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얼판타지아-129화 (129/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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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까? 말까? 죽이고 살려? 죽이고 끝내? 살리고 죽여? (응?)흣흣흣...

여기서 자르면 완벽한 절단 마공이겠지요? -0-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사이토를 향해 무라마사를 곧게 베어 들어가던 루피아는 그대로 도를 돌려 잡고 뒤를 향해 빠르게 그어 내렸다. 그는 사이토의 이런 행동까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사이토가 노리는 것은 분명 그의 뒤통수! 이전에 지금과 같은 비슷한 상황에서 도둑과 대결했을 때 한번 당했던 일이었다. 이미 한번 겪은 일을 또 다시 당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 그러나 그런 루피아의 회심의 미소는 허공을 긋고 지나가는 무라마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레이브 스피릿!”

사이토의 처절한 외침과 함께 루피아의 가슴으로 시리디 시린 시퍼런 오오라의 검이 뚫고 나왔다. 뒤이어 루피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양 그의 인체 내부에서 마구 요동치는 기운....

“으.. 으아아아아악!”

영혼이 격동한다. 온몸의 라이프가 순식간에 빨려 나간다.  배를 뚫고 들어온 그레이브 스피릿은 야금야금 그의 영혼을 갉아 먹어대고 있었다.

“흐윽!”

루피아가 앞으로 풀썩 쓰러지자 그레이브 스피릿을 거둔 사이토는 처절한 웃음을 지으며 루피아를 조롱하듯 쳐다보았다. 루피아의 무라마사는 마지막 궤적의 변경에서 사이토의 얼굴을 대각선으로 긋고 지나갔다. 흉한 상처가 사이토의 얼굴에 남았지만 곧 없어지리라.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무라마사를 루피아에게 허상이라 속이기 위해 꾹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거...검왕... 삼살도가 패했다!”

“미..미친! 이럴 수가!”

기사들은 엄청난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루피아는 그들에게 우상이었다. 누구 보다 오르기 힘들다는 9계급까지 오른 최강자! 리얼판타지아내의 공인된 최강자중 하나인 루피아가 쓰러진 것이다.

“젠장! 멍청한 것들! 회복 회복시켜라!”

그나마 냉정을 유지하고 있던 카시미어는 성기사들에게 루피아를 회복시키라고 소리쳐댔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기사들... 수십번의 힐링이 루피아의 몸에 작렬했지만, 그레이브 스피릿의 저주에 빠진 루피아에게 힐링이 될 리가 없었다.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건 최하 리커버리...그러나 그것은 성기사들에겐 요원한 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루피아의 몸이 붉은 빛을 뿌리며 사라지지 않자, 기사들은 다행히 힐링으로 인해 루피아가 살아난 줄 알고 사이토를 경계하며 다가와 루피아를 끌고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이제 루피아도 쓰러졌고, 카시미어의 명령 체계에 토를 달 간 큰 인간은 나오지 않으리라. 카시미어는 사이토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냐?”

“....”

대답없는 사이토, 살짝 열받은 카시미어가 다시금 외치자 사이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를 마주 노려봐 주었다. 루피아 정도의 고급계급이 죽으면 혹시나  비싼 아이템 하나 떨어질 줄 알고 잔뜩 고대하고 있던 사이토였지만, 루피아가 아이템 하나 떨어뜨리지 않은 채 얌전히 기사들의 손에 끌려 가버리자 아쉬움에 차 있던 사이토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대거로 한번 정도 더 그어볼걸...

“마지막 남길 말이라...”

주위를 쭈욱 둘러보았다. 사이토를 향해 예기를 발하고 있는 수십 명의 기사들, 살기만으로도 능히 사이토를 격살할 듯 살벌한 분위기였다.

“글쎄...”

묘하게 말을 흐리는 사이토, 수십 명의 기사들의 살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입장으로 봐서는 미쳤다고 해야 할지, 자포자기라고 해야 할지 모를 행동이었지만, 카시미어에게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었다.

“죽여라!”

“우와아아!”

거친 군마가 포효하듯 아이아스의 기사들은 일순간 높은 파도가 되어 사이토를 덮쳤다. 생명의 위협이 닥쳤음에도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기사들을 노려보는 사이토, 그는 정말 생명을 포기한 것일까? 기사들을 노려보는 사이토의 눈은 비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으아아악!”

높이 떠올랐던 기사들을 향해 수십 개의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허수아비처럼 쓰러져 버리는 기사들, 사이토의 앞쪽으로 육중한 거체가 순식간에 나타나 그를 온몸으로 가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긴 무기를 바람개비처럼 휘둘렀다. 공중에서 공중재비를 하며 땅으로 매다 꽂히는 기사들, 무기에 배를 격타 당하고는 벽으로 쏜살같이 날아가버리는 기사들... 사이토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거체에 등에 나직이 한마디 뱉었다.

“너무 극적으로 나타난 거 아닌가? 카이엔!”

“글쌔, 이게 더 멋지잖아. 난 정의의 사도 라구!”

능청을 떨어대는 카이엔이 지금 이순간은 너무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이토였다.

“그럼, 혹시 그 가이아라는 아가씨를 소개시켜 줄 의향은 없나?”

취소다. 가운데 손가락을 살포시 먹여준 사이토는 뒤따라 나타난 마사무네와 거의 부하들이 회복 주문을 걸어 주자 잠시 후 몸을 탈탈 털며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 당장 죽지 않을까 할 정도로 심하던 허리의 상처와 갑옷의 찢긴 부분 그리고 얼굴의 긴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아 있었고 몸 상태 또한 그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물론 평소 거의 줄어들지 않았던 다인슬레터의 내구도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조만간 수리를 해야 할 듯싶지만 일단 목숨은 건졌지 않았는가?

“역시 게임은 좋아. 그것보다 카이엔 지금 저 앞에서 얼빵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

보고 있는 중늙은이 좀 처치해 주지. 내 얼굴 뚫어지겠네그려.”

“흐흐, 그러지 뭐.”

갑작스런 레드쉴드의 출연에 카시미어는 길가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카이엔과 미스틱핸즈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엄연히 따져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소속인 아이아스였다. 그들의 접근을 이쪽의 탐지에서 못 알아챌 리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을 제처 두고서라도 그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다. 그것도 미리 미스틱핸즈와 짜기라도 한 듯,

“미..미쳤구나! 카이엔!”

“별로, 늙탱이!”

귀를 후비며 답하는 카이엔, 카시미어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온 도둑 한명이 조심스럽게 귀엣말을 건넨다.

“적.. 적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뭐얏!”

설마 잘못 들었을까,  도둑의 멱살을 붙들고 되물었지만 카시미어의 손에 잡힌 도둑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머릿속이 노래지는 카시미어, 왠지 미스틱핸즈 추살작전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낸다 했다. 눈치 없는 것이라며 속으로 카이엔을 비웃었었다. 자신에게 잘 보인다면 다시금 중앙으로 데려갈 심중을 은근히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뒤통수를 맞다니.

수십 명의 레드쉴드들이 활을 집어넣고 검을 든 채 서서히 기사들을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루피아의 패배로 사기는 이미 있는 대로 떨어져 있는 아이아스의 기사들, 설상가상으로 지금 검을 쥐고 그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우러러 보던 레드쉴드 기사단의 정예들이었다.

“이유나 좀 알자!”

“이유? 훗!”

카시미어에 외침에 카이엔은 코웃음을 치며 그 말에 대답했다.

“간단히 말해서 감추고 있던 손톱을 드러낸 것이라고나 할까? 아아!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말라고... 처음부터 미스틱핸즈와 짜고 한 짓은 아니었어. 이 친구도 조금 전 내 메시지를 듣고서야 안 거니까! 솔직히 말해 그 동안 이렇다할 명분이 없어서 찢어지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은 이제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고... 그래 우리를 이 변방으로 보내 놓고는 발 뻗고 잠은 잘 잤나? 이제 다수의 힘으로 한명의 유저를 핍박하는 아이아스길드의 행태에 분연하여 일어선 레드쉴드 기사단!, 어때 멋지지? 거기에 만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미스틱핸즈와 내가 친구란 게 밝혀지면 다른 유저들은 어떨까? 아마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응원할 거야. 단순히 그걸 노린 것 뿐이지. 아아! 말이 길어졌군. 미안해. 얘들아!”

“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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