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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성의있게 쓰고 있는데..;; 10점은 너무 하십니다.. =_=;
왠수 진것도 아니시고..;;
적막에 싸인 거대한 공동 어두침침한 돌기둥 밑으로 작은 불빛들이 소곤거린다. 가끔 소리 없이 연기와 같은 움직임으로 고대 그리스의 양식처럼 보이는 돌기둥 들과 벽 사이를 배회하는 하얀 연기들... 자취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 미려한 꿈틀거림으로 접근하는 것들...
“스펙터야! 유르 앞으로!”
“오케이!”
재빨리 이페의 앞으로 나선 유르는 장갑에 부착된 발톱을 길게 세우며 스펙터들을 노려보았다. 일반 무기로는 타격을 입지 않는 스펙터가 슬금슬금 접근해오기 시작하자 유르의 발톱은 스펙터를 감지했는지 우유빛의 광채를 조금씩 내뿜기 시작했다. 이벤트성 퀘스트 아이템인 유르의 ‘노란 고양이의 게으름’ 셋트 중 파란 줄무늬가 들어간 긴 장갑에 장착된 발톱은 순수 마법 공격력을 지닌 무기 중 하나였다. 여성 격투클래스를 지향하는 유저들에게는 선망의 아이템 10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 ‘노란 고양이의 게으름’이라는 셋트를 전신에 도배하고 있는 유르로써는 스펙터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유르가 스펙터들을 모두 해치우자 이페는 스펙터들에서 떨어진 아이템들을 대충 골라 주워 넣은 뒤 일행들을 향해 손짓했다.
“다시 전진하자!”
“네!”
선두를 걷는 이페는 시시때때로 나침판을 확인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맨 후위를 맡고 있는 엘리오네스는 혹시나 뒤에서 덮칠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총 3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돌아오지 않는 던젼’, 1층이 거대한 화강암 동굴로 이루어진 반면 2층과 3층은 거대한 신전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들어온 지 벌써 6시간째 그녀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던젼을 탐험해 나갔고 슬슬 그녀들은 3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흐음, 고민되네. 막힌 문이라...”
이페의 전면을 떡 버티고 있는 거대한 철문, ‘돌아오지 않는 던젼’에 들어서면서부터 몇 번씩 부딪혔던 거대한 문이었다. 물론 안으로의 탐지는 불가능, 이페는 한숨을 내쉬며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쉬지 않는 강행군을 한 탓인지 모두들 지쳐 있었고, 특히 엘리오네스는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부딪혔던 가고일들과의 전투에서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해 신경까지 날카로워져 있는 지경이었다.
“모두 휴식!”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리한 전진은 자칫 희생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이페는 일행들에게 휴식을 명했다. 이럴 때 가이아가 있었다면 회복마법 몇 번으로 금방 회복시킬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어쩔 수 없이 성능 안 좋은 체력회복물약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리얼 판타지아에 존재하는 체력회복물약들은 알케미 스킬 즉 물약제조 스킬을 지닌 유저들이 만든 것들이었다.
물론 게임에 있어서 체력회복물약이란 필수 불가결한 것 중 하나였기에 유저들의 스킬을 통해 만들 수 있도록 구현해 놓았지만, 그 물약들의 성능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어차피 마셔봤자 체력이 회복되는 속도를 높여주는 것일 뿐 빠른 효능을 기대하기도 어려웠고 또한 약간의 치명적인 상처들에 대해서는 효과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꼭 필요한 상비용으로 네 다섯 개씩만을 들고 다닐 뿐, 웬만하면 거의 성직자계열이라던가 회복의 주가를 부를 수 있는 고위 바드 혹은 고위 신성기사들의 회복을 선호하는 추세였다.
“언니, 얼마나 남았어요?”
한편에서 벽을 등지고 쉬고 있던 유르가 다가와 묻자 이페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후, 그게 좀 난해하구나. 지도상으로는 대략 반나절 거리라고 하지만, 워낙 미로가 복잡하니...”
“네에.”
실망한 듯 다시 제자리로 가 벽에 등을 붙이는 유르를 쳐다보며 이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오네스와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왠지 유르와 실키는 던젼에 들어올 때부터 그리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들을 나무랄 수 없는 건 자신들이 한 그런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볼 때 현재로써 가장 올바른 반응은 어쩌면 그녀들일 것이었다. 죄 없는 미스틱핸즈를 속여 미끼로 사용한 일, 더군다나 가이아라는 이름의 그 예쁘장한 아가씨를 미스틱핸즈와 함께 도매금으로 사지로 밀어 넣었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쉽사리 넘어가지지 않는 걸림돌이었다.
“후우, 힘내야지!”
낮은 한숨이 기분 나쁜 메아리가 되어 동공에 메아리를 만들어 갔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를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조용한 던젼, 애써 힘을 내보려 하는 이페였지만 갈수록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이페가 양심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또 다른 던젼의 한편에서는 지금 사이토의 광란의 질주가 펼쳐지고 있었다.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부조 속에서 튀어나온 셰이드는 자신을 완벽하게 개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는 사이토의 행위에 광분하였는지 특유의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울리며 쫓아왔지만 사이토의 광란의 질주를 멈추기에는 그 둥둥 떠다니는 속도가 받쳐주지 않았다.
“크어어!”
사이토의 뒤로 셰이드의 처절한 외침이 흡사 떠나버린 버스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고3 수험생처럼 처절했으나, 그런 셰이드의 외침은 이미 사이토의 관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사이토는 잠시 후 벽 한켠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문을 마주보고 섰다.
“하하! 드디어 찾았다!”
나침판을 확인하며 거의 던젼을 직선주로로 돌파해버린 사이토는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흔적을 찾아내자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탐색했다. 한 차례 전투가 있었던 듯 여기 저기 땅이 파인 흔적들, 벽면에는 날카로운 흉기가 가르고 지나간 듯 거미줄처럼 흠이 나 있었고 땅에는 돌 부스러기 들이 이리 저리 흩어져 있었다.
“여기를 지나갔단 말이지!”
분명 문을 통과하여 갔으리라. 비록 이곳을 통과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현재로써 그녀들의 흔적을 찾아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시간상으로는 이 곳에 들어온 지 벌써 4시간이 지나고 있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던젼’의 지리를 재대로 모르는 사이토로써는 던젼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며 그녀들의 흔적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흔적을 찾았으니 남은 것은 쫓아가는 것 뿐, 잠시 주변을 탐색하던 사이토는 곧 이어 마인드콘트롤을 이용하여 에테르 스킬을 활성화 시켰다. 이런 문을 열었을 시에는 분명 그 안쪽에는 몬스터들이 문의 개방과 함께 활성화 되는 것을 이미 몸으로 터득한 사이토였기에 에테르 스킬은 이러한 함정을 피하는데 매우 유용했다. 덕분에 이 험하기로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던젼’을 이렇게 성한 몸으로 무사히 통과 했으리라.
에테르 스킬을 몸에 활성화 시킨 사이토는 천천히 문의 안쪽으로 스며들어갔다. 곧 이어 만나게 될 그녀들을 기대하며...
“여기야!”
“와앗!”
오랜 탐험에 꽤나 지쳐버렸는지 이페의 말에 유르는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던젼 3층을 탐험한지도 거의 반나절이나 지났다. 종착역을 알리는 듯한 거대한 홀, 사방으로는 수많은 문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원추형으로 생긴 홀의 천정에는 수십 개의 크리스탈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곳을 처음 출입한 초보라 한다면 사방으로 뚫려있는 문들로 인해서 꽤나 고민하겠지만, 이페는 알고 있었다. 이 홀의 진짜 문은...
이페는 홀의 중심을 둥글게 돌며 바닥의 쌓인 먼지들을 발로 치워내며 바닥을 유심히 관찰했다.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듯한 마름모꼴의 문양,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거미줄 같은 굵은 선들... 이페는 사전에 알아낸 정보들이 있었기에 그 위로 쭈그리고 앉아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끝에 위치한 흐릿한 문양들을 차례대로 눌렀다.
“생명을 구하려는 이 여기에 서다. 이제 그 문을 열어라!”
마지막으로 시동어를 외치자 천정의 크리스탈들은 서서히 회전하며 영롱한 빛을 바닥으로 내리 비췄고, 바닥에 그려진 거미줄 같은 선들은 차츰 자신들의 자리를 찾으며 작은 마법진을 그려냈다. 어디로 통할 지 알 수 없는 작은 이동용 마법진...
엘리오네스와 실키 그리고 유르를 차례대로 바라본 이페는 마법진 안에서 서서히 붉은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가슴의 안은 하프를 단단히 쥐고는 눈을 감았다. 이곳부터는 단 한명만이 마지막 시험을 치룰 수 있었다.
“다녀올게”
이페가 서서히 붉은 오오라에 감싸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셋은 잠시 후 홀 중앙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아 사방을 경계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이페가 안에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때까지 셋은 이 마법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혹시나 나타날 몬스터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대략 3분... 이페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는 셋은 마음속으로 180초를 천천히 세나가기 시작했다.
“찾았다. 드래곤 아이!”
쭉 뻗은 복도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주위를 살피며 종종 걸음으로 걷던 이페는 복도의 끝에 자리한 큰 홀 가운데 위치한 제단을 바라보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크기에 황금빛을 내뿜고 있는 드래곤 아이, 하지만 이페는 애써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주위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제단 위의 드래곤 아이를 낚아채는 순간 시험은 시작될 것이다. 거금 1000골드를 지불하고 얻은 부활 퀘스트의 마지막 관문, 드래곤 아이의 앞에 선 이페는 가슴에 안은 하프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선을 고르며 방어의 주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목소리는~ 의지의 힘, 나의 목소리는 나를 지키는 거대한 권한, 나의 적을 속박하리라~”
7계급 전투바드 상급에서 배울 수 있는 방어의 주가가 홀을 감돌기 시작하자 이페의 주위로 무지개 빛으로 반짝거리는 빛의 입자들이 하나 둘씩 내려앉았다. 주가의 힘이 홀을 충분히 감싼 것을 느낀 이페는 하프를 로브 안쪽으로 집어넣은 다음 한 자루의 날카로운 대거를 꺼내 들었다.
“준비!”
드래곤 아이에 손을 뻗으며 이페는 나직이 읊조렸다.
“시~작!”
이페가 드래곤 아이를 낚아채고는 복도 쪽으로 뛰기 시작하자마자 홀은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내짖는 거대한 울음소리에 좌우로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관문, 마지막 함정, 석상들은 각기 그 형상이 말하는 몬스터들로 탈바꿈하며 이 곳 ‘돌아오지 않는 던젼’의 침입자를 갈기갈기 찢기 위해 이페의 뒤를 따라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흉측한 비늘로 둘러싸인 발톱이 이페의 방어막을 찢을 듯 훑어 내린다. 그 위로 산으로 보이는 기분 나쁜 녹색 침을 마구 뱉어내는 검고 흉측한 개구리 모양의 몬스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방어막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는 듯 곳곳에 작은 구멍들이 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이페는 눈앞에 보이는 붉은 빛무리 속으로 몸을 던지며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퀘스트가 끝난 것이다. 이제 그를 다시 살릴 수 있으리라. 또한 되살아난 그가 그 지긋지긋한 레드쉴드의 잔당들을 차근차근 부셔버릴 것이다. 몸이 어디론가 전송되는 가운데 이페는 드래곤 아이를 허리춤에 달린 배낭 깊숙한 곳에 집어넣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이페가 마법진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세 자매들은 이페의 주위로 모여들어 이페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페의 말을 기다렸다.
“얻었어. 드래곤 아이.”
“와아!”
서로 마주보며 그동안의 노력을 떠올리는 두 여자들... 이제 남은 것은 단순한 여행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레드쉴드들은 몬스터들의 습격에 큰 타격을 입었을 터, 부활퀘스트가 끝나고 그가 돌아오게 된다면 데이모스의 패권은 다시금 자신들에게 넘어오게 될 것이다.
“그래, 수고하게 만들었지.”
“응, 수고... 앗!”
무심결에 대답하던 이페는 순간 뒷쪽에서 남성의 목소리와 자신의 바로 뒤 목덜미를 스치듯이 느껴지는 숨소리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앞쪽으로 몸을 수그렸다.
“누..누구!”
“벌써 잊었나? 섭섭하군!”
대답과 함께 목을 향해 번개같이 올라오는 칼날!
“칫! 살아있었군!”
사이토의 칼날을 간신히 피한 이페는 몸을 뒤로 날리며 외쳤다. 다행히 빠르게 반응했기에 망정이지 잘못하면 목이 떨어져 나갈 상황이었다. 어쩌면 사이토의 자만이 불러온 실수일지도...
“하앗!”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유르와 엘리오네스가 무기를 뽑아들고 사이토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무기가 교차하는 엘리오네스와 사이토! 사이토의 기습이 실패했다는 것을 눈으로 비웃어 주는 엘리오네스지만 사이토의 눈에는 한점 실망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흥! 감히 도둑 주제에 우리들 모두와 정면 대결이냐?!”
사이토를 힘으로 밀어붙이려 검에 힘을 주는 엘리오네스였지만 사이토는 엘리오네스에게 밀리지 않은 채 오히려 그녀를 이용해 유르를 견제하며 단검으로 손쉽게 밀어내었다.
“죽음을 가둔~ 핏속에 울부짖는 영혼들~ 다라랑!”
실키의 옆으로 움직인 이페는 하프를 꺼내들고 빠르게 주가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곡명은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마그누스의 주가, 사이토를 노려보며 빠르게 하프의 현을 튕기는 이페의 옆에 선 실키는 갑자기 나타난 사이토를 바라보며 혼란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나마 호감을 느꼈던 남자, 죽었으려니 하는 마음에 애써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사이토가 다시금 그녀의 앞에 나타나자 실키는 마법을 캐스팅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사이토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흐윽!”
순간적으로 사이토에게 아랫배를 허용한 엘리오네스는 터져 나오는 신음성을 삼키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자만한 나머지 사이토의 발을 까맣게 잊었던 그녀는 그에게 배를 호되게 얻어맞고서야 지금 그녀 자신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떠올렸지만, 하지만 그녀에게 사이토는 더 이상의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요란한 금속 부딪히는 소리! 그에 이어 들려오는 콩 볶는 듯한 타격음!
“엘리오네스!”
사이토의 무차별적 공격에 매서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마냥 비틀거리던 엘리오네스가 사이토의 마지막 발차기에 하늘위로 높이 솟았다가 땅으로 떨어지자 이페는 비명을 지르며 엘리오네스에게 달려갔다. 엘리오네스를 마무리 지으려는 듯 떨어지는 그녀를 향해 주먹을 가다듬는 사이토, 하지만 그의 행동은 등을 향해 발톱을 꽂아 넣는 유르에 의해서 무효화 되었고 곧 이어 사이토는 묘한 웃음을 지은 채 유르에게 맞서 나갔다.
“치잇!”
유르는 양팔을 교차하며 사이토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묵직한 중압감! 팔을 타고 오르는 찌르르한 아픔, 다시금 사이토의 후속타가 뒤따르자 유르는 더 이상 막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뒤쪽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사이토의 등 뒤로 보이는 실키는 이내 정신을 차린 듯 거대한 마법 하나를 거의 완성해 놓고 있었고 엘리오네스에게 다가선 이페는 신속한 동작으로 엘리오네스에게 회복물약을 먹이고 있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 뒤쪽의 벽을 박찬 유르는 반동을 이용해 빠르게 사이토에게 날아들었다. 흡사 고양이가 벽을 박차는 듯한 기민함! 하지만 사이토는 유르의 행동에 별로 동요되지 않은 듯 침착한 얼굴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언니 물러서요!]
[알았어!]
실키의 급박한 메시지, 유르는 사이토에게 들키지 않으려 얼굴에 내색하지 않고 더욱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실키의 마법이 주효하게 터져만 준다면 전세를 순식간에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 순간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유르였다.
“아냐... 그게 아냐!”
이페의 의해 한쪽 구석으로 옮겨진 엘리오네스는 눈앞으로 얼핏 보이는 사이토와 유르를 쳐다보며 작게 신음했다. 유르는 속고 있는 것이었다. 맞붙어 싸울 때는 몰랐지만 멀리 떨어져서 사이토의 몸놀림을 쳐다보던 엘리오네스는 침음성을 삼켰다. 얼핏, 평수를 이루는 듯 막고 찌르고 차고 하는 사이토의 움직임,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서는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그 어이없을 정도의 파괴력과 속도를 지닌 무위, 평범하게 그녀에게 접근했던 사이토는 다른 이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자신을 걸레로 만들어 버렸다. 사이토는 지금 뭔가를 가늠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를 노리고 있었다.
[유르! 조심해!]
몸의 상태가 이미 활동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엘리오네스는 메시지로나마 유르에게 경고를 해 주었다.슬슬 라이프가 차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재대로 움직이기에는 아직 요원한 일, 비록 약간이나마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사이토에게 얻어맞은 상처들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분명 사이토는 그녀의 급소들을 모조리 부셔놓았다. 그것도 그 혼전의 상황에서도,
“칫!”
마그누스의 주가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안 이페는 혀를 차며 다음 주가를 연주하기
위해 현을 고르기 시작했다. 주가를 이용한 공격은 마법과는 달리 시전에 시간 제약이 있지 않았다. 물론 그 효력은 동 계급의 다른 클래스들과 비교해 봤을 때 실패확률이나 효능면에 있어서 뒤처지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주가의 신속성에 대비해 봤을 때 미비한 약점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주가가 끝낸 뒤 다음 주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잠시간 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일명, 쿨타임이라 불리는 이 시간, 이페는 어서 빨리 쿨타임이 끝나기를 바라며 사이토를 노려보았지만, 곧 이어 들려오는 사이토의 목소리는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이아! 공격해!”
잊고 있었다. 그의 파트너... 그의 동료, 가이아! 분명 그가 있다면 당연히 가이아 또한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이페는 황급히 뒤쪽을 쳐다보았지만 그 곳에는 썰렁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성...
“꺄악!”
“이... 이런 유르!”
설마했다. 명색이 미스틱핸즈라는 자가 이런 치졸한 방법을 쓸 줄이야!
“비겁한 자식!”
“훗!”
유르의 목과 가슴으로는 차가운 한기를 머금은 얇은 실선들이 묘한 광선을 발하며 드리워져 있었다. 유르 또한 사이토의 거짓말에 깜빡 속아 뒤를 바라본 것이 화근, 어째 미스틱핸즈가 순순히 자신과의 위치를 뒤바꿔 준다 했다. 물론 그 결과 유르는 사이토의 와이어에 옭매어 버리고 말았다. 잠시간의 대치 상황... 유르를 잡는데 성공한 사이토는 그 자세 그대로 유르의 등에 찰싹 붙어서 앞쪽으로 보이는 세 여자를 묘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고 나머지 세 여자들은 그 자세 그대로 굳은 채 사이토를 노려보았다.
“이제야 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구만!”
능청스런 사이토의 말에 이페는 이를 뿌드득 갈며 외쳤다.
“미스틱핸즈! 원하는 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