하냐? 하긴 너는 그 머리만 있으면 되니, 이따가 네 몸에 붙은 것 중 가운데 붙은 건 모조리 잘라주지.”

“힉!”

그 무한한 왕자병에 경의를 표하던 손가락을 황급히 뒤로 감춘 마사무네는 카이엔에게 실없는 웃음 한 조각을 던져 준 뒤 헤어샵의  창가 쪽에 마련된 의자로 다가가 엉덩이를 붙였다. 널찍하고 둥근 형태의 돔형태로 제작된  헤어삽은 리얼 판타지아에서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세련되고 현대적인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차피 원래 설정 상으로는 헤어샵 따위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 자체에서부터가  모순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리얼한 판타지를 목숨 걸고 추구한다 해도 참신한 외모의 변화를 바라는 유저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는 리얼판타지아사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헤어샵은 떡 하니 생겨버렸고 계획에 없던 새로운 가게로 인하여 리얼판타지아 곳곳의 헤어샵들의 경영은 100프로 유저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게임이라는 특성을 최대한 살려 헤어샵의 한쪽 벽에는 머리카락의 길이를 자기 마음대로 늘일 수 있는 길고 큰 반 원통형으로 생긴 일명 ‘헤어 러너’ 들이 붙어 있었기에 이 곳을 찾는 것은 꼭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만이 아닌 유전학적 또는 불의의 사고로 반짝 대머리를 가진 사람들이나 이미 현실에서는 더 이상 머리를 손질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본 사람들도 꽤 많이 찾는 곳이었고 또 현실에서 헤어 디자이너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취미로써 배우는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는 곳이었다.

찰칵! 찰칵!

“어이! 늙다리 아저씨! 방해되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

카이엔은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를 손질하고 있던  미용사아가씨가 감히 대 레드쉴드의 기사단장인 자신에게 투덜거리자 감고 있던 실눈을 살짝 뜨고서는 그 버릇없는 미용사를 째려 보았지만 곧이어 눈을 질끈 감으면서 목을 경직시켰다.

“어? 째려보면 어쩔 건데? 기분 나빠? .너 데이모스에서는 어디서든 PK 가능인거 몰라? 확! 그냥!”

카이엔은 머리 위쪽에서 비아냥거리듯 들려오는 미용사아가씨의 말에  엿 되버렸다는 말이 목 위쪽까지 차올랐다가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목에 드리워진 가위로 위장한 흉기를 손으로 살포시 치우며 대답했다.

“하하, 설마 레드레진에게 그런 불경한 마음을 품겠소이까.”

“암! 암! 그래야지.”

카이엔은 자신이 레드레진 아니 그녀의 별명인 ‘붉은 마녀’ 혹은 ‘빨간 머리’로 더 잘 통하는 성깔 좋기로 유명한 레드레진에게 머리를 맡긴 것을 떠올리면서 입을 다물었다. 물론 다른 사근사근한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길 수도 있는 것이지만 레드레진은 그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깔에 어울리는 머리손질 솜씨로써 헤어샵에서 가장 유명했기에 카이엔은 항상 헤어샵에 들릴 때마다 그녀를 호출했고 그 결과는 언제나 만족이었다. 하지만 다른 도시에 있는 헤어샵들과는 틀리게 데이모스는 도시 안에서도 PK가 가능했기에 가끔 그녀에게 머리손질을 부탁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서 해야 할 때도 종 종 있기에 그녀의 성깔에서 튀어나오는 살인 예고 정도는 가끔씩 무료해 질 수 있는 일상에서의 자극제로 애써 치부하는 카이엔이었다.

“더요! 더 길게! 더더!”

눈을 감고서 머리 쪽에서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박자삼아 흥얼거리던 카이엔은 자신의 옆 헤어러너가 있는 쪽에서 웬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궁금함에 고개를 슬쩍 돌려서 쳐다보았다. 헤어러너 원통형 관 안쪽에 서서 위에서 내리쬐고 있는 불빛을 받으며 머리카락을 쑥쑥 늘리고 있는 한 인간 남자와 헤어러너 옆에 서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그 남자를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고 있는 소녀를 슬쩍 쳐다보면서 그냥 헤어샵에 들린 한 닭살커플이려니 했던 카이엔은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귀가 번뜩 하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그쪽을 쳐다보았다.

“꺅! 사이토씨! 더 길게!”

“그... 그만!”

이미 어깨를 넘어서 허리 쪽에 닿기 시작하는 검은 머리카락을 XX 씹은 눈길로 쳐다보던 사이토는 더 이상 가이아의 열화와 같은 바람을 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오자 가이아의 눈길을 애써 피한 채 헤어 러너에서 튀어 나왔다.

“가이아! 깎자!”

“사이토씨! 조 조금만 더!”

“끙!  이런 머리로는 전투도 못하겠다. 깎아야 돼!”

“힝!”

가이아의 아무리 평소에 안하던 애교까지 떨어가며 사이토에게 매달렸지만 전혀 실용성 없게 단지 길기만 엄청나게 길어져 버린 머리카락에 열 받아 버린 사이토는 카운터 쪽에 머리 손질을 부탁했다.

“잘 어울린단 말이에요!”

“불가!”

가이아의 말을 한마디로 일축시킨 사이토는 앞쪽에 설치된 큰 전신거울에 머리카락을 비춰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리얼 판타지아의 게임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게이머의 얼굴이 게임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 종족의 특성들이 다르듯이 얼굴이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엘프 종족의 경우에는 귀가 길어지면서 얼굴이 전체적으로 작아지고 또 체형이 미형이 되면서 팔다리도 조금씩 길어지는 변화를 보인다. 또한 드워프의 경우에는 얼굴이 투박하게 변하면서 팔다리가 짧아짐으로 솔직히 리얼판타지아에서는 여성 드워프를 찾기는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변화가 유일하게 그대로인 종족이 바로 인간이었으니, 지금 거울에 비친 사이토의 모습은 현실에서의 평소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물론 지금 그가 고민하고 있는 이 치렁치렁한 긴 생머리를 재외하고는...

“가슴까지만... 가슴까지만!”

주문처럼 가슴까지만을 외우며 거울을 응시하던 사이토는 눈을 가리고 있는 폭포수 같은 검은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관찰했다. 그리 빼어나게 잘생겼다곤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얼굴형이야 상당히 잘 빠졌다고 할 수 있었지만 좀 낮다고 할 수 있는 코와 깊고 깊은 음영으로 잘못하면 인상더럽게도 비치는 눈, 그리고 조금 두껍다고 할 수 있는 입술은 그의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조금 낫다고 할 수 있는 건 혜미가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속 쌍꺼풀이 진 크고 맑은 눈뿐... 거울을 쳐다보며 얼굴을 쓸어보던 사이토는 길기도 긴 머리카락을 힘들게 주섬주섬 끌어 모아 앞쪽으로 모은 뒤 미용사를 기다렸다.

“사이토라...”

카이엔은 사이토라는 말에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신의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사이토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아니겠지.”

카이엔은 설마 그와 같은 인물과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나겠냐 라는 생각에 창가 쪽에 앉아 바깥쪽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구경하고 있는 마사무네에게 넌지시 메시지를 보냈다.

[헤이! 마사무네씨!]

[왠일이십니까! 대장마마!]

마사무네가 아까 자신이 한 말로 삐졌는지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카이엔은 이마에 살짝 십자표시를 그은 뒤 메시지를 이었다.

[저번 네 녀석이 테시미어 길드에 박아 놓았다던 끄나풀이 말했던 미스틱 핸즈의 본명이 사이토 맞냐?]

[예! 그런데 어떤 일로?]

뭔가 심상치 않은 대장의 목소리에 장난스런 목소리를 푼 마사무네가 넌지시 묻자 카이엔은 자신의 옆에 앉은 사이토를 조심스럽게 가리키면서 마사무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 옆에 녀석 좀 살펴봐라.이름이 사이토라는구나]

카이엔에 말에 마사무네는 놀라기에 앞서 정신을 수습하고는 미스티핸즈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주 조심스레 그를 관찰했다. 현재까지 세간에 드러난 미스티핸즈의 실력은 적게 잡아도 8계급의 로그마스터.. 그 정도 계급들의 무서움에 대해서는 자신의 대장을 포함한 자신이 알고 있는 몇몇 유저들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대장의 옆에서 머리를 손질할 준비를 하고 있는 미스티핸즈를 바라보는 마사무네의 눈은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가짜 아닐까?”

확실히 가짜라는 것도 상당한 심증이 갔다. 물론 미스티 핸즈라는 인물이 아이아스길드를 포함한 몇몇 길드들에게 몇 가지 은원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사무치는 원한에 배알이 꼴린 그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싶지 않았기에 ‘미스티 핸즈’를 흉내내는 인간들은 거의 없었지만, 또 사람들 중에는 그런 것을 즐기는 인간들도 있었기에 가짜라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문제였다.

“흐음...”

자신들이 끄나풀을 박아 놓은 테시미어 길드는 그 성격상으로 볼 때 전투 보다는 정보 길드에 가까웠다. 특히나 그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보력에 자신들도 혀를 내두르며 끄나풀을 박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끄나풀이 보내온 정보는 꽤나 예전 것으로써 단지 ‘미스티 핸즈’ 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본명이 사이토라는 것 정도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끄나풀에게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아직 접속하지 않았는지 대답조차 없자 마사무네는 머리를 긁적이며 카이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마사무네의 메시지에 카이엔은 사이토를 계속 곁눈질 하며 잠시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가 곧 이어 눈을 장난스럽게 뜨고는 입꼬리를 쭈욱 올렸다.

“뭐... 실력을 보면 알겠지.”

빠악!

“어디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지랄이야!”

잠시 레드레진을 잊은 카이엔의 실수였다.

“가이아! 괜찮아?”

“음, 대단해요! 굉장해요!”

“끙, 감탄사치고는 독특하구나.”

뭔가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가이아가 엄지손가락을 펴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사이토는 자신의 머리를 손질해 준 엘프청년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은화 하나를 건내준 뒤 거울속의 자신을 살펴보았다.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정말 엄청나게 대폭 삭감해 버려서 어깨 바로 아래까지 삭둑 잘라버렸고, 앞머리는  입술 부분까지 자른 뒤 양 갈래로 내려서 대충 얼굴의 반쪽정도만 보이게 손질했다.

“흠... 좀 불편하군.”

고등학교 때 잠시 미친척하고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러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어깨 아래까지 기른 적은 처음이었기에 찰랑거리며 등을 덮는 머리카락에 사이토는 고개를 갸웃 한 뒤 손으로 머리를 쓸어 보았다.

“그, 눈썹도 조금 다듬어 보시지요?”

“예?”

자신의 머리를 손질해 주었던 엘프청년이 사이토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자 사이토는 짙지만 조금 깔끔하지 못한 자신의 눈썹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면서 엘프청년에게 물었다.

“눈썹도 변형이 가능합니까? 제가 알기로는 눈썹을 다듬을 수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인데요?”

사이토의 물음에 엘프청년은 너털웃음을 지은 뒤 뒤춤에 꽂아 놓았던 손바닥 크기의 길쭉한 검은색 깡통처럼 생긴 도구를 꺼내어 사이토에게 보여 주었다.

“유저들이 개발해서 리얼판타지아사에 승인을 받은 변형 프로그램입니다.”

“아...”

엘프청년의 말에 사이토는 그 물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유저들이 개발하고서 리얼판타지아사에 승인을 받은 변형 프로그램, 일명 매크로라고도 불리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법적으로 유저들이 제작한 것이었다. 물론 제작사측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의 사용이 게임 전반 데이터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에 발견 즉시 계정삭제 또는 영구 블록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막아 버렸지만, 몇몇 프로그램들은 그대로 승인을 받아 게임 내에서 쓰이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용 기술 로써 지금 쓰이고 있는 미용기술도 그  시작에서의 프로토 타입은 지금 사이토가 손에 쥐고 있는 이런 투박한 물건으로 표현 되었고 그 당시에는 단지 그 물건을 머리카락 부분에 가져다 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예”

다시 의자에 앉아 눈을 감자 이번에는 아까 머리카락을 자를 때와 다르게 별 다른 소리 없이 눈썹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이마를 타고 흘렀고 곧 이어 엘프청년의 끝났다는 말에 사이토는 의자에서 일어나 거울을 확인했다.

“화아! 사이토씨 멋져요”

가이아가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사이토의 얼굴을 정신없이 쳐다봤지만, 사이토는 왠지 가이아의 말과는 틀리게 얼굴을 찌푸리며 거울을 쳐다보았다.

눈썹이 약간 가늘어지면서 미려하게 뻗고 지저분했던 주변이 말끔해지자 전체적으로 얼굴 인상이 확 펴져 인상이 밝아졌지만 되려 깊은 눈동자와 머리카락의 복합작용으로 풍기는 이미지는...

“으... 웬 색기를 흘려... 기생오라비잖아!”

혜미가 맑다고 칭찬해 주던 큰 눈망울은 이제 색기를 폴폴 날리는 눈매로 변해서 거울속의 사이토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런 사태를 일으킨 그 엘프청년을 꼬나보기 위해서 고개를 돌린 사이토는 이미 엘프청년이 뭔가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튀어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 쉬었다.

“아! 귀찮아. 그냥 이렇게 살지 뭐. 나가자 가이아! 도구점에서 끈이라도 하나 사서 머리를 묶어야 겠다.”

“네!”

거의 환골탈태의 수준으로 바뀌어 버린 사이토의 얼굴이 맘에 드는지 가이아는 밝게 웃으며 사이토를 따랐고 사이토는 머릿속에 기억 된 도구점의 위치를 생각하며 헤어샵의 문을 나섰다.  슬슬 정오가 다 되어 가는지 문 밖으로는 꽤 많은 수의 유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헤어샵에 들어올때 보았던 끝장나게 뜨거워 보이는 태양이 다시금 사이토의 눈을 간지르자 문을 열고 나가려던 사이토는  손을 들어 햇빛을 막은 뒤 눈쌀을 찡그리곤 잠시 후 가이아의 손을 이끌고서 문을 나섰다.

“흠! 아가씨! 당신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습니다. 부디 저에게...”

순간 사이토의 옆쪽에서 들려오는 한마디...

“싫어요!”

헤어삽을 걸어 나오던 사이토는 갑자기 문 옆쪽에서 가이아를 노린 듯한 손과 함께 느끼함이 줄줄 흐르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발끈 하는 마음에 그쪽을 쳐다봤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이 예전에 가르쳐 준 ‘작업남 거절하기 요령’을 성실히 구사하며 자신 쪽으로 바짝 붙어버리는 가이아를 보며 사이토는 잘했다는 듯이 손으로 가이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훗! 어쩔 수 없는 골키퍼의 등장인가? 그럼 하는 수 없지.”

가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사이토는 옆에서 들려오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귀신 씨나락 까먹다가 사래 들리는 소리에 잠시 가이아 칭찬의 시간을 접고서 방금 전 가이아에게 수작을 걸려던 이를 노려보았다. 상당한 장신인 듯 사이토보다 거의 20센치는 더 커보이는 호리호리한 키에 가슴과 어깨에만 두껍게 걸쳐진 두꺼운 붉은 플레이트 메일과 가슴에 새겨진 음각된 방패는 사이토에게 상당한 무게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쪽으로 보이는 긴 푸른 장발을 휘날리며 입에는 방금 붙인 듯 담배를 꼬나물고서 장난기 섞인 눈을 한 채 수염이 거뭇거뭇 보이는 턱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는 미중년의 얼굴은 정말 한번 정도 그어주고 싶은 정도로 넉살이 덕지덕지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뭐지?”

일단은 경계의 의미에서 가이아와 그 미중년의 사이를 손으로 가로막은 사이토가 눈을 빛내며 묻자 그 정체불명의 중년남은 어깨를 으쓱이며 사이토에게 넌지시 말했다.

“훗! 눈치 없는 친구로만... 당연히 네 여자친구를 걸고 나랑 한판 뜨자는...”

웬 뜬금없는 여자친구며 또 가이아를 상품으로 걸고 한판 하자는 말에 발끈한 사이토는 옆구리의 걸린 하르페와 이어드대거를 쥐어 그어버리려고 했지만 순간 중년남의 뒤쪽에서 그의 머리를 향해 힘차게 솟구치는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조..조심!”

“응? 케엑!”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미중년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곤 빠르게 사라져가는 정체불명의 물체에 놀란 사이토는 가이아의 허리를 붙잡고 순식간에 뒤편으로 빙글 돌면서 미끄러져 나와 이어드 대거를 뽑아 들었지만 곧 이어 들려오는 한 여성의 박력있는 폭갈 같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카이엔! 감히 우리 헤어샵 앞에서 불한당 같은 짓을 하려 하다니! 죽.어!”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이 얼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길게 기른  큰 눈을 부리부리하게 부릅뜬 레드레진이 양 손을 머리위로 해서 수직으로 내리 찍으려는 포즈로 카이엔을 노려보자 머리가 띵한 듯 비틀거리던 카이엔은 뒤편에서 들려오는 레드레진의 으스스한 목소리에 황급히 몸을 옆으로 굴리려 했다. 하지만 레드레진은 가볍게 웃음을 진 뒤 카이엔을 따라 몸을 날리며 양손에 쥐고 있던 그것으로 카이엔의 뒤통수를 정통으로 후려갈겼다.

뿌어어어어억!

전혀 예사스럽지 않은 뭔가가 함몰되는 듯한 소리가 카이엔의 뒷통수에서 터져 나오며 붉은 안개가 ‘찌익!’ 하고 공중에 비산하자 사이토는 도저히 가이아에게 보일 장면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이아의 눈을 가로막으며 그  잔인한 살육의 현장을 노려보았다.

“저, 저건!”

사이토는 보았다. 레드레진이 땅속에 머리를 쑤셔 박고 있는 카이엔의 엉덩이에 한쪽 발을 올리며 자랑스럽게 들어올리는 검은 물체를... 그 저주받은 듯한 거무튀튀한 물체는?!

“솜...솜망치?!”

솜망치였다. 밀레나가 심심하면 꺼내들어 휘두르던 그 저주의 레어 아이템! 평소에는 상당히 다소곳하고 사근사근한 밀레나가 손에 쥐기만 하면 성격 인격 다 버리게 만드는 그 저주의 아이템, 물론 사이토를 제외한 ‘스틱스의검’회원들이라던가 그녀의 오빠들은 그녀의 본 성격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지만 사이토는 아직 콩깍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기에 이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각설하고 레드레진의 손에 들린 일명 여성유저 전용의 절대 죽지 않는 옵션을 지닌 솜망치를 바라보는 사이토는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슬금슬금 물러서고 있는 자신의 발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홍염... 레드레진! 내 일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소만!”

불시에 뒤통수를 허용하여 땅바닥에 머리를 매다 꽂혔던 카이엔이 열받은 표정으로 부스스 일어나며 그녀의 또하나의 별명인 홍염까지 대면서 으르렁 거리자 레드레진은 잠시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금 눈을 사납게 찡그리며 카이엔에게 쏘아 붙였다.

“명색이 레드쉴드의 기사단장이시라면 이런 백주 대낮에 저런 연약한 소녀를 희롱하는 짓은 하지 않는게 보통 아닌가요?!”

열 받아 버린 카이엔이 예전과 같은 장난스런 어투와는 다르게 진중한 어조로 레드레진에게 말하자 그녀는 안색을 굳히면서 카이엔에게 대답했다. 물론 지금 상황이 그녀가 원했던 그런 상황은 아니었지만 왠지 가슴속에 차오르는 반발심에 레드레진은 눈가에 조금씩 눈물이 맺히면서 카이엔을 쏘아보았다.

“ 내가 무슨 일을 하던지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윽윽!”

카이엔과 레드레진이 설전을 벌이는 사이 이미 사건의 관찰자로 밀려나 버린 사이토와 가이아는 멀뚱히 서서 그 두 남녀의 말싸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하곤 사라졌고 두 남녀의 설전은 뒤이어 달려온 마사무네의 중재에 의해서 끝을 맺었다.

“미스티 핸즈는?”

“구경하다가 갔습니다.”

“끄응!”

한심하다는 듯이 한쪽 눈 꼬리를 올리고서는 자신을 쳐다보는 마사무네의 눈길이 자신도 부담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 신음을 삼키던 카이엔은 잠시 등에 매어 있는 바스타드소드의 손잡이를 쓰다듬다가 침중한 어조로 마사무네에게 물었다.

“그들의 현재 위치는?”

마사무네의 성격이라면 당연히 꼬리를 붙였으리라 생각한 카이엔은 마사무네에게 미스티 핸즈의 위치를 물었지만 마사무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만약을 생각해서 4개의 꼬리를 붙여보았지만, 너무 빠르게 이 곳을 이탈하는 바람에 모두 놓쳤다고 합니다. 보고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의 사이를 거의 평지 뛰어가듯이 해서 도저히 쫓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에? 말도 안되는 소리!”

자신이 가장 믿는 레드쉴드 기사단의 어쌔신들이었다. 그것도 모두 7계급에 해당하는...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길 기사단이라고 하면 기사클래스들만이 있을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물론 모든 공격에 있어서 물리공격이 주를 이루기에 마법 클래스나 소환 클래스는 없었지만, 기사단이 전 후 척후와 함께 함정설치나 요인암살을 위해서 도둑클래스들은 필수 불가결이었고 또한 기사들에게 신성마법을 걸어줄 성직자들과 주가를 연주해 줄 바드들은 레드쉴드 기사단을 이루는 또 다른 주축이었다. 그런 그들 중 어쌔신 3명이 놓칠 정도의 인물이라면...

“어떤 놈인지 몰라도 굉장한 녀석이군. 꼭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그것보다 그 일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가?”

미스티핸즈로 인해 혼잡해진 머리를 감싸고 앉은 카이엔에게 마사무네가 조용히 묻자 카이엔은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한 어조로 마사무네에게 말했다.

“테시미어 길드의 4인방이 내일 용의 계곡쪽으로 나온다는 믿을 만한 정보입니다.”

“끙..그래! 그 골치아픈 여자들이 있었지.”

이페들을 이야기 하는지  손으로 턱을 감싸 쥐고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던 카이엔은 잠시 후 두 손을 탁하고 치며 마사무네에게 말했다.

“웬만하면 적당히 몇 명 추려서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 4인방의 잔머리를 얕보면 안되겠지? 정말 밥맛 떨어지는 여자들이야. 하는 짓도 열 받게 하는 짓들뿐이고...”

일단 처리방안을 생각한다고 생각에 빠진 카이엔이었지만 생각할수록 계속 떠오르는 재수 없는 기억들의 하모니들뿐이었다. 자신들이 처음 이곳에 발을 붙일 때만 해도 그들은 별달리 다른 길드들을 손 댈 생각이 없었다. 단지 수도에서 밀려나 데이모스로 와야 했던 중앙 길드에 대한 울분과  새로운 사막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 스트레스를 카모프왕국 원정대씨들에게 모조리 쏟아 부은 것이 죄라면 죄일 뿐... 처음에는 좋았다. 레드쉴드는 모든 유저들에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카모프 왕국의 원정대 또한 훌륭히 물리쳐 갔다. 하지만 그들의 명성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들을 시기하는 길드들은 점차 많아 지기 시작했고 그런 길드들의 불만들을 이리저리 규합하여 자신들을 몰아내려 했던 것이 바로 테시미어 길드였다.

“마사무네! 내일 그 곳으로는 우리 레드 쉴드 기사단 전원이 소풍간다. 뭐... 매복이라도 있다면 그 것 또한 재미있겠지.”

“넵! 대장”

카이엔이 마사무네에게 명령을 내린 다음 근처에서 쉬고 있을 레드쉴드 기사단쪽으로 발을 옮기자 마사무네는 눈을 예리하게 빛내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평소에는 장난끼가 가득하고 무척이나 가벼워 보이게 행동하는 대장이었지만, 가끔씩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카리스마는 지금까지 레드 쉴드 기사단을 그 험난한 시간 속에서 잘 이끌어 나가는 진정한 힘이었다.  카이엔이 일단 전원출정이라고 했지만 진짜로 전원이 우루루 몰려갈 경우 테시미어길드의  그 4인방들이 눈치채고서 몸을 사릴 수 있었기에 마사무네는 레드쉴드의 각 조장들을 메시지로 소집하며 눈을 빛냈다.

다음 날 아침 사이토는 매우 평온하다고 할 수 있는 아침을 맞았다. 눈을 뜨자 천장에 아로새겨 진 기하학적 문양도 보기 좋았고, 옆으로 탁 트인 창문 밖으로는 조금 강렬하나마 따스해 보이는 햇살이 방바닥에 비추고 있었다.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모포의 감촉에 다시금 베개로 머리를 파묻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약속이 있었기에 사이토는 잠시 머뭇거리며 이불을 만지작거리다가 곧 포기한 듯 이불을 헤치고는 미련 없이 방바닥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련히 들려오는 바닥에 깔린 카펫의 융이 밟히는 소리...

“천국이로다.”

엉덩이를 침대에 걸치고서 팔을 쭈욱 펴며 지금의 몸 상태에 대한 감상을 읊조린 사이토는 잠시 후 눈을 감고서 양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았다. 매끄러운 감촉, 사이토의 생각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팔의 감촉...

“흐흐! 완벽하게 적응 되었구나.”

눈을 감았지만 방안의 모든 것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자신의 손의 변화도 탁자 위에 놓인 모래시계도 그리고 탁자위에 놓아 둔 검집 안의 숨어있는 예리한 무기들의 느낌...

가끔씩 머릿속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던 여섯 번째 감각 ‘식스 센스’도 이제 완벽하게 적응 된 듯 했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그 전까지 익히고는 있었지만, 재대로 써보지 못했던 새로 배운 4개의 스킬들도 매끄럽게 사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킬을 시전 함에 있어 필요한 것은 스킬에 대한 이해와 스킬의 숙련도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집중력! 잠시 한 숨을 고른 사이토는 침대에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스킬을 시전 했다.

“팬텀 피규어!”

슈우우우....

흡사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높이 솟던 분수가 일순간 사라지듯 검은 빛을 내뿜으며 침대 속으로 스며들었던 사이토는 잠시 후 그 바로 옆 창가 밑바닥에서 불쑥 솟아 나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나 성공!”

팬텀 피규어가 깨끗하게 성공하자 사이토는 탁자 쪽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서 가방 속에 들어있는 두 자루의 대거를 꺼내 들었다.

쉬리리릭! 파라락!

손놀림을 따라 유연하게 따라오는 단검들... 사이토가 마음먹은 처음 해보는 현란한 기교까지도 손은 능숙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도저히 현실에서는 몇 번이고 실패했을 거 같은 그런 어려운 동작들 까지도...

“마스터 테크닉도 적응 끝!”

계속되는 성공에 기분이 고무된 사이토는 그 동안 진짜 한번도 시전하지 못했던 스킬을 사용해 보려 왼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레이브 스피릿!”

사뭇 긴장된 어조로 마지막 9단계의  스킬명을 외운 사이토는 승급에서 보았던 그 시리디 시린 푸른 빛깔의 예리한 빛줄기가 어깨를 따라 스르륵 하고  내려오다가 손끝에서 조금 씩 작은 검의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하자 더욱 긴장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퓨슝...

너무 기대를 많이 한 것일까? 조금씩 그 길이를 더해 가던 그레이브 스피릿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공명음과 함께 공기 중으로 산화해 버렸고 실망한 사이토는 왼손으로 목을 긁으면서 탁자에 놓인 갑옷을 손에 들었다.

“뭐 너무 조바심을 내면 되던 일도 안 되겠지.”

일단 몸이 완벽하게 적응 되었다는 것은 큰 수확이었다. 다행히 그 여자들과 약속했던 오늘에서야 캐릭터와의 동화가 완전히 끝났기에 이제 안심하고 퀘스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 만났던 그 붉은 갑옷의 사내... 얼핏 듣기로는 레드쉴드 기사단의 카이엔이라는 남자가 은연중에 내뿜던 위압감도 그리고 그 위압감에 긴장했던 사이토, 하지만 이제 다시 만나 설령 그와 싸운다 해도 지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이 근질근질 해지고 누군가와 대련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

“좋아! 그럼 가 볼까!”

장비들을 모두 착용하고 가방을 들에 멘 사이토는 잠시 방안을 눈으로 훑어 본 뒤 방문손잡이를 붙잡았다.

“사이토씨 기분 좋으신가 봐요?”

이미 준비를 끝낸 듯 성직자용의 하얀 법의를 걸친  가이아가 사이토의 뒤를 따라붙으며 묻자 사이토는 피식하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럴 일이 좀 있었어.”

“네에, 근데 사이토씨! 이번 일 끝나고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뭐 당연히 빌로아로 가야겠지?”

가이아의 물음에 사이토는 뚱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벌써 이 승급 여행을 시작한지도 게임시간으로는 거의 두세 달이 지났다. 브랜, 밀레나, 스티브, 그리고 기타 등등... 그 들 중 혜미나 혜인은 현실에서 자주 보기에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스티브씨 외 기타 등등 애들의 소식도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흠! 내가 너무 무심했나?”

“맞아요!”

“응?”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안다는 듯 가이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자 사이토는 볼을 긁적이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생각 패턴이 그렇게 단순했나?”

이페와 유르 그리고 엘리오네스와 실키는 이미 채비를 마치고서 데이모스 포탈에서 사이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페와 엘리오네스는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캐러밴을 두 마리씩이나 붙잡고서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 실키와 유르는 언제나처럼 둘이 모여 앉아 서로의 코디를 봐주면서 둘이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모두 안녕하셨는지?”

“어맛!”

실키와 유르가 숙덕대는 사이로 사이토가 얼굴을 쑤욱 내밀면서 장난스레 묻자 둘은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사이토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네.”

실키에 인사성에 휘말려 얼떨결에 실키와 같이 꾸벅하고 인사해 버린 유르는 사이토에게 너무 짓궂게 나타난 거 아니냐는 듯 사이토에게 항의 했지만 사이토는 무시한 채 귀만 긁을 뿐이었다.

“이제 사이토씨랑 가이아씨도 오셨으니 출발하자꾸나.”

이페가 사이토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채근하자 실키와 유르가 고개를 끄덕인 뒤 포탈쪽으로 걸어갔지만 사이토는 뒤 돌아서 걸어가는 이페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페씨! 앞으로 저를 부르실 때는 레인이라고 불러주시죠.”

“예?아...예.”

사이토의 말을 이해한 양 이페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이토는 마주 고개를 끄덕인 뒤 뒤에 서 있는 가이아에게 손짓해 불렀다.

“가이아! 가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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