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얼판타지아-111화 (11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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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다녀왔습니다. 뭐... 노트로 비축을 좀 하기야 했지요. 하지만... 한글을 새로 깔면서 써 놓았던 2편을 날렸습니다. -_-.. (어디로 날아갔을까..;;)

미적 거리다가 두편 다시 재생입니다.

1.실란니임~-,,-: 저의 직업 설정쓰고 싶으시다구요? 음..뭐 조금 변형 하신다니 쓰셔도 되요. ^-^

2.네코페닉님: 감사드립니다. ^-^ 저도 제 케릭터의 스케치는 계속 연습삼아 해보고 있고 최근들어 끄적 거린 건 가이아랑 엘리오네스, 유르랍니다.-,,-

그려 주신다면야 감사하죠 ^-^ .. 음.. ; 그런데 캐릭터들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이 알고 싶으시다면 대화방이라던가 그런곳에서 한번 만나야 할듯..-,,-;; 님의 메일 주소를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어요..-_-;; 흣...;; 암튼 감사하고요..^-^ 스케치야 대 환영입니다. ^-^

사이토는 카이엔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재빨리 뒤로 움직였다. 강력하게 느껴지는 할버드의 느낌, 카이엔의 공격은 확실히 날카롭고 강력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역시 할만하다!”

카이엔에 대한 식스센스는 사이토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물론 레드쉴드 전원을 상대로 추격전을 벌이고 싶지 않기에 벌인 대결이지만 결론적으로 카이엔은 자신에게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 체계 잡힌 무술을 쓰는 듯 할버드의 원심력을 이용해 휘둘렀다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채챙! 카가가각! 치이익!“

하지만 최대한  미스티핸즈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이토는 자신의 주무기라고 할 수 있으면서 일반 유저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튄다고 할 수 있는  와이어의 사용을 자제했고 또한 무기도 카이엔의 중장갑을 뚫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사이토와 카이엔은  몇 번의 공방을 나누며 그렇게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위이이잉!

“어?”

카이엔의 할버드 자루를 망고슈로 비켜내며 이어드대거를 찔러 넣으려던 사이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에테르 스킬이 일어나자 몸의 중심을 잃은 채 잠시 갸우뚱 하다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확실히 랜덤한 확률로 터지는 에테르 스킬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사이토로써는 이제 언제 터질까 조바심내야 하는 에테르 스킬이 더 이상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무한정 좋은 아이템은 아니었나?”

사이토는 이제 “이계의 후드를 벗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고심하기 시작했다. 캐릭터를 물려주신 할아버지와 그를 잇는 또 하나의 물건, 할아버지의 유품,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새삼 잊고 있었던 할아버지의 기억도 새록새록 솟아나고...

“뭐냐! 대결하다 말고!”

전투를 벌이던 사이토가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뒤로 물러서서 뭐라고 중얼거리자 그 모습을 상기된 얼굴로 노려보던 카이엔은 살짝 열이 받은 듯 반말을 섞어 크게 소리쳤다.

“아! 미안하오!”

“쳇! 당신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별로...”

솔직히 조금 만만하게 보는 게 사실이었다. 카이엔의 할버드가 아무리 강력한 파워를 지녔다 하더라도 안 맞으면 모두 말짱 도루묵 아닌가! 만약 그의 친구 브랜이었다면 카이엔의 할버드에 힘으로써 대항하려 했을 것이고 대결은 거의 90프로 카이엔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토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적의 장점과 자신의 장점을 모두 생각하여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 적의 취약점이라면 무조건 파고든다. 비열한 짓이 필요하다면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이토였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할아버지의 모든 것을 지켜낼 것이다.

“아직 벗고 싶지는 않아!!”

“뭐?”

카가가각!

자신의 의지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사이토가 이어드대거와 망고슈를 엄청난 속도로 휘두르며 순식간에 카이엔을 압박하기 시작하자, 카이엔은 연신 뒷걸음질치며 할버드로 사이토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라이프 오버 당해버릴 상황, 하지만 카이엔 또한 무기술을 익힌 이였고 또 그 동안 기사단을 이끌면서 굵은 잔뼈가 있었기에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챠랑! 창! 카칵! 쉬쉭!

엄청난 공방전 이였다. 카이엔의 생사를 도외시 한 듯 보일 정도의 파상공격과 그 전에 보여 줬던 속도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이제는 잔상까지 히끗히끗 보이기 시작하는 사이토는 서로의 주위를 빠르게 돌며 공방을 펼쳤고 그들의 주위로는 지름 5미터 정도의 모래기둥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모두 뒤로 물러서라.”

바람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마사무네가 둥글게 모여 앉은 레드쉴드들에게 외치자 대결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기사단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대결 장소에서 좀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엉덩이를 옮겼고 곧 이어 대결장소 주위는 마사무네의 예상대로 바람에 휩쓸려 모래 먼지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대...대단해!”

카이엔의 방해로 인해 기존의 계획이 대폭 수정되어 버려 예전부터  원수 보듯 하던 카이엔을 이제는 눈빛만으로도 카이엔의 심장을 그대로 ‘뽕~!’ 하고 뚫어버릴 정도로 강렬하게 쏘아보던 엘리오네스는 현재 대결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넋을 잃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전투에서는 단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주위를 휩쓰는 거친 바람 그 사이로 날카롭게 뻗어 나오는 예기들... 숨 막히는 듯 주변을 압박하고 있는 살기, 그리고 이제는 양쪽을 재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서로의 빈틈을 노리는 두 사네, 한편으로는 둘의 전투에 경탄하는 엘리오네스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마음을 표독스럽게 갈고 있는 그녀였다.

“크으윽!”

카이엔은 뒤로 데굴데굴 구르다가 할버드로 간신히 중심을 잡고는 전면을 쳐다보았지만 사이토는 그런 카이엔을 봐줄 생각이 없는지 더욱 가속도를 내며 카이엔에게 돌진했다.

“강하군!”

끝내 사이토의 이어드대거에 오른쪽 가슴을 내 준 카이엔이었다. 다행히 갑주의 두께와 카이엔이 피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라이프 오버 될 뻔 했다. 하지만 방금의 타격도 치명상인 듯 라이프는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고, 사이토는 아직도 만족하지 않은 듯 그의 요소요소를 망고슈로 찔러대고 있었다.

“치잇!”

신경질 적으로 할버드를 휘둘렀지만 전면의 사이토는 또다시 잔상!

“또 당할 것 같으냐!”

이제는 존대말이고 평어고 없었다. 전투와 살기가 지배하는 이 공간 안에서 둘은 이미 서로에게 반말을 마구 써대면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고, 둘은 처절한 전투의 공간 안에서 점점 하나가 되어갔다.

휘이이잉!

그들의 주위를 감싼 용권풍을 찢어버릴 듯 카이엔의 할버드가 사이토를 긋자 사이토는 액션 피규어를 이용해 카이엔의 뒷통수에 데들리 스텝을 꽂아 넣으려던 생각을 접고 재빠르게 안전지대로 벗어났다.

“후욱! 후욱! 후욱!”

“....”

잠시간의 고착상태, 카이엔은 거칠어져 오는 숨을 진정시키며 사이토를 노려봤지만, 사이토는 카이엔과 다르게 별다른 호흡에 곤란을 느끼지 못하는지 평온한 자세로 카이엔을 마주 노려볼 뿐이었다.

“실력의 차이를 알았으니 이제 그만함이 어떤가?”

사이토는 카이엔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흔히 남자들만의 대화라는 것을 아주 찐하게 나눈 둘은 이미 서로에게 상당한 호감을 지니고 있었고, 사이토는 이 정도 했으면 카이엔도 승복 했으리라는 생각에 카이엔에게 패한 것을 인정하라는 듯이 조용히 물었다.

“흐흐, 아직... 아직이지!”

멋지게 보이던 푸른 장발은 이제 바람에 휘날려 미친 듯이 휘날리고 있었고 할버드를 쥔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붉은 갑옷은 이제 곳곳에 흉한 상처를 가득 입은 채 주인을 감싸고 있었고 오른쪽 가슴 부위는 예리한 송곳에 찔린 듯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하지만 카이엔은 자신의 이런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는지 아직도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사이토를 쏘아 보고 있었다.

“아직 뭔가 남았나?”

“흣... 눈치 빠르군.”

카이엔은 할버드를 꽉 쥐곤 사이토 쪽으로 내밀었다. 그에게는 아직 선보이지 않은 비장의 스킬이 있었다. 비장의 한정 조건 스킬! 어찌 보면 막강불변의 스킬... 그러나 그의 보좌관 마사무네의 단호한 감상은 구제불능의 저주받은 스킬...

“이 할버드의 이름이 뭔지 아냐?”

“...”

카이엔이 갑작스럽게 할버드를 쭉 내밀자 사이토는 카이엔이 내민 밋밋한 무늬의 검은 할버드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까 전 하르페와 부딪혔을 때 나던 둔탁한 금속음에서부터 할버드의 자루가 금속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이토였다. 검고 긴 자루에 마찬가지로 검은 금속으로 된 도끼날과 전체 부위에서 유일하게 그 색이 틀리다고 할 수 있는 창 부분은 당장 베이면 피라도 떨어질 듯 붉은 색이었다.

우르르르르...

가이아는 사이토의 대결을 손에 땀을 쥐고 관전하다가 다행히 사이토가 다치지 않은 채로 결투가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곧 이어 맞은편에 둥글게 모여 앉아 있던 레드쉴드 기사단들이 아까 전 바람을 피해 물러나던 때와는 다르게 대결장소에서 꽤 먼 곳으로 멀찌감치 물러나기 시작하자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곤 다시 대결장소로 눈을 돌렸다.

한순간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손과 발에는 그 원초적인 힘이 넘쳐흐르기 시작하고 근육들 속으로 거대한 에너지가 스며들어 왔다. 그리고 머리 속에 암시처럼 울려오는 처절한 괴성과 울음들...

“크흐으으!”

카이엔은 머릿속을 진동하기 시작하는 처절한 공격본능을 애써 잠재우며 할버드를 더욱 굳게 쥐었다. 이 할버드와 함께 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 동안 수 십 번의 버서크 스킬을 써 봤기 때문에 예전처럼 버서크 스킬의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는 광폭화 기능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 몸에 끓어오르는 피와 어서 빨리 혹사시켜 달라는 듯이 요동치는 근육, 그리고 피를 보고 싶다고 외치는 머릿속의 살의는 억누르지 못한 채 전면의 사이토를 노려보았다.

“이 할버드의 이름은 ‘광폭의 날개’라고 부르지! 특수 스킬이라면 버서커다!”

“휴...”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마사무네는 끝내 버서커 스킬을 써버린 대장을 쳐다보았다. 정말 웬만하면 절대 쓰지 않는 버서커... 비록 라이프가 절반 이하이어야 하고 또 버서커의 광폭화 기능을 재대로 억누르지 못하면 아군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스킬이라고 해도 저 버서커 스킬은 정말 탐이 나는 기술이였다. 스킬 시전 시 ‘광폭의 날개’는 +3의 살인 무기로 돌변한다. 또한 신체 벨런스를 맞춰주는 스텟들 중 물리 공격과 관련된 스킬들은 +4까지 올라가는 무지막지한 스킬이였다. 하지만 대장 자신도 이 스킬을 쓸 일이 원 채 별로 없었고 또 써야 하더라도 잘못하여 이성을 제어하지 못했을 시에 발생하는 불상사를 알기 때문에 자제하던 스킬이였다. 하지만 대장은 그 마지막 히든카드를 뽑아들었다. 미스티 핸즈를 와의 결투를 위해... 다행히 버서크 스킬은 재대로 활성화 된 듯 했다.

“이제 2회전이군. 흐흣!”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미스티 핸즈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흥미롭게 관전하는 마사무네와는 달리 사이토는 전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카이엔이 면전 앞에서 괴물같은 광폭한 눈빛을 흘리며 사뭇 그 분위기와 살기가 엄청나게 증폭된다 해도 지금 사이토의 딴생각을 멈추게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뭐지? 이 기분은...”

사이토는 자신의 등 쪽에서 느껴져 오는 거대한 살기덩어리에 온 신경을 그 쪽으로 집중하며 몸을 긴장시켰다. 분명 카이엔은 아니었다. 그리고 등 쪽에서 느껴져 오는 살기들도 카이엔의 광폭한 살기에는 그 강도가 약했다. 하지만 그 살기들은 서서히 강도가 강해지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수십 수백의 살기들이 뭉치고 뭉친 듯 그 더러운 느낌들은 사이토의 목덜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다시 시작이다.”

“그러시던가.”

카이엔이 준비가 끝난 듯하자 사이토는 그 미세한 살기들을 무시하고는 다시 카이엔에게 눈을 돌렸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

“뻔하잖아. 그런 전개는”

“쳇!”

할 말 없게 만드는 사이토였다.

파아아아앙!

카이엔의 할버드가 떨어진 자리는 폭탄이 터진 듯 모래가 터져 올라왔다. 뒤이어 카이엔은 괴기스럽기까지 느껴지는 허리 놀림으로 할버드를 그어대기 시작하자 사이토는 최대한 카이엔의 공격반경 밖으로 피해 다니면서 주변을 슬슬 돌았다. 왠지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되겠다는 맘이 들 정도로 카이엔은 가열차게 할버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지금의 카이엔은 중병기를 사용한다는 페널티까지도 사라진 상태! 할버드는 카이엔의 손 안에서 흡사 바람개비마냥 돌아가고 있었고 그 공격을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끝이 없구만!”

휘이이잉!

카이엔의 공격은 큰 원과 작은 원의 교차를 이용한 연속 공격이였다. 물 흐르는 듯이 중심을 교묘히 움직이며 사이토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이토를 접근시키면 자신이 100프로 불리해 진다는 것을 아는 듯 카이엔의 봉쇄는 철저하기 이를 대 없었다.

쩌저저정!

“어머나!”

실험삼아 할버드의 진행방향으로 대거 한 자루를 던져봤던 사이토는 대거가 카이엔의 할버드에 닿자마자 맥없이 부서져 나가자 질려버려서 뒤로 물러섰다.

“휴우... 굉장한데. 일반 무기로는 몇 번 부딪히기만 해도 다 부서지겠군.”

“크아아아! 죽어!”

“싫어!”

카이엔의 죽어달라는 주문을 정중히 거절한 사이토는 스피드를 조금씩 올리며 카이엔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계급 상승 후 사람과의 1:1 대전은 처음이였다. 아무리 몬스터와 몇 번의 전투가 있었다고는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 사람은 사람 이였다. 그것도 카이엔과 같은 최상급 상대와의 대결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이토를 완전히 캐릭터에 적응시켜 주었고 사이토는 전체적인 스피드가 계속해서 상승해 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카이엔의 주위를 돌았다.

퍼버벅!

사이토가 찰나지간 안쪽으로 파고 들어오자 카이엔은 회전이 끝나가던 할버드의 손잡이를 바꿔 잡으며 할버드의 반대편을 감아 올렸지만 사이토가 그 회전을  쉽사리 회피하면서 이어드 대거를 쥔 주먹으로 카이엔의 배를 연속으로 갈겨 올렸다.

“흐아아앗!”

“히익!”

하지만 카이엔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이토에게 몸통박치기를 하자 사이토는 앞차기를 하려던 발로 카이엔의 어깨를 밟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뒤 이어 들려오는 카이엔의 엄청난 기합소리!

“크아아아악!”

꽈릉!

“꺄악!”

"꺄악!"

가이아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카이엔의 몸통박치기를 밟고 뒤로 튕겨 나가던 사이토의 위로 카이엔의 할버드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뒤이어 들려오는 할버드가 지면과 충돌하면서 터져나온 엄청난 충격파소리! 거대한 폭음과 함께 모래구름이 높게 솟아 오르자 일 시간 시야가 흐려졌지만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사이토의 죽음을 예감했다. 빗나갔다고 해도 치명상, 거기에 방금 전 할버드로 땅을 찍었던 카이엔도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더 이상의 반격이 없는 상황이였다.

“우와아아!”

레드쉴드들은 경탄성을 내지르며 모두 일어나 환호했지만 실키와 엘리오네스는 침중한 얼굴로 변했다. 물론 엘리오네스의 입장에서 보면 수많은 계산 중 하나가 끝난 것일 뿐이지만

역시나 그녀도 실키와 마찬가지로 아쉬운 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아...”

사이토가 당하자 가이아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이토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슬픔이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두 알았고 또 분석하여 데이터화 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또 다른 생소한 이름의 슬픔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사...사이토씨!”

카이엔은 마지막 자세 그대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작은 폭탄이 떨어진 듯 작은 구덩이까지 파여 버린 미스틱 핸즈와의 대결장소, 자신의 부하들은 환호성을 치며 자신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겼다는 승리감이 무럭무럭 솟아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손에 걸리는 무게감도 있었고  자신은 그 무게감을 이기고서 할버드를 내리 찍었다. 하지만 그것뿐 마음속의 불안감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괜한 걱정이겠지.”

온몸이 가벼운 느낌이었다. 어떤 성취감이랄까... 역시 강자와의 대결은 그에게 성취감과 함께 커다란 만족감을 준다. 그렇기에 그는 강자와 싸우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대장! 조심해!”

“응?”

카이엔은 승리감에 할버드를 들어올리고 환호성을 지르려 했지만 마사무네가 위를 가리키며 조심하라고 외치자 무슨 소리냐는 듯 공중을 쳐다보았고 잠시 후 공중에서 자신을 향해 육박하고 있는 사이토라는 새를 발견했다.

“하아아앗!”

역시 미스틱 핸즈가 그대로 당했을 리가 없다. 카이엔은 꽤 높은 공중에서 자신을 향해 육박하고 있는 사이토를 노려보며 할버드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사이토는 공중에서 자신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상태 자신은 굳건한 대지에 두 발을 붙이고서 공격을 준비하는 상태, 누가 봐도 자신이 유리한 상황! 이번에는 확실히 게임 오버 시켜주리라 다짐하며 조심스레 자신이 가진 최강의 공격스킬을 준비했지만, 무심코 쳐다본 자신의 애병은 내구도가 거의 끝까지 떨어져 있었다.

“뭐! 뭐야!”

하지만 그에게는 놀랄 틈이 없었다. 미스틱 핸즈가 그를 노리며 내리꽂히고 있다. 예의 그 예리한 단검들로 자신을 도륙하기 위해 내려오고 있다. 아무리 그의 무기가 귀하다 해도 그의 목숨과는 비견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이다!”

“웃기지 마라!”

카이엔과 사이토가 한순간에 교차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전까지 들려오던 금속제 무기들이 부딪히던 요란한 소리들이나 둘 중 하나가 내뱉어야 할 단발마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크허억!”

카이엔은 지금 자신의 가슴을 가르고 지나간 사이토의 무기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전까지 들고 있던 이어드대거라던가 망고슈가 아니었다. 사이토의 어깨에서 흐릿하게 나마 연기처럼 스며 내려오는 시리디 시린 푸른 오오라, 그 푸른 오로라는 사이토의 팔뚝을 타고 내려와 손 안에서 잠시 뭉쳤다가 작은 단검의 형상으로 손 밖으로 솟아나와 있었다.

“큭! 이..이런 작은 것이...”

카이엔은 무릎을 꿇으며 이를 악물었다. 사이토의 무기는 작았지만 그 무기는 자신의 모든 예상을 깨고서 자신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할버드는 허공만을 갈랐다. 물론 마지막 순간 사이토의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이 할버드를 피한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보루가 버티고 있었다. 머리는 팔로 인해 가로막힌 상황 사이토는 자신의 가슴을 공격하리라. 그리고 가슴은 두겹의 두꺼운 장갑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에 껴입은 체인메일과 바깥을 감싼 플레이트 메일! 하지만 사이토의 무기는 그의 그런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고선 가슴에서부터 배까지 갈라버렸다. 갑옷은 전혀 다치지 않은 채 검은 그의 가슴과 배만을 긋고 지나간 것이다. 마치 스며들은 듯이 그의 몸으로 침투했고 그 무기는 단순한 베이는 아픔을 준 것이 아닌 마치 영혼을 뒤흔들 듯이 강력한 충격을 주고는 스르륵 빠져나갔다. 단 한방에 넉다운! 그것으로 끝이었다.

“뭐...뭐냐!”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고는 기운이 다 빠진 듯 카이엔이 땅바닥에 쓰러져 버리자 사이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카이엔을 내려다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카이엔이 할버드로 자신을 내리쳐 오자 사이토는 급한 김에 이어드대거와 망고슈를 교차하여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양팔에 가중되는 엄청난 압력과 그에 맞춰 완전히 부서져 버리는 이어드대거에 깜짝 놀란 사이토는 패링을 위해 망고슈에 부착한 S자 형의 가드를  할버드의 자루부분에 걸었고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는데 성공시킨 것이다. 그러나 손에 쥐고 있던 망고슈마저 회전을 끝으로 부서져 나가고 몸은 사정없이 회전하며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자 사이토는 공중에서 사정없이 돌고 있는 몸을 간신히 바로 잡고는 때 아닌 고민에 하게 되었다.

“뭘로 공격하지?”

의외로 솟구쳐 오른 높이는 굉장했기에 사이토는 그냥 배낭에서 여분의 무기를 꺼낼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그냥 승부를 볼까! 라는 고민까지 잠시간이나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듯 보였기에 사이토는 어쩔 수 없이 와이어를 사용하여 승부를 보기 위해 오른손으로 왼손목의 팔찌고리를 쥐었지만 찰나지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좋은 아이디어에 그대로 손목을 붙잡고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마지막 공격 스킬, 그레이브 스피릿을 사용했다. 하얀 냉기가 어깨를 타고 팔뚝을 지나 손바닥으로 들어가는 느낌,

쉬이이이...

그 이후의 일은 지금 같은 상황, 비록 승급 당시 목격했던 그 거대한 그레이브 스피릿보다 훨씬 작기는 했지만 그레이브 스피릿이 처음으로 성공했다는데 만족한 사이토는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카이엔을 내려다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물론 일부러 선심을 쓰거나 아니면 영화에서처럼 두 사내가 멋진 포옹을 하며 끝나는 그런 상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 카이엔이 죽는다면 광분한 레드쉴드들이 약속을 재대로 이행할 것인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에 처음 약속을 했던 카이엔을 살려놓았을 뿐... 그것만 아니라면  쓰러져 있는 카이엔을 두자루의 단검값을 매겨 원 없이 두들겨 팼을 것이다.

“가이아! 여기 회복마법 한번만 부탁해!”

“흑...네!”

뭔가 말할 것이 있는 듯 눈물을 글썽이던 가이아가 대결장소로 비실비실 걸어오기 시작하자 사이토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한 뒤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마사무네를 쳐다보며 외쳤다.

“약속은 지키겠지요!”

“물론입니다.”

마사무네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중히 말했다. 만약 카이엔이 죽기라도 했다면 레드쉴드를 선동하여 저들을 죽여 버릴 작정이었지만, 다행히 카이엔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사이토는 대결을 깨끗하게 끝을 맺었다. 솔직히 지금 레드쉴드를 부추겨 저들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로는 카이엔이 자신을 ‘광폭의 날개’의 날에 갈아버리려 할 것이고 대장을 닮아서인지 의를 중시하는 레드쉴드들에게도 신임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혹시 이쪽으로 그 쪽의 지원군 같은 게 오고 있습니까?”

“네?”

사이토가 갑자기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말을 내 뱉자 마사무네는 사이토를 잠시 쳐다보다가 곧 눈을 감고서 주위에 깔아놓은 눈들을 활성화 시켰다. 현재 주위에 깔아놓은 눈들은 8개의 방위를 두고서 하나씩 깔아놓았다.  사이토의 말대로 뭔가가 접근하고 있다면 눈들이 이미 포착하고선 따라 붙었을 것이다.

“힐링!”

“....”

“에? 안 듣네?”

카이엔의 앞에 서서 힐링마법을 걸던 가이아가 고개를 갸웃 갸웃 하며 카이엔의 앞에 쭈그리고 앉자 그레이브 스피릿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사이토는 가이아에게 물었다.

“가이아 무슨 일이야?”

“음, 힐링이 안 들어요.”

사이토가 가이아에게 다가가서 묻자 가이아는 고개를 갸웃 하고는 사이토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눈물은 이제 많이 가신 듯 다시금  밝은 표정이 된 가이아가 땅에 엎드려 기절해 있는 카이엔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사이토는 카이엔의 옆에 가이아와 비슷한 포즈로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며 가이아에게 물었다.

“왜?”

“몰라요.”

“음”

가이아의 회복이 왜 카이엔에게 통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사이토는 지금 현재 더 중요한 듯한 일이 닥쳐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가이아에게 말했다.

“가이아! 일단 큰 것으로 한번 써봐. 최대한 빨리.”

“예? 예!”

가이아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이토에게 대답하자 사이토는 마주 고개를 끄덕여 준  다음 엘리오네스와 실키에게 눈을 돌렸다. 지금의 느낌대로라면 보통 심상치 않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들도 준비하게 해야 했다. 그러나 사이토가 눈을 돌린 곳으로는 실키가 어떤 마법을 캐스팅 하는 중이었고 엘리오네스는 실키의 뒤편에 서서 그녀의 어깨를 짚고선 사이토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아! 지금요?

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엘리오네스가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사이토는 한숨을 내쉬며 엘리오네스를 다시금 물었다.

“뭐 하는 거냐구요!”

“언니, 끝났어요.”

캐스팅이 끝났는지 실키가 엘리오네스에게 조용히 말하자 엘리오네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사이토에게 말했다.

“미안하군요. 레인... 아니! 이제 미스틱 핸즈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

“지원군이 왔습니다. 원래는 그쪽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변동해서 이쪽으로 데리고 왔지요. 머리가 없는 녀석들이라 데려오느라 애먹었다네요. 훗”

“무슨 소리지요?”

“뭐긴요 당신은 미끼였을 뿐입니다.”

사이토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뭔가 당한 느낌, 씁쓸한 기분, 뒤이어 뇌리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은 분노였다. 그래도 한번 믿어 보고 밝은 게임, 재미난 퀘스트, 보람찬 하루를 만들기 위해 그녀들과 합류했건만 죽음의 순간에서도 몇 번씩이나 구해 주었건만 그녀들은 자신을 속인 것이다. 아주 깔끔하게 당해버린 것이다. 병신처럼...!

“사이토씨! 정말 죄송해요....흑!”

눈물이 글썽거리던 실키가 끝내 눈물 한 방울을 떨구며 사이토에게 말했지만 이제야 그 끈적끈적한 살기의 정체를 알아버린 사이토에게는 단순한 위선의 눈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아! 실키 뚝! 그리고 사이토씨! 이왕이면 사이토씨도 함께 갔으면 싶지만, 저희가 한 짓에 대한 사이토씨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으리라 생각하기에 이럴 수밖에 없군요. 자 실키! 시작해!”

말을 끝낸 엘리오네스는 실키의 어깨를 굳게 잡았다. 사이토는 아직 감을 재대로 못 잡은 듯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해져 있었고 이페는 이미 약속 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 이제 끝났어!”

쉬이잇!

하지만 엘리오네스의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파공성에 깜짝 놀란 그녀는 곧 당수를 곧추 세운 채 자신을 노리며 손살같이 달려드는 사이토를 발견하고는 실키를 안은 채 옆으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어서!”

“메...메스 텔레포트!”

실키가 다급히 시동어를 외치자 손안에 활성화 되어 있던 마법은 하얀 빛무리가 되어  그녀들을 감쌌고 잠시 후 그녀들이 있던 자리에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이토만이 남았다. 떨리는 손가락, 새빨개진 얼굴, 허리를 수그린 채 주먹만을 쥐고 있던 사이토는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허리를 곧게 폈다. 전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 사람들은 흔히 그런 얼굴을 가지고 싸늘한 얼굴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이토의 얼굴은 그런 식의 얼굴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표정이 사라진 얼굴... 일부러 꾸민 싸늘한 얼굴이 아닌 진짜 무표정이었다. 물론 현재 사이토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뭔가가 다가온다는데?”

“그런가?”

회복이 끝났는지 카이엔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서서 조용히 말하자 사이토는 짧게 반문하며 가이아를 손짓해서 불렀다. 그녀들의 배신을 사이토에게 들은 가이아는 처음엔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사이토를 빤히 쳐다보았고 잠시 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얼마 되지 않아 담담한 얼굴로 사이토에게 짧게 일문했다.

“죽이실 건가요?”

“...”

“네...”

사이토의 침묵의 뜻을 이해한 가이아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들과 꽤 정이 든  가이아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은 수많은 자신과의 질문 속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데이터화하거나 또는 자신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 답이 절대 나오지 않는 인간에 대한 원초적 물음들... 누군가는 말했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불안정적인 존재들, 어쩌면 자신의 1급 AI는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 아닐지도 모른다. 1급 AI는 99프로 인간의 뇌를 모방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정의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1프로의 차이인가요?”

“가이아! 전투 준비다!”

독백과 같이 낮게 읊조리는 가이아의 귀로 사이토의 말이 들려왔다.

“네..”

씁쓸해 졌다. 인간과 자신과의 갭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 명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그 수많은 상처를 받아온 지금까지의 노력도 그녀에게 인간에 대해 확실한 정의를 주지는 못했다. 불완전해 보이지만, 또한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는 존재, 한 없이 자애로운 듯 보이지만 한없이 추악하기도 하다.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리얼 판타지아의 바람의 느낌은 현실보다 더욱 생생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리얼 판타지아의 바람이 현실 같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이었다. 마치 자신이 궁극의 바램처럼...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아, 아니에요.”

가이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말을 얼버무렸지만 사이토에게는 절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가르쳐 주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가이아를 바라보았다. 사이토가 보기에 가이아는 마음속의 고민을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것은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성격과 빗대어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더 캐물어 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얻기는 힘들었다. 물론 그 자신도 누군가가 그런 것을 캐묻는 것을 싫어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가자!”

“네!”

사이토는 가이아를 이끌고 한창 전투준비중인 카이엔에게 다가갔다. 그 전에 보였던 레드쉴드는 대결 전 인원들보다 한층 더 많아져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모래 속에 숨어 있던 다른 인원들도 모두 나온 것이리라 생각한 사이토는 한참 마사무네와 뭔가를 의논하고 있는 카이엔에게 말했다.

“무슨 얘기냐?”

“뭐,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카이엔과는 대결에서 말을 터버렸기에 사이토는 편하게 물었다. 현실에서의 나이는 중년정도로 보이는 카이엔이었지만, 본인이 별 상관 안하는 듯 보였기에 사이토는 그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우리에 대한 앞으로의 행동방침이라도 세웠냐?”

“....”

“맞구만.”

사이토가 정곡을 찔러 들어가자 카이엔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머리를 긁적이며 실없는 웃음만 흘렸고 그에 대한 대답은 그 옆에 서 있던 마사무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미스틱핸즈 씨와 그 동료 분이신 여성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결론으로는 한시적 동지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마사무네의 딱딱하고 사무적인 듯한 말에 사이토는 일순 얼굴을 찌푸리며 카이엔과 마사무네를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그 분위기는 잠시 후 카이엔의 마사무네 뒤통수 후리기로써 마무리되었다.

“하하! 미스틱 핸즈! 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좀 쌀쌀맞으니 좀 이해해! 한시적 동지가 아니라 나는 너를 친구로 인정한다. 대결에 임하면서 적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아는 그 강자의 자세! 비록 그 대상이 내가 되었지만!  나는 감동했다. 사나이!”

“아, 그..그래!”

사이토는 얼떨결에 카이엔과 포옹까지 나누면서 뒤편에서 눈을 흘리고 있는 마사무네에게 실없는 웃음을 흘려주었다. 의외로 카이엔도 자신의 친구인 브랜과 비슷하게 둔감스 패밀리의 사나이 의리짱 클럽에 속하는지 자신의 행동을 사나이적인 멋진 행동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랴. 좋은 게 좋은 것.  역시나 사이토의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던 마사무네에게 실없는 웃음만 던져 주는 사이토였다.

[힘드시겠네요.]

[이를 말씀입니까! 아무튼 미스틱핸즈씨도 그 빌어먹을 네 자매에게 당하신 듯하니 저희와 함께 하시죠. 어차피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러지요.]

사이토와 마사무네의 짧은 메시지 한토막이였다.

“느껴지는군.”

“그렇군요. 모두 전투태세!”

마사무네가 레드쉴드들에게 손을 들고 전투태세를 크게 외치자 레드쉴드들은 별로 긴장도 하지 않는지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대며 각자 맡은 바 자리를 찾아 느긋하게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일견 너무나 풀어진 듯한 레드쉴드들이었지만 사이토는 알 수 있었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집단 전투의 배태랑 들이라는 것을... 곧이어 1분도 채 되지 않아 레드쉴드들이 전열정비를 모두 마치고는 카이엔의 명령을 기다리자 카이엔과 마사무네 그리고 사이토와 가이아는 적들이 나타날 남동쪽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둔턱쪽을 노려보았다.

“대단하군.”

이제는 몸으로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더럽고 끈적끈적한 살기였다. 엘리오네스의 말에 따르면 머리가 없는 것들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이 무언지는 확실치 않았기에 사이토는 신중히 그쪽을 노려보았다.

“온다!”

이페는 산산히 부서져 내리고 있는 통곡의 하프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돌아오지 않는 던젼이 있는 거대 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리 불가 아이템중 하나인 통곡의 하프는 확실한 제 몲을 다한 채 그 수명을 마감했다. 분지 쪽으로 꾸역꾸역 전진하고 있는 회색의 물결, 아무리 레드쉴드 기사단이 강하다 할지라도 이번만은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언니! 가요.”

“그래”

엘리오네스과 실키가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유르는 이페의 어깨를 툭 치며 분지의 반대쪽 언덕으로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생각 같아서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가자!”

가파른 계곡을 뛰어 내리는 이페의 뒤로 유르가 빠르게 뒤따르자 이페는 곧 계곡 바닥에 도착하여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약속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자이언트 스콜피언이라...”

“많네.”

“재수 없는 년들...”

카이엔과 마사무네 사이토가 현재 자신들을 향해 꾸물꾸물 기어오고 있는 몬스터 무리들을 바라보며 각기 자신의 감상들을 한마디씩 이야기했다.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은 그 하나하나 크기들이 거의 3~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것들로써  일반 스콜피언들처럼 독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거대한 몸집과 단단한 몸채 그리고 이미 독 공격용이 아닌  투창과 같이 생긴 꼬리를 지닌 대형 몬스터의 하나였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지능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실력 있는 모험가들이라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품목이었지만 그 수가 몇 백 마리에 달한다면 이야기는 상당히 심각해지는 것이었다.

“전군! 후방 고지대쪽으로 신속히 이동하라!”

카이엔은 레드쉴드 기사단에 명령을 내린 뒤 신속히 뒤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분지지형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최대한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공격하는 것이 더욱 유리한 것은 당연지사, 카이엔은 신속히 뒤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레드쉴드들과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옆쪽에 앉아 허리춤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는 마사무네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거 쓸거냐?”

“써야 겠지요.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마사무네가 일반 마법 스크롤보다는 조금 더 커 보이는 두루마리를 꺼내어 소중히 펼치자 카이엔은 이동중인 기사들을 손가락으로 까딱거리며 외쳤다.

“그래! 어이 거기 세 명 이쪽으로 와서 마사무네를 호위해라!”

“넵!”

마사무네가 비장의 무기를 선보이기 위해 작업에 들어가자 카이엔은 광폭의 날개를 배낭 속에 집어넣어 버리고 거대한 모닝스타를 꺼내들었다.

"이정도라면!"

모닝스타의  쇠뭉치를  이리저리 돌려 보던 카이엔은 이제 거의 200미터정도 앞까지 접근한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을 힐끔 힐끔 노려보며 한 편에서 배낭을 뒤적거리고 있는 사이토에게 물었다.

“우리와 함께 하겠나?”

“아니!”

사이토가 딱 잘라 거절하자 카이엔은 실망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사이토를 쳐다보았고 사이토는 배낭에서  새로운 대거를 꺼내어 벨트의 검집에 집어넣은 뒤 카이엔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함께 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 네 자매들은 내가 확실히 지워주지.”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토가 조용히 말하자 카이엔은 피식하고 웃음을 지으며 그 말에 응수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아깝긴 하지만... 대신 그 여자들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겠다. 그건 자네 선에서 잘 처리해 보라고.”

심술을 부리는 듯 카이엔이 말하자 사이토는 양 손의 와이어를 점검하며 눈을 빛냈다. 그녀들의 목적지는 역시 돌아오지 않는 던젼의 드래곤 아이일 것이다. 예전에 그리도 경고를 했건만, 그녀들은 자신의 경고를 깨끗하게 무시해 버렸다.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의 상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었기에 사이토는 카이엔에게 조용히 물었다.

“카이엔이라 했나?”

“뭐지?”

“뭐, 별건 아니고 오늘의 내 행동은 알려지지 않길 바란다. 또 그녀들에 대한 내 복수도 너희들이 한 것으로 해줘. 왜냐하면 난 굳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그리고 너희 쪽도 엄연히 아이아스 총 길드 소속인 만큼 미스틱핸즈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상당히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이토에 말에 카이엔은 잠시 머리를 골똘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 자리에 마사무네가 있었다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방금 제안을 수락하겠지만, 카이엔은 이런 일로 미스틱핸즈와 왈부왈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잠시간이지만 잘해보자고!”

“그러지.”

카이엔이 제안을 수락하자 사이토는  지팡이를 가슴 앞에 소중히 모아 쥐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이아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지금 수백마리의 그레이트 스콜피언들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가이아의 눈은 평온하고 착 가라앉아 있었다. 분명 그녀도 마음속은 매우 혼란스러우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이야기 할 시간이 아닌 듯 보였다. 레드쉴드 기사단 전체를 감싸고 있는 긴장감... 그것을 느끼지 못할 리 없는 사이토는 가이아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기사단 쪽으로 함께 걸어갔다.

주위 근방에 깔아놓았던 8마리의 비홀더들을 모두 역소환한 마사무네는 곧 자리에 정자세를 하고 앉아서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왕이면 비홀더들도 전투에 참가시키고 싶었지만, 지금 그가 소환하려는 생물은 자신의 모든 마나를 쏟아 부어야 하는 그런 종류였다.

“시작해 볼까?”

두루마리의 위쪽을 양손으로 잡은 마사무네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소환을 위해서는 그 생물을 나타내는 문장이 적힌 두루마리가 필요했고, 또 소환한 생물을 게임 상에서 유지시키려면 그에 알맞은 마나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한다. 비홀더 따위야 이제 7계급 셔머너 최상급에 달하는 그에게는 쉬운 일이었지만, 지금 소환하려는 것은 것은 비홀더 따위와는 그 스케일이 전혀 틀리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호위까지 붙인 것이다.

“고대로 내려온 진정한 전사를 선택하는 이여! 온유함속 불꽃의 강인함을 감춘 그대! 나 여기 그대를 부른다!”

주문을 외우며 두루마리를 찢기 시작하는 마사무네의 몸 주위로 검은색의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검은 오오라가 마사무네의 몸을 집어 삼킬 듯 피어올랐지만 마사무네는 개의치 않는 듯 나머지 주문을 계속 외웠다.

“그대를 부른다. 그대를 갈구한다. 이곳에 나타나 나의 적을 주살하라!”

마사무네가 두 쪽으로 찢은 두루마리를 하늘로 던져올리며 크게 소리치자 두루마리는 불꽃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재로 변했고 두루마리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휘영찬란한 황급빛을 내뿜는 이중으로 된 마법진은 잠시 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발키리 소환!”

마지막 주문을 모두 외운 마사무네가 힘에 겨운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자 마사무네를 호위하는 기사단원들은 그를 호위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쌌다. 이제 마사무네의 제어를 벗어난 거대 마법진은 서서히 그 회전속도를 더하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섬광과 함께 눈부시게 빛나는 붉은 갑옷을 착용한 삼 인의  거대 여전사들을 소환해냈다. 신비로운 붉은 빛을 뿜어내는 붉은 브레스트 아머와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서클릿, 그 밑으로는 자신감에 차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자이언트 스콜피언을 노려보는 미안의 여전사들! 만약 그녀들의 신장이 거의 4미터에 육박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남성 유저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용모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녀들이 나타나자 레드쉴드 기사단원 전체는 붉은 오오라에 휩싸였고 잠시 후 그들의 몸 위로는 붉은색의  반투명 타워실드가 세워졌다.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나?”

“설마! 엄연한 우리의 마스코트라구!”

사이토의 물음에 장난스레 대답한 카이엔은 후열에 있는 마법사들과 궁수들에게 손을 들었다.

“포메이션 D. 아끼지 말고 쏟아 부어라! 전열은 장거리 무기로 최대한 공격!”

카이엔이 말이 끝나자 잠시 후 레드쉴드에서는 엄청난 양의 화살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형적 밀리 클래스인 기사들마저 활을 들고는 꽤나 능숙한 솜씨로 시위를 당기고 있었고 궁수들은 한번에 두개에서 세 개의 화살을 시위에 메겨 쏘아대며 자이언트 스콜피언 들을 쓰러트렸다. 뒤이어 요란하게 쏟아져 나가는 마법의 물결!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은 냉기의 물결과 화염들 그리고 바람의 칼날 속에 괴성을 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젠장! 밀리는군!”

아무래도 중과부적이었다. 몬스터들의 전열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잠시나마 전진을 멈추게 했지만 수백에 달하는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은 이제 슬슬 양 날개 쪽으로 레드쉴드를 감싸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스콜피언들에게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모두 총 공격! 대열을 흩트리지 마라! 양 날개를 지켜!”

명령을 내린 카이엔은  모닝스타를 손에 거머쥐고 대열의 전방에 버티고 섰다. 다행히 지능이 떨어지는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이기에 별다른 전술의 사용은 없었다. 하지만 인해전술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으로써는 웬만한 전술들보다 더욱 위험했기에 카이엔은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와아아아!”

“레드쉴드에 영광이!”

기사단은 활을 집어넣고 일제히 어깨춤의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들며 크게 외쳐댔다. 이제부터는 난전 혹은 백병전으로 후위의 마법사와 레인지 클래스를 보호해야 한다. 모두 결의를 다지는 가운데 마사무네가 조종하는 세 명의 발키리들은 그대로 하늘을 비상하듯 날아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의 물결 한 가운데로 떨어졌다. 거대한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식간에 벌어진 무자비한 도살!  세 명의 발키리들은 흡사 한 몸인 듯 빠르게 돌아가며 자이언트 스콜피언을 도살하기 시작했고  그에 용기를 얻은 기사단은  함성을 내지르며 몬스터와 전열과 맞붙었다.

“조금 정도 도와야겠지?”

“네!”

가이아는 시선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쨌거나 그녀들은 사이토를 죽이려 했다.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단 하나의 끈! 그것을 뒤흔들어 놓으려 했다.

“이들을 도와주고 있어! 나는 몬스터들과 직접 붙어야겠어!”

사이토는 하르페와 대거를 양손에 늘어트리고 레드쉴드 사이를 빠르게 지쳐 들어갔다.

타탁!

“미안!”

한창 자이언트 스콜피언의 두부를 박살내던 기사의 어깨를 밟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사이토는 잠시간 발판이 되어준 기사에게  미안함의 손짓을 한 뒤 발밑으로 보이는 자이언트 스콜피온 떼거지를 노려보았다. 순식간에 자신에게 집약되는 끈적한 살기...

“어디서 꼴아봐!”

쫘라라라락!  쫘아아악!

사이토는 갑옷에 설치된 6가닥의 와이어를 모두 펼쳐내며 몬스터들을 덮쳤다. 빠른 손놀림을 이용하여 온몸의 와이어들을 쉴 새 없이 뽑아내며 양손의 하르페와 대거를 자이언트 스콜피언의 목에 꽂아 넣던 사이토는 자신의 덫에 걸려 있는 자이언트 스콜피언이 날카로운 꼬리침을 뻗어 오자 공중에서 공중제비를 돌아 피한 뒤 온 몸의 회수버튼들을 눌렀다.

스컥! 스컥! 츠컥! 촤라락!

모닝스타로 자이언트 스콜피언을 통째로 날려버리던 카이엔은 갑자기 전장 한 쪽에서 몬스터들의 절단된 몸들과 함께 엄청난 양의 붉은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자 덮쳐오는 또다른 자이언트 스콜피언을 방패로 밀쳐내며 경악의 탄성을 내질렀다.

“대단하군!”

“하앗!”

피보라를 헤치고 공중으로 솟아 나왔던 사이토가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거대한 꼬리공격들을 가뿐히 피한 뒤 다시 기합과 함께 몬스터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자 카이엔은 다시금 솟아나오는 호승심을 애써 꾹꾹 눌러 참으며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각 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대원들의 비명소리! 아무리 발키리의 가호가 내려 방어력이 상승했다 해도 완벽한 무적은 아니었다. 다행히 발키리와 미스틱핸즈가 몬스터들의 전진을 최대한 방해하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계속 꾸물 꾸물 기사단을 애워싸고 있었다.

[대장! 이대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지에서 남쪽으로 1킬로만 후퇴하면 계곡지형이 있습니다. 그 쪽으로 유인해서 좁은 지형을 이용해 승부를 봐야겠습니다.]

[알았다!]

파아아앙!

마사무네의 의견을 듣던 중 자이언트 스콜피언의 강력한 꼬리공격을 간신히 방패로 막아낸 카이엔은 길드메시지를 이용해 전 레드쉴드에게 명령했다.

[전군 남쪽의 계곡으로 전격 퇴각! 마법 클래스는 퇴각을 용의하게 하고 마사무네는 소환수를 이용해서 최대한 퇴각을 도와!]

[넵!]

카이엔의 명령이 떨어지자 레드쉴드는 최대한 신속히 전투지역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마법클래스들은 모든 마법들을 남쪽 방향으로 기어 들어오고 있는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에게 집중시켰고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던 기사들은 몬스터들을 견제하며 뒤쪽으로 진영을 후퇴시켰다.

“디바인 실드!”

가이아가 지팡이를 높이 들며 크게 외치자 자꾸만 밀려드는 몬스터들로 인해 후퇴가 용의하지 않았던 기사들은 몬스터들과 그들사이에 성스러운 벽이 생성되자 가이아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고는 황급히 진형을 물리기 시작했다.한편 전체적 상황을 지켜보며 상황을 지휘하던 카이엔은 아직까지 몬스터들 사이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사이토를 발견하곤 크게 소리쳤다.

“젠장! 미스틱 핸즈! 우리는 남쪽으로 후퇴한다!”

끼기기기!

하지만 카이엔의 이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미스틱핸즈의 머리 위로 네 다섯 마리의 자이언트 스콜피언이 급작스럽게 덮쳐들자 카이엔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미스틱핸즈가 있는 쪽으로 뛰어들었다. 미스틱핸즈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두려움을 모른 채 단순한 살의의 본능에 집착하는 자이언트 스콜피언떼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대장! 위험해!”

레드쉴드의 후퇴를 지휘하던 마사무네는 미스틱핸즈에게로 뛰어들은 대장에게 수십 마리의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이 개미떼처럼 덮쳐들자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대장에게 달려갔다.

파아아! 쉬쉭!

흡사 먹이를 서로 독차지하기 위해서인 양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은 둘을 에워싸고는 덮쳐들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 마사무네는 한창 학살에 열중하고 있던 발키리들을 움직여 카이엔과 미스틱핸즈를 구하라 명령을 내린 뒤 그 자신도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주문을 쓰기 위해 수인을 걸었다.

쫘아작! 쫙~! 파파팟!

거대한 붉은 꽃이 펼쳐지며 요란한 파공성과 절단음이 퍼지며 조각 조각난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이 하늘 높이 비상했다. 뒤이어 마사무네가 있는 쪽으로 파도가 갈라지듯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이 좌우로 튕겨나가자 마사무네는 얼이 빠져 그 광경을 쳐다보았고 마사무네는 마법이 실패해 버린 줄도 모른 채 자신의 앞에 나타난 두 인영을 멀뚱하니 쳐다보았다.

“오! 대단한데!”

“흐흐, 너도 만만치 않아!”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낮게 웃음을 터트리는 두 인영을 멍하니 쳐다보던 마사무네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장! 걱정 좀 시키지 마시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발키리들을 이끌고 다시금 대원들의 퇴각 수습현장으로 가버리는 마사무네를 쳐다보며 카이엔은 낮게 웃음 지었다.

“짜식! 부끄러워 하긴.”

의외로 퇴각 후 점검한 레드쉴드의 인원은 전혀 줄어들어 있지 않았다. 사이토의 옆에서 묵묵히 뛰고 있는 가이아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카이엔... 만약 그녀가 기사단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무한 회복을 해주지 않았다면 최소한 10여명의 사상자는 나왔으리라.

“감사드립니다. 레이디! 레이디가 아니셨다면 저희 기사단에 큰 곤혹을 치를 뻔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례하게나마 그대의 이름을 가르쳐 주시겠는지요?”

상황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사이토의 옆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가이아의 옆으로 천연덕스럽게 다가온 카이엔이 버터 100스푼이 철철 넘치는 대사를 아낌없이 퍼붓자 마사무네는 대장의 이런 행동이 이제 면역이 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카이엔을 무시했고 마사무네의 소리 없는 원망을 깨끗하게 무시한 카이엔은 가이아를 계속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오케이! 거기까지! 더 이상 수작 걸면 와이어로 온몸에 오선지를 그려주마!”

사이토가 잽싸게 둘 사이로 끼어들어 카이엔에게 섬뜩한 와이어를 뽑아들자 카이엔은 앗 뜨거! 하는 표정으로 가이아에게서 떨어졌고 와이어를 제자리에 집어넣은 사이토는 자신을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쳐다보는 카이엔의 면상을 한 차례 짓이겨 버리고픈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카이엔에게 말했다.

“이쯤에서 찢어지자!”

“어이! 이봐 장난 친 거라고!”

카이엔이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말하자 사이토는 피식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아아! 그게 아니고... 슬슬 그 여자들이랑 오붓하게 상담이나 하러 가야 할 듯싶어. 아까 들어보니 계곡 쪽에서 승부를 보려는 것 같은데 난 더 이상 필요가 없을 듯싶군.”

사이토는 품안에서 나침판을 꺼내 들었다. 같은 파티를 나타내는 파란 점의 위치를 나타내는 화살표들이 사이좋게 뭉쳐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전 우연히 꺼내 든 나침판에서 발견한 그녀들... 바보 같이 그녀들은 자신과의 파티를 아직까지 취소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아마 그녀들을 잡기는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흠, 그래! 그럼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마 데이모스에서 한번 정도 더 보게 될 거야!”

“그러지!”

카이엔과 작별인사를 나눈 사이토는 가이아의 손을 잡고는 빠른 속도로 대열을 이탈했다. 비록 뒤에서는 수백 마리의 자이언트 스콜피온들이 잡아먹을 듯 바짝 쫓아오고 있었지만 사이토의 속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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