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얼판타지아-110화 (110/169)

150회

“꿍꿍이라뇨!”

속으로야 무식한 자식! 개자식! 마음대로 씹었지만, 겉으로야 태연하게 대답해 주는 엘리오네스였다.

쉬이이익!

“흐... 말하지 않겠다? 지금 네 처지를 생각한다면 그런 맘은 안 들 텐데.”

속으로 식은땀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은 듯한 느낌, 피부를 스치는 바람도 그녀에게는 논외였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예리한 할버드 날은 엘리오네스의 목 앞에 와 멈춰서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 엘리오네스는 카이엔의 무기가 중장기인 할버드라는데서 그가 접근하는데 마음 놓고 있었지만 그가 이처럼 순식간에 할버드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거기에 자신들을 서서히 둘러싸기 시작하는 레드쉴드들...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휴우,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요.”

손으로 할버드날을 밀어내며 의연하게 말해보려 했지만 할버드날은 불행하게도 그녀의 뜻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알량한 짓 집어치우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지.”

눈 속에 흐르는 빛은 비열이라는 글씨, 전혀 거리낌 없다는 듯이 건들거리는 카이엔의 모습은 그녀가 알고 있는 데이터와는 많이 틀렸다.

“호호... 제가 알기로는 카이엔님은 전투를 사랑하시고 또 여성에게는 신사도를 지킬 줄 아시는 카리스마 넘치는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글세 나도 사람 봐가면서 지키는 중이라서...”

[주위에 다른 유저의 반응은 없습니다.]

[그래?]

이페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해지는 카이엔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달랑 네 명이서 이곳을 들어왔다는 것. 카이엔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엘리오네스의 목에서 할버드날을 내리며 그녀의 동료들을 살펴보았다. 무언가에 안절부절해 보이는 치렁치렁한 레이스 드레스위에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는 큰 분홍색 리본을 한 실키,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망토와 후드로 온몸을 칭칭 감고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존재감 없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 등 뒤에 숨어서 머리만을 빼꼼히 내 놓고 있는 긴 은발을 지닌 매력적인 소녀...

[사이토씨! 지금 이페언니가 동료들을 데리고 동쪽 계곡에 매복하고 있다고 해요. 이들을 그쪽으로 유인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어떻게 하지?]

[저에게 생각이 있어요!]

“호오... 아가씨 오랜만이네?”

엘리오네스와 사이토가 메시지를 나누는 사이 카이엔은 사이토의 등 뒤에 숨어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가이아를 발견하고는 손까지 들며 인사를 했고 사이토의 등 뒤에 숨어있던 가이아는 멋도 모르고 손을 들었다가 곧 뻘줌하고 올렸던 손을 내린 뒤 사이토의 등으로 더욱 숨어 버렸다.

“호오! 그러고 보니... 그 쪽도 구면이구려. 골키퍼양반!”

그제야 사이토를 알아본 듯 카이엔이 사이토를 아는 채 하자 사이토는 낮게 혀를 차며 후드를 벗었다. 후드를 뒤로 넘기자 앞쪽으로 쏟아지는  머리카락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카이엔의 흥미롭다는 눈빛... 처음 헤어삽에서 장난스레 가이아에게 헌팅을 하는 줄 알았건만 지금 카이엔의 눈빛은 그것이 아니라고 대답해 주고 있었다.

“혹시 테시미어 길드시오?”

카이엔이 엘리오네스를 가리키며 묻자 사이토는 고개를 흔들었고 사이토를 관찰하던 마사무네는 눈을 빛냈다.

“호오! 그렇군요. 후후...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패거리에 붙게 되었소이까? 보아하니 애인도아가씨가 떡 하니 있으면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소만...”

사이토의 차갑게 거절하자 쓴웃음을 지은 카이엔은 고개를 들어 사이토를 노려보았고 사이토는 카이엔의 눈을 마주 노려봐 주었다.

“한판 붙어봄이 어떻소?”

카이엔의 돌발적인 제안!

밑도 끝도 없이 한판 하자며 사이토에게 말하자 사이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 황당한 사내를 쳐다보았고, 대장의 이런 행태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있는 마사무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일행들 사이를 지났고, 잠시 후 사이토는 카이엔의 돌발적 제안에 답했다.

“귀찮군요.”

“흠... 그런가? 하지만 그쪽이 나의 적이니만큼 전투가 시작되면 피할 수 없을 텐데?”

제법 머리를 굴린 카이엔이었지만 사이토의 대답은 가차 없었다.

“당신만 피해 다닐 꺼요.”

“끙...”

“휴..”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당황하던 엘리오네스는 다행히 사이토가 자신의 예상에서 벗어나 주지 않자 약한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꼭 필요한 싸움이 아니라면 귀찮아서라도 싸움을 피하는 사이토의 이런 성격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는 설마 했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남자라는 족속들은 머리 나쁘고 직선적이며 싸움 좋아하는 종족이었다. 다행히 사이토가 싸우기를 거부하였기에 다행이었지만 더 이상은 위험했다.

[사이토씨! 어서요!]

엘리오네스가 재촉하자 사이토는 수긍의 메시지를 보내며 카이엔을 노려보았지만 잠시 후 들려오는 카이엔의 돌발적 제안은 엘리오네스의 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럼, 이건 어떻소! 나랑 붙어서 이기면 그냥 보내 드리지. 물론 지면 그냥 지는 거고, 어떻소?”

흥미 당기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확실히 이들을 그쪽으로 유인하는 것보다 그 방법이 더욱 편하지 않은가! 거기에 카이엔 이하 다른 이들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한 듯 보였다. 거기에 지금까지 보아온 카이엔의 행동이라던가 그의 위치에서 보자면 그의 제안의 신용도도 믿을 만 했다. 엘리오네스의 말대로 이들을 그쪽으로 유인할 것이냐 아니면 카이엔과 한판 붙어 보느냐로 고민하고 있는 사이토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엘리오네스는 사이토와는 다른 이유로 해서 혼란스러워 지는 머리로  골치가 아파오고 있었다.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사이토는 그녀들의 미끼 역할... “설마 수락하지는 않으리라” 하는 마음에 사이토를 넌지시 쳐다보았지만 사이토의 대답은 그녀의 머리를 또 한번 헤집었다.

“좋습니다!”

“남자들이란!”

본 성질을 참지 못하고 사이토에게 으르릉대는 엘리오네스였지만 딱히 그의 결심을 이유를 생각해 내지 못하는 엘리오네스는 단지 씩씩거리며 사이토를 쳐다볼 뿐이었고, 결심이 선 사이토는 엘리오네스의 이런 모습을 무시하는 것인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인지 전혀 요지부동이었다.

“ 흐흐...골키퍼씨의 생각은 어떠신가? 쇼다운 신청은 필요없겠지? 그게 더 스릴있겠고...”

“물론이요...”

마사무네 또한 카이엔을 막아보려 메시지를 통해 온갖 말로 동원하여 설득했지만, 카이엔은 이미 마사무네의 조언 따위는 한 귀로 흘려버릴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야 존재감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무심코 지나쳤지만 막상 몇 마디 나누며 마주 대해 보자 곧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현재로써는 미스티 핸즈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 따위 궁금증으로 이런 대결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과 거의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보이는 실력자의 느낌... 확실히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사실 고급 계급으로 갈수록 이런 대책 없는 결투는 서로 피하기 일쑤였다. 물론 지게 되면 아이템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다시 되살리는데도 시일이 걸리지만 결론적으로 쪽팔리는 것이 그 첫째요, 둘째로는 만약에 지게 된다면 그 인물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고 그에 따라서 그의 이겼을 경우 따라올 명성이나 고급 아이템을 노리고 접근하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장!!”

카이엔을 다시 한번 다그쳐 보려는 마사무네였지만, 그의 원군이 되어야 할 레드쉴드들 또한 이 대결에 흥미가 생기는 듯 이미 그 주위를 둥글게 모여 앉아 카이엔과 사이토를 구경하기 시작했고 이런 돈 안 되고 이익 안 붙는 대결 따위는 막고픈 마사무네는 무기를 점검하고 있는 카이엔에게 조용히 메시지를 보냈다.

[대장! 위험합니다!]

[그러냐?]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카이엔...

[관찰해 본 결과 ‘미스티 핸즈’가 맞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스티 핸즈라는 이름을 들어 카이엔의 대결을 막아보려 애쓰는 마사무네지만 도리어 이 말은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흐흐흐, 그렇단 말이지!]

더욱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사이토를 쳐다보는 카이엔의 행동에 고개를 저어버린 마사무네는 뒤편에 앉아 있는 레드쉴드들 사이를 신경질 적으로 밀고 들어가 가운데 명당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는 관람모드에 들어갔다. 더 이상 말해봤자 저 머리 빈 대장에게는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물론 포기한 이유 중 하나가 저 두뇌회전과 거의 반비례 할 정도의 막강한 전투실력을 믿는 구석도 이렇게 방관자로 쉽게 돌아선 이유 중 하나였고, 행여 진다고 하더라도 대장이  죽는 것을 앉아서 볼 생각은 없었기에 마사무네는 저 ‘미스티 핸즈’의 실력이나 천천히 구경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이페들도 자신들이 이곳에 죽치고 있는 이상 별 수가 없었다. 전체 전투력을 따져 보나 현재 상황으로 보나 유리한 것은 자신들이었다.

“흠... 팝콘이 아쉽네.”

사이토가 모든 준비가 끝난 듯 한손에는 이어드 대거를 다른 손에는 예전에 노인정 길드에서 만들었던 패링소드형의 가드를 붙인 망고슈를 꺼내들고 카이엔을 노려보자 카이엔은 거추장스러운 투구를 마사무네에게 벗어던지곤 사이토에게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 봅시다.”

“그러지요.”

대결에 대한 서로의 의사를 타진한 둘은 곧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무기들을 곧추 새웠다. 이미 서로가 최고급계열이라는 것을 암암리 중에 확인한 둘은 이미 서로를 방심할 수 없는 상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전투에 임하는 자세도 신중했다.

“훗... 대단하군.”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카이엔이었다. 분명 전투가 시작되면 자신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빠르게 돌진할 줄 알았건만 사이토는 단순히 무기를 자신에게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이토의 옆걸음질을 볼 때 단순히 돌격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닌 처음부터 돌격할 마음이 없는 듯 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자신감! 시험해 볼 생각에 할버드를 두어 번 그어 보았지만, 사이토는 그것을 가볍게 피할 뿐이었다.

카이엔은 짧은 단검을 사용하는 클래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저돌적이면서 빠르고 몸을 사리지 않는 공격과 방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둑의 속도를 따라가려는 짓은 정말 바보 같은 짓!” 차라리 몸의 한곳을 내준다고 해도 할버드로 한대 칠 수만 있다면 어쨌든 자신의 이익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미스티 핸즈의 실력은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었다. 계급이 아주 높거나, 아니면 무술실력이 출중하거나 마지막으로 그가 바라기는 하지만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 두 개 모두 최상급이거나, 물론 사이토가 세 번째 경우에 든다고 해도 카이엔으로서는 더욱 호승심을 자극하는 것이지만...

“어딜 보고 계시오?”

“헉!”

전면의 사이토만을 노려보던 카이엔은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할버드를 휘두르며 뒤를 그었지만 사이토는 그 할버드에 연약한 단검들을 가져다 줄 생각이 없었기에 휘둘러지는 할버드의 사각 쪽으로 몸을 이동시키며 이어드 대거를 꽂아 넣었다.

카가가각!

이어드 대거가 카이엔의 플레이트를 긁으며 빗나가는 소리, 그 짧은 위기의 순간 사이토의 공격을 갑옷의 빗면을 이용해 피한 카이엔은 곧 할버드의 원심력을 이용하여 사이토를 빠르게 쳐 나갔다.

휭! 휘휘휭!

“쳇!”

첫 번째 회심의 공격이 비켜나가자 사이토는 혀를 차며 옆걸음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할버드를 피했지만 공간을 긋고 지나갔던 할버드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며 두 개의 환영으로 갈라지면서 날아오자 당황하여 몸을 뒤로 뺐다.

파카카카칵!

목표물을 잃은 할버드가 모래위로 작렬하자 모래는 흡사 폭탄을 맞은 듯 터져 올랐고 순간 시야가 흐트러진 사이토의 전면으로 카이엔이 모래를 뚫고 튀어나오며 외쳤다.

“퀵 스텝!”

전사계열의 기본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퀵스텝이지만 지금의 카이엔으로선 사이토의 속도를 잡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모습은 여우를 잡기 위한 코끼리의 몸부림이었고, 사이토는 모르겠지만 카이엔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느려 터졌는가를 몸으로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첫 번째 공격이야 자신이 맥 놓고 있다가 사이토의 스킬에 당한 것이지만 그 다음 공격에서의 사이토의 몸놀림은 그의 혼을 빼 놓았다.

슁! 슁슁!

“어딜 공격하시오.”

“크아앙!”

애써 퀵스텝으로 사이토의 허를 찔렀다고 생각했건만 사이토의 몸은 이미 그의 옆쪽으로 여유있게 이동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내뱉는 여유있는 말은 카이엔의 복장을 흔들어 놨다.

“재대로 좀 싸워보지!”

“그러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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